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27일에 쓴 글.



새로 산 〈괴물2006〉 블루레이를 무심코 돌려보다가 처음 괴물의 습격이 끝난 뒤 이어지는 합동분향소 장면에 이르렀다. 현서(고아성)가 죽었다고 생각한 강두네 가족들은 하나둘 분향소에 모여들어 영정 사진 앞에 목 놓아 울고 부둥켜안다가 바닥을 뒹군다. 그 주위로 기자들이 달려들어 사진을 찍어댄다. 운동권 출신 남일(박해일)은 찍지 말라며 욕설을 내뱉는다. 소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분향소 뒤편에서는 경비원이 나타나 큰 목소리로 차 번호를 부르며 주차를 그렇게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차주를 다그친다. 원래 이 장면은 봉준호 감독 특유의 '삑사리' 유머 감각이 잘 드러나는 사례로 거론되던 장면이다. 비극의 순간이지만, 지극히 '한국적'인 정서 과잉과 무심함이 민망하리만큼 적나라하게 표현된다. 가족들의 과도한 통곡, 특히 맨살이 드러날 정도로 바닥을 기어 다니는 남주(배두나)를 수직 부감 쇼트로 담고, 화면 뒤쪽에서 서슴없이 주차 문제를 꺼내 드는 경비원의 모습을 초점까지 옮겨가며 찍는 촬영을 보면 이것은 분명 유머를 의도한 연출이다. 개봉 당시 나도 웃었고 다른 관객들도 많이 웃었던 장면이다.

그런 8년이 지난 지금 다시 보니, 더는 분향소 장면이 웃기지 않았다. 물론 8년 사이에 영화의 형태가 바뀐 것은 아니다. 유머를 의도한 연출의 흔적은 역력하다. 웃으라고 마련한 타이밍이라는 점은 알겠다. 그러나 웃을 수 없었다. 아직 남일과 남주가 등장하기 전, 강두(송강호)와 희봉(변희봉)이 교복을 입은 현서의 사진이 내려다보는 가운데 넋을 놓고 있는 모습만으로 이미 기분이 가라앉았다. 그런 다음 남주가 등장한다. 남주의 풀린 손 아래로 (현서가 괴물에게 잡혀가기 전에 TV를 보며 응원했던 양궁 대회에서 딴) 동메달이 떨어진다. 나는 이전까지 이 동메달의 클로즈업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후 남일이 등장할 때 그 손에 소주병이 들린 것과 대구를 이루며 약간의 유머를 제공한다는 정도? 캐릭터의 특성을 보여주는 소품 이상으로는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동메달이 손에서 떨어짐과 동시에 가슴도 철렁했다. 정말로, 동메달이 떨어지는 소리가 "철렁!"인 것만 같았다. 그 시각적 운동의 리듬 안에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이 있었다. 경비원이 등장하고 차주가 차를 빼러 나가는 대목에 이르기까지 그저 눈물과 악전고투했다. 분향소 풍경의 한심스러움은 유머가 아니라 슬픔과 좌절만 더욱 키웠다.

고등학생 교복과 합동분향소 풍경이라는 조합은 올해 들어 한국 사회 안에서 전에 없이 압도적인 상징성을 갖추게 되었고, 〈괴물〉이 구축한 영화 속 세계의 현실은 카메라 바깥의 현실이 획득한 그 상징성을 차단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혹은 〈괴물〉의 이미지 안에 담겨 있던 한국이 뒤늦게 도래했다고 해도 좋고. 이 주박에서 풀려날 날이 올까? 아마도. 생각보다 빨리. 그러나 〈괴물〉이 유효한 영화인 한, 그 이미지는 언제든 또다시 현실로 옮겨올 것이다.
Posted by 거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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