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오의 연정〉을 추천하며 아드리앙 공보의 글을 인용한 김에, 『씨네21』의 "외신기자칼럼"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씨네21』의 짧지 않은 역사 속에서 가장 멋진 기획은 무엇이었나? 『씨네21』을 창간호부터 꼼꼼히 읽지는 않았지만, 나는 2003년 12월부터 2011년 4월까지 7년 넘게 이어진 "외신기자칼럼"이었다고 답하고 싶다. 달시 파켓, 아드리앙 공보, 데릭 엘리, 스티븐 크레민 네 사람이 번갈아 가며 연재한 이 칼럼은 『씨네21』에서 (좋은 의미로) 가장 이질적이고 자유로운 기획이었으며, 독자로서 내가 영화계 언론에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준 기획이었다.
회당 A4 한 장 내외에 불과한 분량이었던 이 기획이 무슨 대단한 야심을 내걸었던 것은 아니다. 그냥 이제 한국 영화계도 웬만큼 커서 세계 영화계 가운데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됐으니 '외부'의 시선도 곁들이면 좋겠다는 생각 정도에서 나온 기획이 아니었을까. 분량으로 보나 내용으로 보나 실린 위치로 보나, "외신기자클럽"이 『씨네21』의 중심에 선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접한 한에서만 말하자면, 독자 쪽도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이 칼럼의 이름을 언급하는 사람조차 드물었다.
어쩌면 그 사소함, 그 가벼움, 그 주목받지 못하는 성격 덕분에 "외신기자칼럼"이 그토록 훌륭해질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씨네21』에서 무엇을 요구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네 필진은 이 코너를 통해 온갖 주제를 다루었다. 물론 외국인으로서 한국 영화를 보는 경험이나 외국 영화제 속 한국 영화에 대한 반응을 전하는 글처럼 한국 독자들이 '외국인 필진'에게서 기대함 직한 이야기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종종 한국 영화계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어 보이는 외국의 영화제에 관해 투덜거리기도 했고, 자신이 남몰래 좋아하는 감독의 신작이 몇 년째 나오지 않는다고 울상 짓기도 했으며, 때로는 예기치 못한 통찰을 담은 비평에 가까운 글을 쓰는가 하면 또 어떨 때는 영화에 등장한 로케이션에 관해 수필에 가까운 소회를 남기기도 했다. 한국 영화계(만드는 사람과 보는 사람 양자 모두 포함)에서 지금 당장 관심을 보일 법한 굵직한 주제 외의 다른 주제에 관한 글이라면 어떤 글이든 받아주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들의 글에 담긴 통찰력이나 문장력 자체를 따지기 이전에, 바로 그 주제의 비한국적 성격이야말로 이 칼럼이 독자들에게 내려준 가장 큰 축복이었다고 생각한다. 네 필진은 각자 나름대로 한국 영화를 좋아하고 한국 영화계에 애정이 있기는 했지만, 자신들은 무엇보다도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며, 이때 영화란 한국 영화계가 영화라고 지칭하는 대상보다 훨씬 거대하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또한 그들은 한국 영화계 언론인들처럼 한국 영화인들과 가깝지도 않았고, 한국 영화계에 얽매여 있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 사정 다 아니까' 넘어갈 만한 일들을 넘기지 않았고, 또 대다수 독자가 관심을 보일 만한 주제만을 자세히 다루려 애쓰지도 않았다. 그럼으로써 "외신기자칼럼"은 한국 영화계의 담론 소비 패턴에서 벗어나서 훨씬 더 크고 넓은 세계가 있음을, 생각해야 할 것들이 무수히 많은 세계가 있음을 알려주었다.
더 광대한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는 건 무슨 뜻일까? 이걸 그저 정보의 확대로만 이해하면 안 된다. (흔히 무용담이나 풍물기행 따위로 전락하고 마는, 그런 주제에 '밖에 나갔다 와야 시야가 넓어진다'고 주장하는 여행담들을 떠올려보라.) 저곳에는 저런 것들이 있어, 라는 정보라면 정말이지 인터넷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더 광대한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는 것은, 사실은 저곳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곳에 관한 이야기다. 더 광대한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는 것은, 이곳에도 지금과는 다른 삶의 방식이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체감한다는 뜻이다.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해서, 지금 여기에서 유행하는 사고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는 새로운 시공간을 확보하게 된다는 뜻이다. "외신기자클럽"은 바로 그런 일을 해줄 수 있었다. 그들이 전해준 건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영화를 대하는 태도였고 결이었다.
그 주에 새로 나온 영화는 무엇인지, 그중 어떤 영화가 보러 갈 만한지, 그중 어떤 영화가 경천동지할 만한 성취를 보여주며 올해의 걸작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 오랜만에 신작을 들고 나온 이 배우와 저 감독은 무슨 말을 하는지, 결국 최종 흥행 성적은 어떻고 돈은 얼마나 벌었는지, 그리고 다음 주에는 어떤 영화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 한국 영화계(당연히 언론과 관객 포함)가 제목만 다르고 패턴은 같은 노름판 속에서 유행을 따라가느라 분주한 동안, "외신기자클럽"의 네 사람은 그 판에 박힌 흐름에서 빠져나가 다른 속도와 다른 시공간에서 다른 영화를 다른 각도로 볼 수도 있음을 직접 보여주었다.
* * *
게다가, 젠장, 그들은 눈도 밝고 글도 정말 잘 썼다.
데릭 엘리는 7년이 넘도록 각종 국제영화제를 비판하는 일에 자신의 필력을 바쳤다. 그는 영화제가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축제의 장이 아니라 또 다른 정치권력을 지닌 단체로 변하는 과정을 극도로 싫어했다. 특히 그 정치권력이 프로그래밍이나 시상에 영향을 미치면 사정없이 물어뜯었다. 사실 자기 차례만 오면 어딘가의 영화제를 씹는 모습을 보여줘서 나중에는 좀 지치는 기분도 들었다. 게다가 틈틈이 드러나는 그의 영화 보는 눈이 나와 맞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고. 하지만 늘 못된 소리만 한 덕분일까. 그가 가끔 영화제 권력 비판에서 벗어나 다른 이야기를 꺼내거나 생각지도 못했던 영화를 옹호할 때면 그만큼 순수한 기쁨이 느껴졌다. 이병헌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 〈누구나 비밀은 있다〉가 사실은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의 〈테오라마〉를 리메이크한 〈아담에 관하여〉를 리메이크한 영화라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좋은 리메이크란 무엇인가를 말하는 목소리을 또 어디에서 들을 수 있겠는가.
다른 세 사람에 비해 약간 늦게 합류한 스티븐 크레민은 데릭 엘리와 마찬가지로 국제영화제를 이야기를 자주 했으나 관심의 폭은 좀 더 해당 국가의 영화 산업이나 문화적 경향 쪽에 맞춰져 있었다. 가령 그는 2009년에 쓴 "'여성감독' 영화제가 아닌 거야"라는 글에서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여성 감독에만 집중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감독을 지나치게 중심으로 여기는 전통적인 영화제 모델을 재고하기를 촉구한다. 한편, 그가 종종 자기 이야기의 사례로 언급하는 영화들은 시간이 좀 더 지난 후에 보면 뜻밖의 공명을 일으킬 때가 있다. 나는 이 글 끝에 첨부할 칼럼 목록을 정리하다가 그의 첫 글, "작가는 있지만 대중 감독은 없다"를 읽고 깜짝 놀랐다. 그 글은 대만 영화의 정책사를 간략하게 풀어놓으면서 21세기 들어 나타나고 있는 새로운 변화를 언급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런데 그 마지막 단락에 이르러 등장하는 인물이 다름 아닌 수차오핀 감독이 아닌가. 한자어를 그대로 읽으면 소조빈인 이 중국 감독의 존재를 나는 2010년에 양자경과 정우성이 출연한 무협 영화 〈검우〉가 개봉했을 때에야 처음 들었다. (그나마 당시에도 우리나라에서는 공동 연출로 참여한 오우삼의 이름을 꺼내어 서극과 대립시키느라 정신이 없어서 소조빈의 이름은 묻혔다.) 그런데 크레민의 글은 〈검우〉가 소개되기 5년 전에 이미 소조빈의 영화를 거론하며 "하이 컨셉의 장르를 넘나드는 시나리오 작가"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이 설명은 〈검우〉에도 훌륭하게 먹힌다. 이럴 때 나는 절로 내가 알지 못했던 곳에서 활발하게 작동한 또 다른 역사에 관해 생각하게 된다.
아드리앙 공보는 두 사람보다 더 사적인 글을 썼다. 그는 종종 한국 독자로서는 알 길이 없는 동시대 프랑스 영화계의 감독에 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하고, 영화에서 점점 담배를 볼 수 없게 되는 세태에 불만을 품는가 하면, 프랑스에서 흥행 중인 영국 영화들을 거론하며 고다르, 트뤼포 시대와 달리 프랑스인들은 이제 영국 영화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그는 당연하다고 여겼던 문제에 관해 딴죽을 걸며 새로운 시각을 내놓기도 했고, A4 한 장짜리 칼럼에서는 기대하지 않았던 비평적 통찰의 흔적을 보여주기도 했다. 예를 들어 나는 한국인들이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에 관해 하는 판에 박힌 소리보다는 유현목이 세상을 떠난 뒤 공보가 그에 관해 쓴 글이 관객으로서 훨씬 마음을 울리고 〈오발탄〉을 다시 보게 해준다고 생각한다. (특히 "2004년 부산영화제에서 만든 카탈로그에서는 유현목이 "한국 리얼리즘에 빛을 밝힌 사람"이라고 지칭되기도 했다. 한데 오히려 나 같은 외국인의 눈으로 본 유 감독은 언제나 '꿈'에 가까운 작가였다."라는 진술은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언젠가 다른 기회에.) 또 그는 종종 깊은 여운을 남기는 말을 빚어내는 문장가이기도 했다. 공보가 2007년에 쓴 마지막 글의 마지막 문단에서 〈짝패〉와 한국 영화에 관해 남긴 열한 개의 문장은 그저 냉담하게 읽어내려가기 어렵다. 그는 심지어 한 시절을 뜨겁게 달궜던 제니퍼 애니스톤-브래드 피트-안젤라니 졸리의 관계에 관한 글조차도 근사하게 써냈다.
달시 파켓은 네 사람 중 가장 한국에 가까이 있었다. 그는 10년이 넘게 한국을 주 거주지로 하여 살고 있고, 한국 영화에 관한 가장 유명한 영어권 웹사이트를 운영하고 있고, 한국 대학에서 강의하며, 한국영상자료원에서 고전 한국 영화를 소개하기도 했으며, 아, 그렇지, 심지어 서울 시장 선거 당시 시민으로서 투표도 했다. 어떤 사람들은 외국인이 한국 영화에 관해 글을 쓰면 일단 '외국인이 뭘 알겠나' 하는 태도를 취하곤 하는데, (그에 관해서는 그가 2006년에 쓴 "〈브로크백 마운틴〉 서울 시사기"를 참고할 것.) 부디 한국 관객인 내 말을 믿으시라. 그는 '우리'보다 '우리 영화'에 관해 훨씬 더 잘 안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국외자였고, 그래서 한국인들은 좀처럼 관심을 기울이거나 발언하지 않는 문제, 그러나 한국 영화에 관련된 문제에 관해서 말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그가 한국 영화의 영어 제목, 영어 자막, 영어 대사에 관해 얼마나 여러 번 이야기했던가. 또 그는 남들이 '우리나라 실정에는 그런 거 안 돼요'라는 김빠진 소리나 할 줄 알면서도 한국 영화계가 안고 있는 문제를 타개할 만한 다른 제안을 내놓곤 했다. 그리하여 재개봉관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했고, 디지털 배급을 제안하기도 했고, 왜 경찰들은 길거리에서 파는 불법 DVD를 단속하지 않는가 의아해하며 오대수처럼 망치로 그걸 다 깨버리고 싶다고 화를 내기도 했고, 한국 영화계가 아시아의 다른 나라 영화에도 제작 지원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고, 좋은 말로 할 때 각본가들 대접 잘해주는 게 좋을 거라고 경고했으며, 보도자료에 느낌표 좀 남용하지 말라고도 했다. 나는 한국 영화인들이 그가 한 말에 귀를 기울였더라면 이 판이 좀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 생각하곤 한다.
또한 그는 비평이란 뭘까, 평론가는 뭘 하는 사람일까, 영화가 관객에게 준 감동이 관객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계속해서 질문했다. 영화에 대한 그의 통찰은 팔짱 끼고 이맛살을 찌푸리며 볼 필요 없이 쉬우면서도 정확했고, 관객 이전에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보았으면 싶었다. 가령 〈피터팬의 공식〉과 음향의 활용에 관한 글, 스릴러는 '왜'보다 '어떻게'에 더 중점을 두어야 하는데 한국 영화는 '왜'에 매달리다가 김을 뺀다는 지적, 필수적인 것만 보여주고 칼을 내려쳐 완벽한 결말을 만들어달라는 당부. 하지만 그의 최고작은 아마도 2009년에 쓴 "〈업〉을 떨리는 마음으로 기대함"일 것이다. 그 소박하고 유머 넘치는 글을 처음 읽었을 때, 좀처럼 느끼지 않던 질투심이 이글이글 타올랐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듣자하니 정성일 감독은 당시 그 글을 너무나 좋아한 나머지 해당 페이지를 떼어내어 벽에 붙여놓았다고 한다.
* * *
물론 "외신기자클럽"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FILM 2.0』에서 "김영진의 러프 컷"이 비슷한 꿈을 꾸었고, 『씨네21』의 "전영객잔"도 처음에는 그러려고 했으며, "씨네산책"도 잠시나마 웅대한 포부를 가졌고,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도 조용히 반항을 일삼았다. 사실 새겨 읽을 만한 글을 쓰는 영화 글쟁이들은 어떻게든 그런 기미를 보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7년이 넘는 세월 동안 주 단위로 소비될 수밖에 없는 저널리즘의 터전에 발을 디딘 채 일관되게 저항한 이들은 "외신기자칼럼"뿐이었다. 아마 그러한 태도를 의식적으로 취하지 않아도 될 만큼 시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었던 덕분이리라.
돌이켜보건대 이 네 사람을 기자나 평론가라고 부르는 것은 오히려 그들이 해준 일에 대한 과소평가처럼 느껴진다. 차라리 레지스탕스가 아니었는지. 한국 영화 언론계의 그림자 군단.
(물론 그 옆에는 심지어 지금까지도 1인 전쟁을 벌이고 있는 테러리스트 DJUNA가 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것은 또 다른 이야기니까.)
이 글은 몇 년 전, 아직 "외신기자칼럼"이 현재형으로 진행 중일 때 썼어야 했다. 하지만 너무 늦지는 않았다고 믿는다. 꽤 길게 이야기했는데도 아직 이 칼럼이 남겨준 것의 반의반의 반의반도 다 이야기하지 못했으니, 나머지는 직접 읽으며 체감하시길.
이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웬만해서는 외부 링크를 달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웹 상의 글이라는 게 그렇게 수명이 길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혹시 글이 없어지지는 않더라도, 주소만 바뀌어도 링크는 망가진다. 하지만 그 위험을 무릅쓰고, "외신기자클럽"에 경의를 표하며, 현재 『씨네21』 웹사이트에 올라온 "외신기자클럽" 글 전부를 모아보았다. 중간중간 빠진 호는 아마 이런저런 이유로 한 주 쉬어간 대목인 듯하며, 필자 이름이 없는 글은 사이트에 필자 명이 적혀 있지 않았기 때문에 비워두었다.
2003년 (No. 430~434)
2004년 (No. 435~484)
2005년 (No. 485~534)
2006년 (No. 535~584)
2007년 (No. 585~634)
2008년 (No. 635~684)
2009년 (No. 685~735)
2010년 (No. 736~785)
2011년 (No. 786~799)
『씨네21』의 짧지 않은 역사 속에서 가장 멋진 기획은 무엇이었나? 『씨네21』을 창간호부터 꼼꼼히 읽지는 않았지만, 나는 2003년 12월부터 2011년 4월까지 7년 넘게 이어진 "외신기자칼럼"이었다고 답하고 싶다. 달시 파켓, 아드리앙 공보, 데릭 엘리, 스티븐 크레민 네 사람이 번갈아 가며 연재한 이 칼럼은 『씨네21』에서 (좋은 의미로) 가장 이질적이고 자유로운 기획이었으며, 독자로서 내가 영화계 언론에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준 기획이었다.
회당 A4 한 장 내외에 불과한 분량이었던 이 기획이 무슨 대단한 야심을 내걸었던 것은 아니다. 그냥 이제 한국 영화계도 웬만큼 커서 세계 영화계 가운데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됐으니 '외부'의 시선도 곁들이면 좋겠다는 생각 정도에서 나온 기획이 아니었을까. 분량으로 보나 내용으로 보나 실린 위치로 보나, "외신기자클럽"이 『씨네21』의 중심에 선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접한 한에서만 말하자면, 독자 쪽도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이 칼럼의 이름을 언급하는 사람조차 드물었다.
어쩌면 그 사소함, 그 가벼움, 그 주목받지 못하는 성격 덕분에 "외신기자칼럼"이 그토록 훌륭해질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씨네21』에서 무엇을 요구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네 필진은 이 코너를 통해 온갖 주제를 다루었다. 물론 외국인으로서 한국 영화를 보는 경험이나 외국 영화제 속 한국 영화에 대한 반응을 전하는 글처럼 한국 독자들이 '외국인 필진'에게서 기대함 직한 이야기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종종 한국 영화계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어 보이는 외국의 영화제에 관해 투덜거리기도 했고, 자신이 남몰래 좋아하는 감독의 신작이 몇 년째 나오지 않는다고 울상 짓기도 했으며, 때로는 예기치 못한 통찰을 담은 비평에 가까운 글을 쓰는가 하면 또 어떨 때는 영화에 등장한 로케이션에 관해 수필에 가까운 소회를 남기기도 했다. 한국 영화계(만드는 사람과 보는 사람 양자 모두 포함)에서 지금 당장 관심을 보일 법한 굵직한 주제 외의 다른 주제에 관한 글이라면 어떤 글이든 받아주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들의 글에 담긴 통찰력이나 문장력 자체를 따지기 이전에, 바로 그 주제의 비한국적 성격이야말로 이 칼럼이 독자들에게 내려준 가장 큰 축복이었다고 생각한다. 네 필진은 각자 나름대로 한국 영화를 좋아하고 한국 영화계에 애정이 있기는 했지만, 자신들은 무엇보다도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며, 이때 영화란 한국 영화계가 영화라고 지칭하는 대상보다 훨씬 거대하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또한 그들은 한국 영화계 언론인들처럼 한국 영화인들과 가깝지도 않았고, 한국 영화계에 얽매여 있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 사정 다 아니까' 넘어갈 만한 일들을 넘기지 않았고, 또 대다수 독자가 관심을 보일 만한 주제만을 자세히 다루려 애쓰지도 않았다. 그럼으로써 "외신기자칼럼"은 한국 영화계의 담론 소비 패턴에서 벗어나서 훨씬 더 크고 넓은 세계가 있음을, 생각해야 할 것들이 무수히 많은 세계가 있음을 알려주었다.
더 광대한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는 건 무슨 뜻일까? 이걸 그저 정보의 확대로만 이해하면 안 된다. (흔히 무용담이나 풍물기행 따위로 전락하고 마는, 그런 주제에 '밖에 나갔다 와야 시야가 넓어진다'고 주장하는 여행담들을 떠올려보라.) 저곳에는 저런 것들이 있어, 라는 정보라면 정말이지 인터넷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더 광대한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는 것은, 사실은 저곳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곳에 관한 이야기다. 더 광대한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는 것은, 이곳에도 지금과는 다른 삶의 방식이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체감한다는 뜻이다.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해서, 지금 여기에서 유행하는 사고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는 새로운 시공간을 확보하게 된다는 뜻이다. "외신기자클럽"은 바로 그런 일을 해줄 수 있었다. 그들이 전해준 건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영화를 대하는 태도였고 결이었다.
그 주에 새로 나온 영화는 무엇인지, 그중 어떤 영화가 보러 갈 만한지, 그중 어떤 영화가 경천동지할 만한 성취를 보여주며 올해의 걸작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 오랜만에 신작을 들고 나온 이 배우와 저 감독은 무슨 말을 하는지, 결국 최종 흥행 성적은 어떻고 돈은 얼마나 벌었는지, 그리고 다음 주에는 어떤 영화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 한국 영화계(당연히 언론과 관객 포함)가 제목만 다르고 패턴은 같은 노름판 속에서 유행을 따라가느라 분주한 동안, "외신기자클럽"의 네 사람은 그 판에 박힌 흐름에서 빠져나가 다른 속도와 다른 시공간에서 다른 영화를 다른 각도로 볼 수도 있음을 직접 보여주었다.
게다가, 젠장, 그들은 눈도 밝고 글도 정말 잘 썼다.
데릭 엘리는 7년이 넘도록 각종 국제영화제를 비판하는 일에 자신의 필력을 바쳤다. 그는 영화제가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축제의 장이 아니라 또 다른 정치권력을 지닌 단체로 변하는 과정을 극도로 싫어했다. 특히 그 정치권력이 프로그래밍이나 시상에 영향을 미치면 사정없이 물어뜯었다. 사실 자기 차례만 오면 어딘가의 영화제를 씹는 모습을 보여줘서 나중에는 좀 지치는 기분도 들었다. 게다가 틈틈이 드러나는 그의 영화 보는 눈이 나와 맞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고. 하지만 늘 못된 소리만 한 덕분일까. 그가 가끔 영화제 권력 비판에서 벗어나 다른 이야기를 꺼내거나 생각지도 못했던 영화를 옹호할 때면 그만큼 순수한 기쁨이 느껴졌다. 이병헌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 〈누구나 비밀은 있다〉가 사실은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의 〈테오라마〉를 리메이크한 〈아담에 관하여〉를 리메이크한 영화라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좋은 리메이크란 무엇인가를 말하는 목소리을 또 어디에서 들을 수 있겠는가.
다른 세 사람에 비해 약간 늦게 합류한 스티븐 크레민은 데릭 엘리와 마찬가지로 국제영화제를 이야기를 자주 했으나 관심의 폭은 좀 더 해당 국가의 영화 산업이나 문화적 경향 쪽에 맞춰져 있었다. 가령 그는 2009년에 쓴 "'여성감독' 영화제가 아닌 거야"라는 글에서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여성 감독에만 집중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감독을 지나치게 중심으로 여기는 전통적인 영화제 모델을 재고하기를 촉구한다. 한편, 그가 종종 자기 이야기의 사례로 언급하는 영화들은 시간이 좀 더 지난 후에 보면 뜻밖의 공명을 일으킬 때가 있다. 나는 이 글 끝에 첨부할 칼럼 목록을 정리하다가 그의 첫 글, "작가는 있지만 대중 감독은 없다"를 읽고 깜짝 놀랐다. 그 글은 대만 영화의 정책사를 간략하게 풀어놓으면서 21세기 들어 나타나고 있는 새로운 변화를 언급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런데 그 마지막 단락에 이르러 등장하는 인물이 다름 아닌 수차오핀 감독이 아닌가. 한자어를 그대로 읽으면 소조빈인 이 중국 감독의 존재를 나는 2010년에 양자경과 정우성이 출연한 무협 영화 〈검우〉가 개봉했을 때에야 처음 들었다. (그나마 당시에도 우리나라에서는 공동 연출로 참여한 오우삼의 이름을 꺼내어 서극과 대립시키느라 정신이 없어서 소조빈의 이름은 묻혔다.) 그런데 크레민의 글은 〈검우〉가 소개되기 5년 전에 이미 소조빈의 영화를 거론하며 "하이 컨셉의 장르를 넘나드는 시나리오 작가"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이 설명은 〈검우〉에도 훌륭하게 먹힌다. 이럴 때 나는 절로 내가 알지 못했던 곳에서 활발하게 작동한 또 다른 역사에 관해 생각하게 된다.
아드리앙 공보는 두 사람보다 더 사적인 글을 썼다. 그는 종종 한국 독자로서는 알 길이 없는 동시대 프랑스 영화계의 감독에 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하고, 영화에서 점점 담배를 볼 수 없게 되는 세태에 불만을 품는가 하면, 프랑스에서 흥행 중인 영국 영화들을 거론하며 고다르, 트뤼포 시대와 달리 프랑스인들은 이제 영국 영화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그는 당연하다고 여겼던 문제에 관해 딴죽을 걸며 새로운 시각을 내놓기도 했고, A4 한 장짜리 칼럼에서는 기대하지 않았던 비평적 통찰의 흔적을 보여주기도 했다. 예를 들어 나는 한국인들이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에 관해 하는 판에 박힌 소리보다는 유현목이 세상을 떠난 뒤 공보가 그에 관해 쓴 글이 관객으로서 훨씬 마음을 울리고 〈오발탄〉을 다시 보게 해준다고 생각한다. (특히 "2004년 부산영화제에서 만든 카탈로그에서는 유현목이 "한국 리얼리즘에 빛을 밝힌 사람"이라고 지칭되기도 했다. 한데 오히려 나 같은 외국인의 눈으로 본 유 감독은 언제나 '꿈'에 가까운 작가였다."라는 진술은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언젠가 다른 기회에.) 또 그는 종종 깊은 여운을 남기는 말을 빚어내는 문장가이기도 했다. 공보가 2007년에 쓴 마지막 글의 마지막 문단에서 〈짝패〉와 한국 영화에 관해 남긴 열한 개의 문장은 그저 냉담하게 읽어내려가기 어렵다. 그는 심지어 한 시절을 뜨겁게 달궜던 제니퍼 애니스톤-브래드 피트-안젤라니 졸리의 관계에 관한 글조차도 근사하게 써냈다.
달시 파켓은 네 사람 중 가장 한국에 가까이 있었다. 그는 10년이 넘게 한국을 주 거주지로 하여 살고 있고, 한국 영화에 관한 가장 유명한 영어권 웹사이트를 운영하고 있고, 한국 대학에서 강의하며, 한국영상자료원에서 고전 한국 영화를 소개하기도 했으며, 아, 그렇지, 심지어 서울 시장 선거 당시 시민으로서 투표도 했다. 어떤 사람들은 외국인이 한국 영화에 관해 글을 쓰면 일단 '외국인이 뭘 알겠나' 하는 태도를 취하곤 하는데, (그에 관해서는 그가 2006년에 쓴 "〈브로크백 마운틴〉 서울 시사기"를 참고할 것.) 부디 한국 관객인 내 말을 믿으시라. 그는 '우리'보다 '우리 영화'에 관해 훨씬 더 잘 안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국외자였고, 그래서 한국인들은 좀처럼 관심을 기울이거나 발언하지 않는 문제, 그러나 한국 영화에 관련된 문제에 관해서 말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그가 한국 영화의 영어 제목, 영어 자막, 영어 대사에 관해 얼마나 여러 번 이야기했던가. 또 그는 남들이 '우리나라 실정에는 그런 거 안 돼요'라는 김빠진 소리나 할 줄 알면서도 한국 영화계가 안고 있는 문제를 타개할 만한 다른 제안을 내놓곤 했다. 그리하여 재개봉관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했고, 디지털 배급을 제안하기도 했고, 왜 경찰들은 길거리에서 파는 불법 DVD를 단속하지 않는가 의아해하며 오대수처럼 망치로 그걸 다 깨버리고 싶다고 화를 내기도 했고, 한국 영화계가 아시아의 다른 나라 영화에도 제작 지원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고, 좋은 말로 할 때 각본가들 대접 잘해주는 게 좋을 거라고 경고했으며, 보도자료에 느낌표 좀 남용하지 말라고도 했다. 나는 한국 영화인들이 그가 한 말에 귀를 기울였더라면 이 판이 좀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 생각하곤 한다.
또한 그는 비평이란 뭘까, 평론가는 뭘 하는 사람일까, 영화가 관객에게 준 감동이 관객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계속해서 질문했다. 영화에 대한 그의 통찰은 팔짱 끼고 이맛살을 찌푸리며 볼 필요 없이 쉬우면서도 정확했고, 관객 이전에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보았으면 싶었다. 가령 〈피터팬의 공식〉과 음향의 활용에 관한 글, 스릴러는 '왜'보다 '어떻게'에 더 중점을 두어야 하는데 한국 영화는 '왜'에 매달리다가 김을 뺀다는 지적, 필수적인 것만 보여주고 칼을 내려쳐 완벽한 결말을 만들어달라는 당부. 하지만 그의 최고작은 아마도 2009년에 쓴 "〈업〉을 떨리는 마음으로 기대함"일 것이다. 그 소박하고 유머 넘치는 글을 처음 읽었을 때, 좀처럼 느끼지 않던 질투심이 이글이글 타올랐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듣자하니 정성일 감독은 당시 그 글을 너무나 좋아한 나머지 해당 페이지를 떼어내어 벽에 붙여놓았다고 한다.
물론 "외신기자클럽"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FILM 2.0』에서 "김영진의 러프 컷"이 비슷한 꿈을 꾸었고, 『씨네21』의 "전영객잔"도 처음에는 그러려고 했으며, "씨네산책"도 잠시나마 웅대한 포부를 가졌고,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도 조용히 반항을 일삼았다. 사실 새겨 읽을 만한 글을 쓰는 영화 글쟁이들은 어떻게든 그런 기미를 보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7년이 넘는 세월 동안 주 단위로 소비될 수밖에 없는 저널리즘의 터전에 발을 디딘 채 일관되게 저항한 이들은 "외신기자칼럼"뿐이었다. 아마 그러한 태도를 의식적으로 취하지 않아도 될 만큼 시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었던 덕분이리라.
돌이켜보건대 이 네 사람을 기자나 평론가라고 부르는 것은 오히려 그들이 해준 일에 대한 과소평가처럼 느껴진다. 차라리 레지스탕스가 아니었는지. 한국 영화 언론계의 그림자 군단.
(물론 그 옆에는 심지어 지금까지도 1인 전쟁을 벌이고 있는 테러리스트 DJUNA가 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것은 또 다른 이야기니까.)
이 글은 몇 년 전, 아직 "외신기자칼럼"이 현재형으로 진행 중일 때 썼어야 했다. 하지만 너무 늦지는 않았다고 믿는다. 꽤 길게 이야기했는데도 아직 이 칼럼이 남겨준 것의 반의반의 반의반도 다 이야기하지 못했으니, 나머지는 직접 읽으며 체감하시길.
이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웬만해서는 외부 링크를 달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웹 상의 글이라는 게 그렇게 수명이 길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혹시 글이 없어지지는 않더라도, 주소만 바뀌어도 링크는 망가진다. 하지만 그 위험을 무릅쓰고, "외신기자클럽"에 경의를 표하며, 현재 『씨네21』 웹사이트에 올라온 "외신기자클럽" 글 전부를 모아보았다. 중간중간 빠진 호는 아마 이런저런 이유로 한 주 쉬어간 대목인 듯하며, 필자 이름이 없는 글은 사이트에 필자 명이 적혀 있지 않았기 때문에 비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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