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멍청한 영화들은 관객의 지성을 모독하여 불쾌감을 안기지만 〈쥬라기 월드Jurassic World, 2015〉는 자신의 지성을 모독하여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 즐거움은 단지 못 만든 영화를 비웃는 데에서 오는 즐거움만은 아니다. 이 영화에는 최소한의 상식과 체면, 일관성마저 놓아버린 채 그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가능한 한 날뛰고 싶다는 탐욕에 초등학생처럼 달려드는 민망한 즐거움이 있다. 아이들의 보호자가 느닷없이 공룡에게 채이는 순간 모든 감정선과 장면의 리듬을 중단하고 사나운 공룡들이 인간을 가지고 놀다 잡아먹는 장면을 걸신들린 듯 구경하는 낯두꺼운 창작자, 랩터와 티렉스와 백인 남성 액션 영웅의 하이파이브를 부끄러워하기는커녕 단독 쇼트로 하나씩 잡아 서로를 바라보게 해놓고 그 광경에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정신의 소유자만이 제공할 수 있는 순진무구한 희열을 부정하기 어렵다(다만 극 중 끊임없이 위기 상황을 모니터를 통해 관람한다는 행위를 부각한 것은 그런 영화의 태도에 대한 자의식적 고백이자 변명일지도). 장면마다 새 각본가가 투입되어 앞 장면은 보지도 않고 이어 쓴 듯한 각본을 가지고 이렇게 즐거울 수 있다니, 극작술에 바쳐온 인류(와 할리우드)의 노력이 다 허망하다. 불과 며칠 전에 『우주 상인』의 "과격함, 순진함, 무책임함"에 관해 "구시대의 쾌락이고, 남에게 선뜻 권하기 어려운 쾌락이며, 지금 와서 재현한다고 하면 나조차 반기지 못할 쾌락"이라고 말했는데, 섣부른 판단이었음을 포효하는 티렉스 앞에 인정한다.

비판하고 싶은 부분이 딱 하나 있다. 사고가 발생한 후 랩터 조련사 오웬(해군 복무 시절 군용 돌고래 조련 실험을 담당했다는 설정)은 방문객들의 안전을 도외시한 채 사고를 조용히 수습하려는 운영진의 태도에 화를 내며 통제실을 나서는데, 나가기 전에 공룡애호가인 직원 로워리의 책상에 진열된 공룡 피규어를 치고 간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행동이다. 그 직후 '왜 내 피규어에 화풀이야!' 라는 표정을 짓는 로워리의 모습을 잡아준 것은 좋았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 오웬이 랩터에게 물려 팔 하나를 잃음으로써 화가 난다는 이유만으로 남의 피규어를 함부로 대한 데에 대한 처벌을 받도록 하거나, 아니면 로워리에게 사과하고 배상하도록 해야 했다. 그것이야말로 이 영화의 정신에 어울리는 태도가 아닐까?

Posted by 거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