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29일에 쓴 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아듀, 파라다이스" 상영작인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옛날 옛적 미국에서Once Upon a Time in America, 1984〉 확장판을 보았다.

워낙에 판본에 관한 카더라 통신이 난무하는 영화인만큼, 우선 관련 정보를 정리하고 가도록 하자. 주로 영문 위키피디아를 참고했으며, 확인할 수 있는 한 출처나 다른 검색 자료도 견주어 확인했다.

① 촬영이 끝났을 때 총 필름 분량은 8~10시간이었다(8~10시간짜리 편집본이 있다거나 이게 감독판이라는 이야기로 오해하지 말 것).

② 레오네는 이를 약 6시간짜리로 편집했다. 각각 세 시간씩 두 편짜리 영화로 개봉하자는 계획이었다. 제작자는 이를 거절.

③ 레오네는 이것을 다시 269분으로 편집했다. 이 판본은 1984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다.

④ 칸 국제 영화제 상영 이후 레오네는 다시 이것을 229분으로 편집했다. 이 판본이 유럽 개봉판이며, 최근 확장판이 나오기 전까지 결정판이었다.

⑤ 미국 개봉판은 레오네의 참여 없이 스튜디오가 더 편집하여 139분으로 만들었다. 이것이 한국에도 개봉됐다.

⑥ 2011년, 레오네의 자손들이 볼로냐 시네마테크와 함께 세계영화재단의 도움을 받아 ③의 269분 판본을 복원 중이라고 발표.

⑦ 2012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복원 확장판 공개. 그러나 유럽 개봉판에 없던 삭제 분량의 판권 문제 때문에 전부를 공개하지 못하고 251분 판본으로 공개. 이 판권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으며, 결국 블루레이로 출시되고 극장에서 재개봉한 확장판도 269분 판본이 아니라 251분 판본이다.

현재 확장판 배급을 맡고 있는 워너브라더스에서는 이 확장판을 "감독 확장판"이라고 부르고 있다. ②의 여섯 시간짜리 판본은 사실상 한 번도 공개 상영된 적이 없는 가편집본이라고 해도 좋을 테고, ③의 칸 국제영화제 상영본이야말로 감독의 의도가 반영된 최종본이라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1988년 레오네는 오레스테 데 포르나리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출처는 포르나리의 저서 『Sergio Leone: The Great Italian Dream of Legendary America』인 모양. 책을 직접 사서 확인하지는 못했다.)

"한 번도 개봉되지 않았고 50분 정도 더 긴 판본도 있지요. 네 시간 반짜리. 하지만 그걸 둘로 나눠서 TV에서 방영하자는 생각은 버렸어요. 워낙 복잡한 구조라 한 번에 몰아서 봐야하니까요. 게다가, 솔직히 말하는데, 지금 이게 내 판본입니다. 다른 판본이 상황을 더 명확하게 설명해줄 수도 있겠고, TV에서 2부나 3부로 나누어 방영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선호하는 판본은 지금 이겁니다. 무언가 약간 감추고 있다는 기분이 마음에 들어요."

아주 명확한 발언 아닌가? 레오네는 229분 판본을 269분 판본보다 선호했다. 새로이 공개하는 복원판으로 장사를 해야 하는 워너브라더스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감독 확장판"이라는 표현을 남발하여 229분 판본은 불완전하고 251분 판본이 (레오네가 보지 못한 편집본이라는 점에서는 이것이 더 불완전이면서) 감독의 의도를 더 정확히 반영했다는 식의 인식을 심어주어서는 곤란하다.

* * *

사전 정보 정리는 이 정도로 해두고, 실제로 확인한 확장판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나는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 이번 확장판이 엉망이라고 생각한다.

확장판이 엉망인 첫 번째 이유. 추가된 장면들은 레오네의 말처럼 상황을 보다 선명하게 해주기는 하지만, 영화 전체의 리듬을 망가뜨린다. 우선 새로이 전해주는 정보 중에 서사 이해에 반드시 필요한 정보는 없다. 오히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부분이 가시화되면서 영화가 몹시 앙상해진다는 느낌마저 든다. 예를 들어 나이 든 누들스가 죽은 세 친구의 유해가 안치된 묘소를 찾는 장면. 229분 판본에서는 누들스가 묘소 안에서 물품 보관소 열쇠를 발견한 다음 곧장 보관함에 열쇠를 넣는 장면으로 연결된다. 확장판에서는 열쇠를 발견한 후 묘소 안으로 관리소장이 들어와 한동안 묘소의 연원에 관한 대화를 나눈다. 누군가 누들스의 이름을 사칭하여 이 묘소를 의뢰했고, 자금은 외국 은행을 통해 전달하여 접촉할 방법은 없고 등등.

특히 배경 음악의 출처를 설명하는 대목은 최악이다. 229분 판본에서, 묘소의 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이 흐른다. 〈옛날 옛적 서부에서C'era una volta il West, 1968〉에서도 그랬지만, 레오네는 종종 음악의 출처를 불분명하게 사용하곤 한다. 이 음악은 누들스는 듣지 못하고 관객만 들을 수 있는 〈옛날 옛적 미국에서〉라는 영화의 배경 음악인가, 아니면 누들스가 방문한 묘 안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인가? 이 모호함이 문을 열고 닫는다는 행위와 겹치면서 〈옛날 옛적 미국에서〉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주제인 "영화 프레임을 통해 과거와 마주하는 관객"이라는 주제를 끌어낸다. 확장판은 그 음악이 묘소 안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고 있다는 점을 굳이 설명함으로써 모호함을 망가뜨리고 영화의 주제를 박살내며 장면을 거의 우스꽝스럽게 만든다.

또한 여기서 누들스는 자신을 따라다니는 의문의 자동차를 발견하고 차량 번호를 적는다. 이 차량 번호를 추적한 덕분에 나중에 누들스는 베일리 통상장관의 저택을 찾아내게 되고, 저택 앞에서 벌어진 폭탄 테러를 목격한다. 하지만 이것은 정보의 불필요한 중복이다. 베일리 장관의 저택이 그렇게 일찍 제시될 필요가 없다. 영화 말미에 누들스가 베일리 장관의 저택을 찾는 것은 데보라와 만난 덕분이라고만 설명해도 충분하지 않은가? 더구나 저택 앞 폭탄 테러는 직접 목격하기보다 모의 술집에서 TV로 목격하는 편이 훨씬 앞뒤 장면과 자연스럽게 붙으며 관객의 미스디렉션을 유도한다.

229분 판본에서 폭탄 테러와 관련된 장면의 흐름은 다음과 같다. "누들스가 친구들과 살인을 저지른 다음 차를 몰아 강물에 뛰어든다 → 박살난 차의 잔해 클로즈업에서 시작하여 폭탄 테러를 다루는 TV 뉴스로 연결 → TV에서 베일리 장관의 스캔들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 제임스 콘웨이 오도넬이 증인으로 나온다 → 누들스가 콘웨이를 알아본다 → 콘웨이의 젊은 시절로 플래시백"

이 흐름에서 베일리 장관의 스캔들은 곁다리로 제시되며 (관객은 베일리 장관이라는 이름을 여기서 처음 듣는다. 누들스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보다는 콘웨이가 중심이 되어 영화를 계속 나아가게 한다.

확장판에서 장면의 흐름은 다음과 같다. "누들스가 친구들과 살인을 저지른 다음 차를 몰아 강물에 뛰어든다 → 누들스가 보이지 않자 친구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강 위에서 움직이는 중장비를 바라본다 → 중장비가 쓰레기차의 클로즈업으로 연결 → 카메라가 빠지면 베일리 저택 앞이다 → 누들스가 번호를 적어두었던 차가 저택에서 나오다가 폭발한다 → 박살난 차의 잔해 클로즈업에서 시작하여 폭탄 테러를 다루는 TV 뉴스로 연결 → TV에서 베일리 장관의 스캔들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 제임스 콘웨이 오도넬이 증인으로 나온다 → 누들스가 콘웨이를 알아본다 → 콘웨이의 젊은 시절로 플래시백"

이 흐름에서 관객은 베일리 장관의 스캔들에 주목하게 되며 (관객은 베일리 장관의 저택에도 가보았고, 그가 누들스를 미행했다는 것도 안다) 콘웨이의 이야기는 곁다리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영화는 이후 상당 시간을 콘웨이와 관련된 이야기에 집중하므로, 여기서는 베일리 장관의 존재가 중심에 와서는 안 되었다. 베일리 장관은 마지막까지 감춰두었다 꺼내야 관객이 '아, 아까 TV에서 잠깐 다뤘던 그 사람!' 하며 상황을 새로이 인식하게 된다. 이처럼 관객 쪽에서 수행하는 기억의 재발견이 〈옛날 옛적 미국에서〉의 주제이기에, 이 구조는 더욱 중요하다. 확장판은 정보를 서둘러 과도하게 펼쳐놓음으로써 의식의 흐름을 망친다. 더구나 강물에 뛰어든 누들스가 갑자기 사라지고 중장비의 클로즈업에서 쓰레기차의 클로즈업으로 이어지는 대목은 지나치게 의미심장한 티를 내려 드는 연출이다.

장면 연결의 문제를 거론했으니 다시 묘소 장면으로 돌아가 보자. 여기서도 장면 연결의 문제가 나타난다. 229분 판본에서 "열쇠 발견 → 물품 보관소"로 연결되었던 장면은 이제 "열쇠 발견 → 관리소장과 한참 대화 → 물품 보관소"로 바뀐다. 관리소장과의 대화가 이런저런 정보를 제공하기는 하지만, 이미 설명했듯 그것들은 불필요한 정보다. 더구나 그 과정에서 열쇠라는 소품이 만들어내는 시각적 흐름이 끊긴다. 관리소장과의 대화는 쓸데없이 의미심장하고 부적절한 대화로 마무리되어 ("선생님도 안치소를 마련해보시는 게 어때요? 생각해보세요." 늙었으니 죽을 준비하라는 소린데, 웃으면서 할 이야기는 아니지 않나? 이 대사는 강 위의 중장비와 마찬가지로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기보다는 상징성만이 두드러진다) 관객의 집중을 흐려놓고, 그런 다음 다시 열쇠가 나온다.

확장판에 새로 추가된 장면들이 죄다 이런 식이다. 지엽적이고 그 순간 의미있어 보이는 정보는 늘어났지만, 실상 그 정보는 전체 얼개를 망가뜨리고 영화를 따라가는 관객의 의식 흐름을 부자연스럽게 흐려놓는다. 다시 말하지만 〈옛날 옛적 미국에서〉의 가장 중요한 주제이자 가장 위대한 점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사건의 배열을 따라가고 기억하고 회상하며 재회하는 관객의 의식을 다루는 방식에 있다. 확장판은 그것을 망가뜨린 채 그저 감상적이고 과도하게 친절한 갱스터 영화로만 남는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가 〈지옥의 묵시록Apocalypse Now, 1979〉을 만들어놓고 다시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Apocalypse Now Redux, 2001〉를 발표하면서 벌인 짓거리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확장판이 엉망인 두 번째 이유. 확장판 블루레이가 나온 이후 숱한 리뷰어와 팬들이 지적한 문제, 바로 색감의 문제다.

우선 새로 발견하여 추가한 장면은 필름 소스 자체의 문제로 화질이 좋지 않다. 선명도도 떨어지고 전체적으로 빛이 바랬다. 물론 영화 복원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이 점은 문제 삼을 이유가 없다. 감상에도 지장을 주지 않는다.

문제는 229분 판본에도 있었던 기존 장면들의 색감이다. 확장판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기존에 있던 장면들의 색깔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한결 어둡고, 황갈색으로 물들어 있다. 복원을 주도한 측에서는 색깔 변환의 이유를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리뷰어와 팬들은 혹시 새로 추가된 장면과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일부러 색감을 바꾼 게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이 확장판의 색깔은 재앙이다. 처음 블루레이 리뷰를 통해서 이 소식을 접했을 때는 그래도 괜찮으리라 생각했다. 두 판본을 비교하면 차이가 두드러지지만 확장판만 놓고 보면 일관성이 있으니 신경 쓰이지 않을 줄 알았다. 순진한 생각이었다. 확장판은 종종 지나치게 어두워 229분 판본에서는 명확하게 전달되던 정보가 흐려지는 감이 있으며, 전체적으로 이미지에서 오는 감흥을 몹시 떨어뜨린다. 나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DCP 상영을 경험했으니, 이것이 극장 영사 문제가 아니리라 확신한다. 블루레이도 갖고 있어서 다시 확인해보기도 했다.

한 장면만 예를 들어보자. 누들스가 데보라와 저녁을 함께 보낸 후 무참한 짓을 저지르고 차에서 내려 홀로 서성이는 장면이 있다. 레오네 특유의 크레인 카메라 활용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처음에 카메라는 비교적 지표 가까운 곳에서 출발한다. 누들스의 뒤로는 초록빛 갈대밭이 넓게 펼쳐져 있다. 카메라는 천천히 크레인을 타고 올라간다. 순간, 갈대밭 뒤로 이전에는 전혀 보이지 않았던 푸른 바닷빛이 쏟아진다. 이 초록색과 파란색의 갑작스러운 대조가 관객의 시각을 자극하면서 해당 장면의 비통함과 쓸쓸함을 다른 차원으로 고양한다. 확장판에서는 색깔이 전체적으로 우중충해진 탓에 갈대밭과 바다의 대조가 사라진다. 바다가 나타나더라도 '어, 바다도 있구나' 하는 정도에 머무른다. 장면 전체가 초라하고 따분하여, 아무런 효과도 얻지 못하면서 괜히 크레인 움직임을 과시하고 의미를 부여하려 애쓰는 것처럼만 보인다.

레오네의 영화에서는 스타일의 과시가 생명이다. 그 과시는 단지 카메라의 움직임이나 편집의 과시가 아니라, 카메라가 담고 있는 피사체의 형상과도 함께하는 과시다. 과시는 알맹이 없는 허영이 아니라 피사체의 기운을 한껏 끌어올려 장엄함을 성취하도록 해준다. 확장판은 레오네가 포착했던 피사체의 힘을 다 죽여버리고, 그의 카메라 운용을 그저 허영으로만 남게 한다. 함께 이 영화를 본 동행은─역시 예전에 극장에서 필름으로 229분 판본을 보았던 동행이었는데─새로운 판본의 차이를 미리 알고 있지는 않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이것보다 훨씬 아름다운 영화 아니었어?" 라고 말했다. 확장판은 아름다웠던 영화를 후줄근하고 속 보이는 영화로 전락시켰다.

확장판 vs 229분 판

위가 확장판, 아래가 229분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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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을 지원한 세계영화재단의 설립자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확장판을 두고 "위대한 영화가 길어진 만큼 더 위대해졌다"고 말했다. 워너브라더스는 이 말을 인용하여 홍보에 써먹고 있다. 장사를 위해 복원판을 홍보할 필요가 있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그래도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확장판 복원에 의미가 없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삭제 장면의 판권 문제가 얼마나 복잡한지 모르므로 더 기다렸다가 269분 판으로 복원해야 했다고 말하지도 않겠다. 또한 워너브라더스가 그렇게 성실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229분 판본도 색깔에 손대지 말고 다시 4K 복원해주어야 한다고까지 요구하지도 않으련다. 하지만 251분 판본을 "감독 확장판"이라고 부르며 229분 판본보다 더 '완성된' 판본인 양 취급한다면, 그리하여 장차 모두가 이것을 정본처럼 여기게 된다면, 그건 죄악이다. 새로 추가된 장면은 쓸모없을뿐더러 있던 장면도 흔들리게 하고 있다. 색감은 완전히 잘못되어 영화를 망치고 있다. 적어도 훗날 전 세계의 시네마테크에서 이 영화를 상영하기 위해 상영 소스를 구하거나 판권을 문의할 때 양자택일의 가능성만이라도 활짝 열어놓아야 할 것이다.
Posted by 거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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