일본 신본격 미스터리를 썩 좋아하지 않지만, 그 와중에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명작『점성술 살인사건』의 작가 시마다 소지의 또 다른 수작이라니 관심이 생겨 보았다.
신본격과 사회파를 융합했다고 하여 그 방식이 궁금했는데, 역시나 범행 트릭은 본격이 맡고 범행 동기 쪽을 사회파가 맡는 형식이었다. 일부러 나쁘게 말하자면, 굉장히 어려운 트릭을 탐정이 풀어낸 다음 모두에게 '하지만 범인에게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어!'라고 말하는데 그 사정이라는 것이 기나긴 역사적 우여곡절과 연관된, 그런 꼴이다. 여기에다 더욱 냉정하게 생각하자면 그 역사적 우여곡절이라는 것도 실상은 범인의 성격에 일조하고 있을 뿐, 미스터리의 가운데에 놓인 사건의 성격이나 동기와는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는다. 작가가 좀 억지를 부려 둘을 연결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의문을 완전히 떨치기는 어렵다.
다만 이것은 다 읽은 다음 전체 사건을 객관적으로 배열했을 때 그러하다는 이야기이고, 소설의 차원에서는, 그러니까 진상을 조금씩 밝혀내며 그때그때 충격을 받는 주인공 요시키 형사의 주관적인 시선을 따라가는 독자의 독서 과정이라는 차원에서 보자면 상당한 설득력을 갖춘 이야기다. 특히 트릭에만 지나치게 심취한 신본격은 트릭이 공개된 다음에 범인이 트릭을 수행하기 위한 인형처럼 보인다는 단점을 드러내곤 하는데, 이 작품도 아주 무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 이렇게 오랫동안 자신을 철저히 버려가며 원한 하나에 매달리는 인간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 범인의 속사정을 서서히 알아감에 따라 그에 이입하는 요시키 형사의 감정 상태가 독자마저 설득해 낸다. 결국 미스터리를 '소설의 탈을 썼을 뿐 결국은 작가가 독자에게 내는 퀴즈'로 볼 것인가, 아니면 '범죄를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을 담은 소설'로 볼 것인가에 따라 평가가 갈릴 만한 작품이다. 전자로 봤을 때는 군더더기가 많은 데다 '본론'에는 잘 달라붙지 않아 문제가 될 테고, 후자로 봤을 때는 대체로 만족스럽다. 그런 면에서는 소재뿐만 아니라 작가의 태도와 작법이라는 차원에서 보더라도 사회파적인 성격이 짙은 셈이다.
미스터리의 성격과는 별개로, 일본 특유의 괴담 분위기도 좋았다. 아니, 이 경우는 일본식 괴담이라기보다는 스티븐 킹이나 클라이브 바커 쪽이 더 생각나기는 했는데. 아무튼 전편을 압도하는 "춤추는 피에로의 수수께끼"가 남기는 시각적 심상이 무척 강렬하고 기괴하다. 한밤중에 읽다가 잠자리에 들었는데 오랜만에 옷장 속이랄지 문 뒤랄지 머리 위가 좀 무섭게 느껴져 공포 소설이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요코미조 세이시의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에서도 그렇지만, 본격 미스터리에 이런 기괴하고 음습한 심상을 결합하고 다시 그 뒤에 인간의 뒤틀린 사정이 얹는 수법은 상당히 효과적인 듯하다. 결국 범행 트릭이 논리적으로 파해 되더라도 답을 알게 된 것만으로는 해소할 수 없는 잔념이 남아 범죄라는 행위의 불쾌하고 끈끈한 점을 꾸역꾸역 각인시킨다. 악취미라고 해도 어쩔 수 없으나, 역시 범죄를 다루는 이야기에는 그런 정도의 불편함이 남는 편이 좋다.
* * *
이 작품에 국한한 이야기는 아닌데, 일본 작가가 자기 작품을 통해 제국주의 시대 일본이 행한 잔악한 행위를 반성하고 심지어 피해자들을 향해 사과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난처한 기분이 든다. 특히 다른 한국 독자들이 해당 작가를 '개념 있다'고 칭송하거나 올바른 역사의식에 관해 이야기할 때면 더더욱.
작가 쪽은 문제 없다. 자신의 양심과 의식에 따라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대로 실천에 나섰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피해자의 경험이 있는 국가의 후손인 나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말하는 이상 독자에게 말할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면 사과도 일단은 내가 받는 게 된다. 바로 그게 난처하다. 내가 뭘 했다고 사과를 받는단 말인가.
유감이라고 해야 할지 행운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나는 일본 제국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니다. 내 부모님이 직접적인 피해를 겪는 모습을 보거나 듣지도 못했다. 국가 단위, 문화 단위에서 받은 간접적인 피해의 경위를 추적하여 '이건 일본 탓!'이라고 말하며 분노할 만큼 시야가 좁고 성실하지도 않다. 그래도 어쨌든 민족의 과거니까 민족적 공분을 느낀다는 논리에는 찬동할 수 없다. (그런 식의 막연하고 거대한 민족 의식은 안 좋은 방향으로 엇나가기가 훨씬 쉽다.)
무엇보다도 지금 한국 사회는 구성원들에게 근현대사를 돌아보기를 권장하지 않는다. 그에 비하면 막연하게 우리는 피해자야, 우리는 당했어, 쟤들은 사과해야 해, 하는 구호를 내뱉으며 댓글에 쌍욕을 지껄여 자신의 애국심을 확인하는 데에 만족하는 모습은 너무 많지 않은가. 정작 아직도 생존해 있는 실제 피해자들을 국가/민족 차원에서 거듭 확인하고 위무하는 데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으면서. 그러니까, 이 나라의 구성원으로서 나는 솔직히 말해 일본 제국주의 피해자에 관해 명확히 아는 바가 별로 없다. 장담컨대 그건 한국인인 나보다는 일본인인 시마다 소지가 훨씬 잘 알 거다. 이 사람이 더 신경 쓰며 발언하고 싶어 할 거다. 그런데 내가 뭐라고 이런 성실하고 양심적인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통해 고개 숙이는 앞에 뻔뻔히 서 있을 수 있겠나. 몇 세대가 지나고 나면 사과를 받는 데에도 공부가 필요하고 자성이 필요하다. 그게 부족해서, 고개를 숙이는 요시키 형사 앞에 굉장히 부끄러웠다.
신본격과 사회파를 융합했다고 하여 그 방식이 궁금했는데, 역시나 범행 트릭은 본격이 맡고 범행 동기 쪽을 사회파가 맡는 형식이었다. 일부러 나쁘게 말하자면, 굉장히 어려운 트릭을 탐정이 풀어낸 다음 모두에게 '하지만 범인에게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어!'라고 말하는데 그 사정이라는 것이 기나긴 역사적 우여곡절과 연관된, 그런 꼴이다. 여기에다 더욱 냉정하게 생각하자면 그 역사적 우여곡절이라는 것도 실상은 범인의 성격에 일조하고 있을 뿐, 미스터리의 가운데에 놓인 사건의 성격이나 동기와는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는다. 작가가 좀 억지를 부려 둘을 연결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의문을 완전히 떨치기는 어렵다.
다만 이것은 다 읽은 다음 전체 사건을 객관적으로 배열했을 때 그러하다는 이야기이고, 소설의 차원에서는, 그러니까 진상을 조금씩 밝혀내며 그때그때 충격을 받는 주인공 요시키 형사의 주관적인 시선을 따라가는 독자의 독서 과정이라는 차원에서 보자면 상당한 설득력을 갖춘 이야기다. 특히 트릭에만 지나치게 심취한 신본격은 트릭이 공개된 다음에 범인이 트릭을 수행하기 위한 인형처럼 보인다는 단점을 드러내곤 하는데, 이 작품도 아주 무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 이렇게 오랫동안 자신을 철저히 버려가며 원한 하나에 매달리는 인간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 범인의 속사정을 서서히 알아감에 따라 그에 이입하는 요시키 형사의 감정 상태가 독자마저 설득해 낸다. 결국 미스터리를 '소설의 탈을 썼을 뿐 결국은 작가가 독자에게 내는 퀴즈'로 볼 것인가, 아니면 '범죄를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을 담은 소설'로 볼 것인가에 따라 평가가 갈릴 만한 작품이다. 전자로 봤을 때는 군더더기가 많은 데다 '본론'에는 잘 달라붙지 않아 문제가 될 테고, 후자로 봤을 때는 대체로 만족스럽다. 그런 면에서는 소재뿐만 아니라 작가의 태도와 작법이라는 차원에서 보더라도 사회파적인 성격이 짙은 셈이다.
미스터리의 성격과는 별개로, 일본 특유의 괴담 분위기도 좋았다. 아니, 이 경우는 일본식 괴담이라기보다는 스티븐 킹이나 클라이브 바커 쪽이 더 생각나기는 했는데. 아무튼 전편을 압도하는 "춤추는 피에로의 수수께끼"가 남기는 시각적 심상이 무척 강렬하고 기괴하다. 한밤중에 읽다가 잠자리에 들었는데 오랜만에 옷장 속이랄지 문 뒤랄지 머리 위가 좀 무섭게 느껴져 공포 소설이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요코미조 세이시의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에서도 그렇지만, 본격 미스터리에 이런 기괴하고 음습한 심상을 결합하고 다시 그 뒤에 인간의 뒤틀린 사정이 얹는 수법은 상당히 효과적인 듯하다. 결국 범행 트릭이 논리적으로 파해 되더라도 답을 알게 된 것만으로는 해소할 수 없는 잔념이 남아 범죄라는 행위의 불쾌하고 끈끈한 점을 꾸역꾸역 각인시킨다. 악취미라고 해도 어쩔 수 없으나, 역시 범죄를 다루는 이야기에는 그런 정도의 불편함이 남는 편이 좋다.
이 작품에 국한한 이야기는 아닌데, 일본 작가가 자기 작품을 통해 제국주의 시대 일본이 행한 잔악한 행위를 반성하고 심지어 피해자들을 향해 사과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난처한 기분이 든다. 특히 다른 한국 독자들이 해당 작가를 '개념 있다'고 칭송하거나 올바른 역사의식에 관해 이야기할 때면 더더욱.
작가 쪽은 문제 없다. 자신의 양심과 의식에 따라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대로 실천에 나섰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피해자의 경험이 있는 국가의 후손인 나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말하는 이상 독자에게 말할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면 사과도 일단은 내가 받는 게 된다. 바로 그게 난처하다. 내가 뭘 했다고 사과를 받는단 말인가.
유감이라고 해야 할지 행운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나는 일본 제국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니다. 내 부모님이 직접적인 피해를 겪는 모습을 보거나 듣지도 못했다. 국가 단위, 문화 단위에서 받은 간접적인 피해의 경위를 추적하여 '이건 일본 탓!'이라고 말하며 분노할 만큼 시야가 좁고 성실하지도 않다. 그래도 어쨌든 민족의 과거니까 민족적 공분을 느낀다는 논리에는 찬동할 수 없다. (그런 식의 막연하고 거대한 민족 의식은 안 좋은 방향으로 엇나가기가 훨씬 쉽다.)
무엇보다도 지금 한국 사회는 구성원들에게 근현대사를 돌아보기를 권장하지 않는다. 그에 비하면 막연하게 우리는 피해자야, 우리는 당했어, 쟤들은 사과해야 해, 하는 구호를 내뱉으며 댓글에 쌍욕을 지껄여 자신의 애국심을 확인하는 데에 만족하는 모습은 너무 많지 않은가. 정작 아직도 생존해 있는 실제 피해자들을 국가/민족 차원에서 거듭 확인하고 위무하는 데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으면서. 그러니까, 이 나라의 구성원으로서 나는 솔직히 말해 일본 제국주의 피해자에 관해 명확히 아는 바가 별로 없다. 장담컨대 그건 한국인인 나보다는 일본인인 시마다 소지가 훨씬 잘 알 거다. 이 사람이 더 신경 쓰며 발언하고 싶어 할 거다. 그런데 내가 뭐라고 이런 성실하고 양심적인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통해 고개 숙이는 앞에 뻔뻔히 서 있을 수 있겠나. 몇 세대가 지나고 나면 사과를 받는 데에도 공부가 필요하고 자성이 필요하다. 그게 부족해서, 고개를 숙이는 요시키 형사 앞에 굉장히 부끄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