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초당 48프레임 영상에 관한 정보를 모아둔 웹페이지 : http://www.48fpsmovies.com/
〈호빗: 뜻밖의 여정〉뿐만 아니라 〈아바타〉, 〈인셉션〉 등의 48프레임, 60프레임짜리 예고편을 볼 수 있고 그 외 24프레임과 48프레임의 비교 영상도 있다.
② 아주아주 간단히 말하자면, 그동안 1초를 스물넉 장의 사진으로 쪼개서 보던 걸 마흔여덟 장, 예순 장으로 쪼개서 보는 거니까 움직임이 훨씬 부드럽고 선명해진다. 시각 안에서 잔상 효과가 담당하던 부분을 좀 더 많은 실제 이미지로 대체하는 셈이려나? 막연히 생각해 보면 눈으로 들어오는 가시광선을 통해 형성되는 인간의 시각은 (초 당 몇 장의 정지 이미지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빛의 스펙트럼처럼) 연속적이니까, 이처럼 프레임 수가 늘어날수록 인간의 '자연스러운' 시각에 가까워질 것 같다.
③ 그런데 과연 그런가? 그 가정이 성립하려면 애초에 카메라라는 기계를 통해 형성된 이미지는 그 '성능'이 인간의 눈에 비해 떨어질 뿐, '특질'은 동일하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24든 48이든 60이든 애초에 광학 기계를 통해 포착한 이미지는 눈을 통해 형성된 이미지와는 아예 다른 종류의 이미지로 분리해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정확히 어디서 차이가 나는지는 과학적 지식이 부족하여 모르겠으나, 영화 이미지가 움직이는 모습이나 초점 이동만 보더라도 그것은 사람의 눈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생각만 든다. 가령 화면의 모든 피사체에 초점이 맞는 딥포커스 화면을 보고 있노라면 정작 내 눈은 세상을 그런 식으로 본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지금 잠시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고 확인해보아도, 나로서는 시야 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한꺼번에 선명하게 인지한다는 게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니 단순히 프레임 수가 늘어난다고 해서 그것이 더 '자연스럽'고 '사실에 가까운'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④ 좀 더 구체적인 현상을 보자면, 무엇보다도 프레임 수가 높아지면 평소에 보던 영화 이미지보다 화면 내 피사체의 움직임이 더 빠르고 '지나치게' 부드러워서 흡사 화면을 1.X배속 정도로 빨리 감은 듯한 느낌이 든다.
질문 하나. 이 이질감은 단지 우리의 눈이 초당 24프레임 이미지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느껴지는 일시적인 현상일 뿐인가?
질문 둘. 그것이 우리 자신의 '사실적'이고 '자연스러운' 시각에 더 가까운가?
⑤ 더불어 만약 48프레임이나 60프레임이 더 실감 나는 영상을 만들어낸다고 하더라도, 그 '실감'이란 대체 무엇을 실감 나게 한다는 말인가를 잘 생각해야 한다. 〈호빗: 뜻밖의 여정〉을 본 관객 중에는 이것이 영화를 마치 재연 드라마처럼 보이게 한다는 소감을 피력한 사람이 적지 않다. 세트가 너무 세트 같고, 배우가 너무 배우 같다는 식이다. 가운데땅에서 벌어지는 호빗 빌보의 모험담, 즉 허구의 이야기를 더 '실감'나게 느끼는 대신 뉴질랜드의 스튜디오 안에 세워진 세트나 마틴 프리먼이라는 배우, 즉 영화 촬영 현장이 더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며 '실감'나게 느꼈다는 이야기다. 영화 만드는 사람들의 희망/주장/믿음과는 달리, 이 '실감나는' 영상 덕분에 화면 위에 덧씌운 픽션의 힘은 오히려 약해지고 있다.
이런 현상은 몇 해 전 개봉한 마이클 만 감독의 〈공공의 적들〉을 떠올리도록 한다. 만이 디지털 촬영에서 얻고자 했던 것도 그놈의 '실감'이었다. 동시대의 도시를 무대로 한 〈콜래트럴〉과 〈마이애미 바이스〉에서는 그 의도가 주효했다고 생각한다. 만의 뉴스 영상 같은 화면 덕분에 LA의 밤거리를 돌아다니는 택시 기사와 킬러, 혹은 마이애미의 밤을 달리는 두 형사는 가공의 우주 속에만 존재하는 LA나 마이애미 속의 캐릭터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 이 지구의 LA와 마이애미에 실재하는 인물처럼 보였다. 문제는 3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시대극 〈공공의 적들〉이었다. 만은 디지털 촬영이 30년대가 마치 눈앞에서 생생하게 펼쳐지는 듯한 감각을 제공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 영화의 '재연 드라마' 질감은 30년대를 눈앞에서 생생하게 펼쳐내는 대신 30년대를 재현하기 위해 노력한 21세기 영화 현장만을 눈앞에서 생생하게 펼쳐냈다. 의상이나 소품, 배경 등은 (만의 성격상) 철저히 고증을 따랐겠지만, 그 '생생한' 디지털 화면 때문에 30년대의 의상이나 소품, 배경이 아니라 30년대를 흉내 내는 21세기의 가짜 의상, 소품, 배경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그 영화에서 내가 본 것은 대공황기에 활약한 갱스터 존 딜린저가 아니라 딜린저의 이야기를 재연하고 있는 조니 뎁이었다.
실은 나는 극영화에서 잘 짜인 픽션을 넘어 픽션과 함께 공존하는 촬영 현장의 물성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따라서 잭슨이나 만의 실험도 호의적으로 즐기는 편이다. 하지만 그 실험의 방향이란 영화를 만든 그 사람들이 원했던 바나 인터뷰에서 주장하는 내용, 극장을 찾는 관객이 원하는 바와는 한참 다르지 않으냐고 묻고 싶다.
⑥ 하지만 '무엇이 더 사실적인가'를 따지는 이런 왈가왈부의 이면에는, 너무 많은 사람이 간과하는 더 근원적인 질문 하나가 숨어있다.
왜 영화 이미지가 더 사실적이기를, 더욱 현실과 가깝기를, 우리의 감각 체계를 모사하기를 바라는가? 영화는 그래야만 하는가? 그것이 영화의 '발전'인가?
이 질문이 먼저다. 특히 HFR뿐만 아니라 디지털 촬영, 3D, 아이맥스를 지지하는 사람은 이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물론 뤼미에르 형제의 〈라시오타 역에 도착하는 기차〉가 그 '실감'으로 관객에게 육박한 이래 영화는 소리를 첨가하고 색을 첨가하고 화면 크기를 키우는 등 현실의 특질을 모사하기 위해 갖은 애를 썼다. 관객들은 언제나 스크린 속에서 더욱 생생한 현실을 만끽하고 싶어했던 듯하다. 하지만 생생한 현실을 제공한다는 그 자체가 영화에 대한 매혹의 근원일 리는 없다. 그 생생한 현실은 영화를 보지 않을 때(그리고 영화를 볼 때조차) 늘 겪으니까. 오히려 결코 그럴 리가 없는데, 이것이 현실일 리가 없는데 현실처럼 보인다는 측면이 더 중요하지 않은가? 스크린 안의 현실만큼이나 스크린이라는 인공적인 경계가 중요하지 않은가? 영화가 현실을 모사하지 않기에 역설적으로 그 안에서 현실을 찾게 되는 것은 아닌가? 영화를 영화답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더 사실적임'을 향한 맹목적인 지지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 지지가 영화에 가져올 결과가 무엇인지 먼저 생각해야 한다.
⑦ 어쩌면 영화사는 영화 기술의 '발전'을 중심으로 기술하는 대신에 거꾸로 영화 매체의 '그럴 리가 없는' 부분, 생생하지 않은 부분이 제공하는 괴리를 조금씩 망각하고 상실하는 과정으로 기술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⑧ 궁금하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HFR을 원할까? 그는 아이맥스로 '실감'을 얻고 싶어하지만, 디지털과 3D는 거부한다. 그는 픽션의 '실감'을 드높이면서도 촬영 현장의 '실감'은 억누르고자 줄타기를 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추측건대 그는 HFR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호빗: 뜻밖의 여정〉뿐만 아니라 〈아바타〉, 〈인셉션〉 등의 48프레임, 60프레임짜리 예고편을 볼 수 있고 그 외 24프레임과 48프레임의 비교 영상도 있다.
② 아주아주 간단히 말하자면, 그동안 1초를 스물넉 장의 사진으로 쪼개서 보던 걸 마흔여덟 장, 예순 장으로 쪼개서 보는 거니까 움직임이 훨씬 부드럽고 선명해진다. 시각 안에서 잔상 효과가 담당하던 부분을 좀 더 많은 실제 이미지로 대체하는 셈이려나? 막연히 생각해 보면 눈으로 들어오는 가시광선을 통해 형성되는 인간의 시각은 (초 당 몇 장의 정지 이미지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빛의 스펙트럼처럼) 연속적이니까, 이처럼 프레임 수가 늘어날수록 인간의 '자연스러운' 시각에 가까워질 것 같다.
③ 그런데 과연 그런가? 그 가정이 성립하려면 애초에 카메라라는 기계를 통해 형성된 이미지는 그 '성능'이 인간의 눈에 비해 떨어질 뿐, '특질'은 동일하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24든 48이든 60이든 애초에 광학 기계를 통해 포착한 이미지는 눈을 통해 형성된 이미지와는 아예 다른 종류의 이미지로 분리해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정확히 어디서 차이가 나는지는 과학적 지식이 부족하여 모르겠으나, 영화 이미지가 움직이는 모습이나 초점 이동만 보더라도 그것은 사람의 눈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생각만 든다. 가령 화면의 모든 피사체에 초점이 맞는 딥포커스 화면을 보고 있노라면 정작 내 눈은 세상을 그런 식으로 본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지금 잠시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고 확인해보아도, 나로서는 시야 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한꺼번에 선명하게 인지한다는 게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니 단순히 프레임 수가 늘어난다고 해서 그것이 더 '자연스럽'고 '사실에 가까운'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④ 좀 더 구체적인 현상을 보자면, 무엇보다도 프레임 수가 높아지면 평소에 보던 영화 이미지보다 화면 내 피사체의 움직임이 더 빠르고 '지나치게' 부드러워서 흡사 화면을 1.X배속 정도로 빨리 감은 듯한 느낌이 든다.
질문 하나. 이 이질감은 단지 우리의 눈이 초당 24프레임 이미지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느껴지는 일시적인 현상일 뿐인가?
질문 둘. 그것이 우리 자신의 '사실적'이고 '자연스러운' 시각에 더 가까운가?
⑤ 더불어 만약 48프레임이나 60프레임이 더 실감 나는 영상을 만들어낸다고 하더라도, 그 '실감'이란 대체 무엇을 실감 나게 한다는 말인가를 잘 생각해야 한다. 〈호빗: 뜻밖의 여정〉을 본 관객 중에는 이것이 영화를 마치 재연 드라마처럼 보이게 한다는 소감을 피력한 사람이 적지 않다. 세트가 너무 세트 같고, 배우가 너무 배우 같다는 식이다. 가운데땅에서 벌어지는 호빗 빌보의 모험담, 즉 허구의 이야기를 더 '실감'나게 느끼는 대신 뉴질랜드의 스튜디오 안에 세워진 세트나 마틴 프리먼이라는 배우, 즉 영화 촬영 현장이 더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며 '실감'나게 느꼈다는 이야기다. 영화 만드는 사람들의 희망/주장/믿음과는 달리, 이 '실감나는' 영상 덕분에 화면 위에 덧씌운 픽션의 힘은 오히려 약해지고 있다.
이런 현상은 몇 해 전 개봉한 마이클 만 감독의 〈공공의 적들〉을 떠올리도록 한다. 만이 디지털 촬영에서 얻고자 했던 것도 그놈의 '실감'이었다. 동시대의 도시를 무대로 한 〈콜래트럴〉과 〈마이애미 바이스〉에서는 그 의도가 주효했다고 생각한다. 만의 뉴스 영상 같은 화면 덕분에 LA의 밤거리를 돌아다니는 택시 기사와 킬러, 혹은 마이애미의 밤을 달리는 두 형사는 가공의 우주 속에만 존재하는 LA나 마이애미 속의 캐릭터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 이 지구의 LA와 마이애미에 실재하는 인물처럼 보였다. 문제는 3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시대극 〈공공의 적들〉이었다. 만은 디지털 촬영이 30년대가 마치 눈앞에서 생생하게 펼쳐지는 듯한 감각을 제공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 영화의 '재연 드라마' 질감은 30년대를 눈앞에서 생생하게 펼쳐내는 대신 30년대를 재현하기 위해 노력한 21세기 영화 현장만을 눈앞에서 생생하게 펼쳐냈다. 의상이나 소품, 배경 등은 (만의 성격상) 철저히 고증을 따랐겠지만, 그 '생생한' 디지털 화면 때문에 30년대의 의상이나 소품, 배경이 아니라 30년대를 흉내 내는 21세기의 가짜 의상, 소품, 배경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그 영화에서 내가 본 것은 대공황기에 활약한 갱스터 존 딜린저가 아니라 딜린저의 이야기를 재연하고 있는 조니 뎁이었다.
실은 나는 극영화에서 잘 짜인 픽션을 넘어 픽션과 함께 공존하는 촬영 현장의 물성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따라서 잭슨이나 만의 실험도 호의적으로 즐기는 편이다. 하지만 그 실험의 방향이란 영화를 만든 그 사람들이 원했던 바나 인터뷰에서 주장하는 내용, 극장을 찾는 관객이 원하는 바와는 한참 다르지 않으냐고 묻고 싶다.
⑥ 하지만 '무엇이 더 사실적인가'를 따지는 이런 왈가왈부의 이면에는, 너무 많은 사람이 간과하는 더 근원적인 질문 하나가 숨어있다.
왜 영화 이미지가 더 사실적이기를, 더욱 현실과 가깝기를, 우리의 감각 체계를 모사하기를 바라는가? 영화는 그래야만 하는가? 그것이 영화의 '발전'인가?
이 질문이 먼저다. 특히 HFR뿐만 아니라 디지털 촬영, 3D, 아이맥스를 지지하는 사람은 이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물론 뤼미에르 형제의 〈라시오타 역에 도착하는 기차〉가 그 '실감'으로 관객에게 육박한 이래 영화는 소리를 첨가하고 색을 첨가하고 화면 크기를 키우는 등 현실의 특질을 모사하기 위해 갖은 애를 썼다. 관객들은 언제나 스크린 속에서 더욱 생생한 현실을 만끽하고 싶어했던 듯하다. 하지만 생생한 현실을 제공한다는 그 자체가 영화에 대한 매혹의 근원일 리는 없다. 그 생생한 현실은 영화를 보지 않을 때(그리고 영화를 볼 때조차) 늘 겪으니까. 오히려 결코 그럴 리가 없는데, 이것이 현실일 리가 없는데 현실처럼 보인다는 측면이 더 중요하지 않은가? 스크린 안의 현실만큼이나 스크린이라는 인공적인 경계가 중요하지 않은가? 영화가 현실을 모사하지 않기에 역설적으로 그 안에서 현실을 찾게 되는 것은 아닌가? 영화를 영화답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더 사실적임'을 향한 맹목적인 지지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 지지가 영화에 가져올 결과가 무엇인지 먼저 생각해야 한다.
⑦ 어쩌면 영화사는 영화 기술의 '발전'을 중심으로 기술하는 대신에 거꾸로 영화 매체의 '그럴 리가 없는' 부분, 생생하지 않은 부분이 제공하는 괴리를 조금씩 망각하고 상실하는 과정으로 기술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⑧ 궁금하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HFR을 원할까? 그는 아이맥스로 '실감'을 얻고 싶어하지만, 디지털과 3D는 거부한다. 그는 픽션의 '실감'을 드높이면서도 촬영 현장의 '실감'은 억누르고자 줄타기를 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추측건대 그는 HFR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