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한국영상자료원의 "발굴, 복원, 초기영화로의 초대" 상영작 중 〈호프만 이야기The Tales of Hoffmann, 1951〉가 두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상영되는 날이다.
〈센소Senso, 1954〉와 〈호프만 이야기〉에 관한 글에서 마틴 스콜세지와 조지 A. 로메로가 〈호프만 이야기〉를 좋아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스콜세지와 로메로는 모두 어린 시절을 뉴욕 시 브롱스에서 보냈으며, 그 시절 〈호프만 이야기〉에 심취해 있었다. 스콜세지는 TV에서 해주는 〈백만 달러 영화〉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흑백에 삭제된 판본으로 처음 봤고, 로메로는 열한 살 즈음에 조카를 교육하고자 하는 삼촌 손에 이끌려 억지로 극장에 가서 보고 넋이 나갔다고 한다. TV에서 해주는 재방송으로도 만족하지 못한 두 사람은 동네 필름 대여소에서 16mm 필름을 대여하기 시작했다. 당시는 아직 비디오테이프가 등장하기 전이었고, 극장에서도 TV에서도 보여주지 않는 영화를 보려면 16mm 영사기와 필름을 대여하는 수밖에 없었다. 같은 지역에 살았던 둘은 같은 대여소를 이용하고 있었고, 그 대여소에는 마침 〈호프만 이야기〉 필름이 딱 한 벌 있었다. 자연히 스콜세지와 로메로는 경쟁 관계에 놓이게 되었다. 필름이 대여 중일 때면 둘은 서로의 존재를 의식했다.
헌데 세상이 다 아는 마이클 파웰 숭배자인 스콜세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피츠버그의 좀비 대마왕 로메로가 〈호프만 이야기〉를 인생의 영화로 꼽는 이유는 무엇일까? 언뜻 보기에 '고급 예술'인 오페라와 저예산 좀비 공포 영화는 아무런 관련도 없어 보이는데? 그는 이 영화를 그저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감독이 되도록 이끈 일등공신으로 거론한다.
일단 지난 글에서도 거론했듯 〈호프만 이야기〉가 "오페라 영화"라는 데에서 예상하게 되는 바와는 달리 로메로 취향의 괴기 · 공포와 그리 멀지 않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다시 반복하자면 독일 낭만주의 문학의 대표 작가 E. T. A. 호프만 소설에서 출발한 〈호프만 이야기〉는 "사람처럼 생생히 움직여 사람을 홀리는 자동 기계 인형, 요부를 이용해 영혼을 빼앗아 보석에 가두는 사악한 마술사, 목숨을 앗아가는 노래 등등이 횡행하는 미숙한 짝사랑의 실패에 관한 이야기"다. 어린 시절 탐독했던 《납골당 이야기》 유의 공포 만화와 이 영화가 자기 속에서 한데 뒤엉켰다는 로메로의 고백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스콜세지도 〈검은 수선화Black Narcissus, 1947〉, 〈빨간 구두The Red Shoes, 1948〉, 〈뒤쪽 작은 방The Small Back Room, 1949〉 등에서 나타나는 마이클 파웰/에머릭 프레스버거 콤비의 어두움에 관해 지적한다)
하지만 그보다도 영화 만들기에 관심을 두게 된 이후 로메로가 느낀 바가 좀 더 흥미롭다. 로메로는 고등학생 시절 (자신을 극장에 끌고 갔던 바로 그) 삼촌의 카메라를 빌려 이것저것 실험을 해보곤 했는데, 그때 〈호프만 이야기〉에서 보았던 것을 자신도 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다른 영화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호프만 이야기〉에서 파웰은 특수효과의 원리를 감추지 않는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간단하고 투박하여 감탄 섞인 웃음이 나온다. 이것이 '시대적 한계'가 아님은 파웰의 다른 영화를 보면 확인할 수 있다. 파웰은 매체가 지닌 표현의 인공성을 드러냄으로써 각종 예술 장르를 뒤섞은 영화의 이음매를 바라보도록 하고, 그럼으로써 다시 이것이 다른 무엇보다도 "영화"임을 천명한다. 표현의 원리가 눈앞에 빤히 드러나지만, 그 원리에서 나타나는 간결함과 대담함이 다시 그 표현의 효과를 가능케 한다. 브라이언 드 팔마가 말했던, 가짜인 줄 알면서도 여전히 거기에 설득당하도록 하는 영화.
로메로는 이를 두고 표현의 투명성이 자신을 영화 연출에 눈 뜨도록 해주었다는 정도로만 언급하지만, 나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파웰의 이러한 자세가 로메로 영화의 특수효과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생각하곤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한때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영화를 만드는 사람처럼 알려진 적도 있다지만, 사실 로메로는 신체 훼손을 묘사할 때 극사실주의를 지향하는 감독이 아니다. 톰 새비니나 그레고리 니코테로 같은 당대 최고의 특수분장 전문가와 함께하면서도 그는 늘 다소 과장되고 인공적인 특수효과를 선호했다. 신체 훼손의 방식은 다소간 만화적이고, 피는 물감임을 숨기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의 좀비 영화에서 신체 훼손은 구역질과 공포를 유발하기보다는 특수효과의 기발함과 박력에 찬탄을 보내도록 하며, 해당 장면은 폭력의 상황보다는 예술적 표현으로 와 닿는다. 그러나 다른 한편 과장된 표현은 해당 장면을 지탱하고 다음 장면으로 이어나가기에 필요한 감정적 효과를 끌어내는 데에는 불편함이 없다. 로메로는 그렇게 관객이 완벽한 이입도 완벽한 소외도 아닌 중간 지대에 머무르도록 한다. 영화 매체가 담는 두 세계를 한꺼번에 직시하도록 하는 그 균형 감각이야말로 〈호프만 이야기〉가 로메로에게 남긴 진짜 가르침이 아닐까?
〈센소Senso, 1954〉와 〈호프만 이야기〉에 관한 글에서 마틴 스콜세지와 조지 A. 로메로가 〈호프만 이야기〉를 좋아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스콜세지와 로메로는 모두 어린 시절을 뉴욕 시 브롱스에서 보냈으며, 그 시절 〈호프만 이야기〉에 심취해 있었다. 스콜세지는 TV에서 해주는 〈백만 달러 영화〉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흑백에 삭제된 판본으로 처음 봤고, 로메로는 열한 살 즈음에 조카를 교육하고자 하는 삼촌 손에 이끌려 억지로 극장에 가서 보고 넋이 나갔다고 한다. TV에서 해주는 재방송으로도 만족하지 못한 두 사람은 동네 필름 대여소에서 16mm 필름을 대여하기 시작했다. 당시는 아직 비디오테이프가 등장하기 전이었고, 극장에서도 TV에서도 보여주지 않는 영화를 보려면 16mm 영사기와 필름을 대여하는 수밖에 없었다. 같은 지역에 살았던 둘은 같은 대여소를 이용하고 있었고, 그 대여소에는 마침 〈호프만 이야기〉 필름이 딱 한 벌 있었다. 자연히 스콜세지와 로메로는 경쟁 관계에 놓이게 되었다. 필름이 대여 중일 때면 둘은 서로의 존재를 의식했다.
헌데 세상이 다 아는 마이클 파웰 숭배자인 스콜세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피츠버그의 좀비 대마왕 로메로가 〈호프만 이야기〉를 인생의 영화로 꼽는 이유는 무엇일까? 언뜻 보기에 '고급 예술'인 오페라와 저예산 좀비 공포 영화는 아무런 관련도 없어 보이는데? 그는 이 영화를 그저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감독이 되도록 이끈 일등공신으로 거론한다.
일단 지난 글에서도 거론했듯 〈호프만 이야기〉가 "오페라 영화"라는 데에서 예상하게 되는 바와는 달리 로메로 취향의 괴기 · 공포와 그리 멀지 않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다시 반복하자면 독일 낭만주의 문학의 대표 작가 E. T. A. 호프만 소설에서 출발한 〈호프만 이야기〉는 "사람처럼 생생히 움직여 사람을 홀리는 자동 기계 인형, 요부를 이용해 영혼을 빼앗아 보석에 가두는 사악한 마술사, 목숨을 앗아가는 노래 등등이 횡행하는 미숙한 짝사랑의 실패에 관한 이야기"다. 어린 시절 탐독했던 《납골당 이야기》 유의 공포 만화와 이 영화가 자기 속에서 한데 뒤엉켰다는 로메로의 고백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스콜세지도 〈검은 수선화Black Narcissus, 1947〉, 〈빨간 구두The Red Shoes, 1948〉, 〈뒤쪽 작은 방The Small Back Room, 1949〉 등에서 나타나는 마이클 파웰/에머릭 프레스버거 콤비의 어두움에 관해 지적한다)
하지만 그보다도 영화 만들기에 관심을 두게 된 이후 로메로가 느낀 바가 좀 더 흥미롭다. 로메로는 고등학생 시절 (자신을 극장에 끌고 갔던 바로 그) 삼촌의 카메라를 빌려 이것저것 실험을 해보곤 했는데, 그때 〈호프만 이야기〉에서 보았던 것을 자신도 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다른 영화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호프만 이야기〉에서 파웰은 특수효과의 원리를 감추지 않는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간단하고 투박하여 감탄 섞인 웃음이 나온다. 이것이 '시대적 한계'가 아님은 파웰의 다른 영화를 보면 확인할 수 있다. 파웰은 매체가 지닌 표현의 인공성을 드러냄으로써 각종 예술 장르를 뒤섞은 영화의 이음매를 바라보도록 하고, 그럼으로써 다시 이것이 다른 무엇보다도 "영화"임을 천명한다. 표현의 원리가 눈앞에 빤히 드러나지만, 그 원리에서 나타나는 간결함과 대담함이 다시 그 표현의 효과를 가능케 한다. 브라이언 드 팔마가 말했던, 가짜인 줄 알면서도 여전히 거기에 설득당하도록 하는 영화.
로메로는 이를 두고 표현의 투명성이 자신을 영화 연출에 눈 뜨도록 해주었다는 정도로만 언급하지만, 나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파웰의 이러한 자세가 로메로 영화의 특수효과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생각하곤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한때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영화를 만드는 사람처럼 알려진 적도 있다지만, 사실 로메로는 신체 훼손을 묘사할 때 극사실주의를 지향하는 감독이 아니다. 톰 새비니나 그레고리 니코테로 같은 당대 최고의 특수분장 전문가와 함께하면서도 그는 늘 다소 과장되고 인공적인 특수효과를 선호했다. 신체 훼손의 방식은 다소간 만화적이고, 피는 물감임을 숨기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의 좀비 영화에서 신체 훼손은 구역질과 공포를 유발하기보다는 특수효과의 기발함과 박력에 찬탄을 보내도록 하며, 해당 장면은 폭력의 상황보다는 예술적 표현으로 와 닿는다. 그러나 다른 한편 과장된 표현은 해당 장면을 지탱하고 다음 장면으로 이어나가기에 필요한 감정적 효과를 끌어내는 데에는 불편함이 없다. 로메로는 그렇게 관객이 완벽한 이입도 완벽한 소외도 아닌 중간 지대에 머무르도록 한다. 영화 매체가 담는 두 세계를 한꺼번에 직시하도록 하는 그 균형 감각이야말로 〈호프만 이야기〉가 로메로에게 남긴 진짜 가르침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