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아침에도 『신 엔진』 생각. 설정을 '흔하다'고만 말하고 넘어간 게 마음에 걸려서 조금 더 적기로 한다. 그런데 이건 스포일러에 신경 안 쓰는 내가 보기에도 완전 대왕 스포일러라서 하는 수 없이

접어 말하자면─

신의 힘이 신도의 믿음에 따라 달라진다거나, 신이 문자 그대로 신도를 먹는다거나, 그 '비밀'과 마주한 주인공이 신앙에 회의를 느낀다거나 하는 점들은 다 그냥 클리셰에 가까웠는데, 이거 하나는 정말 좋았다. 인류가 원래는 자체 과학기술로 우주공간 항행도 가능한 종족이었지만 신이 만들어낸 종교라는 책략에 눈멀어 사육당한 뒤로는 그 능력을 잃었고, 그래서 신앙심이 없으면 우주선을 움직일 수 없다는 점. 처음 읽었을 때는 이 대목을 너무 가볍게 지나쳤다. 세계를 움직이는 두 가지 힘/해석이 공존하며, 그중 좀 더 신비롭고 권위적인 쪽의 지배가 다른 하나를 억누른다. 랜달 개릿의 『나폴리 특급살인』 중 「중력의 문제」가 절로 떠오르는(사실 워낙 좋아하는 단편이라 아무 때나 막 떠올리기는 하지만), 진정 SF스러운 대목이다.

그리고 그런 설정이 우주선 안에서 밝혀진다는 점에서 존 스칼지의 능란함을 엿볼 수 있겠지. 지상에서 진실을 깨달았더라면 절망할지언정 '그래, 이제부터는 과학기술이야!' 할 수도 있을 텐데, 우주선 안에서 찾아온 신앙의 위기는 즉각 항행불가=죽음으로 이어진다. 세계를 어떻게 인지하느냐가 곧 생존의 문제다. 다만 테페 함장의 신앙심과 회의, 진실의 폭로 쪽에만 지나치게 무게가 실려 이 가능성을 충분히 다루지는 못한 듯하다. 이 작품에서 테페 함장은 뱃사람이나 군인이라기보다는 회의하는 신앙인이며, 그가 정의호에 품은 애착 또한 까마귀 샬레를 향한 애정과 구분하기 어렵다(『신 엔진』에서 가장 별로였던 부분). 그보다는 승무원들의 뱃사람다운 면모를 강조했더라면 어땠을까. 신앙은 착취의 체계임이 밝혀졌지만, 그 거짓을 믿지 않으면 배를 움직일 수 없다. 그런 딜레마와 좀 더 정면으로 마주하게 했더라면? 결말도 지금처럼 폭력적인 마무리보다 오히려 조용하고 음산하게 처리할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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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거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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