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상영작 서른두 편 중 〈허수아비The Scarecrow, 1920〉, 〈귀신들린 집The Haunted House, 1921〉(유령 들린 집), 〈내 아내의 친척들My Wife's Relations, 1922〉(내 아내의 인간관계), 〈동토The Frozen North, 1922〉(북극), 〈대학College, 1927〉(전문학교) 다섯 편은 음악도 없는 완전 무성으로 상영된다. 오리지널 음악이 없는 무성영화를 상영할 때는 종종 있는 일이다. 음악이 사라진다고 하여 이 영화들이 힘을 잃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과거 학교 상영실 스피커가 고장 났을 때 너무나 영화가 보고 싶었던 친구들과 모여 키튼 영화를 보며 깔깔 웃은 경험도 있다. 하지만 만약 무성영화를 본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두려움을 느끼는 관객이라면 다른 작품들을 먼저 보는 편이 좋겠다. 개인적으로는 키튼 장편 중 덜 사랑받는 작품인 〈대학〉을 매우, 몹시, 아주, 강력하게 권하고 싶은데 이렇게 되어 좀 아쉽다. 〈대학〉의 클라이맥스가 선사하는 카타르시스는 정말 굉장한데.

2.
이거 매우 중요하다. 만약 버스터 키튼 영화를 처음 본다면, 〈바보The Saphead, 1920〉로 시작해서는 안 된다. 〈바보〉는 키튼의 첫 장편 주연작이며, 당대에는 성공을 거두어 키튼이 영화계에서 입지를 굳힐 수 있도록 해준 중요한 작품이었지만, 다른 상영작과는 달리 '버스터 키튼 영화'가 아니다. 키튼이 기획/연출/각본을 맡은 아크로바틱 액션 코미디가 아니라는 뜻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별로 안 웃긴다. 볼 필요가 없다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손 꼭 붙들고 보라고 권할 정도는 아니다. 지금에 와서 〈바보〉의 의의는 "위대한 무표정"으로 유명한 키튼이 마지막으로 웃는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점일 테지만, 그건 이미 키튼의 팬이 된 사람들에게나 의미 있는 일이다.

3.
팁이라기보다는 마음가짐의 문제인데, 종종 한 영화인의 장편과 단편을 함께 상영하면 장편을 중심으로 놓고 단편은 부록처럼 여기는 경우가 있다. 실제로 만드는 사람 중에도 그렇게 접근하는 사람도 있고. 하지만 버스터 키튼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그가 장/단편의 구분이 명료하지 않던 시절부터 영화를 만들었던 사람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키튼에게는 단편이니까 좀 가볍게, 규모도 작게, 이런 마음가짐은 없었으리라 단언할 수 있다. 〈일주일One Week, 1920〉의 조립식 주택, 〈허수아비〉의 가구, 〈이웃Neighbors, 1921〉의 담벼락과 빨랫줄, 〈극장The Play House, 1921〉의 자기반영성, 〈보트The Boat, 1921〉의 배 등에서 나타나는 어마어마한 집중력은 어떤 장편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4.
〈카메라맨The Cameraman, 1928〉은 약간 뒤쪽에 배치하면 더 좋다. 반드시 그래야 한다거나 그렇지 않으면 영화의 힘이 떨어진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시간을 낼 수 없다면 앞에 봐도 상관은 없다. 다만 영화와 얽힌 상황을 염두에 두고 보면 감흥이 더 커진다. 키튼은 (지금은 대표작이 된) 야심작 〈제너럴The General, 1926〉의 흥행 실패로 본 손해를 견디지 못한 끝에 자신의 제작사를 포기하고 메이저 스튜디오인 MGM 전속 배우로 들어간다. MGM은 키튼에게 창작의 자유를 허락하지 않았고, 결국 그것이 키튼의 전성기를 끝장내고 말았다. 〈카메라맨〉은 바로 키튼이 갓 MGM에 입사하여 딱 한 번 자기 뜻대로 만든, 그의 전성기 마지막 영화다. 그리고 물론 그는 이 영화에서 카메라맨으로 출연한다. 키튼이 자기 제작사를 운영하며 이룬 업적을 실감한 후 〈카메라맨〉을 보면 전해지는 바가 있을 것이다.

5.
2004년 "버스터 키튼 회고전" 때 있었던 일인데, 버스터 키튼 영화가 너무 웃긴 나머지 관객들이 일단 웃고 보려는 마음가짐을 품는 부작용이 일어나기도 했다. 너무 그런 강박관념을 가질 필요도 없고, 웃음의 강도만으로 영화를 판단하는 실책을 저질러서 좋을 것도 없다. 키튼의 영화를 보다 보면 점점 아크로바틱 액션 개그 외의 다른 면모들도 눈에 들어오며, 그것이 결과적으로는 무성영화의 표현 양식으로 관객을 이끌어 줄 수도 있다. 가령 내가 '웃기지 않은' 무성영화를 즐기게 된 것은 무성영화의 연기 방식에 관해 의식하면서부터였는데, 그 전기를 마련해 준 작품은 〈카메라맨〉이었다. 또 비슷한 맥락에서 키튼의 장편 중 별로 유명하지 않은 〈서부로 가다Go West, 1925〉와 〈싸움왕 버틀러Battling Butler, 1926〉를 강력히 권하고 싶다. 전자는 인간과 소의 우정을, 후자는 지는 싸움에 뛰어든 약골의 분투를 다루는데, 키튼 특유의 아크로바틱 액션은 적지만 다른 측면에서 울림이 굉장하다. (이건 여담인데 마틴 스콜세지는 〈성난 황소Raging Bull, 1980〉를 찍을 때 자신은 권투 영화를 싫어한다면서 유일하게 제대로 된 권투 영화는 〈싸움왕 버틀러〉 뿐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 글쎄, 스콜세지는 틀림없이 〈육체와 영혼Body and Soul, 1947〉도 좋아할 테니 다소간 과장이 섞인 발언으로 받아들여야겠지만)

6.
참, 성룡 팬이라면 만사를 젖혀놓고 〈스팀보트 빌 주니어Steamboat Bill, Jr., 1928〉를 봐야 한다. 성룡이 키튼을 스승으로 모신다는 이야기는 유명하지만, 특히 이 영화를 보면 성룡이 그의 가장 유명한 스턴트 두 개를 키튼에게서 고스란히 가져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7.
만약 의욕이 있고 시간과 자본마저 여유로워 버스터 키튼 영화와 함께 볼 다른 영화가 필요하다면, 우선 비슷한 시기의 다른 무성 슬랩스틱 코미디를 생각할 수 있겠다. 아크로바틱 액션과 추격이 클라이맥스를 장식한다는 점에서 찰스 채플린보다는 해롤드 로이드 쪽을 더 권하고 싶다. 특히 〈대학〉은 키튼이 로이드의 〈신입생The Freshman, 1925〉을 보고 다시 만든 영화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설정이 흡사하여 둘을 비교하는 재미가 있다. 그런가 하면 〈카메라맨〉의 연장선에서 무성영화의 쇠락과 말년의 키튼을 연결하는 작품으로는 역시 빌리 와일더 감독의 〈선셋 대로Sunset Blvd., 1950〉와 채플린의 〈라임라이트Limelight, 1952〉가 유명하다. 키튼은 두 작품 모두에서 한물간 배우로 출연하여 가슴을 저민다. 조금 덜 가슴 아프고 반가운 영화로는 주디 갈랜드와 밴 존슨이 주연한 뮤지컬 〈즐거웠던 여름날In the Good Old Summertime, 1949〉이 있다. 당시 키튼은 MGM에서 개그 작가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한 슬랩스틱 장면을 해결하지 못해 골머리를 앓던 제작진이 키튼에게 도움을 청했고, 결국 그가 직접 영화에 출연하여 해당 장면을 연기하게 되었다. 또 그는 갈랜드와 존슨이 함께한 슬랩스틱 장면에서 연기를 지도하기도 했다.

Posted by 거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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