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처음 판도라의 상자(영화 말고)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이날 이때까지 이상하다고 생각한 부분이 있다.

익히 알려졌다시피 판도라가 상자를 여는 바람에 안에 담겨 있던 온갖 재앙이 세상에 창궐하게 되지만, 황급히 상자를 닫아 희망만은 남게 된다는 것이 이야기의 결말이다. 보통은 이 결론에 관해 '그래도 희망은 남아있다'는 식으로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하지만 그 논리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재앙은 상자 밖으로 나와 창궐하게 됐다. 즉, 상자는 내용물의 영향력을 막는 용도로 쓰이고 있다. 그렇다면 상자를 마저 열어 희망까지 내보냈어야 하지 않나? 상자를 너무 일찍 닫아버렸기 때문에 희망마저 없는 세계가 된 거 아냐?

그래서 만약 이 이야기에 교훈이 있다면 그건 그래도 희망은 남아있다는 것이라기보다는, 지금 이 세상에는 희망이 존재하지 않으며, 희망이란 정신 승리하는 데에나 쓰는 우리집 금송아지 같은 존재라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Posted by 거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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