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가박스 신촌 7관에서 봤다. 상단 마스킹을 잘못해서 화면 위쪽이 살짝 잘려나갔다.

 - 그간 〈올드보이〉 블루레이가 제대로 나오질 못하고 피터팬픽처스 같은 립핑 전문 회사에서 후줄근한 무판권 타이틀로 나온 것은 한국 내 판권 문제가 복잡했기 때문이라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는데, 이번에 보니 맨 앞에 CJ 엔터테인먼트 로고가 새로 붙었더라. 결국 CJ에서 가져가게 된 것인지?

 - 이 영화가 그렇게까지 내 속에 깊이 들어와 있는 줄은 몰랐다. 안 본 지 정말 오래됐는데 거의 모든 쇼트가 낯익었다. 추억을 돌아보는 자리로 만들지 않으려고 했지만, 보는 내내 2003년에 처음 이 영화를 보면서 순간순간 느꼈던 기분이나 그 시절 친구들과 이야기했던 바가 자꾸 떠올라 2013년의 감상에 섞여들었다. 새삼 지난 10년이 〈올드보이〉의 10년이었을 뿐만 아니라 내 영화 인생 전부였고 그 출발점에 박찬욱의 영화가 있었음을 실감했다. 전에는 그게 〈복수는 나의 것〉에만 해당하는 이야기이리라 생각했는데, 〈올드보이〉도 뿌리 중 하나였구나.

 - 박찬욱은 이 영화 이후로는 줄곧 닫힌 공간/일상에서 떨어진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거나 로케이션을 다루더라도 거기서 가능한 한 세월의 흔적을 제거하려 하는 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올드보이〉는 박찬욱 영화의 카메라가 실제 세계를 기록하는 역할을 기피하지 않은 (지금까지는) 마지막 영화가 아니었을까. 나는 이 영화의 로케이션이 어디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박찬욱 세계의 인물이 일상 공간을 누비고 다니는 모습에는 어쩔 수 없는 시간의 더께가 얹혀 있다. 그곳이 "좆빵새"를 가르쳐 준 양아치들과 싸운 굴다리 밑이든, 스톡홀름에서 양부모와 함께 산다는 딸 에바의 주소를 얻은 후 터벅터벅 거닐던 시장길이든, 도청 장치를 제거한 용산 전자 상가든, 미도가 사는 "운암동 세운아파트"든, 오대수가 감금방에서 저 유명한 장도리 액션을 펼친 다음 피를 흘리며 쓰러진 건널목이든, 상록고등학교든. 여기에는 어쩔 수 없이 현실의 표면을 기록하고 있는 물건으로 픽션을 만든다는 행위에서 발생하는 긴장이 있다. 박찬욱은 이후의 영화에서 되도록 이 긴장을 걷어내고 원형에 가까운 서사뿐만 아니라 세계의 형상까지도 원형처럼 배치하려고 하는데, 〈스토커〉 감상에서도 슬쩍 말했지만, 나는 그 변화가 그리 달갑지 않다. 그래서 새삼 〈올드보이〉가 더 정겹게 와 닿았는지도.

 - 분명히 한국 영화계에 "스릴러"라는 말이 낯설던 시절이 있었다. 그건 미국놈들이나 만드는 장르라고 여기던 시절. 스릴러가 그냥 하나의 장르라기보다는 영화 표현의 세련미를 나타내는 지표이자 한 문화가 추격과 폭력으로 점철된 이야기를 즐길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징후처럼 느껴지던 시절. 그런 인식을 대대적으로 바꾸기 시작한 선두주자가 2003년의 〈살인의 추억〉과 〈올드보이〉였다. 그리고 이제 〈올드보이〉를 보며 지난 10년간의 성과를 돌이켜보노라니 결국 한국 스릴러의 주도권을 가져간 쪽은 〈살인의 추억〉이었구나 싶다. 〈살인의 추억〉은 장르로서의 스릴러를 한국이라는 풍경/역사 안에 어떻게 안착시킬 것인가를 보여준 영화였고, 그건 한 감독의 개성을 벗어나 거대한 제작 시스템 안으로 한결 쉽게 스며들 수 있는 방식이었다. 반면 〈올드보이〉는 그보다는 시청각을 교란하고 관객을 은연중에 영화의 구조 안에 동참하게 하는 화법으로 스릴러가 된 영화인데, 이것은 제작하는 쪽에서나 감상하는 쪽에서나 좀처럼 눈여겨보고 귀담아듣지 않는 영역이며, 연출이라는 감독 고유의 영역에 좀 더 가까이 위치한 특성이다. 결국 10년이 흐르고 나니 분명해졌다. 〈살인의 추억〉은 타의 모범이 된 영화고, 〈올드보이〉는 비할 상대가 없는 영화다.

 - 이와 관련해서, 특히 〈올드보이〉에서 여러 종류의 음향을 이용해 관객의 착오를 의도적으로 이끌어낸 다음 한발 늦게 진실을 알려줌으로써 착오를 수정하고 영화의 상태를 다시 인식하게 하는 솜씨가 참으로 즐거웠다. 한편으로는 예전에는 재기 어린 연출의 예로만 여겼던 것들을 이제는 한데 엮어놓고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쁨인 것 같기도 하다.

 - 세월이 흐르면서 달라진 감상 하나. 10년 전의 나는 오대수가 자신의 잘못을 잊어버렸다는 설정을 두고 그럴 수도 있겠다고 여기기는 했으나 실감하지는 못했다. 이제는 실감할 수 있다. 나이를 먹어가며 다 기억할 수 없는 개인사와 말빚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탓이겠지.

 - 디지털 리마스터링 결과는 그리 인상적이지는 않았으나 딱히 뭐라고 할 말은 없다. 극장에서는 정말로 10년 만에 만난 영화였다. 10년 전 필름의 색감이나 밝기 따위를 기억하고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이미 오늘날 내 〈올드보이〉 체험의 주도권을 쥔 쪽은 2003년의 필름이 아니라 그간 틈틈이 봤던 DVD며 블루레이란 말이지. 다만 몇몇 쇼트에서 디지털 노이즈가 지나치게 심하다는 생각은 들었다. 특히 감금방에 갇힌 오대수가 처음 등장하는 쇼트 ─ 배식구로 얼굴 내밀고 애원하는 모습 ─ 는 노이즈가 무척 심해서 집에 와서 캐나다판 블루레이를 찾아봤다. 블루레이 쪽은 그렇지 않은데. 필름 그레인이면 환영했을 텐데 아무리 봐도 그저 디지털 노이즈로밖에 보이질 않았다. 마침 2014년 봄에 플레인 아카이브에서 드디어 제대로 된 한국판 블루레이를 내놓는다는 소식이 전해졌는데, 제작 과정에서 좀 더 손볼 여지가 있으려나 모르겠다. 그리고 이제 시간도 많이 지났으니 전 세계 모든 판본 중 궁극판 DVD에만 수록된 김영진 평론가 단독 음성해설과 해리 놀즈 단독 음성해설까지 넣을 수 있으면 넣어도 좋지 않으려나. 단편 〈심판〉도 궁극판 DVD에만 있었는데 그것도 넣을 수 있음 좋겠고. (궁극판 DVD가 없어서 원통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공익을 위해 하는 말이다. 난 궁극판 DVD 갖고 있음.)


 플레인 아카이브 2014년 봄 출시 예정작 티저 예고편



 - 플레인 아카이브 하니까 생각나는데, 엔딩 크레딧을 보니 "부가판권 판매대행"이 알토미디어(주)였다. 알토미디어는 DVD 업계에서 "한국의 크라이테리언"이라고 불리던 회사였다. 요즘은 플레인 아카이브가 그 이름을 계승할 기세이니 이 또한 인연이라고 해야 할지.

 - 텅 빈 상영관에서 혼자 보게 되나 싶었는데 시작할 즈음 다른 관객이 들어왔다. 엔딩 크레딧을 보고 있는데 그 관객이 정말 고마웠다. 혼자서 그 엔딩 크레딧을 보고 텅 빈 상영관을 뒤로 한 채 나가면 견딜 수 없이 슬플 것 같았는데.

Posted by 거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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