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오의 연정〉을 추천하며 아드리앙 공보의 글을 인용한 김에, 『씨네21』의 "외신기자칼럼"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씨네21』의 짧지 않은 역사 속에서 가장 멋진 기획은 무엇이었나? 『씨네21』을 창간호부터 꼼꼼히 읽지는 않았지만, 나는 2003년 12월부터 2011년 4월까지 7년 넘게 이어진 "외신기자칼럼"이었다고 답하고 싶다. 달시 파켓, 아드리앙 공보, 데릭 엘리, 스티븐 크레민 네 사람이 번갈아 가며 연재한 이 칼럼은 『씨네21』에서 (좋은 의미로) 가장 이질적이고 자유로운 기획이었으며, 독자로서 내가 영화계 언론에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준 기획이었다.

 회당 A4 한 장 내외에 불과한 분량이었던 이 기획이 무슨 대단한 야심을 내걸었던 것은 아니다. 그냥 이제 한국 영화계도 웬만큼 커서 세계 영화계 가운데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됐으니 '외부'의 시선도 곁들이면 좋겠다는 생각 정도에서 나온 기획이 아니었을까. 분량으로 보나 내용으로 보나 실린 위치로 보나, "외신기자클럽"이 『씨네21』의 중심에 선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접한 한에서만 말하자면, 독자 쪽도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이 칼럼의 이름을 언급하는 사람조차 드물었다.

 어쩌면 그 사소함, 그 가벼움, 그 주목받지 못하는 성격 덕분에 "외신기자칼럼"이 그토록 훌륭해질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씨네21』에서 무엇을 요구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네 필진은 이 코너를 통해 온갖 주제를 다루었다. 물론 외국인으로서 한국 영화를 보는 경험이나 외국 영화제 속 한국 영화에 대한 반응을 전하는 글처럼 한국 독자들이 '외국인 필진'에게서 기대함 직한 이야기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종종 한국 영화계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어 보이는 외국의 영화제에 관해 투덜거리기도 했고, 자신이 남몰래 좋아하는 감독의 신작이 몇 년째 나오지 않는다고 울상 짓기도 했으며, 때로는 예기치 못한 통찰을 담은 비평에 가까운 글을 쓰는가 하면 또 어떨 때는 영화에 등장한 로케이션에 관해 수필에 가까운 소회를 남기기도 했다. 한국 영화계(만드는 사람과 보는 사람 양자 모두 포함)에서 지금 당장 관심을 보일 법한 굵직한 주제 외의 다른 주제에 관한 글이라면 어떤 글이든 받아주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들의 글에 담긴 통찰력이나 문장력 자체를 따지기 이전에, 바로 그 주제의 비한국적 성격이야말로 이 칼럼이 독자들에게 내려준 가장 큰 축복이었다고 생각한다. 네 필진은 각자 나름대로 한국 영화를 좋아하고 한국 영화계에 애정이 있기는 했지만, 자신들은 무엇보다도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며, 이때 영화란 한국 영화계가 영화라고 지칭하는 대상보다 훨씬 거대하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또한 그들은 한국 영화계 언론인들처럼 한국 영화인들과 가깝지도 않았고, 한국 영화계에 얽매여 있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 사정 다 아니까' 넘어갈 만한 일들을 넘기지 않았고, 또 대다수 독자가 관심을 보일 만한 주제만을 자세히 다루려 애쓰지도 않았다. 그럼으로써 "외신기자칼럼"은 한국 영화계의 담론 소비 패턴에서 벗어나서 훨씬 더 크고 넓은 세계가 있음을, 생각해야 할 것들이 무수히 많은 세계가 있음을 알려주었다.

 더 광대한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는 건 무슨 뜻일까? 이걸 그저 정보의 확대로만 이해하면 안 된다. (흔히 무용담이나 풍물기행 따위로 전락하고 마는, 그런 주제에 '밖에 나갔다 와야 시야가 넓어진다'고 주장하는 여행담들을 떠올려보라.) 저곳에는 저런 것들이 있어, 라는 정보라면 정말이지 인터넷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더 광대한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는 것은, 사실은 저곳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곳에 관한 이야기다. 더 광대한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는 것은, 이곳에도 지금과는 다른 삶의 방식이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체감한다는 뜻이다.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해서, 지금 여기에서 유행하는 사고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는 새로운 시공간을 확보하게 된다는 뜻이다. "외신기자클럽"은 바로 그런 일을 해줄 수 있었다. 그들이 전해준 건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영화를 대하는 태도였고 결이었다.

 그 주에 새로 나온 영화는 무엇인지, 그중 어떤 영화가 보러 갈 만한지, 그중 어떤 영화가 경천동지할 만한 성취를 보여주며 올해의 걸작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 오랜만에 신작을 들고 나온 이 배우와 저 감독은 무슨 말을 하는지, 결국 최종 흥행 성적은 어떻고 돈은 얼마나 벌었는지, 그리고 다음 주에는 어떤 영화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 한국 영화계(당연히 언론과 관객 포함)가 제목만 다르고 패턴은 같은 노름판 속에서 유행을 따라가느라 분주한 동안, "외신기자클럽"의 네 사람은 그 판에 박힌 흐름에서 빠져나가 다른 속도와 다른 시공간에서 다른 영화를 다른 각도로 볼 수도 있음을 직접 보여주었다.

* * *

 게다가, 젠장, 그들은 눈도 밝고 글도 정말 잘 썼다.

 데릭 엘리는 7년이 넘도록 각종 국제영화제를 비판하는 일에 자신의 필력을 바쳤다. 그는 영화제가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축제의 장이 아니라 또 다른 정치권력을 지닌 단체로 변하는 과정을 극도로 싫어했다. 특히 그 정치권력이 프로그래밍이나 시상에 영향을 미치면 사정없이 물어뜯었다. 사실 자기 차례만 오면 어딘가의 영화제를 씹는 모습을 보여줘서 나중에는 좀 지치는 기분도 들었다. 게다가 틈틈이 드러나는 그의 영화 보는 눈이 나와 맞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고. 하지만 늘 못된 소리만 한 덕분일까. 그가 가끔 영화제 권력 비판에서 벗어나 다른 이야기를 꺼내거나 생각지도 못했던 영화를 옹호할 때면 그만큼 순수한 기쁨이 느껴졌다. 이병헌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 〈누구나 비밀은 있다〉가 사실은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의 〈테오라마〉를 리메이크한 〈아담에 관하여〉를 리메이크한 영화라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좋은 리메이크란 무엇인가를 말하는 목소리을 또 어디에서 들을 수 있겠는가.

 다른 세 사람에 비해 약간 늦게 합류한 스티븐 크레민은 데릭 엘리와 마찬가지로 국제영화제를 이야기를 자주 했으나 관심의 폭은 좀 더 해당 국가의 영화 산업이나 문화적 경향 쪽에 맞춰져 있었다. 가령 그는 2009년에 쓴 "'여성감독' 영화제가 아닌 거야"라는 글에서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여성 감독에만 집중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감독을 지나치게 중심으로 여기는 전통적인 영화제 모델을 재고하기를 촉구한다. 한편, 그가 종종 자기 이야기의 사례로 언급하는 영화들은 시간이 좀 더 지난 후에 보면 뜻밖의 공명을 일으킬 때가 있다. 나는 이 글 끝에 첨부할 칼럼 목록을 정리하다가 그의 첫 글, "작가는 있지만 대중 감독은 없다"를 읽고 깜짝 놀랐다. 그 글은 대만 영화의 정책사를 간략하게 풀어놓으면서 21세기 들어 나타나고 있는 새로운 변화를 언급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런데 그 마지막 단락에 이르러 등장하는 인물이 다름 아닌 수차오핀 감독이 아닌가. 한자어를 그대로 읽으면 소조빈인 이 중국 감독의 존재를 나는 2010년에 양자경과 정우성이 출연한 무협 영화 〈검우〉가 개봉했을 때에야 처음 들었다. (그나마 당시에도 우리나라에서는 공동 연출로 참여한 오우삼의 이름을 꺼내어 서극과 대립시키느라 정신이 없어서 소조빈의 이름은 묻혔다.) 그런데 크레민의 글은 〈검우〉가 소개되기 5년 전에 이미 소조빈의 영화를 거론하며 "하이 컨셉의 장르를 넘나드는 시나리오 작가"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이 설명은 〈검우〉에도 훌륭하게 먹힌다. 이럴 때 나는 절로 내가 알지 못했던 곳에서 활발하게 작동한 또 다른 역사에 관해 생각하게 된다.

 아드리앙 공보는 두 사람보다 더 사적인 글을 썼다. 그는 종종 한국 독자로서는 알 길이 없는 동시대 프랑스 영화계의 감독에 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하고, 영화에서 점점 담배를 볼 수 없게 되는 세태에 불만을 품는가 하면, 프랑스에서 흥행 중인 영국 영화들을 거론하며 고다르, 트뤼포 시대와 달리 프랑스인들은 이제 영국 영화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그는 당연하다고 여겼던 문제에 관해 딴죽을 걸며 새로운 시각을 내놓기도 했고, A4 한 장짜리 칼럼에서는 기대하지 않았던 비평적 통찰의 흔적을 보여주기도 했다. 예를 들어 나는 한국인들이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에 관해 하는 판에 박힌 소리보다는 유현목이 세상을 떠난 뒤 공보가 그에 관해 쓴 글이 관객으로서 훨씬 마음을 울리고 〈오발탄〉을 다시 보게 해준다고 생각한다. (특히 "2004년 부산영화제에서 만든 카탈로그에서는 유현목이 "한국 리얼리즘에 빛을 밝힌 사람"이라고 지칭되기도 했다. 한데 오히려 나 같은 외국인의 눈으로 본 유 감독은 언제나 '꿈'에 가까운 작가였다."라는 진술은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언젠가 다른 기회에.) 또 그는 종종 깊은 여운을 남기는 말을 빚어내는 문장가이기도 했다. 공보가 2007년에 쓴 마지막 글의 마지막 문단에서 〈짝패〉와 한국 영화에 관해 남긴 열한 개의 문장은 그저 냉담하게 읽어내려가기 어렵다. 그는 심지어 한 시절을 뜨겁게 달궜던 제니퍼 애니스톤-브래드 피트-안젤라니 졸리의 관계에 관한 글조차도 근사하게 써냈다.

 달시 파켓은 네 사람 중 가장 한국에 가까이 있었다. 그는 10년이 넘게 한국을 주 거주지로 하여 살고 있고, 한국 영화에 관한 가장 유명한 영어권 웹사이트를 운영하고 있고, 한국 대학에서 강의하며, 한국영상자료원에서 고전 한국 영화를 소개하기도 했으며, 아, 그렇지, 심지어 서울 시장 선거 당시 시민으로서 투표도 했다. 어떤 사람들은 외국인이 한국 영화에 관해 글을 쓰면 일단 '외국인이 뭘 알겠나' 하는 태도를 취하곤 하는데, (그에 관해서는 그가 2006년에 쓴 "〈브로크백 마운틴〉 서울 시사기"를 참고할 것.) 부디 한국 관객인 내 말을 믿으시라. 그는 '우리'보다 '우리 영화'에 관해 훨씬 더 잘 안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국외자였고, 그래서 한국인들은 좀처럼 관심을 기울이거나 발언하지 않는 문제, 그러나 한국 영화에 관련된 문제에 관해서 말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그가 한국 영화의 영어 제목, 영어 자막, 영어 대사에 관해 얼마나 여러 번 이야기했던가. 또 그는 남들이 '우리나라 실정에는 그런 거 안 돼요'라는 김빠진 소리나 할 줄 알면서도 한국 영화계가 안고 있는 문제를 타개할 만한 다른 제안을 내놓곤 했다. 그리하여 재개봉관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했고, 디지털 배급을 제안하기도 했고, 왜 경찰들은 길거리에서 파는 불법 DVD를 단속하지 않는가 의아해하며 오대수처럼 망치로 그걸 다 깨버리고 싶다고 화를 내기도 했고, 한국 영화계가 아시아의 다른 나라 영화에도 제작 지원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고, 좋은 말로 할 때 각본가들 대접 잘해주는 게 좋을 거라고 경고했으며, 보도자료에 느낌표 좀 남용하지 말라고도 했다. 나는 한국 영화인들이 그가 한 말에 귀를 기울였더라면 이 판이 좀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 생각하곤 한다.

 또한 그는 비평이란 뭘까, 평론가는 뭘 하는 사람일까, 영화가 관객에게 준 감동이 관객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계속해서 질문했다. 영화에 대한 그의 통찰은 팔짱 끼고 이맛살을 찌푸리며 볼 필요 없이 쉬우면서도 정확했고, 관객 이전에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보았으면 싶었다. 가령 〈피터팬의 공식〉과 음향의 활용에 관한 글, 스릴러는 '왜'보다 '어떻게'에 더 중점을 두어야 하는데 한국 영화는 '왜'에 매달리다가 김을 뺀다는 지적, 필수적인 것만 보여주고 칼을 내려쳐 완벽한 결말을 만들어달라는 당부. 하지만 그의 최고작은 아마도 2009년에 쓴 "〈업〉을 떨리는 마음으로 기대함"일 것이다. 그 소박하고 유머 넘치는 글을 처음 읽었을 때, 좀처럼 느끼지 않던 질투심이 이글이글 타올랐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듣자하니 정성일 감독은 당시 그 글을 너무나 좋아한 나머지 해당 페이지를 떼어내어 벽에 붙여놓았다고 한다.

* * *

 물론 "외신기자클럽"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FILM 2.0』에서 "김영진의 러프 컷"이 비슷한 꿈을 꾸었고, 『씨네21』의 "전영객잔"도 처음에는 그러려고 했으며, "씨네산책"도 잠시나마 웅대한 포부를 가졌고,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도 조용히 반항을 일삼았다. 사실 새겨 읽을 만한 글을 쓰는 영화 글쟁이들은 어떻게든 그런 기미를 보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7년이 넘는 세월 동안 주 단위로 소비될 수밖에 없는 저널리즘의 터전에 발을 디딘 채 일관되게 저항한 이들은 "외신기자칼럼"뿐이었다. 아마 그러한 태도를 의식적으로 취하지 않아도 될 만큼 시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었던 덕분이리라.

 돌이켜보건대 이 네 사람을 기자나 평론가라고 부르는 것은 오히려 그들이 해준 일에 대한 과소평가처럼 느껴진다. 차라리 레지스탕스가 아니었는지. 한국 영화 언론계의 그림자 군단.

 (물론 그 옆에는 심지어 지금까지도 1인 전쟁을 벌이고 있는 테러리스트 DJUNA가 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것은 또 다른 이야기니까.)

 이 글은 몇 년 전, 아직 "외신기자칼럼"이 현재형으로 진행 중일 때 썼어야 했다. 하지만 너무 늦지는 않았다고 믿는다. 꽤 길게 이야기했는데도 아직 이 칼럼이 남겨준 것의 반의반의 반의반도 다 이야기하지 못했으니, 나머지는 직접 읽으며 체감하시길.

 이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웬만해서는 외부 링크를 달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웹 상의 글이라는 게 그렇게 수명이 길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혹시 글이 없어지지는 않더라도, 주소만 바뀌어도 링크는 망가진다. 하지만 그 위험을 무릅쓰고, "외신기자클럽"에 경의를 표하며, 현재 『씨네21』 웹사이트에 올라온 "외신기자클럽" 글 전부를 모아보았다. 중간중간 빠진 호는 아마 이런저런 이유로 한 주 쉬어간 대목인 듯하며, 필자 이름이 없는 글은 사이트에 필자 명이 적혀 있지 않았기 때문에 비워두었다.

2003년 (No. 430~434)
2004년 (No. 435~484)

No. 435 사실은, 환상이지 (+영어원문) - 데릭 엘리
No. 436 중장년층 관객이 있다면? (+영어원문) - 달시 파켓
No. 437 영화사랑과 페티시즘 - 아드리앙 공보
No. 438 검을 놓고 주먹으로 싸우라 - 데릭 엘리
No. 439 한국은 정말 작은 시장인가? (+영어원문) - 달시 파켓
No. 440 낯선 영화들에게서 더 멀어진 스크린 (+불어원문) - 아드리앙 공보
No. 441 베를린, 혁신성에 표를 던지다 (+영어원문) - 데릭 엘리
No. 442 한국을 유명 촬영지로 만들자면? (+영어원문) - 달시 파켓
No. 443 스타의 쇠퇴 (+불어원문) - 아드리앙 공보
No. 444 기지개 켜는 헝가리 영화 (+영어원문) - 데릭 엘리
No. 445 디지털 배급 시스템, 기다릴 필요없다 (+영어원문) - 달시 파켓
No. 446 스페인의 이몽룡 (+불어원문) - 아드리앙 공보
No. 447 대만영화 폐업 간판 내거나? (+영어원문) - 데릭 엘리
No. 448 한국영화의 힘? 다양성의 힘! (+영어원문) - 달시 파켓
No. 449 영화의 유용? 그 위험한 변신 (+불어원문) - 아드리앙 공보
No. 450 칸, 한국의 젊은 피를 인정하다 - 데릭 엘리
No. 451 한국과 프랑스 '누벨바그'의 차이 (+불어원문) - 아드리앙 공보
No. 452 작지만 힘센 우디네 극동영화제 (+영어원문) - 달시 파켓
No. 453 터키 영화 '발견'의 즐거움 (+영어원문) - 데릭 엘리
No. 454 칸에서 보는 한국, 그리고 일본과의 관계 (+영어원문) - 달시 파켓
No. 455 칸의 11일, 조각들의 모자이크 (+불어원문) - 아드리앙 공보
No. 456 칸의 알짜 재미는 칸 마켓에 있다 (+영어원문) - 데릭 엘리
No. 457 영화시장 제약하는 해적판, 물렀거라 (+영어원문) - 달시 파켓
No. 458 '홍상수' 읽기의 두 가지 태도 - 아드리앙 공보
No. 459 스크린쿼터에 관한 일장춘몽 (+영어원문) - 데릭 엘리
No. 460 외국영화 지원하는 한국영화기금을 꿈꾼다 (+영어원문) - 달시 파켓
No. 461 광대들을 들라 하라! (+불어원문) - 아드리앙 공보
No. 462 '서서 응시하는' 진정한 축제가 되길 (+영어원문) - 데릭 엘리
No. 463 
No. 464 영화와 록을 연결하려는 유일한 축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불어원문) - 아드리앙 공보
No. 465 시대와 문화에 '딱' 맞는게 최고의 리메이크 (+영어원문) - 데릭 엘리
No. 466 고전 한국영화의 진흥 및 해외 마케팅 필요(+영어원문) - 달시 파켓
No. 467 영화학도 미셸 휘르끄의 영화, 사랑 그리고 죽음 (+불어원문) - 아드리앙 공보
No. 468 로카르노영화제 등 세계 영화제-내실보다 장식 위주로 변해 (+영어원문) - 데릭 엘리
No. 469 한국의 미국인이 본 양국의 영화문화 차이 (+영어원문) - 달시 파켓
No. 470 배두나는 대단한 배우다 (+불어 원문) - 아드리앙 공보
No. 471 세련된 몬트리올 vs 화려한 토론토 영화제 (+영어 원문) - 데릭 엘리
No. 472 〈나이트 워치〉 등 자국영화 붐… 90년대 중반 한국영화 붐과 비슷(+영어 원문) - 달시 파켓
No. 473 사후 20주년 트뤼포를 다시 보다 (+불어원문) - 아드리앙 공보
No. 474 주성치의 '모조'는 어디로? (+영어원문) - 데릭 엘리
No. 475 자막이라는 스캔들 (+영어원문) - 달시 파켓
No. 476 존경을 표하는 동양과 서양의 방법 (+불어원문) - 아드리앙 공보
No. 477 영국인 브리짓이 된 미국인 젤위거 (+영어원문) - 데릭 엘리
No. 478 북미시장, 한인을 노려라 (+영어원문) - 달시 파켓
No. 479 당신의 눈 안으로 스며드는 연기 (+불어원문) - 아드리앙 공보
No. 480 실속없는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영어원문) - 데릭 엘리
No. 481 쿨하든지 보기 좋든지 (+영어원문) - 달시 파켓
No. 482 임권택 감독의 가장 뛰어난 성공 중 하나 (+불어원문) - 아드리앙 공보
No. 483 〈알렉산더〉의 콜린 파렐, 최고의 연기 선보여 (+영어원문) - 데릭 엘리
No. 484 한국영화, 세계로 가려면 안정된 시스템과 충분한 인력 필수 - 달시 파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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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No. 485~534)

No. 485 
No. 486 성격파 배우, 멸종 위기 다가오나? (+영어원문) - 데릭 엘리
No. 487 "미장센을 팝니다" (+영어원문) - 달시 파켓
No. 488 상하이의 엽기적인 동업자들 (+불어원문) - 아드리앙 공보
No. 489 영화제, 여전히 백인녀석들이 지배한다 (+영어원문) - 데릭 엘리
No. 490 좋은 영어제목 갖지 못한 한국영화들 (+영어원문) - 달시 파켓
No. 491 신체 장애와 영웅주의 (+불어원문) - 아드리앙 공보
No. 492 부천시와 PiFan, 누가 기억될 것인가 (+영어원문) - 데릭 엘리
No. 493 한국 러브 스토리들을 좋아하는 이유 (+영어원문) - 달시 파켓
No. 494 절제된 형식으로 완성한 9시간 다큐 (+불어원문) - 아드리앙 공보
No. 495 독일 상업영화의 도전들 (+영어원문) - 데릭 엘리
No. 496 한국에 스타 시스템은 존재하는가 (+영어원문) - 달시 파켓
No. 497 잊혀진 아랍의 영화들 (+불어원문) - 아드리앙 공보
No. 498 해와 달과 유성들 (+영어원문) - 데릭 엘리
No. 499 과장이 심한 한국의 보도자료들 (+영어원문) - 달시 파켓
No. 500 낯선 억양을 접하는 즐거움 (+불어원문) - 아드리앙 공보
No. 501 칸의 기준은 무엇인가 (+영어원문) - 데릭 엘리
No. 502 요즘 시네필들은 어디에서 모이나? (+영어원문) - 달시 파켓
No. 503 금발은 어떻게 영상을 사로잡았나? (+불어원문) - 아드리앙 공보
No. 504 한국영화, 스스로의 힘으로 전진하라 (+영어원문) - 데릭 엘리
No. 505 아시아를 알아야, 한류를 안다 (+영어 원문) - 달시 파켓
No. 506 이민자들의 영화가 주목받는 이유 (+불어원문) - 아드리앙 공보
No. 507 비영어권 영화들에 대한 편견 (+영어원문) - 데릭 엘리
No. 508 한국에서 사용되는 콩글리시 용어들 (+영어원문) - 달시 파켓
No. 509 〈하류인생〉 프랑스에서 개봉 못한 사연 (+불어원문) - 아드리앙 공보
No. 510 글로벌 할리우드의 힘 (+영어원문) - 데릭 엘리
No. 511 시적인 공포영화 (+영어원문) - 달시 파켓
No. 512 무질서한 격투의 미학 (+불어원문) - 아드리앙 공보
No. 513 형이상학적 공포의 강렬함 (+영어원문) - 데릭 엘리
No. 514 웰컴 투 〈웰컴 투 동막골〉 (+영어원문) - 달시 파켓
No. 515 왜 유럽 영화는 존재하지 않는가? (+불어원문) - 아드리앙 공보
No. 516 영화계에 바라는 7가지 제언 (+영어원문) - 데릭 엘리
No. 517 국내용 뉴스 따로, 국외용 뉴스 따로? (+영어원문) - 달시 파켓
No. 518 척추장애인 배우들의 비극적 운명 (+불어원문) - 아드리앙 공보
No. 519 에든버러국제영화제 2005 (+영어원문) - 데릭 엘리
No. 520 영화제보다 기관에 대한 지원이 필요한 때 - 달시 파켓
No. 521 한국영화, 피묻은 역사를 깨우다 (+불어원문) - 아드리앙 공보
No. 522 영화제에 마켓은 필수불가결한가 (+영어원문) - 데릭 엘리
No. 523 표준화된 영어 제목이 필요하다 (+영어 원문) - 달시 파켓
No. 524 찍는 그림과 그린 그림 사이 (+불어 원문) - 아드리앙 공보
No. 525 2015 부산영화제는 더 중요하다 (+영어 원문) - 데릭 엘리
No. 526 소리의 여백을 활용하는 법 (+영어 원문) - 달시 파켓
No. 527 장선우 감독, 그의 광기가 그립다 (+불어 원문) - 아드리앙 공보
No. 528 중산층화의 위기 (+영어 원문) - 데릭 엘리
No. 529 오리엔탈리스트 비평가의 전략 (+불어 원문) - 아드리앙 공보
No. 530 유비쿼터스 영화 (+영어 원문) - 달시 파켓
No. 531 좋은 영화만으로는 부족하다 (+영어 원문) - 데릭 엘리
No. 532 작가는 있지만 대중 감독은 없다 (+영어 원문) - 스티븐 크레민
No. 533 별의 효용성 (+영어원문) - 달시 파켓
No. 534 2005년 나를 짜릿하게 만든 순간들 (+영어원문) - 데릭 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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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No. 535~584)

No. 535 나는 미키 루크가 늙어가는 걸 보았노라 (+불어원문) - 아드리앙 공보
No. 536 홍콩영화가 비빌 언덕은 어디? (+영어원문) - 스티븐 크레민
No. 537 사자는 사자고, 고양이는 고양이다 (+영어원문) - 달시 파켓
No. 538 신은 영화 속에 있는가 (+불어원문) - 아드리앙 공보
No. 539 인도산 〈올드보이〉의 예술적 향기 (+영어원문) - 데릭 엘리
No. 540 방콕국제영화제는 어디로 가는가 (+영어원문) - 스티븐 크레민
No. 541 〈브로크백 마운틴〉 서울 시사기 (+영어원문) - 달시 파켓
No. 542 다큐멘터리영화의 미학 (+불어원문) - 아드리앙 공보
No. 543 영화제 심사위원은 정치가인가 (+영어원문) - 데릭 엘리
No. 544 당신의 이웃을 깔보지 말라 (+영어원문) - 스티븐 크레민
No. 545 비대한 영화의 빈약한 자신감 (+영어원문) - 달시 파켓
No. 546 파리와 서울, 두 영화의 도시 (+불어원문) - 아드리앙 공보
No. 547 인도 뮤지컬 영화의 힘 (+영어원문) - 데릭 엘리
No. 548 아시아 영화는 지금 순수한 사랑 중 (+영어원문) - 스티븐 크레민
No. 549 '왜?'와 '어떻게?' (+영어원문) - 달시 파켓
No. 550 한국이 간과한 한국영화의 효과 (+불어원문) - 아드리앙 공보
No. 551 TV 드라마의 중요성, 간과하지 말라 (+영어원문) - 데릭 엘리
No. 552 영화제 프로그래밍 이대로 좋은가 (+영어원문) - 스티븐 크레민
No. 553 한국영화, 마케팅 내공을 키워라 (+영어원문) - 달시 파켓
No. 554 일상 속의 고대극 (+불어원문) - 아드리앙 공보
No. 555 칸은 유럽영화만 사랑해 (+영어원문) - 데릭 엘리
No. 556 칸에서 일본영화가 보이지 않았던 이유 (+영어원문) - 스티븐 크레민
No. 557 작은 맥락과 큰 맥락 (+영어원문) - 달시 파켓
No. 558 톰 크루즈가 샤룩 칸에게 밀린 까닭 (+불어원문) - 아드리앙 공보
No. 559 그래도 있는 게 낫다 (+영어원문) - 데릭 엘리
No. 560 아시아만의 영화 축제가 필요하다 (+영어원문) - 스티븐 크레민
No. 561 응집된 아시아 공동체를 위한 초석 - 달시 파켓
No. 562 아름다움의 감염,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 아드리앙 공보
No. 563 영화제가 부리는 마법 - 데릭 엘리
No. 564 작은 영화제가 성장하는 방법 - 스티븐 크레민
No. 565 한국영화여, 외국어 대사 처리에 노련해져라 - 달시 파켓
No. 566 내 사랑 베티의 스무번째 생일을 축하하며 - 아드리앙 공보
No. 567 전쟁과도 같은 영화제 만들기 - 데릭 엘리
No. 568 영화 수집, 그 참을 수 없는 즐거움 - 스티븐 크레민
No. 569 완벽한 결말을 만나는 기쁨 - 달시 파켓
No. 570 마릴린 먼로의 마지막 무대 - 아드리앙 공보
No. 571 정치적인, 너무나 정치적인 - 데릭 엘리
No. 572 정확한 박스오피스 집계의 중요성 - 스티븐 크레민
No. 573 실패한 영화를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 - 달시 파켓
No. 574 류승완 감독, 쓸쓸한 얼굴로 돌아보다 - 아드리앙 공보
No. 575 영화를 자유롭게, 마음껏 보고 싶다! - 데릭 엘리
No. 576 영화제는 산업의 윤활유 되어야 - 스티븐 크레민
No. 577 한국영화, 리메이크 아닌 재촬영을 제안한다 - 달시 파켓
No. 578 갇힘의 환상
No. 579 
No. 580 아시아영화에 관한 아시아적 관점이 필요하다 - 스티븐 크레민
No. 581 한국 영웅의 출현을 기대한다
No. 582 2006년의 영화를 되돌아보다 - 아드리앙 공보
No. 583 아시아의 독보적인 사업책이 필요하다 - 데릭 엘리
No. 584 영화 저작권과 관객의 볼 권리 - 스티븐 크레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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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No. 585~634)

No. 585 오늘날의 한국영화는 무엇으로 불러야하는가
No. 586 보보스와 〈괴물〉 - 아드리앙 공보
No. 587 제대로 꿰어진 구슬목걸이 - 데릭 엘리
No. 588 영화광의 숙취 - 아드리앙 공보
No. 589 시나리오작가들에게 고함
No. 590 수출용 남자 배우들의 현재 - 스티븐 크레민
No. 591 베를린, GO, 이스트! - 데릭 엘리
No. 592 중화권 영화와 한국 영화사의 연애담 - 스티븐 크레민
No. 593 부산에서 만나요 - 달시 파켓
No. 594 불 좀 빌려주세요 - 아드리앙 공보
No. 595 이 감독을 추천합니다 - 데릭 엘리
No. 596 대만여성영화제의 도전 - 스티븐 크레민
No. 597 두 도시 이야기 - 달시 파켓
No. 598 파괴적인 대리인들 - 아드리앙 공보
No. 599 가짓수만 맞춰주면 통합되나? - 데릭 엘리
No. 600 영화제에 로그인하시겠습니까? - 스티븐 크레민
No. 601 보통 중국영화들을 위하여 - 달시 파켓
No. 602 잊혀진 수상작 - 아드리앙 공보
No. 603 영화제 쿼터의 정치학 - 데릭 엘리
No. 604 누가누가 많이 나왔나 - 스티븐 크레민
No. 605 내 머릿속의 목소리 - 달시 파켓
No. 606 르 클레지오의 한국영화 산책 - 아드리앙 공보
No. 607 전도연의 여우주연상 수상이 의미하는 것 - 데릭 엘리
No. 608 세계 최고 영화도서관의 몰락 - 스티븐 크레민
No. 609 위트 스틸먼을 기다리며 - 달시 파켓
No. 610 리비에라 해안에 작별 인사를! - 아드리앙 공보
No. 611 노동자 경찰이 돌아왔다 - 데릭 엘리
No. 612 떠나간 거장, 에드워드 양을 추모하다 - 데릭 엘리
No. 613 언어와 글로벌 스타의 상관관계 - 스티븐 크레민
No. 614 한국영화의 진짜 얼굴 - 달시 파켓
No. 615 취한 여자들의 진심과 속셈 - 아드리앙 공보
No. 616 타이영화 리메이크 성공시대 - 스티븐 크레민
No. 617 진정한 평론가란? - 달시 파켓
No. 618 할아버지가 만드는 영화 - 아드리앙 공보
No. 619 문전성시를 이루는 영화제를 위하여 - 데릭 엘리
No. 620 벗어라, 영화! 열려라, 참깨! - 스티븐 크레민
No. 621 위기는 창조의지가 잠든 사이 찾아올지니 - 달시 파켓
No. 622 예술영화는 대중영화 상영관에 통합되는가 - 아드리앙 공보
No. 623 중국 영화계, 대인이 필요한 때 - 데릭 엘리
No. 624 대륙의 새로운 빛 - 스티븐 크레민
No. 625 인터뷰의 기술 - 달시 파켓
No. 626 한국영화의 시조 - 아드리앙 공보
No. 627 영화제에 문화혁명이 필요하다 - 데릭 엘리
No. 628 인터넷 검색으로 관객을 읽는다 - 스티븐 크레민
No. 629 중견들을 위한 젊은 기술 - 달시 파켓
No. 630 '어워드'라는 이름의 게임 - 스티븐 크레민
No. 631 요즘 극장에는 빅브러더가 산다 - 데릭 엘리
No. 632 동양 남자의 관능 - 아드리앙 공보
No. 633 천 개의 평론보다 한 마디 입소문! - 달시 파켓
No. 634 "어차피 잘 안 풀릴 텐데" - 아드리앙 공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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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No. 635~684)

No. 635 덜 섹시하고, 더 멍청하게 - 데릭 엘리
No. 636 자국영화를 껴안는 두 가지 방법 - 스티븐 크레민
No. 637 한국영화에 건네는 달콤쌉싸름한 조언 - 달시 파켓
No. 638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영화 - 아드리앙 공보
No. 639 둘이 하나되어 더욱 풍요로워지다 - 데릭 엘리
No. 640 불법복제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방법 - 스티븐 크레민
No. 641 아시아의 역사로 우린 무엇을 하는가? - 아드리앙 공보
No. 642 충무로 주식시장, 재미있지 않을까? - 달시 파켓
No. 643 영화제들이여, 몸집을 줄여라 - 데릭 엘리
No. 644 정부 보조금과 창의성의 관계 - 스티븐 크레민
No. 645 한국 정부는 왜 수수방관하는 걸까? - 달시 파켓
No. 646 자신만의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 아드리앙 공보
No. 647 노래하지 않는 스위니 토드? - 데릭 엘리
No. 648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 - 스티븐 크레민
No. 649 영화 스타의 힘이란? - 달시 파켓
No. 650 한편의 코미디, 프랑스를 덥히다 - 아드리앙 공보
No. 651 터키 거장들의 영화가 없는 이스탄불 - 데릭 엘리
No. 652 우디네는 신하균을 좋아해 - 스티븐 크레민
No. 653 영화제가 특별한 해를 기리는 방법 - 달시 파켓
No. 654 누벨바그, 오해에서 비롯됐다? - 아드리앙 공보
No. 655 뉴웨이브의 씨앗은 무엇이었나 - 데릭 엘리
No. 656 아시아에서 가장 뜨는 배우는 누구인가 - 스티븐 크레민
No. 657 미친 영화를 위하여 - 달시 파켓
No. 658 삼류라고 무시하지 마세요 - 아드리앙 공보
No. 659 영화제용 러프 컷의 탄생 비화 - 스티븐 크레민
No. 660 상하이국제영화제를 좋아하는 이유 - 데릭 엘리
No. 661 반복의 마력 - 달시 파켓
No. 662 그녀는 여전히 계단 위쪽에 서 있다 - 아드리앙 공보
No. 663 할리우드에 진정한 슈퍼히어로는 없는가? - 데릭 엘리
No. 664 우스꽝스러운 천재, 열성스런 장인 - 아드리앙 공보
No. 665 보다 성숙해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 스티븐 크레민
No. 666 한국영화 지지자들의 고향을 만드는 법 - 달시 파켓
No. 667 세계가 중국을 바라보는 시선 - 아드리앙 공보
No. 668 로카르노, 그 화려했던 과거는 어디에 - 데릭 엘리
No. 669 허우샤우시엔의 블록버스터 도전 - 스티븐 크레민
No. 670 100분 동안 낄낄댈 전염성 높은 코미디
No. 671 상대적이며 복잡한 아시아 영화지리학 - 아드리앙 공보
No. 672 마르코 뮐러의 실패로 얼룩진 베니스영화제 - 데릭 엘리
No. 673 아시아는 왜 아카데미상에 집착하는가? - 스티븐 크레민
No. 674 음악, 눈물, 그리고 순수에 대한 집착 - 달시 파켓
No. 675 내 기억을 훔쳐간 왕가위 - 아드리앙 공보
No. 676 한국식 화법은 격렬해 - 데릭 엘리
No. 677 아이디어 없어도 살아남으려면 - 스티븐 크레민
No. 678 말 꺼내기 전 30분간의 침묵 - 달시 파켓
No. 679 불황에 타오르는 영감 - 아드리앙 공보
No. 680 도시가 길러낸 영화 시인들 - 데릭 엘리
No. 681 지중해에서 취향을 생각하다 - 스티븐 크레민
No. 682 올해 데뷔한 감독들에게 축배를! - 달시 파켓
No. 683 
No. 684 안 본 영화에 대해 말하는 법 - 아드리앙 공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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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No. 685~735)

No. 685 
No. 686 3등이지만, 주신을 주목해줘 - 데릭 엘리
No. 687 제발 인도네시아영화를 보여줘라 - 스티븐 크레민
No. 688 시스템을 믿지 말라 - 달시 파켓
No. 689 장 뤽 고다르, 파편들만 튀고… - 아드리앙 공보
No. 690 일제시대, 거 참 민감하군 - 스티븐 크레민
No. 691 
No. 692 오, 환타스틱 70mm - 데릭 엘리
No. 693 욕구불만의 다른 표현인가 - 아드리앙 공보
No. 694 스타여, 내 뺨을 갈겨다오 - 달시 파켓
No. 695 서울은 역시 국제도시야 - 스티븐 크레민
No. 696 시대극, 그게 특기잖아 - 데릭 엘리
No. 697 관점을 바꾸는 마법 - 달시 파켓
No. 698 폭력적인 영화의 구원 - 아드리앙 공보
No. 699 이런 여배우는 많지 않다 - 데릭 엘리
No. 700 '여성감독'영화제가 아닌 거야 - 스티븐 크레민
No. 701 한국 영화음악 멜로디를 줄여요 - 달시 파켓
No. 702 놀리우드 제국의 진실은 - 아드리앙 공보
No. 703 영어자막, 돈 얼마나 든다고… - 스티븐 크레민
No. 704 칸, 부르조아적 보수노선의 선택 - 데릭 엘리
No. 705 〈업〉을 떨리는 마음으로 기대함 - 달시 파켓
No. 706 진짜배기 '롤로'를 추억하며 - 아드리앙 공보
No. 707 아라타, 아소, 그리고 황우슬혜 - 스티븐 크레민
No. 708 중국 뉴웨이브의 섬광적 순간 - 데릭 엘리
No. 709 전지현, 당신의 미래는 밝아! - 달시 파켓
No. 710 프랑스인들은 영국영화를 좋아해 - 아드리앙 공보
No. 711 중국에 극장만 지으면 뭐하나 - 스티븐 크레민
No. 712 영화제의 기본 정신으로 돌아가라 - 데릭 엘리
No. 713 고 유현목 감독의 못다 핀 꿈 - 달시 파켓
No. 714 유현목의 그 "가자"는 뭔가 - 아드리앙 공보
No. 715 서울 영화계 휴가갔나 - 데릭 엘리
No. 716 멜버른영화제와 '진짜 중국' - 스티븐 크레민
No. 717 〈이웃집 좀비〉의 일장일단 - 달시 파켓
No. 718 셰에라자드가 아니어도 괜찮아 - 아드리앙 공보
No. 719 로카르노영화제는 죽었다 - 데릭 엘리
No. 720 〈20세기 소년〉 3부작의 정체 - 스티븐 크레민
No. 721 부산의 멋진 선택 - 달시 파켓
No. 722 벨기에영화의 저력 - 아드리앙 공보
No. 723 소피의 중국매뉴얼 - 데릭 엘리
No. 724 영화제 경제학을 바꾸자 - 스티븐 크레민
No. 725 주네씨, 그럼 3년 뒤에 보나요? - 아드리앙 공보
No. 726 영화의 목적은 역사 교육이 아니다 - 달시 파켓
No. 727 작은 영화제가 그립다 - 데릭 엘리
No. 728 슈퍼파워, 중국을 주목하라 - 스티븐 크레민
No. 729 세계를 변화시키는 작은 시도 - 달시 파켓
No. 730 영화인의 천재성 유통기간은? - 아드리앙 공보
No. 731 안개(FoG) 속의 그리스 감독들 - 데릭 엘리
No. 732 그래도 멋진 한해였어 - 스티븐 크레민
No. 733 10억원 미만 영화상을 제안함 - 달시 파켓
No. 734 포르노배우 가츠니와 류승완 - 아드리앙 공보
No. 735 홈스의 진짜 문제점은 '드라마' - 데릭 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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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No. 736~785)

No. 736 
No. 737 대만의 중국영화 쿼터제 - 스티븐 크레민
No. 738 갱스터 에픽 〈흑사회〉 - 달시 파켓
No. 739 로메르와의 마지막 인터뷰 - 아드리앙 공보
No. 740 베를린이여 배짱 좀 키우시게 - 데릭 엘리
No. 741 
No. 742 피터 잭슨의 창조적 위기는 실수일 뿐 - 달시 파켓
No. 743 모란봉이 다시 보이기까지 - 아드리앙 공보
No. 744 
No. 745 2009년 타이영화계를 구원한 네편의 영화 - 스티븐 크레민
No. 746 프로듀서들은 어디로 갔나 - 달시 파켓
No. 747 스크린 속 그녀와의 눈빛교환 - 아드리앙 공보
No. 748 영화제도 애국주의 타령? - 데릭 엘리
No. 749 잔인하다고 안 틀어? - 스티븐 크레민
No. 750 웃기기 위한 클리셰는 그만! - 달시 파켓
No. 751 어느 천재의 현기증 - 아드리앙 공보
No. 752 시작은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 - 데릭 엘리
No. 753 〈의형제〉가 아시아에서 흥행 1위 - 스티븐 크레민
No. 754 "어- 어- 어" 그 소리가 좋다 - 달시 파켓
No. 755 서양 무사영화 다시 돌아왔나 - 아드리앙 공보
No. 756 올해도 영화산업과 따로 놀았군 - 데릭 엘리
No. 757 발견! 리웨이란, 리팡팡 감독 - 스티븐 크레민
No. 758 〈씨네21〉의 포드캐스트를 기다리며 - 달시 파켓
No. 759 몸으로 말해요 - 아드리앙 공보
No. 760 지금 대륙의 아이콘은 판빙빙 - 데릭 엘리
No. 761 지하전영 작품마저 배제 - 스티븐 크레민
No. 762 입장료 올리기 위한 변명 아냐? - 달시 파켓
No. 763 즐거운 인생 - 아드리앙 공보
No. 764 월드 프리미어 따윈 집어치우라구! - 데릭 엘리
No. 765 일본영화산업 영화사들이 죽인다? - 스티븐 크레민
No. 766 돈보단 대담성, 고로 〈인셉션〉에 한표를 - 달시 파켓
No. 767 늙은 사자의 이빨은 아직도 날카롭군 - 아드리앙 공보
No. 768 심리적으로 너무 위험해 - 데릭 엘리
No. 769 대만영화사 복원할 단초를 얻었노라 - 스티븐 크레민
No. 770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은 최고다 - 달시 파켓
No. 771 아듀, 알랭 코르노 - 아드리앙 공보
No. 772 ActiveX에 집착하는 한국, 그리고 부산 - 데릭 엘리
No. 773 베트남도 국제영화제 팡파르 - 스티븐 크레민
No. 774 보고싶다! 봉준호, 이창동의 다큐멘터리를 - 달시 파켓
No. 775 그 너머로 아름다움과 폭력을 보다 - 아드리앙 공보
No. 776 영화의 바다에 '바다'가 없다니… - 데릭 엘리
No. 777 정부 꼭두각시 노릇 그만! - 스티븐 크레민
No. 778 영어 대화, 문법적으로 틀려도 괜찮아 - 달시 파켓
No. 779 이 다리, 현실과 환상 사이 - 아드리앙 공보
No. 780 위대한 영화 유산을 남기고 떠나네 - 데릭 엘리
No. 781 대륙 외화 융단폭격! 알고 보니… - 스티븐 크레민
No. 782 스타의, 스타를 위한, 스타에 의한 축제 - 달시 파켓
No. 783 '무기력 유발하는 관심'을 거부한다 - 아드리앙 공보
No. 784 놀랍도다, 풍요로운 중국영화 역사 - 데릭 엘리
No. 785 일본영화 스틸 위키리크스가 필요해 - 스티븐 크레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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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No. 786~799)

No. 786 비주류 영화의 취향을 공략하라 - 달시 파켓
No. 787 피해와 분단 그리고 타자 - 아드리앙 공보
No. 788 게유를 아십니까 - 데릭 엘리
No. 789 게으르고 나태한 베를린 - 스티븐 크레민
No. 790 시나리오작가를 잘 대우해줘 - 달시 파켓
No. 791 팝콘 먹으며 철학 공부를 - 아드리앙 공보
No. 792 
No. 793 베를린 곰… 죽었니? 살았니? - 데릭 엘리
No. 794 아이튠즈로 배급하라 - 스티븐 크레민
No. 795 유머는 놓치고 성차별만 드러날까봐 - 달시 파켓
No. 796 의혹과 결함에서 탄생한 두 감독 - 아드리앙 공보
No. 797 쇼브라더스 전성기의 한 챕터 - 데릭 엘리
No. 798 대만 금마장상 '웃음거리' - 스티븐 크레민
No. 799 한국영화계의 흥미로운 얘깃거리였길 - 달시 파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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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거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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