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신남녀〉[각주:1]의 Blu-ray를 빌려준 친구는 큰 실망을 표했다. 나도 불안을 안고 한동안 망설이다 보았다. 아직 두기봉의 로맨스 영화는 잘 모른다. 더구나 2009년 이후에 나온 두기봉 영화는 그 전만큼 믿음직스럽지는 않았다.

과연 싫어하기 쉬운 영화다. 한 여자와 두 남자의 삼각관계를 중심에 두고 있지만, 그중 고천락이 연기한 장신연이라는 캐릭터가 처음부터 변명의 여지 없이 추하다. 삼각관계가 성립한다는 기본 전제를 인정하기 어려울 정도다. 분명 손에 땀을 쥐고 이 삼각관계의 결론을 기다리기는 했다. 하지만 그 긴장이 정자흔(고원원)이 장신연과 방계굉(오언조) 중 누구를 선택하느냐는 물음에서 비롯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긴장은 과연 이 영화가 정자흔과 장신연을 맺어줌으로써 자신의 몰지각함을 밑바닥까지 드러내고야 마느냐는 근심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물론 마지막에 누구를 선택하든 상관없이 애당초 정자흔이 장신연 따위를 두고 고민하게 한다는 점에서 변호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선 지 오래지만.

장신연이라는 캐릭터의 무도함은 무딘 젠더 감수성에서만 비롯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가슴이 큰 여자를 보면 무천도사처럼 코피를 흘리는 묘사에서는 두기봉 영화에서 곧잘 나타나던 무책임함이 어렴풋이 느껴진다. 여기서 두기봉의 무책임함이란 〈암전 2〉[각주:2]의 대머리독수리와 자전거 질주, 〈유도용호방〉[각주:3]과 〈문조〉[각주:4]의 풍선처럼, 말도 안 되는 상황을 현실적으로 해명하기는커녕 아무런 정당화 없이 밀어붙여 영화 안에서만큼은 불가해한 리듬을 끌어내는 태도를 말한다.[각주:5] 장신연이 암벽 등반가이기도 하다는 뜬금없는 설정을 끌어와 느닷없이 건물 벽을 타고 오르게 하는 대목처럼, 실제로 두기봉의 마술이 어렴풋이 스쳐 지나가는 대목도 있다. 심지어 결정적인 고백의 순간에 갑자기 가슴 큰 여자들이 줄줄이 등장하여 장신연의 본성이 다시금 백일천하에 드러나고야 마는 장면도 두기봉식 명장면이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신연의 과잉은 초현실적인 과잉으로 승화되기에는 지나치게 불쾌하며, 두기봉의 연출도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렇게까지 집요하지는 못하다.

어쩌면 이 영화의 주인공은 지지부진한 연애에 매달리는 인간들이 아니라 그들의 메시지를 실어나르는 창문들인지도 모른다. 인간이 창문을 이용해 연애하는 영화가 아니라 창문이 인간을 이용해 자신의 가능성을 과시하는 영화랄까. 마주 보는 두 건물의 남녀가 창문을 통해 서로를 바라보며 우정을 쌓는 대목까지만 해도 창문의 역할은 그쯤에서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단신남녀〉는 끊임없이, 억지로라도 인간들을 흩어놓으며 계속 창문에 집중한다. 창문의 다채로운 변주가 거의 영화학 개론 1장을 보는 듯하다. 창문은 바깥을 내다보는 창이다. 동시에 창문은 바깥을 향해 자신을 투사하는 스크린이다. 창문을 사이에 둔 두 사람은 서로에게 배우요, 관객이 된다. 물론 어두워질 때면 창문은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되기도 한다. 창문-스크린은 창틀-프레임으로 격리된다. 창틀 바깥의 정보는 볼 수 없다. 혹은 하나의 창틀 안에서도 사물의 배치 동선에 따라 정보를 새로 드러내거나 차단할 수 있다. 창문-스크린 안에 다시 창틀-프레임을 넣어 분할 화면을 만들고 별도의 정보를 한꺼번에 전달할 수도 있다. 창문은 여러 층에 걸쳐 병렬 배치되어 다중 스크린을 구성하며 한꺼번에 세 명 이상의 수신자가 정보를 교환하도록 할 수 있다. 창을 통해 수신되는 정보는 대체로 기호의 형태를 띠므로, 창은 보다 구체적으로는 채팅창일 수 있다. 따라서 휴대폰 스크린 또한 창문이다. 건너편 건물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창 너머로 관찰하면서 이를 휴대폰을 찍어 실시간으로 전송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이 영화에서 무수히 변주되는 창문의 역할을 생각하면, 장신연과 방계굉의 우열은 (장신연의 개차반 같은 성격을 제외하더라도) 명백하다. 방계굉은 영감을 잃은 건축가다. 그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것은 지나가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벽면에 그려낸 정자흔의 그림자다. 그는 이 그림자로 무엇을 하는가? 고층 건물을 짓는다. 유리창으로 가득한 건물이다. 즉, 그는 새로운 창문-스크린들의 설계자다. 그가 새로 건설한 창문들은 한데 모여 각각의 온-오프 상태만으로도 정보를 전달한다. 창문은 이제 그 창문 안에 어떤 내용을 담느냐가 아니라 창문 자체의 성질만으로 표현을 해낸다. 다중 스크린을 이용한 초대형 행위 예술이다. 처음 창문을 이용해 공연을 시작한 것은 장신연이지만, 배우와 감독을 넘어서서 제작자이자 극장 운영주인 동시에 매체의 첨단으로 나아가는 자는 방계굉이다.

다른 한편, 창문-스크린만으로는 모든 정보를 전달할 수 없다. 창문은 영상만을 전달하며, 소리는 전달할 수 없다. 따라서 때로는 변사의 해석이 필요하고[각주:6], 때로는 휴대폰을 이용해 소리를 별도로 전달하여 영상과 동기화해야 한다. 반대로 소리만 들리고 영상이 없을 때도 있다. 캐릭터들은 그 결핍을 채우기 위해 목소리의 주인을 만나러 간다. 따라서 〈단신남녀〉에서 두 남녀의 최종적인 결합은 두 건물 사이의 거리를 넘어가기, 창문-스크린을 넘어가기, 혹은 무성영화에서 발성영화로 넘어가기라고도 할 수 있겠다. 여기서도 장신연과 방계굉의 우열은 명백하다. 장신연은 직접 만나 말을 듣지 않을 때까지만 해도 괜찮은 창문 너머의 배우였다. 반대로 방계굉은 창문 너머의 배우가 되기 전에 먼저 직접 접촉과 목소리를 통해 정자흔을 보살핀다. 장신연이 몰락한 무성영화 스타처럼 보인다고 말하면 지나친 칭찬이 되겠지만, 확실히 그는 거리를 둘 때만 매력 있는 남자다.

〈단신남녀〉는 '홍콩 감독'을 자처하던 두기봉이 첫 프랑스 합작 영화 〈복수〉[각주:7]가 흥행에 실패한 후 그로서는 드물게도 1년 동안 신작을 발표하지 않다가 홍콩 배우와 본토 배우를 기용해 광동어와 북경어를 혼용하여 만든 영화다. 따라서 여기 나오는 물리적 경계, 매체의 경계를 지리적 경계, 정치적 경계로도 읽고 싶은 강한 유혹을 느낀다. 이때 경계를 넘기 어려워서가 아니라 쉽다는 점이 문제다. 나는 아직도 홍콩 영화를 보다가 홍콩에 거주하던 인물이 다음 장면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본토에 있는 상황을 만나면 흠칫 놀라곤 하는데, 〈단신남녀〉도 마찬가지였다. 창문-스크린의 경계를 휴대폰으로 손쉽게 뛰어넘을 수 있는 것처럼, 홍콩과 본토의 왕래는 이제 자유롭다. 리먼 브라더스 파산 이후 세계 금융 위기를 어떻게 해선가 손쉽게 뛰어넘은[각주:8] 세 사람에게는 그럴 만한 돈도 있다. 그렇다면 본토에서 홍콩으로 온 여자는 홍콩 남자와 본토 남자 중 누구를 선택할까?

장신연과 방계굉을 두고 '당연히 방계굉'이라고 말하기는 쉽다. 하지만 그 질문을 홍콩 남자와 본토 남자로 치환한 다음 '당연히 본토 남자'라고 말하는 건, 그것도 두기봉이 자기 제작사에 만든 홍콩 영화를 두고 말하는 건, 어딘가 섬뜩하다. 마지막 장면에서, 장신연은 대형 현수막에 손수 페인트로 쓴 글씨를 내걸어 정자흔의 마음을 돌리려 한다. 하지만 해는 졌다. 무엇보다도 장신연이 현수막을 건 건물은 방계굉이 설계한 본토 건물이다. 그리고 방계굉은 자신이 세운 그 건물-다중 스크린을 이용해 장신연보다 훨씬 더 거대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제삼자의 눈에는 장신연의 메시지 또한 방계굉이 기획한 것처럼 보인다. 이런 싸움 뒤에 장신연과 방계굉이 '대등하게 잘 싸웠다'는 듯이 씩 웃으며 헤어진다고? 정신 승리에도 정도가 있다.

결국 〈단신남녀〉는 두기봉의 항복 선언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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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신남녀〉는 홍콩 Intercontinental Video에서 2011년에 출시한 지역 코드 A Blu-ray로 보았다. 21세기 홍콩 영화 Blu-ray가 대체로 그렇듯 본편의 화질과 음질은 나무랄데 없으나 부록은 빈약하다. 예고편 두 개와 메이킹 필름, 삭제 장면이 전부인데, 그나마도 메이킹 필름과 삭제 장면은 SD 화질. 게다가 메이킹 필름은 4:3 화면비에 다시 위아래 블랙 바를 넣은 레터박스 16:9 화면비다. 붙박이 중국어 자막은 있으나 영어 자막은 없고, 어차피 본격적으로 만든 메이킹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개봉 당시 홍보용으로 제작한 "촬영 현장 영상"에 불과하다. 중국어를 할 줄 모르는 나로서는 온몸을 바쳐 연기를 지도하는 두기봉 감독의 장난기 가득한 얼굴을 보는 정도의 의미만 있었다. 삭제 장면에는 중국어 자막도 없다. 본편 자막은 중국어 번체자와 간체자, 그리고 영어 자막을 제공한다. 영어 자막은 무난한 편이지만, 홍콩 타이틀이 대체로 그렇듯 종종 대사에 비해 뜨는 시간이 지나치게 짧을 때가 있다.

웹에서 구할 수 있는 재킷 이미지와 실제 이미지가 조금 다르다. 위 이미지는 디스크 프린팅에만 사용했고, 재킷 이미지에는 같은 구도지만 고원원이 입을 다물고 미소 짓는 사진을 사용했다.


  1. 單身男女, 2011 [본문으로]
  2. 暗戰 2, 2001 [본문으로]
  3. 柔道龍虎榜, 2004 [본문으로]
  4. 文雀, 2008 [본문으로]
  5. 이것이 두기봉만의 무책임함이라기보다는 홍콩 영화 특유의 과잉을 극대화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그렇게 주장해도 될 만큼 홍콩 영화를 잘 알지는 못한다. [본문으로]
  6. 두기봉 영화의 단골인 임설이 이 역할을 맡는다. [본문으로]
  7. 復仇, 2009 [본문으로]
  8. 이 3년의 공백 또한 또 하나의 '경계'일 듯하지만, 나는 2008년 세계 금융 위기가 홍콩-본토의 경제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본문으로]
Posted by 거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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