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의 "2016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류승완 감독이 추천한 〈특급 비밀!Top Secret!, 1984〉을 보고 관객과의 대화도 듣고 왔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는 영화였다. 영화를 보기 전에 '이런 패러디 영화로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했던 것과는 달리 관객과의 대화도 퍽 알찼다. 그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류승완이 선정한 영화 중에서 가장 좋았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가장 뛰어난 영화였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영화 선택의 의외성 + 극장 관람의 의의 + 관객과의 대화에 대한 만족도라는 측면에서.
극장에서 큰 스크린으로 + 많은 관객과 함께 보는 데에 의의가 있는 영화라는 점이 가장 좋았다. 단순히 '이렇게 웃긴 영화는 역시 많은 사람이 모여 낄낄거리면서 봐야 제맛'이라는 차원에서 하는 이야기만은 아니다. 류승완과 김성욱 프로그램 디렉터가 지적했듯, 화면 내 정보량이 많은 영화이기에 큰 스크린이 필요하다는 점, 그리고 그 안에서 웃음의 포인트를 잡아내는 관객들 간의 암묵적인 경쟁과 전염이 뜻깊었다. 많은 패러디 영화가 그렇듯 〈특급 비밀!〉 역시 관객의 선행 학습을 요구하는 영화다. 분명 웃자고 넣은 장면인데도 누구는 곧바로 받아들이는가 하면 누구는 어리둥절해 한다. 그 차이 자체도 재미있고, 처음에는 웃지 못했던 관객들이 먼저 웃은 다른 관객들을 통해 뒤늦게 웃음 포인트를 발견하고 따라 웃는 현상이 발생한다는 사실은 특히 재미있다. 그건 웃음소리를 끌어내는 코미디 영화에서만 가능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심도 깊은 화면을 이용하는 윌리엄 와일러나 오슨 웰스 영화 등에서도 관객에 따라 화면 내 정보를 인지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한 관객이 인지한 정보가 다른 관객에게 전파되는 상황은 상상하기 어렵다. 혹은 옆에서 다른 관객이 훌쩍이는 소리를 듣고 그제야 울음 포인트를 발견하여 따라 울게 되는 영화도 떠올리기 쉽지 않다. (단, 공포 포인트를 뒤늦게 발견하여 따라 비명 지르는 공포 영화는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역시 대담 시간에 나왔듯 웃음과 공포는 맞닿아 있는 것일까.)
따라서 관객 질의 응답 시간에 나온 가장 근사한 질문은 '사실 나는 어떤 장면에서는 왜 웃긴지 몰랐는데 남들 따라서 웃는 척했다. 방금 설명을 듣고서야 그 장면이 왜 웃긴지 이해하게 돼서 기쁘다. 하지만 아직도 이 장면과 저 장면은 왜 웃긴지 모르겠다.' 라는 질문이었다. 이런 질문이 나올 때면 '아, 오늘 관객과의 대화는 이걸로 성공이야!' 하는 생각이 든다.
반대로 마이크를 잡고 반론을 펴며 토론에 나서고 싶은 발언도 있었다. 한 관객은 이런 유형의 코미디가 딱히 영화적이지 않은 듯하고 웹툰이나 만화, 애니메이션에서 더 잘 드러나는 것 같다면서 컷부의 〈소년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와 아즈마 키요히코의 『아즈망가 대왕』 및 그 애니메이션을 추천했다. 류승완은 〈소년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와 『아즈망가 대왕』을 보지 않았기에 그 관객이 말한 바를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는 없었던 듯하며, 다만 "영화적"이라는 표현이 가리키는 바는 더없이 다양하고 영화는 늘 다른 매체들과 상호교통하며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정도로만 답했다. 〈소년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와 『아즈망가 대왕』이 어떤 작품인지 알며 〈특급 비밀!〉의 영화다움을 몹시 즐겼던 나로서는 그 발언에 대해서 좀 더 강경하게, 그런 지적은 틀렸다고 반박하고 싶었다.
그 관객의 의견은 〈특급 비밀!〉이 매순간 예상을 뒤엎고 전개되는 영화라는, 류승완이 대담 시간 맨 처음에 했던 발언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소년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와 『아즈망가 대왕』을 거론한 것을 통해 미루어 짐작하건대 그는 〈특급 비밀!〉이 제공하는 웃음의 성격을 너무 단순하게, 어쩌면 말 그대로 '예상을 뒤엎는다'로만 요약해서 받아들이지 않았나 싶다. 〈특급 비밀!〉의 웃음이 관객의 예상을 뒤엎는 데에서 나온다고 말할 때 중요한 것은 '뒤엎는다'보다는 '예상'이다. 패러디 영화로서 〈특급 비밀!〉은 이미 수많은 영화를 통해 학습된 관습을 제시한다. 관습은 예상을 만들어낸다. 예상과는 다른 결론이 도출되거나 하나의 관습이 다른 관습과 만날 때, 웃음이 발생한다.
내가 특히 좋아했던 두 가지 사례를 예로 들겠다. 첫 번째는 류승완도 좋아한다고 말했던 러브신의 벽난로 장면이다. 류승완은 이것이 러브신이 시작되면 등급이나 검열 등의 문제로 카메라가 방향을 돌려 다른 곳을 바라보는 관습을 반영하는 장면이라는 정도로만 설명했다(류승완 자신도 단편〈다찌마와 Lee2000〉에서 이 장치를 활용한 바 있다). 이 설명을 조금 더 부연하고 싶다. 일단 카메라가 그냥 연인에게서 고개를 돌리는 게 아니라 고개를 돌려 벽난로의 불길을 바라본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러브신을 회피하는 걸로 끝이 아니다. 벽난로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사랑을 은유한다. 카메라 움직임이 만드는 그 노골적인 직유가 웃긴다. 그리고 〈특급 비밀!〉의 벽난로 장면은 여기서 더 나아간다. 입 맞추는 연인을 바라보던 카메라는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벽난로의 불길을 비춘다. 관습대로라면 화면이 암전되어야 할 타이밍이다. 헌데 갑자기 이놈의 연인들이 바닥을 데굴데굴 뒹굴면서 벽난로 앞에 다시 나타난다. 카메라는 마치 "이런 젠장!" 하고 외치듯이 한 번 더 오른쪽으로 고개를 홱 돌린다. 벽난로가 하나 더 나타난다! 이걸 그냥 '예상을 뒤엎는다'로만 말하는 건 지나친 축약이다. 예상을 뒤엎는 데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이 장면에서는 ① 지나치게 노골적인 관습의 활용이 웃기고, ② 관습을 따르려는 카메라를 방해하는 배우들의 동선이 웃기고, ③ 방해하는 동선을 피해 다시 움직임으로써 자신의 주체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카메라의 움직임이 웃기며, ④ 같은 공간 안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더 움직였을 뿐인데 벽난로가 하나 더 있다는 사실이 웃긴다. 단순한 관습 파괴가 아니다. 관습을 적용하고, 예상이 생겨나고, 예상을 배신하는 사고가 발생하고, 다시 관습을 과다 적용한다. 그 과정에서 사각의 화면틀이 빚어내는 경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영화를 찍는 카메라의 존재도 전면에 나선다. 이게 영화적이지 않다면 무엇이 영화적일까?
두 번째 사례. 주인공 닉 리버스가 감방에 갇힌다. 감방 안을 서성이던 리버스는 오른쪽 벽에 있는 커다란 환기구로 탈출을 시도한다. 그런데 그 환기구 바로 밑에 환기구가 하나 더 있다. 탈출하나 싶었던 리버스는 바로 아래에 있는 환기구로 다시 나온다. 웃기기는 해도, 여기까지는 예상할 수 있다. 이건 오히려 관객에게 규칙을 학습시키는 과정에 가깝다. 어떤 규칙? 환기구로 나가봐야 다른 환기구로 도로 들어온다는 규칙. 그렇게 첫 탈출 시도가 무산된 뒤, 카메라가 뒤로 훌쩍 물러나면서 감방 전체를 다 보여준다. 그제야 감방 왼쪽 벽에도 똑같은 환기구가 하나 더 있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온다. 카메라가 더 물러나자 감방 중앙 천장에도 환기구가 보인다. 천장 환기구와 정확히 마주보는 바닥에도 환기구가 있다. 이제 리버스는 왼쪽 벽에 있는 환기구로 들어간다. 과연 어디로 나올까? 나는 당연히 천장에 있는 환기구에서 뚝 떨어져 바닥에 있는 환기구로 도로 들어가는 슬랩스틱 코미디가 펼쳐질 거라고 생각했다. 혹은 그걸 더 밀어붙여서 천장에서 나와 바닥으로 떨어지는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하거나, 아니면 조금 변주해서 바닥에 있는 환기구에서 솟구쳐 나와 천장에 있는 환기구로 들어가거나, 오른쪽 벽 환기구에서 굴러 나와 바닥에 있는 환기구로 들어가거나. 아무튼 이미 규칙을 학습한 뒤다. 더구나 카메라가 굳이 뒤로 물러나면서 이 방에 필요 이상으로 환기구가 많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눈길은 온통 환기구로 쏠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리버스는 화면에 보이기는 하되 신경 쓰지 않고 있었던 완전히 엉뚱한 장소에서 등장한다. 이 장면은 스스로 규칙(관습)을 만든 다음, 그 규칙의 일부를 변형(나가봐야 도로 들어오는 건 마찬가지다. 그런데 환기구로 들어오지는 않는다.)하는 방식으로 웃음을 끌어낸다. 카메라는 규칙을 가르치고 다음 상황에 대한 예상을 조성하는 데에 직접 관여한다.
류승완의 지적처럼, 이것은 관객과 벌이는 게임이다. 게임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규칙이 필요하다. 설령 규칙이 나중에 왜곡되더라도, 그 왜곡의 효과는 규칙이 있었기에 성립한다. 그리고 〈특급 비밀!〉은 많은 장면에서 영화 연출의 관습과 장치 자체를 규칙으로 활용한다.
『아즈망가 대왕』의 여러 유머는 이런 규칙성에 의존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관객은 4컷 만화의 리듬감을 더 강조했던 것으로 보아 다만 마지막 컷이 펀치 라인으로 작용하며 남기는 웃음의 효과만을 말하고자 했던 듯하다. 넓게 보면 같은 맥락에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지나치게 넓게 본 것이다. 한편 〈소년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는 어떤 규칙성에 의존한다기보다는 과격한 비논리에 의존해서 바로 앞의 전개와 아무런 논리적 연결점도 없는 상황을 시치미 뚝 떼고 던지는 개그를 시도하는 만화다. 그런 아스트랄 개그는 〈특급 비밀!〉의 개그와는 무관하다. 또한 『아즈망가 대왕』이나 〈소년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모두 〈특급 비밀!〉처럼 매우 자의식적인 태도로 자신의 장치를 드러내는 유형의 작품은 아니다.
따라서 나는 그 관객의 발언이 오해나 몰이해에서 나온 틀린 주장이라고 말하겠다. 그러나 나는 그런 발언을 해서는 안 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건 응답에 따라 영양가 있는 논의로 발전할 수 있는 발언이다.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나오는 온갖 다듬어지지 않은 질문에 괴로워 하는 다른 관객들의 성토에 관해서는 잘 알고 있지만, 나는 이 정도까지는 '무슨 저런 질문을 하고 그래'라고 면박줄 것이 아니라 거기서 출발하여 이야기를 이어나가고자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정말로 맥빠지는 질문은 역시 류승완에게 이창동 감독의 연기론에 관한 생각을 물은 질문이었다. 이해는 한다. 그 관객은 〈특급 비밀!〉이 어떤 영화인지 전혀 알아보지 않은 채 왔다고 말했다. 그도 그렇거니와 질문 내용을 통해 보건대 그저 류승완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극장을 찾은 관객이었을 것이다. 그런 경험을 통해 서울아트시네마에 새로운 관객을 끌어들이는 것이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지닌 긍정적인 효과 중 하나인 만큼, 그 자체는 반가운 일이다. 다만 수십 분에 걸쳐 한 영화에 관한 대담을 나눈 감독에게 단지 팬이라는 이유로 해당 영화나 대담 내용과는 무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은, 그 자리의 규칙을 완전히 벗어나는, 말하자면 〈소년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에 가까운 일이 아닌지. 나도 한때는 '이번이 아니면 내가 언제 이 사람에 질문을 해보겠어' 하는 마음에 창피를 무릅쓰고 일단 묻고 싶은 것을 물어야 한다는 뒤틀린 결의에 불타오른 적이 있다. 그래서 심정은 이해한다. 비난하고 싶지도 않다. 그래도 아닌 건 아니다.
극장에서 큰 스크린으로 + 많은 관객과 함께 보는 데에 의의가 있는 영화라는 점이 가장 좋았다. 단순히 '이렇게 웃긴 영화는 역시 많은 사람이 모여 낄낄거리면서 봐야 제맛'이라는 차원에서 하는 이야기만은 아니다. 류승완과 김성욱 프로그램 디렉터가 지적했듯, 화면 내 정보량이 많은 영화이기에 큰 스크린이 필요하다는 점, 그리고 그 안에서 웃음의 포인트를 잡아내는 관객들 간의 암묵적인 경쟁과 전염이 뜻깊었다. 많은 패러디 영화가 그렇듯 〈특급 비밀!〉 역시 관객의 선행 학습을 요구하는 영화다. 분명 웃자고 넣은 장면인데도 누구는 곧바로 받아들이는가 하면 누구는 어리둥절해 한다. 그 차이 자체도 재미있고, 처음에는 웃지 못했던 관객들이 먼저 웃은 다른 관객들을 통해 뒤늦게 웃음 포인트를 발견하고 따라 웃는 현상이 발생한다는 사실은 특히 재미있다. 그건 웃음소리를 끌어내는 코미디 영화에서만 가능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심도 깊은 화면을 이용하는 윌리엄 와일러나 오슨 웰스 영화 등에서도 관객에 따라 화면 내 정보를 인지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한 관객이 인지한 정보가 다른 관객에게 전파되는 상황은 상상하기 어렵다. 혹은 옆에서 다른 관객이 훌쩍이는 소리를 듣고 그제야 울음 포인트를 발견하여 따라 울게 되는 영화도 떠올리기 쉽지 않다. (단, 공포 포인트를 뒤늦게 발견하여 따라 비명 지르는 공포 영화는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역시 대담 시간에 나왔듯 웃음과 공포는 맞닿아 있는 것일까.)
따라서 관객 질의 응답 시간에 나온 가장 근사한 질문은 '사실 나는 어떤 장면에서는 왜 웃긴지 몰랐는데 남들 따라서 웃는 척했다. 방금 설명을 듣고서야 그 장면이 왜 웃긴지 이해하게 돼서 기쁘다. 하지만 아직도 이 장면과 저 장면은 왜 웃긴지 모르겠다.' 라는 질문이었다. 이런 질문이 나올 때면 '아, 오늘 관객과의 대화는 이걸로 성공이야!' 하는 생각이 든다.
반대로 마이크를 잡고 반론을 펴며 토론에 나서고 싶은 발언도 있었다. 한 관객은 이런 유형의 코미디가 딱히 영화적이지 않은 듯하고 웹툰이나 만화, 애니메이션에서 더 잘 드러나는 것 같다면서 컷부의 〈소년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와 아즈마 키요히코의 『아즈망가 대왕』 및 그 애니메이션을 추천했다. 류승완은 〈소년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와 『아즈망가 대왕』을 보지 않았기에 그 관객이 말한 바를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는 없었던 듯하며, 다만 "영화적"이라는 표현이 가리키는 바는 더없이 다양하고 영화는 늘 다른 매체들과 상호교통하며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정도로만 답했다. 〈소년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와 『아즈망가 대왕』이 어떤 작품인지 알며 〈특급 비밀!〉의 영화다움을 몹시 즐겼던 나로서는 그 발언에 대해서 좀 더 강경하게, 그런 지적은 틀렸다고 반박하고 싶었다.
그 관객의 의견은 〈특급 비밀!〉이 매순간 예상을 뒤엎고 전개되는 영화라는, 류승완이 대담 시간 맨 처음에 했던 발언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소년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와 『아즈망가 대왕』을 거론한 것을 통해 미루어 짐작하건대 그는 〈특급 비밀!〉이 제공하는 웃음의 성격을 너무 단순하게, 어쩌면 말 그대로 '예상을 뒤엎는다'로만 요약해서 받아들이지 않았나 싶다. 〈특급 비밀!〉의 웃음이 관객의 예상을 뒤엎는 데에서 나온다고 말할 때 중요한 것은 '뒤엎는다'보다는 '예상'이다. 패러디 영화로서 〈특급 비밀!〉은 이미 수많은 영화를 통해 학습된 관습을 제시한다. 관습은 예상을 만들어낸다. 예상과는 다른 결론이 도출되거나 하나의 관습이 다른 관습과 만날 때, 웃음이 발생한다.
내가 특히 좋아했던 두 가지 사례를 예로 들겠다. 첫 번째는 류승완도 좋아한다고 말했던 러브신의 벽난로 장면이다. 류승완은 이것이 러브신이 시작되면 등급이나 검열 등의 문제로 카메라가 방향을 돌려 다른 곳을 바라보는 관습을 반영하는 장면이라는 정도로만 설명했다(류승완 자신도 단편〈다찌마와 Lee2000〉에서 이 장치를 활용한 바 있다). 이 설명을 조금 더 부연하고 싶다. 일단 카메라가 그냥 연인에게서 고개를 돌리는 게 아니라 고개를 돌려 벽난로의 불길을 바라본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러브신을 회피하는 걸로 끝이 아니다. 벽난로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사랑을 은유한다. 카메라 움직임이 만드는 그 노골적인 직유가 웃긴다. 그리고 〈특급 비밀!〉의 벽난로 장면은 여기서 더 나아간다. 입 맞추는 연인을 바라보던 카메라는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벽난로의 불길을 비춘다. 관습대로라면 화면이 암전되어야 할 타이밍이다. 헌데 갑자기 이놈의 연인들이 바닥을 데굴데굴 뒹굴면서 벽난로 앞에 다시 나타난다. 카메라는 마치 "이런 젠장!" 하고 외치듯이 한 번 더 오른쪽으로 고개를 홱 돌린다. 벽난로가 하나 더 나타난다! 이걸 그냥 '예상을 뒤엎는다'로만 말하는 건 지나친 축약이다. 예상을 뒤엎는 데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이 장면에서는 ① 지나치게 노골적인 관습의 활용이 웃기고, ② 관습을 따르려는 카메라를 방해하는 배우들의 동선이 웃기고, ③ 방해하는 동선을 피해 다시 움직임으로써 자신의 주체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카메라의 움직임이 웃기며, ④ 같은 공간 안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더 움직였을 뿐인데 벽난로가 하나 더 있다는 사실이 웃긴다. 단순한 관습 파괴가 아니다. 관습을 적용하고, 예상이 생겨나고, 예상을 배신하는 사고가 발생하고, 다시 관습을 과다 적용한다. 그 과정에서 사각의 화면틀이 빚어내는 경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영화를 찍는 카메라의 존재도 전면에 나선다. 이게 영화적이지 않다면 무엇이 영화적일까?
두 번째 사례. 주인공 닉 리버스가 감방에 갇힌다. 감방 안을 서성이던 리버스는 오른쪽 벽에 있는 커다란 환기구로 탈출을 시도한다. 그런데 그 환기구 바로 밑에 환기구가 하나 더 있다. 탈출하나 싶었던 리버스는 바로 아래에 있는 환기구로 다시 나온다. 웃기기는 해도, 여기까지는 예상할 수 있다. 이건 오히려 관객에게 규칙을 학습시키는 과정에 가깝다. 어떤 규칙? 환기구로 나가봐야 다른 환기구로 도로 들어온다는 규칙. 그렇게 첫 탈출 시도가 무산된 뒤, 카메라가 뒤로 훌쩍 물러나면서 감방 전체를 다 보여준다. 그제야 감방 왼쪽 벽에도 똑같은 환기구가 하나 더 있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온다. 카메라가 더 물러나자 감방 중앙 천장에도 환기구가 보인다. 천장 환기구와 정확히 마주보는 바닥에도 환기구가 있다. 이제 리버스는 왼쪽 벽에 있는 환기구로 들어간다. 과연 어디로 나올까? 나는 당연히 천장에 있는 환기구에서 뚝 떨어져 바닥에 있는 환기구로 도로 들어가는 슬랩스틱 코미디가 펼쳐질 거라고 생각했다. 혹은 그걸 더 밀어붙여서 천장에서 나와 바닥으로 떨어지는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하거나, 아니면 조금 변주해서 바닥에 있는 환기구에서 솟구쳐 나와 천장에 있는 환기구로 들어가거나, 오른쪽 벽 환기구에서 굴러 나와 바닥에 있는 환기구로 들어가거나. 아무튼 이미 규칙을 학습한 뒤다. 더구나 카메라가 굳이 뒤로 물러나면서 이 방에 필요 이상으로 환기구가 많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눈길은 온통 환기구로 쏠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리버스는 화면에 보이기는 하되 신경 쓰지 않고 있었던 완전히 엉뚱한 장소에서 등장한다. 이 장면은 스스로 규칙(관습)을 만든 다음, 그 규칙의 일부를 변형(나가봐야 도로 들어오는 건 마찬가지다. 그런데 환기구로 들어오지는 않는다.)하는 방식으로 웃음을 끌어낸다. 카메라는 규칙을 가르치고 다음 상황에 대한 예상을 조성하는 데에 직접 관여한다.
류승완의 지적처럼, 이것은 관객과 벌이는 게임이다. 게임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규칙이 필요하다. 설령 규칙이 나중에 왜곡되더라도, 그 왜곡의 효과는 규칙이 있었기에 성립한다. 그리고 〈특급 비밀!〉은 많은 장면에서 영화 연출의 관습과 장치 자체를 규칙으로 활용한다.
『아즈망가 대왕』의 여러 유머는 이런 규칙성에 의존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관객은 4컷 만화의 리듬감을 더 강조했던 것으로 보아 다만 마지막 컷이 펀치 라인으로 작용하며 남기는 웃음의 효과만을 말하고자 했던 듯하다. 넓게 보면 같은 맥락에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지나치게 넓게 본 것이다. 한편 〈소년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는 어떤 규칙성에 의존한다기보다는 과격한 비논리에 의존해서 바로 앞의 전개와 아무런 논리적 연결점도 없는 상황을 시치미 뚝 떼고 던지는 개그를 시도하는 만화다. 그런 아스트랄 개그는 〈특급 비밀!〉의 개그와는 무관하다. 또한 『아즈망가 대왕』이나 〈소년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모두 〈특급 비밀!〉처럼 매우 자의식적인 태도로 자신의 장치를 드러내는 유형의 작품은 아니다.
따라서 나는 그 관객의 발언이 오해나 몰이해에서 나온 틀린 주장이라고 말하겠다. 그러나 나는 그런 발언을 해서는 안 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건 응답에 따라 영양가 있는 논의로 발전할 수 있는 발언이다.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나오는 온갖 다듬어지지 않은 질문에 괴로워 하는 다른 관객들의 성토에 관해서는 잘 알고 있지만, 나는 이 정도까지는 '무슨 저런 질문을 하고 그래'라고 면박줄 것이 아니라 거기서 출발하여 이야기를 이어나가고자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정말로 맥빠지는 질문은 역시 류승완에게 이창동 감독의 연기론에 관한 생각을 물은 질문이었다. 이해는 한다. 그 관객은 〈특급 비밀!〉이 어떤 영화인지 전혀 알아보지 않은 채 왔다고 말했다. 그도 그렇거니와 질문 내용을 통해 보건대 그저 류승완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극장을 찾은 관객이었을 것이다. 그런 경험을 통해 서울아트시네마에 새로운 관객을 끌어들이는 것이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지닌 긍정적인 효과 중 하나인 만큼, 그 자체는 반가운 일이다. 다만 수십 분에 걸쳐 한 영화에 관한 대담을 나눈 감독에게 단지 팬이라는 이유로 해당 영화나 대담 내용과는 무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은, 그 자리의 규칙을 완전히 벗어나는, 말하자면 〈소년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에 가까운 일이 아닌지. 나도 한때는 '이번이 아니면 내가 언제 이 사람에 질문을 해보겠어' 하는 마음에 창피를 무릅쓰고 일단 묻고 싶은 것을 물어야 한다는 뒤틀린 결의에 불타오른 적이 있다. 그래서 심정은 이해한다. 비난하고 싶지도 않다. 그래도 아닌 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