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쓴 「〈우주 전쟁〉의 삼발이는 인간을 찢어발기지 않아도 무섭다」에 ABC 님께서 다신 댓글에 댓글을 달다가 글을 따로 빼기로 했다. 글이 길어지기도 하고, 본문과는 거리가 있는 내용이기도 하고, 좀 사소하고 간단한 이야기들로 블로그를 대충 채워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서. 물론 한 번이라도 더 〈우주 전쟁〉이라는 단어를 노출함으로써 좀 더 많은 사람이 2월 18일 토요일에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있을 마지막 상영을 찾아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고. 암만 스필버그가 거장이네 어쩌네 해봐야 〈우주 전쟁〉을 극장에서 다시 볼 기회는 그리 자주 찾아오지 않을 테니까.

당연히 〈우주 전쟁War of the Worlds, 2005〉에 대한 스포일러 있음. 통상 한국 관객들이 피하려 애쓰는 부류의 스포일러에는 별로 개의치 않지만, 여기서는 장면의 구체적인 연출에 대해서도 약간 언급할 생각이라 명백한 스포일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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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전쟁〉의 마지막에서 두 번째 장면은 섬뜩하다.

물론 전체적인 상황만 봐서는 '스필버그식' '가족 재결합'이다. 천신만고 끝에 보스턴에 있는 전처 메리 앤의 부모님 댁에 도착한 레이와 레이첼은 메리 앤과 무사히 재회하고, 피난길에 헤어졌던 로비가 살아서 먼저 도착해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스필버그는 가부장을 중심으로 한 가족 공동체의 결속을 찬미하는 감독'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면, 이 장면 역시 마찬가지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장면의 생김새는 무언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먼저 공간의 위화감. 그간 보기 드물었던 강한 햇살이 거리 전체를 비추는 가운데 낙엽이 바람에 흩날리며 뜻밖의 서정성을 불러일으킨다. 낙엽과 비슷한 색조의 건물들은 태풍을 가볍게 견뎌낸 고목 같다. 전력을 잃은 차들이 거리 여기저기에 아무렇게나 방치돼 있기는 하지만, 그러고 보면 삼발이의 등장 이후 이렇게 건물이 멀쩡한 지역도 오랜만이다. 영화 도입부에서부터 레이와 메리 앤의 사회적 차이는 줄곧 암시되었거니와, 레이가 문자 그대로 죽을 고생을 하며 당도한 이곳은 외계인의 공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고함을 지키고 있었던 건가, 하는 억하심정도 조금은 든다.

바로 그 위화감 때문일까. 레이는 메리 앤에게 다가가지 못한다. 레이에게 안겨 있던 레이첼은 거침없이 메리 앤에게 달려가 안기지만, 레이는 레이첼을 놓아준 순간부터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 있다. 존 윌리엄스의 음악조차, 레이첼이 메리 앤에게 달려가 안길 때는 피아노를 도입하며 '감동의 모녀상봉'을 연출하더니 메리 앤이 '아, 그러고 보면 레이도 있었지?' 하는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는 순간 음산하게 급변한다. 돌아서는 메리 앤과 함께 옆으로 미끄러진 카메라가 세 사람의 거리를 보여준다.[각주:1] 메리 앤은 나직하게 고맙다고 말할 뿐, 레이에게 다가서거나 레이를 불러들이지 않는다. 뒤늦게 문을 열고 나온 메리 앤의 가족들도 마찬가지다.

메리 앤의 가족들 입장에서 보자면 이해할 만한 거리감이다. 그들은 외계인들의 침공을 코앞에서 실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외계인들이 침공한 곳마다 모든 전력이 끊겼던 만큼, 그들이 집에서 TV 등을 통해 외계인의 공습 과정을 목격했을 가능성도 작다. 그들은 보스턴 밖의 위협을 보지 못했다. 다만 아이들이 돌아오지 않아 걱정했을 뿐. 그러고 보면 애초에 아이들이 가족과 떨어진 것도 레이를 만나러 갔기 때문이다(이혼에 따른 합의사항이었을 것이다). 부당하게 레이를 원망하는 마음마저 있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난리가 터지기 전까지 레이와 메리 앤의 가족들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런 상대가 마땅히 돌아와야 했을 아이를 뒤늦게 데리고 왔다는 이유만으로 보자마자 반색하며 집 안으로 불러들여야 하나? 당장 꺼지라고 매몰차게 내쫓은 것도 아니고, 얼굴 보고 몇십 초 정도 망설이는 건 이해할 만하다.

레이 쪽에서 느끼는 거리감도 있다. 레이로서도 별로 사이도 좋지 않은 전처 집에 들어가 관계를 개선하고 싶었을 것 같지는 않다. 메리 앤만 있다면 또 모르겠지만, 그를 싫어하는 메리 앤의 어머니와 메리 앤의 새 연인(혹은 배우자?)도 있는 판국이니.[각주:2] 관객의 대리자로서 두 시간 가까이 고난을 겪었던 그가 메리 앤의 공간에서 느꼈을 위화감에 대해서는 이미 이야기했다. 이것은 "전쟁"이었고, 전장에서 끔찍한 광경을 보고 돌아온 사람들은 종종 전장을 전혀 알지 못하는 고국의 일상에 섞이지 못한다. 즉, 메리 앤의 가족들이 느끼는 거리감이 재난을 보지 못한 데에서 비롯한 거리감이라면, 레이에게는 재난을 본 사람의 거리감이 있다.

재난을 보느냐 보지 못하느냐. 그것을 죽음을 보느냐 보지 못하느냐로 바꿔 말해도 좋겠다. 피난길 내내 레이는 레이첼에게 죽음의 광경을 보지 못하게 하는 수호자였다. 그는 비행기가 추락한 현장을 보지 말고 자기 얼굴만 보라고 했고, 강에서 시체들이 떠내려오자 레이첼의 눈을 가렸다. 그런데 레이는 레이첼이 죽음을 보지 못하게 하는 과정에서 함께 눈을 돌리는 대신 자신은 너무 많은 것을 본 사람이 된다. 그리고 (삼발이의 촉수 끝에 달린 카메라가 암시하듯?) 죽음을 본다는 것은 곧 죽음을 야기하는 능력과도 연결된다. 정신이 불안정하고 난폭해질 수도 있는 남자 할란 오길비와 지하실에 함께 있게 된 상황에서, 레이는 레이첼이 볼 수 없도록 문을 닫은 다음 할란을 죽였다(설마 관객에게 보여주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레이가 남자를 죽이지 않았다고 주장할 사람은 없겠지?).

워낙 끔찍한 일들이 연달아 일어나기에 이 또한 극한 상황에서 일어난 재난 중 하나로만 생각하고 넘어가기 쉽지만, 이 살인은 큰 문제다. 우선 정당성의 문제. 법리를 따지지 않더라도 레이의 살인은 지나치다. 혹은 레이가 살인했다고 단정하도록 유도하는 연출이 지나치게 가혹하다. 물론 급박한 상황이기는 했다. 밖에 아직 삼발이들이 돌아다니고 있는데 지하실에 숨은 할란이 공황상태에 빠져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소란을 일으켰다. 외계인들이 그 소리를 듣고 다시 찾아와 세 사람을 죽였을지도 모른다. 레이는 레이첼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할란의 입을 막아야 했다. 하지만 입을 막아야 한다는 말이 꼭 죽여야 한다는 뜻은 아니지 않은가. 더 관대한 연출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할란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터널을 판답시고 삽질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따라서 레이가 할란의 머리를 쳐서 기절시킨 다음 손발을 묶고 입을 막는 정도로만 묘사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이 장면은 두 남자가 목숨을 걸고 싸울 수밖에 없었다는 것처럼 전개된다. 레이가 할란을 제압하기로 마음먹고 레이첼의 눈을 가리며 준비를 마치자, 할란이 갑자기 살의를 느꼈다는 듯 혼잣말을 멈추고 돌아서서 레이를 맞이한다. 레이가 들어서자 문이 닫히고, 소란이 이어지고, 정적이 흐르고, 레이가 넋을 잃은 얼굴로 피를 흘리며 나온다. 누가 봐도 죽였다고밖에 할 수 없는 연출이다. 그것도 정당방위라고 하기에는 다소 미묘한, 위협의 가능성을 미리 제거하기 위해 살의를 품고 벌인 살인이다. '과잉보호=보지 못하게 하는 행위'와 '보는 행위=과잉대응'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갈 수밖에 없다는 듯이.

그리고 사후 처리의 문제. 레이는 고의로 살인을 저질렀다. 외계인의 공습이라는 특수 상황이었다고 해서 용납할 수 있을까? 난리가 끝난 후 그는 결백한 시민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문명사회의 상식으로는 그렇지 않다. 전투 중 군인이 군인을 살해한 상황이 아니다. 재난 중에 민간인이 민간인을 대상으로 저지른 살인이 문제가 되지 않을 리 없다. 할란의 시체가 발견되고 수사가 진행된다면 레이는 살인죄로 기소되어 형을 살지도 모른다. 난리 통에 증거가 사라져 수사조차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레이의 행위가 문명사회에서 처벌 대상으로 여기는 금기 행위였다는 점은 바뀌지 않는다. 레이는 살인자다. 레이첼을 구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하겠지만, 그래도 살인자다. 레이 스스로도 모를 리 없다. 그는 살인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싸이코패스도, 살인에 익숙한 전문가도 아니다.

보지 못하게 한다. 보지 못하게 하는 자신은 본다. 과잉대응에 나선다. 살인을 저지른다. 난리통이었다고 해도 합리화 할 수 없는 살인을. 그러므로 레이가 메리 앤 가족에게 느끼는 거리감의 기저에는 다음과 같은 딜레마가 숨어있다. '너무 많은 것을 본 나는 당신들이 아무것도 보지 못 하게 하기 위해 당신들 세계의 금기를 자행했다. 그런 내가 당신들 곁에 가도 괜찮은 걸까? 나를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는 순간 당신들의 세계를 지탱하는 원칙은 무너지지 않는가?'

미루고 미루었지만, 결국 이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주 전쟁〉은 미국 서부극의 전통을 잇는 영화다. 서부극에서는 다음과 같은 도식이 자주 등장한다. 아직 문명이 완전히 자리 잡지 않은 황야에, 이제 막 개척 중인 마을이 있다. 한 악당이 폭력을 휘둘러 마을을 무법지대로 만든다. 마을을 더 올바르게 가꿔나가고자 하는 시민들은 악당의 횡포에 고통받는다. 이곳에 총잡이가 등장한다. 그는 시민들의 편이고, 그들의 가치를 존중하지만, 그의 가장 큰 무기는 폭력이다. 그는 참고 또 참다가 결국 분연히 일어나 악당을 쏘아 죽인다. 그럼 악당을 죽인 이후 총잡이는 마을에 남아도 괜찮은가? 마을의 미래를 위해 그 역시 떠나야 하는 게 아닐까? 두뇌 칩을 없애기 위해 용광로에 들어가는 T-800처럼?

〈우주 전쟁〉 이후 스필버그를 이야기할 때 존 포드가 널리 거론되기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다. 존 포드는 자신의 서부극에서 여러 차례 '떠나야만 하는 총잡이'의 문제를 자의식적으로 다루었다. 〈우주 전쟁〉의 결말은 그중에서도 〈수색자The Searchers, 1956〉의 결말을 빼닮았다.[각주:3] 보호해야 할 여자아이를 데리고 온 남자는 아이를 넘긴 뒤 집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그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자신이 집에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단, 차이도 있다. 〈수색자〉의 주인공 이든은 다른 모두가 집에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다 몸을 돌려 황야로 떠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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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들어가지도, 떠나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선 레이 앞에는 피난 중에 헤어진 뒤 죽었으리라 생각했던 아들 로비가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로비가 등장한 순간, 두 가지 아이러니를 동시에 느꼈다. 하나는, 살(리)기 위해 무진 애를 썼던 레이의 노력이 헛수고였다는 아이러니다. 레이는 자기 목숨을 구하기 위해, 또 로비와 레이첼을 무사히 보스턴까지 데려가기 위해 천신만고를 겪었다. 그가 못난 아비일망정 나름대로 죽을 고생을 해가며 목숨을 구하고자 노력했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정하지 않으리라. 하지만 그 와중에 로비는 레이의 만류를 뿌리치고 다른 길을 갔다. 군에 합류하겠단다. 공포 영화에서는 보통 그런 놈들이 먼저 죽는다. 주인공의 현명한 판단을 따라야지 말이야. 위기 상황을 피하기는커녕 준비도 안 됐으면서 무작정 맞서 싸우자고 하다니. 그런데 그렇게 삼발이의 공격을 받아 불타는 언덕을 올라갔던 로비가 결말에 이르러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으로, 복장마저 그대로인 채로 나타난다. 심지어 레이보다 목적지에도 먼저 도착했다. 관객으로서는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로비가 레이와 헤어진 뒤 레이보다는 덜 고생했으리라 생각하게 된다. 관객은 로비의 고생은 보지 못했으니까. 더구나 로비는 보스턴의 그 평온한 길, 메리 앤의 부모가 사는 집 안에서 나타난다. 멀쩡한 로비의 모습은 보스턴의 길거리와 마찬가지로 레이의 생고생을 어쩐지 하찮고 무의미하게 만든다. 레이가 부모의 위신을 내세우며 "거봐라, 내가 뭐라고 했냐."라고 면박 줄 수 없는 상대. 오히려 "그러게 진즉 아들 말 좀 듣지, 뭐 잘났다고 혼자 그 난리를 피웠대?"라고 레이를 조롱할 것만 같은 상대. 바로 직전에 두 번이나 삼발이를 물리치는 데에 공헌했던 레이의 '영웅적' 행동마저 삽시간에 왜소해진다. 넌 네가 항상 영웅인 줄 알지? 여긴 그런 세계가 아니야. 레이첼이 살아 돌아왔다고 해서 네가 더 나은 사람이 되거나 변화하거나 중요한 사람이 되는 게 아니야.

그런데 두 번째 아이러니는 첫 번째 아이러니와 반대 방향으로 작동한다. 레이를 맞이하는 로비의 반응을 보면서, 나는 이전까지만 해도 절대 집에 들어갈 수 없었을 것 같던 레이가 로비 덕분에 집에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인상을 받았다. 문밖으로 나온 로비의 행동은 어떤가? 로비는 곧장 레이에게 다가가 그를 끌어안는다. 메리 앤 집의 누구도 하지 않았던 일이다. 심지어 로비는 동생 레이첼에게는 아직 인사 한마디 하지 않는다. 레이첼이 살아 돌아온 로비를 보고 믿을 수 없다는 듯 "로비?"라고 불렀는데도. 이상한 일이다. 영화 내내 로비는 레이와는 사사건건 충돌했던 반면 레이첼과는 매우 다정한 사이였다. 남매가 어찌나 다정했던지 자기 전에 서로에게 "사랑해."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로비가 사랑하는 동생을 무시하고 레이에게 먼저 가다니. 레이의 살인 장면과 마찬가지로, 이 장면도 얼마든지 다르게 연출할 수 있었다. 로비가 처음부터 메리 앤과 함께 문밖으로 나와 레이첼을 얼싸안을 수도 있었다. 또는 로비가 뒤늦게 등장하더라도 윗 문단에서 이야기한 첫 번째 아이러니만을 전달한 뒤 레이첼과 메리 앤에게 합류하게 함으로써 레이를 더욱더 고립시킬 수도 있었다. 하지만 굳이 지금처럼 연출했다. 어째서? 사실 레이와 로비는 닮은꼴이니까. 로비가 레이처럼 되었으니까. 아니면 레이가 로비처럼 되었으니까.

〈우주 전쟁〉 개봉 당시 많은 관객이 로비를 싫어했다. 로비는 끊임없이 주인공 레이와 충돌하는 데다 앞뒤 안 가리고 외계인과 싸워야 한다는 소리를 해대며 레이와 레이첼까지 위험에 처하게 하는 골칫거리다. 한편 레이가 너무 레이첼만 애지중지한다는 감상도 많았다. 끊임없이 레이첼만 보살피려 하니 로비가 그렇게 엇나갈 만도 하다는 농담까지 나왔다. 둘은 그런 와중에 중간에 동선까지 갈렸다. 은연중에 레이와 레이첼을 한 묶음으로 놓고 로비는 덜 중요한 조연 정도로 따로 놓고 생각하는 것도 이해할 만하며, 뒤늦게 로비가 다시 나타나 화해 무드를 조성하자 당황스러울 법도 하다.

그렇다면 잠시 로비는 제쳐놓고, 정말로 레이와 레이첼이 가깝기나 했는지부터 돌아보자. 레이첼은 로비보다는 스스럼없이 레이와 말을 섞는다. 그럼 로비보다는 더 살가운 자식인 걸까? 하지만 레이첼이 레이에게 하는 말의 내용이 그렇게 호의적이지는 않았다. 레이첼은 레이가 한심한 아빠임을 알고 있고, 특히 일상생활에서라면 레이의 말을 따를 생각도 없다. 레이는 자신이 로비를 대하는 태도를 나무라는 레이첼에게 "네가 내 엄마 아님 네 엄마라도 되냐?"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과연 레이첼은 메리 앤의 세계에 속한 존재다. 현명하고, 말 잘하고, 배달음식조차 건강식을 시켜먹고, 땅콩버터 알레르기와 폐소공포증이 있는 '까탈스러운', '보호해줘야 할', '여자' '아이'. 레이에게 레이첼은 끊임없이 눈과 귀를 가리고 보호해주어야 할 연약한 존재다. 더 냉정하게 말하자면, 레이첼은 전통적인 남성 중심 영웅 서사 안에서 (평소에는 한심하기 그지없는) 남자 주인공의 (액션과 폭력에 바탕을 둔) 가치를 증명해줄 대상이기에 소중하다. 마침 레이첼을 연기한 배우는 당시 '똘똘하고 귀여운 여자애' 이미지로 유명세를 떨쳤던 다코타 패닝이다. '힘든 일은 아빠한테 맡겨'주의자들이라면 '아빠 미소'를 지으면서 레이와 레이첼의 관계가 이상적이며 전형적인 부녀 관계라고 착각할 법도 하다. 레이첼을 향한 레이의 과잉보호를 제외하면 둘 사이에 어떠한 이해나 관계의 진전도 없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로.

로비는 그 반대다. 로비는 레이와 만난 순간부터 대립각을 세우지만, 실상은 아버지를 경멸하면서도 아버지와 닮은 아들이다. 레이의 차를 훔쳐 몰고 간 걸 보면 로비도 레이처럼 차를 좋아하는 남자애 같다. 남의 차를 훔쳐 타고 가는 것도 제 아비를 닮았다. 팀은 다르지만 레이처럼 야구 팬이고, 레이와 마찬가지로 캐치볼로 분노를 표현할 줄 안다. 로비는 레이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레이와 맞서 싸우면서 레이처럼 생각 없는 모습을 드러낸다. 차를 빼앗겼을 때는 레이와 더불어 사람들과 싸운다. 유람선에 오른 뒤 한 사람이라도 더 태우려 드는 로비의 영웅주의적 활약 역시 후반부 레이의 활약상과 공명한다.

두 부자의 근본적인 유사성은 레이와 로비가 헤어지는 장면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로비는 언덕에 진을 치고 삼발이들과 맞서는 군대를 보자 레이와 레이첼을 두고 군과 합류하려 든다. 로비는 이전에도 적을 피해 도망치지 말고 맞서 싸워야 한다고 고집한 바 있다. 하지만 그게 단지 싸우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로비가 자신을 말리는 레이에게 하는 대사를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각주:4] "전 여기 있고 싶어요. 전 이걸 봐야 해요. 제발, 절 보내줘요. 절 보내줘요. 제발요. 절 보내줘요, 아빠. 전 여기 있어야 해요. 전 이걸 보고 싶어요. 제발, 절 보내줘요. 아빠는 절 보내줘야 해요." 로비는 레이를 설득하면서 싸우러 가겠다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이 광경을 봐야겠다고만 말한다. 심지어 자신이 이 광경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레이의 의무인 것처럼 말한다. 한편, 레이의 대사도 의미심장하다. 이 장면의 대화는 레이의 대사로 시작한다. "이러지 마라. 네가 싸우고 싶어 하는 거 알아." 레이가 잠시 말을 멈춘 순간 로비의 대사가 겹치듯 뒤를 잇는다. "전 여기 있고 싶어요. 전 이걸 봐야 해요." 그리고 다시 레이의 말이 이어진다. "그래야만 하는 것처럼 보일 테지만 그렇지 않아. 그렇지 않다고." 대사가 교차하는 타이밍 덕분에, 레이의 말은 '너는 네가 싸워야 한다고 느낄 테지만 그렇지 않아.'라는 뜻으로 들리기도 하고 '너는 네가 이걸 봐야 한다고 느낄 테지만 그렇지 않아.'라고 들리기도 한다. 레이의 대사를 마저 들어보자. "난 네가 이런 일을 하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다. 날 미워해도 돼. 하지만 난 널 사랑해. 난 네가 이런 일을 하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이런 일이란 뭘 가리키는 걸까? 싸우는 것? 보는 것? 그런데 앞서 말했듯, 이 영화에서 둘은 같다. 이 부자는 너무 많이 보는 자 = 폭력을 행하는 자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처음부터 그런 사람이 되고자 했던 로비를 지금껏 레이가 막고 있었을 뿐이다.

에이, 목숨을 구하기 위해 할란을 살해한 레이와 군대에 합류해 외계인과 싸우고자 하는 로비를 폭력성이라는 특징만으로 뭉뚱그려 묶는 건 무리한 일이 아닐까? 하지만 할란을 죽인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전사' 레이는 계속 진화하고, 그의 폭력은 점점 더 정당화된다. 레이는 할란을 죽일 때만 해도 큰 결심을 한 뒤 문을 닫고 들어가 힘겹게 살인을 저질렀고, 살인의 무게를 실감했다. 하지만 다음 장면에서는 레이첼 바로 앞에 다가온 삼발이의 촉수를 카메라가 보는 앞에서 도끼로 찍어 죽인다.[각주:5] 워낙 급박한 상황인지라 그가 한때 할란의 도끼질을 막았던 사람이라는 사실을 되새길 여유조차 없다. 그 상황에서는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하지! 이어서 레이는 레이첼을 잡아간 삼발이를 통째로 수류탄으로 날린다. 여기서는 세 가지가 마음에 걸린다. 첫째는 수류탄. 권총과 도끼는 개인의 자위 수단으로 볼 수 있지만, 수류탄은 민간인의 도구가 아니다. 온몸으로 '평범한 미국 민간인 남자'를 표방하던 레이가 문득 수류탄으로 적을 해치우는 순간 무언가가 변화한다. 둘째는 레이를 적극적으로 돕는 다른 사람들. 즉, 레이의 폭력은 이제 공동체가 찬성하는 일이자 공동체를 구원하는 일이 된다. 셋째, 그럼으로써 레이는 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전형적인 할리우드 액션 블록버스터의 남성 영웅처럼 보인다. 필사적으로 살려고 한 행동일 뿐이라거나 자신도 특별히 의도하지는 않았던 행동이라는 식의 변명은 얼마든지 가능할 테지만, 나는 〈우주 전쟁〉을 본 모든 관객이 그럼에도 이 장면에서 약간의 위화감이랄까 '그러면 그렇지' 하는 나른한 안도감을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역시나, 톰 크루즈가 주인공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인데 외계인에게 쫓기기만 할 리 없지! 그렇게 레이는 조금씩 달라진다.

그런 다음 보스턴에 이르면 최종 진화가 기다린다. 어쩔 수 없는 자위행위로 삼발이를 수류탄으로 날리고 개인 영웅이 되었던 레이는 이곳에서 아예 군대의 인정을 받는다. 레이는 삼발이의 방어막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군 지휘관에게 이 사실을 알려 삼발이를 공격하도록 한다.[각주:6] 삼발이가 쓰러지고, 조종석에서 축 늘어진 외계인이 나와 인류의 승리를 알린다. 이 장면은 할란을 살해하는 장면만큼이나 과도하다. 거기서 삼발이를 쏠 필요가 있었나? 레이는 삼발이들이 갑자기 무기력해졌다는 군인의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었다. 삼발이가 건물에 기대선 채 가동을 중단한 모습도 보았다. 남아서 휘청거리는 삼발이도 더는 광선을 쏘며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군대는 침착하게 상황을 통제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굳이 삼발이를 쏘아 거꾸러뜨리고 외계인의 시신을 통해 승리를 확인하는 과정이 끼어든다. 잠재적 위협을 적극적으로 제거하라. 익숙한 과잉대응이다. 할란을 죽인 레이의 태도는 이제 공적으로 승인받았다.

그제야 레이는 로비와 재회한다. 미리 와 있던 로비. 처음부터 '보아야' 한다고, 군과 함께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로비. 멀쩡히 살아남음으로써 자신이 옳았음을 증명했고 레이의 고생을 순간 허탈하게 만든 로비. 전통적인 부자 관계는 뒤집혔다. 레이는 먼 길을 돌아 비로소 로비가 되었다. 그렇게 아버지는 아들이 된다. 자위권을 행사하던 개인은 군인이 된다. 금기시되던 사적 폭력은 공적으로는 찬미할 만한 영웅적 행위가 된다. 떠날 필요 없어요. 들어와도 돼요. 난 처음부터 집 안에 있었으니까. 〈수색자〉식으로 말해볼까. 떠나려는 이든을 마틴과 다른 기병대원들이 붙잡는다. 자네도 들어오게. 예전에는 자네를 탐탁치 않게 생각했지만 결국 자네가 옳았잖아. 우리도 자네와 함께 말을 달리며 인디언들을 죽이고 우리의 여자아이를 구해오지 않았던가. 자네는 우리 사람이야.

원작을 모르는 관객들을 당황스럽게 했던 모건 프리먼의 마지막 내레이션도 이제는 달리 들린다. "침입자들이 도착하여 우리의 공기를 들이쉬고, 먹고, 마셨을 때부터, 그들은 파멸할 운명이었다. 인간의 모든 무기와 장치는 무력했으나, 신이 지혜로이 이 땅에 심어둔 가장 작은 생명체 앞에 그들은 실패하고 말살당했다. 수십억의 죽음을 치르며 인류는 면역력을 획득했고, 이 행성의 무수한 생명체 사이에서 살아남을 권리를 획득했다. 어떠한 도전 앞에서도 그 권리는 우리의 것이니, 이는 인류의 삶과 죽음이 헛되지 않았음이라." 처음부터 이렇게 될 운명이었다. 이미 인류의 몸 안에 적을 말살할 능력이 있었다. 수십억을 죽여가며 얻은 이 능력으로 우리는 살아남을 것이다. 보는 능력, 해치는 능력으로. 여자들이 끔찍한 것을 보지 않아도 괜찮도록 지켜주는, 스포츠를 좋아하고 자동차를 좋아하고 몸으로 벌어 먹고살고 자식들을 사랑하지만 소통하는 법은 모르고 세련되지는 않은 평범한 남자들의 능력으로. 군인이 될 남자들의 능력으로.

하지만 〈우주 전쟁〉은 봉합을 승인하고 지지하는 영화가 아니다. 영화들은 암묵적인 규약이나 기성 가치의 요구와 타협하는 과정에서 종종 봉합을 시도한다. 때로는 마지못해 대충 봉합한 자리가 균열을 이기지 못하고 벌어지면서 표면의 서사를 내파하며 이의를 제기한다. 더 나아가 고의로 균열과 여백을 남겨 위험천만한 속내를 드러내는 영화도 있다. 〈우주 전쟁〉도 마찬가지다. 그 가공할 속도에 휘말려 놓치고 지나가기 쉽지만, 곳곳에 난처한 대목들이 산재해 있다. 변명을 대며 어물쩍 넘어가려면 넘어갈 수도 있지만, 그렇게 넘어간 뒤에도 영 개운치 않은 얼룩들이다. 망설이는 레이와 환영하는 로비는 그간의 얼룩들이 어쩌다 실수로 나온 것이 아니라 확신범의 소행이었음을 입증하는 클라이맥스다. 이 클라이맥스는 '이건 좀 이상하지 않냐?'라고 스스로 의문을 제기하며, 부드러운 소화를 방해하고, 대충 넘겼던 모든 것들을 게워낸다. 완벽한 거짓말을 들려주는 영화 이상으로 그런 완벽한 거짓말이 불가능함을 암시하는 징후를 드러내는 영화에 매혹을 느끼며, 그것이 더 영화다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관객으로서, 이 머뭇거리는 클라이맥스가 없었더라면 〈우주 전쟁〉을 지금처럼 좋아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 * *

이 정도 글을 쓰는 데에도 일주일이 걸렸다. 게다가 언제나처럼 시간이 지나고 나면 엉망진창인 문장들이 눈에 밟혀 한참을 고칠 테고. 현재 2월 18일 정오가 조금 지난 시점.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의 〈우주 전쟁〉 마지막 상영까지는 네 시간도 남지 않았다. 원래도 글 쓰는 속도가 느린 데다 요즘은 취미 삼아 쓰는 글을 오래 붙들고 앉아 이어나갈 여유가 없다. 10분씩 짬을 내어 쓸 수도 없는 노릇이고, 반드시 뭔가 중요한 활동을 포기해야 한다. 고민이다.



  1. 여담이지만 여기에서 메리 앤이 뒤를 돌아보게 한다는 연출도 근사하다. 공간 구조상 레이와 메리 앤은 처음에는 마주 보고 있었다. 따라서 메리 앤이 레이를 돌아보려면 그 전에 먼저 그를 등져야 한다. 어떻게? 무슨 동기에서? 스필버그는 달려가는 레이첼과 그런 레이첼을 끌어안는 메리 앤의 동작이 만들어내는 관성을 이용해 메리 앤이 레이첼을 들어 올리며 몸을 돌리도록 한다. 너무 간단해서 지적할 것조차 없을 듯한 사소한 연출이지만, 덕분에 뒤늦게 레이의 존재를 상기하는 메리 앤의 표정, 레이를 가리다가 메리 앤의 표정과 동작이 나온 뒤에야 그의 거리를 비춰주는 카메라의 위치와 움직임, 윌리엄스 음악의 음산한 전개를 한 화면 안에서 선명하면서도 경제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다. 누구나 보아도 명장면임을 알 수 있는 세트피스보다도 이런 사소한 선택에서 '거장의 손길'을 실감하게 된다. [본문으로]
  2. 과거의 할리우드 재난 영화에서는 재난의 극복과 종결이 허물어지는 가족의 재결합과 연결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스필버그가 8~90년대에 〈우주 전쟁〉을 만들었더라면 레이와 메리 앤은 이혼이 아니라 별거 중이고, 둘은 결말에서 감동의 포옹을 나누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메리 앤은 처음 등장할 때부터 다른 남자를 대동한다. 못난이 아빠가 직접 물어볼 자신은 없으니까 아이들에게 "너희 엄마 요즘 누구 만나는 사람 있냐?"라고 물으며 재결합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클리셰 따위는 들어설 자리도 없다. [본문으로]
  3. 결말의 시각적 유사성 외에도 두 작품이 비슷한 점은 여러 가지지만, 여기에서는 〈수색자〉에서 존 포드가 중요한 죽음의 순간을 보여주는 방식을 환기하는 정도로만 넘어가겠다. [본문으로]
  4. 이 문단에서 인용한 대사들은 원래 대사의 어휘들을 전달하기 위해 일부러 딱딱하게 옮겼다. [본문으로]
  5. 삼발이는 기계일 뿐이지만, 촉수의 디자인과 움직임 때문에 시종일관 생물처럼 느껴진다. [본문으로]
  6. 레이가 지휘관에게 삼발이를 보라고 할 때, 처음에는 소란 때문에 지휘관이 레이의 말을 듣지 못한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레이는 자신의 말을 듣지 못하는 지휘관에게 삼발이를 '보라'고 가리킨다. 레이는 확실히 '보는 사람'이다. [본문으로]
Posted by 거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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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전쟁War of the Worlds, 2005〉 상영 첫날이다. 나는 보러 가지 못한다. 서울에 사는 지인 중에는 갈 사람이 있을까. 〈E. T.E.T. the Extra-Terrestrial, 1982〉와 스티븐 스필버그를 무척 좋아하는 지인은 어떨까? 그런데 그는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 이미지에 취약했지. 그럼 만약 그가 〈우주 전쟁〉을 보지 않았다면(실제로 어떤지는 모른다), 과연 나는 스필버그가 만든 가장 무서운 공포 영화인 이 작품을 권할 수 있었을까?

당연히 권할 수 있지.

그러고 보니 그것도 〈우주 전쟁〉의 대단한 점 중 하나다. 이 영화에는 관객을 일순 충격에 빠뜨릴 만한 이미지가 여럿 등장하지만, 과격한 신체 훼손이나 갑작스러운 소음과 불쑥 튀어나오는 피사체를 이용해 깜짝 놀라게 하는 등 무릎을 나무망치로 때리는 식의 '폭력적'인 시청각 연출은 없다. 물론 '조용한' 공포 영화나 스릴러야 드물지 않다. 하지만 〈우주 전쟁〉은 어디까지나 외계인이 거대 기계를 타고 사람들을 죽이고 피를 빨아 뿌리고 도시를 쾅쾅 때려 부수는 21세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라는 본분에 충실한 영화다. 그런데도 〈인디펜던스 데이Independence Day, 1996〉처럼 액션 영화 쪽으로 치우치지도 않고, 조건 반사적 자극에 의지하지도 않은 채, 시종일관 공포 영화의 정조를 유지한다. 생각을 거듭해봐도 그런 영화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이건 등급을 낮추기 위해 순화된 표현을 사용하는 정도로만 될 일은 아니다. 맨 처음 삼발이가 나타나 사람들을 학살하는 장면을 떠올려 본다. 광선의 파괴력을 PG-13 등급에 맞추어 묘사하기란 어렵지 않다. 핵심은 그러면서도 그 위협을 각인시켜야 한다는 데에 있다. 이럴 때 영화 만들기란 어린아이들의 놀이와 비슷한 면이 있다. 카메라를 어디에 놓을까, 무슨 렌즈를 쓸까, 조명을 어떻게 칠까, 화면의 지속 시간은 어느 정도로 하고 다음 화면은 무엇으로 할까 등등의 영화적 기본기는 물론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외계인이 탄 삼발이는 어떻게 생겼고, 어디에서 광선을 발사하고, 광선을 맞으면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를 매우 진지하게 꾸며내야 한다. 스필버그는 이 방면에서 대다수 블록버스터 감독들이 범접할 수 없는 상상력과 균형 감각을 지닌 '어린아이'다. 그리하여 잭 스나이더 영화였다면 기껏해야 고출력의 레이저빔 정도로나 묘사되었을 삼발이의 광선은 〈우주 전쟁〉에서는 간단하면서도 기묘한 성질을 띤다.

먼저 광선의 정밀도. 그 정도로 강력한 무기를 갖고 있다면 적어도 처음 등장할 때는 광범위 포격을 가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법도 한데, 삼발이는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사람을 한 명 한 명 조준 사격한다. 흔히 〈우주 전쟁〉을 재난 영화라고 하지만, 그 조준 사격에서는 자연재해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잔인한 악의가 느껴진다.

다음으로 광선의 효과. 어째서인지 이 광선은 사람의 몸을 삽시간에 재로 만들지만, 옷은 비교적 멀쩡하게 남는다. 재와 옷. 생각해 보면 무척 소름 끼치고 효과적이면서도 낯선 표현 방식이다. 입고 있던 사람은 재로 변신하고, 옷은 허공에 남아 힘없이 펄럭이며 땅으로 떨어진다. 아예 몸과 옷이 함께 녹아 없어지거나 폭발에 휘말렸더라면 더 볼 것이 없었을 텐데, 구체적인 형상을 잃은 채 허공에 흩날리는 재와 옷은 그 자체로 관객의 눈길을 끄는 새로운 시각 요소[각주:1]인 동시에 '조금 전까지 여기에 사람이 있었음'을 뜻하는 폭력적인 부재의 표식이다. 인간 증발은 변신이나 순간 이동을 표현하는 데에 쓰이거나 미스터리의 소재로는 사용되어도 이렇듯 즉각적인 살해 방식으로 사용되는 경우는 드물기에 낯설고, 그 낯선 부재의 방식이 공포를 거든다. (여기에서 전제를 깔아둔 스필버그는 중반부에 가서는 아예 허공에서 펄럭이는 옷들이 비처럼 쏟아지는 모습만으로 절멸의 기운을 불러일으킨다.)

재에 대한 첨언. 만약 광선이 인간 증발을 일으킨다고 하더라도 멜리에스 영화처럼 "뿅"하고 사라지는 방식을 취했더라면 낯설거나 신기하거나 어색하기만 할 뿐 두려움은 없었으리라. 그런 방식은 시각적으로는 단순히 존재하던 것이 사라졌음을 뜻할 뿐이다. On/Off 스위치와 같다고나 할까. 그 경우 폭력의 가능성은 시각적으로는, 시간 속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흩날리는 재는 그냥 Off가 아니라 시간 속에서(비록 아주 짧은 시간이기는 하지만) 벌어진 폐기의 흔적이다. 재는 증발의 과정을 증언한다. 재는 조금 전까지 재였던 사람이 갑자기 사라지거나 다른 곳으로 간 것이 아니라 재라는 다른 존재로 변했고 영영 사람으로는 돌아올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광선이 등장하기까지의 예비 단계와 묘사의 순서. 재난 영화, 괴물 영화들은 종종 스펙터클의 핵심을 너무 늦게 드러낸다는 비판을 받곤 한다. 영화의 절반 이상을 숨바꼭질로 만든 〈고질라Godzilla, 2014〉 같은 영화가 대표적인 예다. 그런 면에서 〈우주 전쟁〉은 처음부터 밝은 대낮에 삼발이의 본체를 보여주고 화끈하게 때려 부수는, 뜸 들이지 않는 영화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삼발이가 등장하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오히려 스필버그만큼 뜸을 잘 들이는 연출자도 없다. 광범위한 시공간에 걸쳐 동선을 이으려고 아등바등 서커스를 벌이며 뜸을 들이는 〈고질라〉와는 반대로[각주:2] 매우 제한적인 시공간 안에서 구렁이 담 넘어가듯 장면을 잇고 동선을 연결하면서 순식간에 몇 단계를 밟아 나가기 때문에 뜸을 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할 새도 없을 뿐이다.

삼발이가 광선을 쏘기까지의 과정을 되짚어 볼까. 레이는 딸 레이첼에게서 아들 로비가 허락도 없이 자기 차를 가지고 나갔다는 사실을 듣고 화가 나서 집을 뛰쳐나간다. 그렇게 집을 나갔는데 어째선지 사람들이 전부 자기 뒤쪽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기에 돌아보니 낮 하늘에 무슨 성운을 방불케하는 먹구름이 깔려 있다(①). 레이는 로비를 찾으러 나왔다는 것도 잊고 멍하니 하늘을 보다가 뒷마당에서 보면 더 잘 보일 거라며 집 뒤로 돌아간다. 레이와 주민들이 저마다 뒷마당에서 하늘을 구경하는데, 레이는 바람의 방향이 이상하게도 '폭풍'의 중심을 향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한다(②). 레이는 멋진 걸 보여주겠다며 레이첼을 밖으로 데리고 나오고, 갑자기 바람이 멎는다(③). 먹구름이 번쩍이고, 멀리서 번개가 치기 시작한다(④). 레이의 집 뒤편 가까운에 벼락이 떨어지자(⑤) 레이와 레이첼은 집안으로 들어간다. 레이는 레이첼에게 벼락은 한 번 떨어진 곳에 다시 떨어지지 않는다고 안심시키지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같은 자리에 연달아 벼락이 떨어진다(⑥). 번개가 끝나자 레이는 집 안을 둘러보다 전기 장비가 전부 작동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밖으로 나간다. 집 밖에서 막 돌아오던 로비를 만난 레이는 교회 옆에 벼락이 스물여섯 번 떨어졌다는 정보를 듣고 교회로 간다. 교회 앞에 사람들이 모여든다. 벼락이 연달아 떨어진 곳의 차도가 패였고, 연기가 피어오른다(⑦). 레이는 땅이 팬 곳 주변에 널린 정체불명의 잔해를 만져본다. 연기를 보아하니 뜨거울 것 같지만, 레이는 오히려 차갑다고 말한다(⑧). 지하에서 소리가 들리면서 지표면에 균열이 가고 건물이 무너진다(⑨). 여기서도 이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나는 게 아니라 처음에는 금이 가고, 사람들이 물러나고, 도로 옆의 건물 창이 깨지며 외장 벽돌이 떨어지고, 지면이 훨씬 광범위하게 요동치면서 여러 건물의 창이 깨지고, 지면이 요동치는 수준을 넘어서 땅이 갈라지고 이동하며 교회 전면이 분리되고, 수도관이 파열되어 물이 뿜어져 나오고, 교회 종탑이 붕괴하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가, 교회 앞 지면이 불쑥 솟아올랐다가 꺼지면서 폭발이 일어나는 과정이 하나하나 '순서대로' 묘사된다. 이어 연기 속에서 자동차가 내던져진다(⑩). 촉수 같은 것이 등장하며 차를 깔아뭉갠다(⑪).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땅속에서 삼발이가 솟아오른다(⑫). 삼발이는 등장한 뒤에도 바로 광선을 쏘지 않고 뜸을 들인다. 도망가던 사람들은 삼발이가 조용하자 다시 구경하러 모여든다. 삼발이가 몸을 꿈틀거리며 웅장한 뱃고동 같은 소리를 낸다(⑬). 고속으로 회전하는 엔진 소리 같은 것이 나면서 삼발이의 머리 부분이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짧은 촉수를 조준하고, 비로소 광선이 쏟아진다(⑭).

이 자극들이 '순서대로' 제시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자극은 단숨에 과포화 상태로 쏟아지기보다는 하나씩 하나씩 눈과 귀를 집중시키며 축적되고 다음 상황을 기대하게 한다. 자극이 단계별로 제시되자 레이가 반응자로서 개입할 여지도 생긴다. 집 앞 → 뒷마당 → 집 안 → 집 앞 → 교회 가는 길 → 교회 앞으로 이어지는 거짓말처럼 부드러운 동선을 따라가는 동안 관객은 레이에 대해, 레이가 사는 동네의 분위기와 이웃과의 관계에 대해, 자식들을 대하는 레이의 모자람과 신기한 스펙터클을 대하는 레이의 어린애 같은 성격을 감지한다. 그는 삽시간에 벌어지는 재난을 한 자리에서 무력하게 구경하는, 있으나 없으나 마나인 '인간 1'이 아니다. 그는 부드럽게 연결된 공간들을 이동하면서 임박한 재난의 여러 국면을 관찰하고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관객의 심리적인 초점이다.

다시 광선과 공포 이야기로 돌아가서, 광선은 이토록 많은 예비 단계를 통해 긴장을 축적한 뒤에야 비로소 발사된다. 그리고 거기서 끝이 아니다. 광선이 사람들을 해치는 데에도 순서가 있다. 처음에는 광선이 사람에게 맞는 모습도 보여주지 않는다. 맨 처음 광선이 발사되면 화면이 바뀌고 앞서 한 엑스트라가 들고 있었던 휴대용 캠코더가 땅에 떨어진다. 처음 광선의 위력을 보게 되는 건 그 휴대용 캠코더의 저화질 창을 통해서다. 그런 다음 도망치는 군중을 찍은 두 개의 화면이 이어지는데, 여기에서 레이는 새 화면이 시작될 때마다 재빨리 도망쳐 화면 밖으로 나가고(*), 카메라는 익명의 엑스트라들이 하나씩 증발하는 광경을 비교적 멀리서 보여준다. 세 번째 화면은 익명의 여성을 이전보다 훨씬 더 가까운 위치에서 따라가며 시작한다. 그녀는 잠시 후 광선에 맞아 재가 된다. 비명을 지르는 얼굴이 관객의 눈앞에서 그대로 재로 변해 흩어지고, 음향 효과 때문에 심지어 비명마저 청각적으로 증발하는 듯하다. 이것이 〈우주 전쟁〉 전체를 통틀어 삼발이의 광선에 파괴당하는 인간의 모습을 가장 자세하게 보여주는 순간이다. 즉, 광선을 맞은 인간들에 대한 묘사는 화면 밖에서 시작해 → 땅에 떨어진 캠코더의 창을 통해서 → 군중들의 앞뒤에서 멀찍이 → 한 사람의 얼굴 앞에 이르기까지 점점 더 가까워지고, 무시무시해지며 절정을 향한다.

그리고 이렇게 증발한 여인의 잿가루를 뚫고 비로소 레이가 화면의 중앙에 다시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이후 영화는 광선이 인간을 살해하는 모습보다는 레이가 살아남아 질주하는 과정을 따라가며 장면을 마무리한다. 이 과정이 워낙 순식간인 데다 앞서 (*)에서 군중들의 앞뒤에 슬쩍 레이를 지나가게 했던 솜씨가 교묘하여 눈치채지 못하고 지나갈 수도 있지만, 광선의 파괴 효과가 군중에서 개인의 얼굴로 점점 집약되었던 것처럼, 광선의 위협에 노출되는 주체 역시 군중에서 레이로 점점 응축되었던 셈이다. 관객의 심리적 초점인 레이에게로.

단, 피사체가 질주하는 모습에는 어쩔 수 없이 늘 어느 정도 활력이 따라붙게 마련이다. 더구나 그것이 저 유명한 '톰 크루즈의 달리기'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렇게 뛰어다니던 레이가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아이들에게 짐을 꾸리라고 하고 피난길에 올랐더라면 어땠을까. 앞서 말한 공포의 정조는 일부분 휘발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즉 재난/공포 영화와 액션 영화의 〈우주 전쟁〉의 발단─이게 겨우 발단이라니─을 수놓는 수많은 빛나는 선택 가운데에서 내가 특히 찬탄해 마지 않는 것은 집에 돌아온 레이에 대한 묘사다. 레이는 넋을 잃은 얼굴로 터덜터덜 들어와 부엌에 주저앉는다. 아이들이 무슨 일이냐고 물어도 대답도 못 한다. 그러다 로비가 "몸에 묻은 거 뭐예요?"라고 묻자 그제야 눈빛이 돌아온다. 레이첼이 몸을 만지려 하자 움찔하며 식탁에 부딪친다. 레이첼이 다시 "몸에 묻은 게 뭐냐고?"라고 말하자 레이는 비로소 자기 몸을 내려다본다. 오 쉿. 건물들이 부서지고 연기가 날리는 통에 뛰어다니느라 잠시 잊고 있었다. 이건 그냥 먼지가 아니다. 사람들의 재. 한때 사람이었던 것들. 그 한 박자 늦은 깨달음이 역한 공포를 몰고 온다. 앞서 레이가 증발한 여인의 잿가루를 뚫고 나타나도록 했던 연출은 생각 이상으로 교활했다. 그는 죽은 사람들을 피해 도망쳤지만, 죽은 사람들은 그에게 묻어 따라왔다. 그러고 보면 〈우주 전쟁〉은 뒤늦게 도착한 것들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고, 잔상을 남기는 이미지들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액션 영화나 공포 영화에서 피 칠갑을 한 주인공이 "이거 내 피 아냐."라고 말하는 장면은 클리셰에 가깝다. 하지만 피가 재로 대체되자 새로운 표현, 새로운 감흥들이 생겨났다. 외계인들이 지구 정복을 꾀하는 이야기라고 대충 넘기지 않고 그들이 어떻게 생긴 기계를 이용할 것인가, 어떻게 등장할 것인가, 어떤 무기를 사용할 것인가, 무기의 효과는 무엇일까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거기 담긴 다양한 가능성을 알뜰하게 활용하고 변주한 덕분이다. 게다가 이건 고작 삼발이의 등장과 광선의 효과에 관한 이야기였을 뿐이다. 〈우주 전쟁〉은 이러한 밀도를 시종일관 유지하며 새로운 이미지에 대한 흥분과 두려움 사이의 경계를 달린다. 유이한 문제라면 영화가 너무나도 유려하게 해낸 것을 말로 풀자니 이토록 지리멸렬해진다는 것과, 말이 지리멸렬하기 때문인지 그 진가를 알리고 나누기가 쉽지 않다는 것 정도일까.

* * *

〈우주 전쟁〉에 대해 이야기하자니 최근에 보고 있는 넷플릭스의 〈데어데블〉이 떠오른다. 현재 시즌 1의 7화까지 보았는데, 이 드라마의 신체 훼손 묘사에는 나쁜 버릇이 있다. 물론 〈데어데블〉은 스플래터 공포 영화가 아니며, 신체 훼손 묘사는 잠깐씩만 등장하는 정도다. 하지만 나는 신체 훼손 묘사가 적다고 느끼기보다는 오히려 〈데어데블〉이 한 화에 한 번 정도 꼴로 신체 훼손 묘사를 불필요하게 과시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5화에서 러시아 마피아 중 한 명이 목이 잘린 시체가 되어 돌아오자 그 형제가 애도하던 중 손님을 맞이하는 장면을 예로 들어볼까. 앞선 화에서 마피아가 목이 잘려 죽는 장면은 어렴풋이 보이기는 했지만 그림자 속에서 짧게 처리했다. 그리고 목이 잘린 시체가 바디백에 담겨 돌아오는 장면에서는 아예 시체를 보여주지 않았다. 그러나 시체가 다시 등장하는 이 장면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카메라는 시체의 가슴을 닦는 형제의 손을 보여주다가 갑자기 반대 방향으로 자리를 옮기고, 이때 시체의 절단 부위─찢어진 살, 끊어진 목뼈─를 꽤 선명하게 보여준다. 심지어 이 훼손된 신체를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었다는 듯, 카메라는 시체의 목에서 출발해 슬며시 위로 올라간다. 여기에는 선정적인 과시욕이 있다. 시체를 일부러 감추는 기색이 역력했던 앞의 두 장면과 이 장면의 도입부를 생각하면, 이 연출은 흡사 '우리가 목 잘린 걸 보여줄까요, 말까요~?' 하면서 감상자를 희롱하다가 기어이 보여주고야 마는 자신을 뿌듯해하는 듯하다. 7화 도입부에서 의문의 사내가 일본 야쿠자의 손을 자르는 장면도 같은 방식이다. 칼을 휘둘러 손이 잘리는 순간은 보여주지 않는다. 다음 화면에서는 바닥에 떨어진 잘려나간 손이 등장하는데, 이때는 손의 절단면은 보이지 않는 각도에서 찍었다. 이 정도는 '칼을 휘둘러 손을 잘랐음'을 기호적으로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카메라는 식은땀을 흘리는 야쿠자의 얼굴을 담은 화면으로 옮겨가고, 의문의 사내가 질문을 던진다. 그러니까 잘린 손에 대한 묘사는 여기서 끝났다. 하지만 다음 순간, 카메라는 야쿠자를 심문하는 사내의 목소리를 배경 삼아 기어이 야쿠자가 부여잡은 팔을 가까이서 찍고야 만다. 이때는 절단면이 선명하게 보인다. 핏빛 살 사이로 허옇게 잘려나간 뼈의 단면까지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그걸 감추었다가 한 발 늦게 클로즈업으로 보여주는 연출에는 이걸로 감상자에게 생리적 충격을 안기겠다는 욕심이 있다.

두 사례 모두 신체 훼손 묘사는 장면에 어떤 것도 더하지 못한다. 이미 알고 있는 정보를 뒤늦게 반복할 뿐, 부연조차 되지 못한다. 그렇다고 신체 훼손 묘사에 쓰인 특수 분장의 질이 대단히 독특하고 뛰어나거나 이를 촬영한 방식이 독창적이어서 어떤 미적 쾌락을 안겨주는 것도 아니다. 그 (계산된) 뒤늦은 타이밍에는 훼손된 신체를 들이밀어 기겁하게 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이는데, 그렇다고 또 기겁할 만큼 과격하거나 집요한 것도 아니어서 딱히 실효를 거두지도 못한 채 의도만 남을 따름이다. 그런데 애초에 왜 그런 의도를? 창작자들이 감상자를 괴롭히는 것을 낙으로 삼는 가학적인 사람들일 가능성을 배제한다면, 아마도 이런 묘사를 통해 〈데어데블〉 세계의 잔혹한 사실성을 간간이 되새겨주겠다는 천진난만한 생각의 결과가 아닐까 싶다. 그보다는 서로 닮은꼴인 윌슨 피스크와 데어데블의 대립,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고통받거나 더 나은 공동체를 꿈꾸는 사람들의 고민이 이미 훨씬 더 '사실적'인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는 점을 망각한 채로.

그리고 나는 이 대목에서 유감스럽게도 21세기 한국 영화들의 신체 훼손 묘사를 떠올리고 있다. 서구에서 유행한 "Asian Extreme" 유의 인식에는 찬성하지 않지만, '새로운 세대'의 영화들이 한국 영화계에 이전에 보기 어려웠던 수위의 폭력 묘사를 도입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자기 작품의 폭력 묘사에 대해서 '보는 사람의 몸이 아팠으면 좋겠다'고 말하던 감독들의 인터뷰도 여럿 떠오른다. 이 새로운 폭력성은 주로 신체 훼손과 맞물려 피어났고, 그리하여 한국 관객들은 이제 배에 칼을 맞는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고 손톱이 빠지거나, 아킬레스건이 썰리거나, 손가락이 잘려나가거나, 두개골이 함몰되거나, 날카로운 금속이 목을 관통하거나, 아예 목이 잘리는 광경을 드물지 않게 보게 되었다.

노파심에 말해두지만 새로운 폭력성을 보여준 한국 영화들이 전부 잘못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영화 속의 직접적인 신체 훼손 묘사를 무조건 거부할 생각도 없다. 나는 그 정도로 건전하지도 않으며, 특히 80년대 미국 공포 영화들의 가공할 신체 훼손 묘사에는 기꺼이 환호한다. 하지만 내가 열광했던 신체 훼손 묘사들은 사실성 자체를 무기로 내세우지 않았고, 늘 다른 효과들이 있었다. 때로는 폭력 묘사의 수위 자체가 영화 내에서 윤리적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고, 과격하되 과장된 톤이 사실성을 희석해 장면 전체를 코미디나 초현실적인 풍경으로 발전시키기도 했다. 어떤 묘사들은 명백한 인공미에 아랑곳하지 않고 어쨌거나 가공할 만한 특수효과 실력을 선보여 그 자체로 탄성을 자아내기도 했다. 하다못해 특별히 다른 기능이 없더라도 최소한 장면의 맥락 안에서 새로 등장한 시각 정보의 위력을 배가하는 역할을 했고.

하지만 최근의 한국 영화들과 한국 영화에서 영향이 역력한 〈데어데블〉과 같은 외국 드라마/영화에서는 점점 더 사실적인 묘사 자체가 목적이거나 이를 통해 관객에게 생리적 반응을 강요하는 자신의 권능에 도취한 폭력 묘사를 자주 맞닥뜨리게 된다. 물론 그중에서도 최악은 끔찍한 이미지를 들이밀어 관객을 움츠러들게 하는 권력에 도취한 자신을 누군가가 지적했을 때 '현실이 이러한데 난들 어쩌란 말이냐, 이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정확하게 묘사한 것이다'라고 발뺌하는 영화다. 마치 끔찍한 광경을 찍으면 그걸 찍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것에 대한 비판이 되고, 그러므로 자신에게는 면죄부가 주어지며, 하지만 무지몽매한 관객들을 일깨우기 위해서는 그 끔찍함을 날 것으로 들이미는 것이 진정성 있는 예술가의 길이라는 양. 그런 영화들이 만들어내는 게으른 이미지에는 어떤 놀람도 경탄도 내어줄 수 없다. 오직 그 적나라하고 얕은 수작에 대한 신음과 진저리만이 있을 뿐이다.



  1. 옷만 남기 전까지는 '사람'을 보지 '옷'을 보지는 않으므로, 사람이 사라지는 순간 옷은 화면에 새로 '등장'한 시각 요소다 [본문으로]
  2. 그래서 〈고질라〉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건 어떻게든 괴수의 동선과 주인공의 동선을 일치시키기 위해 내세우는 변명거리들이었다. 이건 같은 감독이 연출한 〈로그 원: 스타워즈 이야기〉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악역인 크레닉 국장은 은하계 곳곳을 누비며 공작을 벌이는 로그 원 일당의 활약을 일일이 쫓아다니며 스탠딩석에서 관람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루피처럼 보인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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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 게이먼이 쓰고 크리스 리들이 그리고 장미란이 옮긴 그림동화. 닐 게이먼 작품이니 언젠가는 살 수밖에 없었지만 아직 『샌드맨: 서곡』도 못 산 터라 우선순위에서는 조금 밀리는 편이었는데, 마침 닐 게이먼을 좋아하는 친구가 부부 동반으로 아이도 데리고 온다기에 '괜찮으면 선물로 써도 좋지 않아?'라고 구매를 합리화했다. 정작 읽고 보니 작품은 역시나 좋았는데 당장 아이에게 읽어주기에는 망설여지겠다 싶었다. 아이들의 수용력을 무시하는 건 아니고, 썩 다정하지 않은 어조라든가 어휘의 난이도를 고려했을 때 그렇다는 이야기. 또 아이에게 폭력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줄 때는 망설이게 되는 법이기도 하고, 다른 동화들을 합치고 비튼 이야기인 만큼 '원본'을 먼저 읽히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고. 그래도 조금만 나이가 들면 괜찮겠지.

『샌드맨』 때부터 쭉 드는 의문인데, 왜 닐 게이먼은 그림과 함께하는 작품이 더 좋은 걸까 모르겠다. 당연히 글을 못 쓰거나 묘사가 둔한 작가는 아닌데. 문자를 통해 전달되는 정보를 다시 그림을 통해 전달할 때도 정보가 중복되어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기는커녕 서로의 여백을 채워주고 북돋는다. 거꾸로 말하면 글만 있는 작품은 분명히 괜찮은 글인데도 무언가 부족하다는 기분이 들고. 그림이 없는 닐 게이먼의 소설 중에도 물론 좋아하는 작품들이 있지만, 어느 것도 닐 게이먼의 그래픽 노블이나 그림동화만큼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또 닐 게이먼 작품을 TV 드라마나 영화로 보고 싶느냐면 그건 전혀 아니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닐 게이먼의 세계를 보면 틀림없이 금세 김이 빠지고 지루해질 거야. 그러니까 그냥 시각적인 요소를 곁들이면 되는 게 아니라 정보의 단절과 연결이 (영상물에 비해 두드러지게) 눈에 띄며 '사실적'인 이미지를 추구하지 않는 정지된 그림이라는 점이 중요한 건데, 그게 왜 닐 게이먼의 글에는 꼭 필요하다고 느끼는지.

하여간 이번에도 글뿐만 아니라 그림이 끝장이다. 잠자는 미녀 이야기야 원형적인 소재나 다를 바 없지만, 막연하게 '마법에 걸려 잠든 세상'이라고만 생각하는 것과 잠든 세계의 구체적인 형상을 목도하는 건 완전히 다른 경험이다. 44~45쪽의 삽화와 글에서 묘사하는 장미 덩쿨의 디테일─거리에 따른 색채 대비─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고, 54~55쪽에 걸친 삽화는 내가 본 좀비 아포칼립스 이미지 중에서도 최고로 꼽을 만했다. 그래픽 노블은 작가가 대본에서 이미지의 위치나 형태 등을 지정하는 줄 아는데, 이 작품의 삽화에도 닐 게이먼의 아이디어가 어느 정도 반영됐을까? 삽화와 글의 배치 순서나 형태 같은 것도? 그러고 보니 그림책 작가와 삽화가가 어떤 식으로 일하는지는 전혀 모르는구나.

동화 비틀기와 페미니즘에 관해서는 언급을 자제하련다. 백여 쪽밖에 안 되고, 직접 읽는 즐거움을 빼앗고 싶지 않으니까. 기본적으로 잠자는 미녀를 여왕이 깨우러 가는 이야기라는 점, 그리고 현대인에게 어울리는 정치적 적절함을 내세우기 위해 원전을 내심 비웃으면서 그것을 비틀어대는 자신의 전복성을 보라고 윙크하는 하수의 작품은 절대 아니라는 점만 말해두겠다. 닐 게이먼은 빌 윌링험의 『페이블즈』가 그렇듯 원전의 얼개와 요소를 존중하면서 거기 남은 가능성이나 여백을 채우고 확장하며 홀로 오롯이 설 수 있는 자기만의 세계를 세운다. 그래서 『잠자는 미녀와 마법의 물렛가락』을 읽기 전에 꼭 원전을 먼저 읽을 필요는 없을 것도 같다. 『잠자는 미녀와 마법의 물렛가락』을 먼저 읽는 아이들에게는 닐 게이먼이 원전으로 삼은 이야기들이 오히려 여백이 될 테고, 그 아이들이 거꾸로 그 여백을 채우는 것도 멋진 일 아닐까?

출판사 웹사이트에서 가져온 이미지인데 색이 실물과 다르다.
녹색으로 보이는 부분은 실은 금갈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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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신남녀〉[각주:1]의 Blu-ray를 빌려준 친구는 큰 실망을 표했다. 나도 불안을 안고 한동안 망설이다 보았다. 아직 두기봉의 로맨스 영화는 잘 모른다. 더구나 2009년 이후에 나온 두기봉 영화는 그 전만큼 믿음직스럽지는 않았다.

과연 싫어하기 쉬운 영화다. 한 여자와 두 남자의 삼각관계를 중심에 두고 있지만, 그중 고천락이 연기한 장신연이라는 캐릭터가 처음부터 변명의 여지 없이 추하다. 삼각관계가 성립한다는 기본 전제를 인정하기 어려울 정도다. 분명 손에 땀을 쥐고 이 삼각관계의 결론을 기다리기는 했다. 하지만 그 긴장이 정자흔(고원원)이 장신연과 방계굉(오언조) 중 누구를 선택하느냐는 물음에서 비롯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긴장은 과연 이 영화가 정자흔과 장신연을 맺어줌으로써 자신의 몰지각함을 밑바닥까지 드러내고야 마느냐는 근심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물론 마지막에 누구를 선택하든 상관없이 애당초 정자흔이 장신연 따위를 두고 고민하게 한다는 점에서 변호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선 지 오래지만.

장신연이라는 캐릭터의 무도함은 무딘 젠더 감수성에서만 비롯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가슴이 큰 여자를 보면 무천도사처럼 코피를 흘리는 묘사에서는 두기봉 영화에서 곧잘 나타나던 무책임함이 어렴풋이 느껴진다. 여기서 두기봉의 무책임함이란 〈암전 2〉[각주:2]의 대머리독수리와 자전거 질주, 〈유도용호방〉[각주:3]과 〈문조〉[각주:4]의 풍선처럼, 말도 안 되는 상황을 현실적으로 해명하기는커녕 아무런 정당화 없이 밀어붙여 영화 안에서만큼은 불가해한 리듬을 끌어내는 태도를 말한다.[각주:5] 장신연이 암벽 등반가이기도 하다는 뜬금없는 설정을 끌어와 느닷없이 건물 벽을 타고 오르게 하는 대목처럼, 실제로 두기봉의 마술이 어렴풋이 스쳐 지나가는 대목도 있다. 심지어 결정적인 고백의 순간에 갑자기 가슴 큰 여자들이 줄줄이 등장하여 장신연의 본성이 다시금 백일천하에 드러나고야 마는 장면도 두기봉식 명장면이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신연의 과잉은 초현실적인 과잉으로 승화되기에는 지나치게 불쾌하며, 두기봉의 연출도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렇게까지 집요하지는 못하다.

어쩌면 이 영화의 주인공은 지지부진한 연애에 매달리는 인간들이 아니라 그들의 메시지를 실어나르는 창문들인지도 모른다. 인간이 창문을 이용해 연애하는 영화가 아니라 창문이 인간을 이용해 자신의 가능성을 과시하는 영화랄까. 마주 보는 두 건물의 남녀가 창문을 통해 서로를 바라보며 우정을 쌓는 대목까지만 해도 창문의 역할은 그쯤에서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단신남녀〉는 끊임없이, 억지로라도 인간들을 흩어놓으며 계속 창문에 집중한다. 창문의 다채로운 변주가 거의 영화학 개론 1장을 보는 듯하다. 창문은 바깥을 내다보는 창이다. 동시에 창문은 바깥을 향해 자신을 투사하는 스크린이다. 창문을 사이에 둔 두 사람은 서로에게 배우요, 관객이 된다. 물론 어두워질 때면 창문은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되기도 한다. 창문-스크린은 창틀-프레임으로 격리된다. 창틀 바깥의 정보는 볼 수 없다. 혹은 하나의 창틀 안에서도 사물의 배치 동선에 따라 정보를 새로 드러내거나 차단할 수 있다. 창문-스크린 안에 다시 창틀-프레임을 넣어 분할 화면을 만들고 별도의 정보를 한꺼번에 전달할 수도 있다. 창문은 여러 층에 걸쳐 병렬 배치되어 다중 스크린을 구성하며 한꺼번에 세 명 이상의 수신자가 정보를 교환하도록 할 수 있다. 창을 통해 수신되는 정보는 대체로 기호의 형태를 띠므로, 창은 보다 구체적으로는 채팅창일 수 있다. 따라서 휴대폰 스크린 또한 창문이다. 건너편 건물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창 너머로 관찰하면서 이를 휴대폰을 찍어 실시간으로 전송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이 영화에서 무수히 변주되는 창문의 역할을 생각하면, 장신연과 방계굉의 우열은 (장신연의 개차반 같은 성격을 제외하더라도) 명백하다. 방계굉은 영감을 잃은 건축가다. 그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것은 지나가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벽면에 그려낸 정자흔의 그림자다. 그는 이 그림자로 무엇을 하는가? 고층 건물을 짓는다. 유리창으로 가득한 건물이다. 즉, 그는 새로운 창문-스크린들의 설계자다. 그가 새로 건설한 창문들은 한데 모여 각각의 온-오프 상태만으로도 정보를 전달한다. 창문은 이제 그 창문 안에 어떤 내용을 담느냐가 아니라 창문 자체의 성질만으로 표현을 해낸다. 다중 스크린을 이용한 초대형 행위 예술이다. 처음 창문을 이용해 공연을 시작한 것은 장신연이지만, 배우와 감독을 넘어서서 제작자이자 극장 운영주인 동시에 매체의 첨단으로 나아가는 자는 방계굉이다.

다른 한편, 창문-스크린만으로는 모든 정보를 전달할 수 없다. 창문은 영상만을 전달하며, 소리는 전달할 수 없다. 따라서 때로는 변사의 해석이 필요하고[각주:6], 때로는 휴대폰을 이용해 소리를 별도로 전달하여 영상과 동기화해야 한다. 반대로 소리만 들리고 영상이 없을 때도 있다. 캐릭터들은 그 결핍을 채우기 위해 목소리의 주인을 만나러 간다. 따라서 〈단신남녀〉에서 두 남녀의 최종적인 결합은 두 건물 사이의 거리를 넘어가기, 창문-스크린을 넘어가기, 혹은 무성영화에서 발성영화로 넘어가기라고도 할 수 있겠다. 여기서도 장신연과 방계굉의 우열은 명백하다. 장신연은 직접 만나 말을 듣지 않을 때까지만 해도 괜찮은 창문 너머의 배우였다. 반대로 방계굉은 창문 너머의 배우가 되기 전에 먼저 직접 접촉과 목소리를 통해 정자흔을 보살핀다. 장신연이 몰락한 무성영화 스타처럼 보인다고 말하면 지나친 칭찬이 되겠지만, 확실히 그는 거리를 둘 때만 매력 있는 남자다.

〈단신남녀〉는 '홍콩 감독'을 자처하던 두기봉이 첫 프랑스 합작 영화 〈복수〉[각주:7]가 흥행에 실패한 후 그로서는 드물게도 1년 동안 신작을 발표하지 않다가 홍콩 배우와 본토 배우를 기용해 광동어와 북경어를 혼용하여 만든 영화다. 따라서 여기 나오는 물리적 경계, 매체의 경계를 지리적 경계, 정치적 경계로도 읽고 싶은 강한 유혹을 느낀다. 이때 경계를 넘기 어려워서가 아니라 쉽다는 점이 문제다. 나는 아직도 홍콩 영화를 보다가 홍콩에 거주하던 인물이 다음 장면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본토에 있는 상황을 만나면 흠칫 놀라곤 하는데, 〈단신남녀〉도 마찬가지였다. 창문-스크린의 경계를 휴대폰으로 손쉽게 뛰어넘을 수 있는 것처럼, 홍콩과 본토의 왕래는 이제 자유롭다. 리먼 브라더스 파산 이후 세계 금융 위기를 어떻게 해선가 손쉽게 뛰어넘은[각주:8] 세 사람에게는 그럴 만한 돈도 있다. 그렇다면 본토에서 홍콩으로 온 여자는 홍콩 남자와 본토 남자 중 누구를 선택할까?

장신연과 방계굉을 두고 '당연히 방계굉'이라고 말하기는 쉽다. 하지만 그 질문을 홍콩 남자와 본토 남자로 치환한 다음 '당연히 본토 남자'라고 말하는 건, 그것도 두기봉이 자기 제작사에 만든 홍콩 영화를 두고 말하는 건, 어딘가 섬뜩하다. 마지막 장면에서, 장신연은 대형 현수막에 손수 페인트로 쓴 글씨를 내걸어 정자흔의 마음을 돌리려 한다. 하지만 해는 졌다. 무엇보다도 장신연이 현수막을 건 건물은 방계굉이 설계한 본토 건물이다. 그리고 방계굉은 자신이 세운 그 건물-다중 스크린을 이용해 장신연보다 훨씬 더 거대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제삼자의 눈에는 장신연의 메시지 또한 방계굉이 기획한 것처럼 보인다. 이런 싸움 뒤에 장신연과 방계굉이 '대등하게 잘 싸웠다'는 듯이 씩 웃으며 헤어진다고? 정신 승리에도 정도가 있다.

결국 〈단신남녀〉는 두기봉의 항복 선언문이었을까?

* * *


〈단신남녀〉는 홍콩 Intercontinental Video에서 2011년에 출시한 지역 코드 A Blu-ray로 보았다. 21세기 홍콩 영화 Blu-ray가 대체로 그렇듯 본편의 화질과 음질은 나무랄데 없으나 부록은 빈약하다. 예고편 두 개와 메이킹 필름, 삭제 장면이 전부인데, 그나마도 메이킹 필름과 삭제 장면은 SD 화질. 게다가 메이킹 필름은 4:3 화면비에 다시 위아래 블랙 바를 넣은 레터박스 16:9 화면비다. 붙박이 중국어 자막은 있으나 영어 자막은 없고, 어차피 본격적으로 만든 메이킹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개봉 당시 홍보용으로 제작한 "촬영 현장 영상"에 불과하다. 중국어를 할 줄 모르는 나로서는 온몸을 바쳐 연기를 지도하는 두기봉 감독의 장난기 가득한 얼굴을 보는 정도의 의미만 있었다. 삭제 장면에는 중국어 자막도 없다. 본편 자막은 중국어 번체자와 간체자, 그리고 영어 자막을 제공한다. 영어 자막은 무난한 편이지만, 홍콩 타이틀이 대체로 그렇듯 종종 대사에 비해 뜨는 시간이 지나치게 짧을 때가 있다.

웹에서 구할 수 있는 재킷 이미지와 실제 이미지가 조금 다르다. 위 이미지는 디스크 프린팅에만 사용했고, 재킷 이미지에는 같은 구도지만 고원원이 입을 다물고 미소 짓는 사진을 사용했다.


  1. 單身男女, 2011 [본문으로]
  2. 暗戰 2, 2001 [본문으로]
  3. 柔道龍虎榜, 2004 [본문으로]
  4. 文雀, 2008 [본문으로]
  5. 이것이 두기봉만의 무책임함이라기보다는 홍콩 영화 특유의 과잉을 극대화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그렇게 주장해도 될 만큼 홍콩 영화를 잘 알지는 못한다. [본문으로]
  6. 두기봉 영화의 단골인 임설이 이 역할을 맡는다. [본문으로]
  7. 復仇, 2009 [본문으로]
  8. 이 3년의 공백 또한 또 하나의 '경계'일 듯하지만, 나는 2008년 세계 금융 위기가 홍콩-본토의 경제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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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아침에도 『신 엔진』 생각. 설정을 '흔하다'고만 말하고 넘어간 게 마음에 걸려서 조금 더 적기로 한다. 그런데 이건 스포일러에 신경 안 쓰는 내가 보기에도 완전 대왕 스포일러라서 하는 수 없이

접어 말하자면─

신의 힘이 신도의 믿음에 따라 달라진다거나, 신이 문자 그대로 신도를 먹는다거나, 그 '비밀'과 마주한 주인공이 신앙에 회의를 느낀다거나 하는 점들은 다 그냥 클리셰에 가까웠는데, 이거 하나는 정말 좋았다. 인류가 원래는 자체 과학기술로 우주공간 항행도 가능한 종족이었지만 신이 만들어낸 종교라는 책략에 눈멀어 사육당한 뒤로는 그 능력을 잃었고, 그래서 신앙심이 없으면 우주선을 움직일 수 없다는 점. 처음 읽었을 때는 이 대목을 너무 가볍게 지나쳤다. 세계를 움직이는 두 가지 힘/해석이 공존하며, 그중 좀 더 신비롭고 권위적인 쪽의 지배가 다른 하나를 억누른다. 랜달 개릿의 『나폴리 특급살인』 중 「중력의 문제」가 절로 떠오르는(사실 워낙 좋아하는 단편이라 아무 때나 막 떠올리기는 하지만), 진정 SF스러운 대목이다.

그리고 그런 설정이 우주선 안에서 밝혀진다는 점에서 존 스칼지의 능란함을 엿볼 수 있겠지. 지상에서 진실을 깨달았더라면 절망할지언정 '그래, 이제부터는 과학기술이야!' 할 수도 있을 텐데, 우주선 안에서 찾아온 신앙의 위기는 즉각 항행불가=죽음으로 이어진다. 세계를 어떻게 인지하느냐가 곧 생존의 문제다. 다만 테페 함장의 신앙심과 회의, 진실의 폭로 쪽에만 지나치게 무게가 실려 이 가능성을 충분히 다루지는 못한 듯하다. 이 작품에서 테페 함장은 뱃사람이나 군인이라기보다는 회의하는 신앙인이며, 그가 정의호에 품은 애착 또한 까마귀 샬레를 향한 애정과 구분하기 어렵다(『신 엔진』에서 가장 별로였던 부분). 그보다는 승무원들의 뱃사람다운 면모를 강조했더라면 어땠을까. 신앙은 착취의 체계임이 밝혀졌지만, 그 거짓을 믿지 않으면 배를 움직일 수 없다. 그런 딜레마와 좀 더 정면으로 마주하게 했더라면? 결말도 지금처럼 폭력적인 마무리보다 오히려 조용하고 음산하게 처리할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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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거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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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과 기내에서 읽기 적당한 분량의 책을 고르다가 『신 엔진』을 다시 읽었다. 착륙 안내 방송 직전에 다 읽었으니 탁월한 선택이었다. (스티븐 킹 장편 소설 같은 걸 다 읽으려면 몇 시간을 비행해야 할까?)

처음 한동안은 '대체 왜 내가 이 재미있는 소설을 몰라봤지?' 하며 자책했다. 분위기 죽이고, 소도구 인상적이고, 논리 탄탄하고. 설정이 참신하다고 칭찬하는 목소리에는 늘 동의하기 어려웠지만─신도의 신앙심에 의해 신의 힘이 결정된다는 설정, 좋아하기는 하는데 어쨌든 흔하지 않나?─설정만 믿고 잘난 척하는 작품도 아니고. 정말 왜 이런 작품에 시비를 걸었던 거야? 그러나 끝까지 읽고 나니 지난날 내 마음을 다시 이해할 수 있었다. 더 크고 산만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지나치게 간결하고 효율적이어서 효과는 너무 뚜렷하고 생기는 덜하다. 역자 후기에서 언급한 대로 밝은 스칼지와 어두운 스칼지가 있다면 아직 본체는 밝은 스칼지가 아닐까. 자기 세계에 심취해 즐겁게 수다를 떤 듯한 다른 작품들과 달리 『신 엔진』은 꼭 필요한 만큼만 써서 핵심을 정확하게 전달한 후 곧장 펜을 놓았다는 인상이다. 물론 그런 글쓰기를 의도적으로 실험해봤을 수도 있으니 이건 추론이라기보다는 상상에 불과하지만.

여하간 덕분에 소설 독자로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다시금 확인하게 됐다.

그런데 묘사를 (아마도) 전보다 세밀하게 따라가다 보니 영화로는 무척 보고 싶어졌다. 정확히는 80년대의 존 카펜터 + 롭 보틴이 만든 판본으로. 그게 아니면 80년대의 스튜어트 고든이라도. 신체 훼손 장면들 아날로그 특수효과로 보고 싶고, '주교의 소명' 행진 장면도 매트 페인팅으로 그린 모습을 상상했다. 잘만 연출하면 큰 돈 들이지 않고도 걸작 SF 공포 영화가 나왔을 거다. 요즘 같아서는… 기대 안 해. 우리 주님의 등장 장면 같은 거 굳이 CG로 본들 경외감 같은 거 생길 리 없겠지.

그나저나 존 스칼지 노인의 우주 시리즈 『마지막 행성』까지만 읽고 접었는데 또 신간 나왔네. 계속 재미있으려나.

Posted by 거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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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영 평론가가 시네마테크 부산 원장으로서 시네마테크 부산 무가 소식지 《시네마테크 부산》에 연재했던 칼럼 「店主雜談」을 옮긴다. 예전 수영만 요트경기장에 있을 때 시네마테크 부산을 방문했다가 소식지를 읽고 이런 글도 쓰는구나 하며 좋아했는데, 사는 곳이 다른 관계로 정기적으로 접할 수는 없었다. 이 칼럼은 한동안은 부산국제영화제 홈페이지에 게재되기도 했으나 그것도 홈페이지 개편 이후로는 사라졌다. 그 기억을 담아두고만 있다가 2015년 봄에 영화의 전당에 갔을 때 자료실에서 보관하고 있는 자료를 전부 복사해왔다. 다만 영화의 전당에서도 《시네마테크 부산》을 전부 모아두고 있지는 않았다.

칼럼 제목은 원문에 붙어있던 게 아니라 본문을 열지 않고도 내용을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내가 임의로 붙인 것이다. 일부 비문이나 오타를 다듬고 언급된 영화들의 원제와 발표연도를 첨부한 것을 제외하면 원문의 표기 방식을 유지했다.

「店主雜談」은 통상 소식지 맨 앞 장 뒷면에 실렸는데, 그 아래에는 그 달의 상영 시간표가 게재되어 있었다. 이 상영 시간표를 토대로 당시 어떤 상영이 있었는지도 간략하게 적어보았다. 독립영화정기상영 일정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는데, 매주 정해진 요일에 정기적으로 있었다는 점 외에 어떤 영화들을 상영했는지는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1호 (2006년 3월) : 칼 테오도르 드레이어와 (다시) 만나다

경험담 한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30대 초반까지 칼 드레이어의 영화 중에 〈잔 다르크의 수난La Passion de Jeanne d'Arc, 1928〉밖에는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어렵게 구한 비디오로 〈오데트Ordet, 1955〉와 〈게르트루드Gertrud, 1964〉와 〈분노의 날Vredens dag, 1943〉을 본 적이 있었지만 그 영화들이 마음에 담기지 않았습니다.

4년 전 스크린에서 그 영화들을 보는 순간 저는 전율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감흥에 사로잡혔습니다. 인물들이 방안을 서서히 걸어 다니기만 할 뿐인데도 그 미세한 동작에서 퍼져 나오는 움직임의 아름다움은 거의 숭고하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그 영화들을 보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의 10베스트 목록이 바뀌었습니다. 망설임 없이 〈분노의 날〉을 맨 위에 올렸습니다. 자신의 10베스트 순위가 바뀌는 체험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가장 황홀한 순간 중 하나일 것입니다. 중요한 건 아무리 집에서 비디오와 DVD를 쌓아놓고 본다 해도, 그 체험은 늘 극장에서 일어난다는 겁니다.

나루세 미키오의 〈부운浮雲, 1955〉을 비디오로 본다고 그 인물의 슬픔을 느낄 수 있을까요. 혹은 무르나우의 〈선라이즈Sunrise, 1927〉를 아무리 화질 좋은 DVD로 본다고 그 풍경과 표정의 그로테스크한 아름다움이 마음에 다가올까요. 진심으로 권합니다. 극장의 어둠 속으로 들어오시기를.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극장의 어둠과 함께 그리고 스크린의 크기로 보지 않았다면 당신은 아직 그 영화를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정말 좋은 영화일수록 극장 어둠 속에서 말을 건넵니다. 그래서 우리의 10베스트 목록을 뒤흔듭니다. 부산 시네마테크는 여러분의 10베스트 목록을 위협하기 위해 존재하는 곳입니다. 이 소식지를 통해 여러분에게 그 위협적인 영화들의 목록을 앞으로 더욱더 많이 송신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시네마테크 부산 원장 허문영

이달 시네마테크 부산에서는 3월 4일부터 23일까지 "1930 독립영화정기상영"을 열었고, 24일부터는 "월드 시네마 III"을 시작했다. 〈분노의 날〉과 〈부운〉은 "월드 시네마 III" 상영작이었다. 22일 수요씨네클럽에서는 김지운 감독의 추천작 〈글로리아Gloria, 1980〉를 상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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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 (2006년 4월) : 고전기 미국 영화를 권함

부산이든 서울이든 시네마테크를 가다 보면 흥미로운 패턴 하나를 알게 됩니다. 미국 영화를 상영할 때는 유럽 영화를 상영할 때보다 관객이 훨씬 적다는 것입니다. 부산을 예로 들면 에릭 로메르 회고전에는 2천 명이 와도 하워드 혹스 회고전에는 3, 4백 명 밖에 오지 않습니다. 이건 할리우드 영화가 여전히 강세인 일반 극장과는 정반대의 현상이지요.

영화사적 지위에 있어서 20세기 영화예술의 만신전에 올라있는 혹스가 훨씬 앞서 있다는 점, 게다가 혹스가 당대에 가장 대중적인 감독 가운데 하나였고 로메르는 평생 개인적인 영화를 만들어온 사람이라는 점을 떠올려보면 이건 기묘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엔 많은 이유가 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그 이유 중의 하나는 1990년 전후에 시작된 영화광 문화의 정착기에 '교양으로서의 영화' 혹은 '지적 영화'가 과도하게 강조됐고 오늘에도 그것이 여전히 영화광들 사이에서 중시되기 때문이 아닌가 짐작합니다.

저는 예술로서의 영화를 아끼는 많은 사람들에게 고전기 미국 영화를 권하고 싶습니다. 20세기 영화예술의 반은 미국에서 나왔으며 더구나 1960년대 이후의 유럽영화는 대부분이 고전기 미국영화에 대한 대답 혹은 일종의 리액션이었기 때문입니다. 20세기 최고의 문제적 데뷔작 〈네 멋대로 해라À bout de souffle, 1960〉에서 고다르는 미국의 군소제작사인 모노그램에 헌사를 표했습니다. 실제로 미국 누아르를 알지 못한다면 이 영화가 벌이는 형식의 유희를 즐길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그냥 인기 있는 감독들에 불과했던 혹스, 존 포드, 히치콕의 영화들에서 절정의 예술성을 발견한 것도 고다르를 비롯한 프랑스의 지적 영화광들이었습니다.

어떤 고전기 미국영화에 흥미를 느끼는 순간 여러분은 자신도 모르게 영화사의 한가운데 들어와 있게 됩니다. 예컨대 〈사냥꾼의 밤The Night of the Hunter, 1955〉을 사랑하는 순간, 여러분은 이 기묘한 영화를 낳게 한 필름누아르의 전통 곁에 있는 것이며, 프랑수와 트뤼포가 이 영화에 극단적인 애정 고백을 하는 순간을 만나게 되며, 릴리언 기시의 숭고한 무성영화 시대의 자장 안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아직 만나지 못하셨다면 그 소중한 기회를 꼭 가지시길 빕니다. 그러면 아마도 영화가 더 좋아질 것이고 더 잘 보일 것이라고 믿습니다.

시네마테크 부산 원장 허문영

이달 시네마테크 부산에서는 3월에 시작한 "월드 시네마 III"가 16일까지 이어졌고, 이후는 일반 상영작으로 채워졌다. 〈사냥꾼의 밤〉은 "월드 시네마 III" 상영작이었다. 19일 수요시네클럽에서는 정지우 감독의 추천작 〈로제타Rosetta, 1999〉를 상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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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 (2006년 5월) : 이것도 예술영화인가

예술영화라는 단어를 보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는지요. 예술영화는 흔히, 느리고 정적이며, 대사는 알아듣기 힘들고 이야기는 종잡을 수 없으며 난데없는 장면에서 끝나는, 지적이고 난해한 영화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시네마테크는 그런 영화들을 소개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좀 다릅니다. 사실 예술영화라는 개념은 예술소설 혹은 예술회화와 마찬가지로 성립할 수 없는 개념입니다. 이 용어는 대중성이 강한 미국 영화가 세계시장을 장악하자, 시장의 변방으로 밀려난 유럽의 개인적 영화들을 통칭하는 편의상의 용어로 사용됐을 따름입니다.

그러나 누구나 알고 있듯 다른 예술에서와 마찬가지로 영화에서도 대중성과 예술성은 양립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20세기 영화사의 위대한 순간은 알프레드 히치콕의 작품들이 대변하듯이 종종 탁월한 대중적 호소력이 절정의 예술성과 조우할 때 출현했습니다. 사견이지만 저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우주전쟁War of the Worlds, 2005〉이 미학적 성취에서 웬만한 유럽영화를 압도하는 뛰어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소위 '예술영화'의 탈을 쓴 온갖 시시껄렁한 영화들도 넘쳐납니다.

5월 4일부터 열리는 샘 페킨파 특별전을 보실 관객들 중에는 '이런 대중적인 영화도 예술영화인가' 라는 의구심을 갖는 분이 혹시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박찬욱 감독은 이번에 상영되는 작품 중의 하나인 〈가르시아Bring Me the Head of Alfredo Garcia, 1974〉에 대해 〈박찬욱의 오마주〉라는 저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비평가와 대중에 의해 천대받고 모멸당했던 이 영화야말로 샘 페킨파의 진정한 걸작이고 미국 B무비 전통의 개가이며, 가장 독창적인 로드무비이자 컬트 중의 컬트, 보기 드물게 순수한 형태의 아트필름이다."

시네마테크는 말 그대로 박물관입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시중 극장에서 상영되지 못하는 온갖 종류의 영화들이 진열되는 곳입니다. 이 작고도 큰 박물관에서 공인된 '예술영화' 뿐만 아니라 싸구려로 폄하된 대중영화들에서도 숨은 예술성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리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시네마테크 부산 원장 허문영

이달 시네마테크 부산에서는 4일부터 21일까지 매일 한두 편씩 "샘 페킨파 특별전"을 열었고, 일반 상영도 병행했다. 24일 수요시네클럽에서는 류승완 감독의 추천작 〈킬러The Killers, 1964〉를 상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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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호 (2006년 6월) : 샘 페킨파 특별전

샘 페킨파 특별전 첫날인 지난 5월 4일, 신작을 촬영 중인 박찬욱 감독은 〈가르시아Bring Me the Head of Alfredo Garcia, 1974〉를 보고 관객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시네마테크 부산을 찾았습니다. 아마도 그 경험이 열혈 영화광인 그의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들었나 봅니다. 그는 이후에도 스탭들의 구박을 받아가며 몇 번 더 샘 페킨파의 영화를 보기 위해 시네마테크를 찾았습니다.

〈대평원Ride the High Country, 1962〉과 〈관계의 종말Pat Garret & Billy the Kid, 1973〉을 상영한 5월 7일에도 그는 임수정양과 함께 방문했습니다. 그날 밤, 오승욱 감독, 김영진 평론가와 함께한 술자리에서 그는 "두 영화를 프린트로 연이어 관람한다는 건 신의 축복"이라고 말했습니다. 혹시 과장이라고 느끼십니까. 정말 궁금해서 "아직도 샘 페킨파의 최고작은 〈가르시아〉라고 생각하는가"라고 제가 물어보았습니다. 그의 대답. "오늘로 바뀌었다. 페킨파의 최고작은 〈관계의 종말〉이다."

자신의 베스트 목록이 바뀌는 영화 체험, 그건 영화광들에게 명백한 신의 축복입니다. 중요한 점은 그가 〈관계의 종말〉을 비디오로 이미 여러 번 봤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마침내 스크린에서 그 영화를 만나는 순간 그는 "완전히 새로운 영화를 만났다"는 것입니다. 〈관계의 종말〉을 너무 좋아해서 수십 번 비디오로 봤던 저도 실은 똑같은 체험을 했습니다. 그 관람은 올해 가장 감격적인 순간이었습니다. (나중에 이 말을 전해 들은 류승완 감독은 매우 애통해하더군요.)

자크 타티 회고전이 곧 열립니다. 지난 4월에 열린 '월드시네마 3' 때 타티의 〈윌로씨의 휴가Les Vacances de monsieur Hulot, 1953〉를 관객과 함께 관람하던 기억이 납니다. 꼬마가 아이스크림 두 개를 사서 난관을 뚫고 마침내 형에게 하나를 주는 장면에서 객석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이건 정말 영화적 지식과 무관한, 가장 숭고한 영화적 순간에 대한 경탄입니다. 그런 감격과 경탄의 순간을 6월의 시네마테크 부산에서 다시 만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원장 허문영

이달 시네마테크 부산에서는 11일까지 일반 상영이 있었고, 이후 13~15일 사흘 동안 "이마무라 쇼헤이 추모전"을 열었으며, 16일부터 29일까지는 "자크 타티 특별전"을 열었다. 상영작 중에는 〈윌로 씨의 휴가〉도 있었다. 21일 수요시네클럽에서는 정성일 평론가의 추천작 〈서부의 사나이Man of the West, 1959〉를 상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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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호 (2006년 7월) : 타티, 채플린, 헤어쪼그-미친 예술가들

자크 타티 특별전을 열면서 만든 자료집에, 저명한 평론가 조너선 로젠봄의 글이 실려 있습니다. 로젠봄은 실현되지 못한 타티의 마지막 프로젝트 〈혼란〉의 각본가로, 만년의 타티를 가까이서 지켜보았습니다. 그의 글엔 자연인으로서의 타티의 모습이 묘사돼 있습니다. 그 글에서 정말 인상적인 건 로젠봄의 배꼽을 쥐게 만든 일상에서의 타티의 우스꽝스런 즉석 연기가 아니라 비서의 사소한 잘못에도 분을 참지 못하고 불같이 화를 내는 장면이었습니다. 우리의 다정한 윌로씨라면 그러지 않았겠지요.

장 르느와르가 그의 자서전에서 전해준 일화도 생각납니다. 찰리 채플린을 신처럼 숭배했던 르느와르는 채플린의 이혼한 두 번째 부인 폴레트 고다드(〈모던 타임즈Modern Times, 1936〉의 그 소녀)와 친해졌습니다. 그리고 폴레트의 활달하고 온화한 성품에 깊이 감화돼 "채플린이 어떻게 당신 같은 여인과 헤어졌는지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폴레트는 채플린이 자신을 떠난 게 아니라 자신이 채플린을 떠난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채플린은 일상생활에서 너무 재미없고 우울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르느와르의 기억할만한 표현. "채플린은 모든 유머를 자신의 영화를 위해 아껴둔 사람이었다."

위대한 희극의 창조자들의 정신엔 이런 깊은 어둠이 있다는 건 흥미로운 일입니다. 그것은 타고난 성품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창작에 대한 미치광이 같은 집착이 낳은 결과라고 추측됩니다.

자크 타티 특별전 직후에 열리는 특별전의 주인공 베르너 헤어쪼그의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페루 산악지대에서 〈아귀레, 신의 분노Aguirre, der Zorn Gottes, 1972〉를 촬영하던 중, 지옥 같은 촬영현장에 치를 떨면서 철저히 비협조적으로 변한 주연 배우 클라우스 킨스키에게 헤어쪼그는 총을 겨누며 말합니다. "영화를 찍을 텐가, 아니면 여기서 죽을 텐가." 〈아귀레, 신의 분노〉를 보면(이 영화는 정말 스크린으로 보기 전에는 봤다고 말할 수 없는 온통 육체적인 영화입니다) 이 영화가 정말 미치광이의 집착이 만든 영화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만든 그 집착이, 어쩌면 그 집착만이, 시간의 벽을 넘어 오늘의 우리를 전율케 하는 그들의 창작을 가능케 했겠지요. 무기력과 타협이 상식이 된 시대에, 멈출 줄 몰랐던 미친 예술가들과의 만남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원장 허문영

이달 시네마테크 부산에서는 6월에 시작한 "베르너 헤어쪼그 특별전"을 16일까지 하루에 두세 편씩 이어갔고, 일반상영도 병행했다. 〈아귀레, 신의 분노〉는 "베르너 헤어쪼그 특별전" 상영작이었다. 19일 수요시네클럽에서는 봉준호 감독의 추천작 〈천국과 지옥天国と地獄, 1963〉을 상영했다. 이어 20일부터는 "B급 호러 영화 파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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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호 (2006년 8월) : 정성일의 열정

6월 22일에 열린 정성일 씨의 자크 타티 강연에 온 관객은 많지는 않았습니다. 한 시간으로 예정된 강연은 두 시간 반을 넘기고 밤 11시경에 끝났습니다. 시간이 더 주어졌다면 정성일 씨의 강연은 5시간은 너끈히 넘길 태세였습니다.

제 생각에 그날 오신 관객은 귀한 선물을 받고 가셨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그 강연은 감동적이었는데, 그 감동은 그 강연의 예리함과 깊이에만 있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 강연은 무엇보다 자신이 진정으로 숭배해온 영화감독에게 한 열혈 영화광이 바치는 뜨거운 헌사였습니다.

세상에 너무 많은 영화가 있고 너무 많은 찬사가 함부로 말해지고 있어 열광마저 클리셰가 되어버린 세상에서, 마치 영화라는 존재를 처음 만나 넋을 잃은 아이가 그 순간의 황홀을 말할 때의 원초적 흥분 같은, 이제는 희미해져 가는 전율과 감흥이 그 강연에 담겨있었습니다. 강연을 듣는 내내 소름이 돋았고, 저뿐 아니라 모든 관객이 꼼짝 앓고 그 강연에 빠져 있었습니다.

수없이 실망하면서도 줄기차게 그 많은 영화를 보는 것은 결국 어떤 영화들이 그 원초적 흥분을 되살려주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재미있는 영화와 재미없는 영화만 있는 건 아닙니다. 전율하며 기꺼이 숭배하고픈 영화들이 있어, 영화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그 강연에 오지 않으신 (그래서 선물을 놓치신) 분들도 그런 전율의 또 다른 순간을 시네마테크에서 만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이달 시네마테크 부산에서는 7월에 시작한 "B급 호러 영화 파티"를 10일까지 이어갔다. 23일 수요시네클럽에서는 김태용 감독의 추천작 〈케스Kes, 1969〉를 상영했다. 나머지는 일반 상영으로 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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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호 (2006년 9~10월) : 켄 로치와 홍상수

8월 23일 열린 수요시네클럽의 영화는 켄 로치의 〈케스Kes, 1969〉였습니다. 켄 로치는 널리 알려져 있듯이 사회주의자입니다. 하지만 그는 열광을 강요하는 교조주의자가 아닙니다. 〈랜드 앤 프리덤Land and Freedom, 1995〉을 보면 그는 스탈린, 혹은 제도화된 사회주의에 대해선 증오심을 가진 사람입니다. 냉정하고 조심스러우며, 〈케스〉에서 알 수 있듯이 때로 비관적으로까지 보입니다. 하지만 그는 1967년에 데뷔작을 만든 이래 40년 동안 어떤 영화에서도 끝내 희망과 이상을 버린 적이 없습니다.

한국에 홍상수라는 감독이 있습니다. 그는 단 한 번도 희망을 말한 적이 없습니다. 어떤 관객은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당신 영화에선 모든 고귀한 감정을 경멸함으로써 자살을 충동케 하면서, 왜 당신은 자살하지 않는가"라고 도발적인 질문을 한 적도 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소중하고 숭고하다고 생각해온 모든 인간적 덕목이 실은 매우 한심하고 위선적이라는 사실을 수긍케 합니다.

결코 한 편에 설 수 없을 것 같은 두 감독을 우리는 모두 존경합니다. 그것은 그들이 우리가 일상에서 잊고 살게 되는 허위의식을 일깨우기 때문입니다. 물론 두 사람의 방식은 다릅니다. 켄 로치는 허위의식 자체를 비판합니다. 홍상수는 반면 허위의식이 생산되는 틀, 의식의 주형을 공격합니다. 켄 로치가 훨씬 더 높은 국제적 명성이 있고 훨씬 더 많은 상을 받았지만, 바로 그런 차이 때문에 적어도 오늘의 우리에겐 홍상수가 더 중요한 감독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의 문제 제기가 더 근본적이고 더 영화적이기 때문입니다.

지난여름은 〈괴물2005〉의 계절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영화의 놀라운 대중적 호소력과 복잡한 정치적 메시지를 말하는 데 깊이 몰두했습니다. 그리고 8월 31일 홍상수의 〈해변의 여인2006〉이 개봉합니다. 이 영화는 홍상수가 자기를 말하면서도 자기를 넘어서려는 의지로 가득 찬, 올해의 가장 중요한 그리고 가장 뛰어난 한국영화입니다. 시네마테크의 정신은 시네마테크라는 공간 안에만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 시대의 희귀한 근본주의자 홍상수의 영화를 보고 그것을 토론하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든 시네마테크가 될 것입니다.

9월 1일 시네마테크 부산은 마침내 숭고한 비애의 작가 나루세 미키오의 회고전을 시작합니다. 청승맞은 멜로드라마가 위대한 예술로 다시 태어나는 기적을 그의 영화에서 만나게 됩니다. 시네마테크 가족들에게 2006년 9월은 나루세 미키오와 〈해변의 여인〉이었다고 기억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허문영

《시네마테크 부산》 창간 이후 처음으로 두 달을 한꺼번에 다루었다. 11회 부산국제영화제와 추석 연휴로 인해 10월 3일부터 20일까지 영화 상영이 없어 생긴 일이었다. 9월 1일부터 17일까지 "나루세 미키오 특별전"을 열었고, 19일부터 22일까지는 "칸 국제 광고제 수상작"을 진행했으며, 이후 23일부터는 "팡테옹 뒤 시네마 프랑세"를 시작하여 10월 1일까지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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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호 (2006년 11월) : 켄 로치의 비타협

칸 영화제는 솔직히 좀 재수 없는 곳입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를 치르고 나서, 영화제가 게스트에 너무 신경을 쓰느라 관객 서비스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하지 않았느냐고 지적하시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 지적은 엄중히 새겨들어야 하겠지만, 칸 영화제는 그 점에선 거의 극단적입니다. 칸 영화제는 말하자면 게스트만을 위한 영화제입니다. 게스트들이 버리는 표 한 장을 구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상영관 앞에 긴 줄을 서 있는 현지 관객들의 모습을 보는 건 드문 일이 아닙니다. 일반 관객들이 개 · 폐막식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합니다.

게다가 게스트들의 등급도 엄격히 나눠져 있어서 하위 등급의 게스트는 종종 설움을 당합니다. 예컨대 파란 아이디를 가진 사람은 분홍 아이디를 가진 사람이 다 입장해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상위 등급의 게스트들로 자리가 다 차면 하위 등급의 게스트는 발길을 돌려야 합니다. 물론 이것은 최대 규모의 프레스와 게스트가 몰려드는 칸 영화제의 특성상 불가피한 점이 있을 것이고, 또한 프랑스 고유의 귀족문화의 영향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경쟁작 감독과 배우들이 규정에 따라 턱시도를 입고 화려한 플래시를 받으며 상영관에 입장할 때 그리고 그 광경을 현지인들은 차단 시설 너머에서 먼발치로 구경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불편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켄 로치를 말하기 위해 좀 돌아왔습니다. 올해 칸 영화제는 켄 로치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The Wind That Shakes the Barley, 2006〉에 최고의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선사했습니다. 이건 기묘한 일입니다. 켄 로치는 일생 동안 전 세계 노동자와 빈민, 그리고 피억압자의 편에 서서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동족에 의해 처형된 한 아일랜드 사회주의자에 관한 분노와 슬픔의 영화입니다. 아마도 켄 로치의 영화와 칸 영화제의 귀족문화는 상극이겠지요. 켄 로치는 칸 영화제의 레드카펫을 청바지 차림으로 밟은 사람으로도 유명합니다. 그럼에도 칸 영화제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켄 로치의 신작을 거의 빠짐없이 경쟁부문에 초청해왔고, 마침내 최고의 상을 부여했습니다.

칸의 선택에 반드시 동의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저 콧대 높고 귀족 취향으로 무장한 칸이 이 피억압자의 영원한 친구에게 바치는, 저자세에 가까운 경배는 흥미롭기 짝이 없습니다. 이건 켄 로치의 영화가 지닌 힘과 가치를 드러내는 일면일 것입니다.

켄 로치 회고전이 11월 10일부터 열립니다. 그의 영화를 보면 망연자실해집니다. 위대한 예술 앞에서 흔히 말문이 막히지만 그것과는 또 다른 체험입니다. 그의 영화는 형식의 혁신을 이룬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거기엔 숭고한 비타협성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정신, 정치적 신념과 예술적 신념이 먼지만한 이물질도 없이 완벽하게 합일하는 순간의 아찔한 섬광이 있습니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의 찬탄할 만한 강인함은 그 창작자가 70살 먹은 노인이라는 사실을 상상하기 힘들게 합니다.

누구와도 비견될 수 없는 이 늙은 사회주의자의 위대한 영화적 자취를 한꺼번에 만나는 일은 어쩔 수 없이 설렙니다. 그 설렘을 많은 사람과 나눌 수 있기를 빕니다.

허문영

부산국제영화제 이후 일반 상영을 이어가던 시네마테크 부산에서는 10일부터 26일까지 "켄 로치 특별전"을 열었다. 상영작 중에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도 있었다. 22일 수요시네클럽에서는 박찬욱 감독의 추천작 〈센소Senso, 1954〉를 상영했고, 28일부터 시작한 "마르셀 카르네 & 쥘리앙 뒤비비에 특별전"은 12월까지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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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호 (2006년 12월) : 카르네와 뒤비비에에 대한 트뤼포의 모순

올 여름에 번역 출간된 〈트뤼포-영원한 시네필의 초상〉에는 스무 살의 청년 프랑수아 트뤼포가 충동적으로 군 입대를 자원했다가 탈영을 결심하며 친구에게 보낸 편지가 소개돼 있습니다. "곧 나는 나 자신이... 〈안개 낀 부두Le Quai des brumes, 1938〉 첫 부분에서 (탈영병인) 장 가뱅과 똑같은 상황에 놓여있음을 발견하겠지... 그리고 알제리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망향Pépé le Moko, 1937〉의 끝 장면에서 그를 싣지 않은 채 배가 떠나갈 때의 장 가뱅 역할을 행하겠지!"

이 편지는 흥미롭습니다. 프랑수아 트뤼포는 이 편지를 쓴 지 3년 뒤에 〈카이에 뒤 시네마〉에 발표한 '프랑스 영화의 어떤 경향'이란 유명한 글에서 그리고 그 뒤에 잇따라 쓴 여러 비평문에서 〈안개 낀 부두〉의 감독 마르셀 카르네를 비롯한 당시 프랑스 주류영화인을 맹공합니다. 그런데 불과 3년 전, 죽음의 문턱에 섰을 때(트뤼포는 입대 직전에 자살을 기도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인생의 가장 중대한 기로에 섰을 때, 트뤼포는 자기 이미지를 카르네와 뒤비비에의 영화로 상상하고 있는 것입니다.

트뤼포는 20세기 후반의 시네필들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을 끼친 인물입니다. 감독 이전에 맹렬한 영화광이자 걸출한 비평가였던 그의 한 마디로 범작이 걸작으로 탈바꿈했으며, 그 반대의 일도 종종 일어났습니다. 그의 영화 감식안은 여전히 경탄의 대상이며, 그의 견해는 존중받을 가치가 충분합니다. 그러나 트뤼포의 리스트는 당연한 얘기지만, 숭배의 대상이 될 때 오히려 해롭습니다. 우리는 트뤼포가 감독으로 사는 동안 그가 한때 폄하했던 고전주의적이며 사실주의적인 영화로 종종 돌아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를 비난하는 근거라기보다는 영화와 예술의 복합성과 모호성, 혹은 취향의 불가피한 균열과 모순의 징후에 가까울 것입니다.

병적으로 소심하고 예민한 스무 살의 청년이 내면의 통증으로 아파할 때, 카르네와 뒤비비에의 영화로 자신을 위로한 건 자연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두 사람의 영화는 방황하는 젊음의 황량한 내면과 당대의 공기를 누구보다 예민하게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트뤼포는 카르네의 〈밤의 방문객Les Visiteurs du soir, 1942〉을 두 번째 보면서 영화광의 자의식을 갖기 시작했고 〈인생유전Les Enfants du paradis, 1945〉을 9번 보며 영화에의 꿈을 키웠다고 회고하고 있습니다. 그 시대를 청년으로 살았던 이 땅의 아버지 세대들이 그들의 영화를 마음에 깊이 품었던 것도 마찬가지 이유일 것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선배 평론가인 박평식 선생은 줄리앙 뒤비비에의 〈나의 청춘 마리안느Marianne de ma jeunesse, 1955〉를 '내 인생의 영화'로 꼽고 있습니다)

카르네와 뒤비비에의 주옥 같은 대표작들은 오늘의 젊은 관객들에게도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2006년 늦가을의 마지막 날들이 두 영화 시인의 노래로 조금은 더 풍요로워지기를 빕니다.

허문영

이달 시네마테크 부산에서는 11월부터 시작된 "마르셀 카르네 & 줄리앙 뒤비비에 회고전"을 14일까지 이어갔다. 〈망향〉, 〈안개 낀 부두〉, 〈밤의 방문객〉, 〈인생유전〉, 〈나의 청춘 마리안느〉 모두 "마르셀 카르네 & 줄리앙 뒤비비에 회고전" 상영작이었다. 15일부터 25일까지는 "아듀 2006 마이 베스트 무비즈"를 열었으며, 20일 수요시네클럽에서는 최동훈 감독의 추천작 〈지하실의 멜로디Mélodie en sous-sol, 1963〉를 상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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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호 (2007년 1월) : 두 사람의 사직과 회의주의

가깝게 지내던 두 사람이 최근 비슷한 시기에 회사를 그만뒀습니다. 두 사람 다 영화 담당 기자였고, 한 사람은 가장 진보적이라고 알려진 신문, 다른 한 사람은 가장 보수적이라고 알려진 신문에 다녔습니다. 회사를 그만두는 이유는 여러 가지일 것입니다. 다만 그동안 그들과 나눈 대화로 짐작해보면 두 사람의 사직 이유 가운데 한 가지는 비슷한 것 같습니다.

승진해 요직을 맡았는데도 그만둔 한 친구는 사직 직후에 이런 요지의 말을 했습니다. "세상에 나쁜 일이 일어나면 기사를 쓸 때 그 일의 원인과 개선 방향을 말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어떤 일에 내가 알 수 있는 이유가 꼭 있다는 것을 믿기 힘들다. 또 그것이 바뀔 수 있다고 믿기도 힘들다. 그러니 기사를 쓸 때 나는 늘 거짓말을 해야 한다." 또 다른 친구는 술자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순수한 사람을 좋아할 수 없다."

우리는 좌우 혹은 보수와 진보라는 이분법을 흔하게 사용합니다. 그러나 두 친구를 보고 있으면 이런 구분이 그다지 유용하지 않다고 느끼게 됩니다. 굳이 나누자면 한 사람은 진보적이고 다른 한 사람은 보수적이지만 제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그들이 공통적으로 회의주의자라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높은 목소리를 좋아하지 않았고, 확신에 찬 말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속한 집단이 원하는 신념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귀가 컸고, 술을 좋아했으며, 언어를 존중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은 오랫동안 영화를 좋아했고 고민했습니다. 행인지 불행인지, 영화 담당 기자를 하는 동안 그들의 깊은 회의는 영화라는 친구를 찾아낸 것 같습니다. 혹은, 영화가 그들의 회의의 방법이 된 것 같습니다. 이제 한 사람은 영화 제작의 길을, 다른 한 사람은 영화 연구와 영화 글쓰기의 길을 가게 됩니다. 김훈이 〈칼의 노래〉 서문에 썼던 구절이 생각납니다. "제군들은 정의와 함께 가라. 나는 나 자신의 절박한 오류들과 더불어 살아갈 것이다." 격려 삼아 이 구절을 새로운 길을 가는 두 친구에게 보내고 싶습니다.

좋은 영화는 우리에게 뜨거운 확신이 아니라 조용한 회의로 악수를 청합니다. 두 친구에게도 여러분들에게도 새해에는 더 좋은 영화와 함께, 그리고 더 많고 더 많은 회의와 더불어 살아가시기를 빕니다.

허문영

이달 시네마테크 부산에서는 4일부터 21일까지 "이치가와 곤 & 마스무라 야스조 특별전"을 열었다. 이후에는 일반 상영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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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호 (2007년 2월) : 황석영과 이스트우드

1월 초에 기차를 타고 오가면서 황석영의 〈손님〉을 읽었습니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그의 전작 〈오래된 정원〉은 얼마간 실망스러웠지만 〈손님〉은 몇 년간 소설을 별로 읽지 않은 제게 오랜만에 좋은 소설을 읽는 기쁨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 기자들 틈에 끼어 운 좋게도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아버지의 깃발Flags of Our Fathers, 2006〉과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Letters from Iwo Jima, 2006〉를 한꺼번에 보았습니다. (〈아버지의 깃발〉은 2월 15일에 개봉하지만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는 개봉 일정이 불투명하다고 합니다.) 이제 겨우 올해의 첫 달을 보냈을 뿐이지만 그 날은 아마도 올해 최고의 날 가운데 하나가 될 것 같습니다.

〈손님〉은 목사인 재미교포가 북한을 방문하는 오늘의 이야기를 축으로 한국전쟁 직전 황해도의 한 마을에서 벌어진 무자비한 좌우파의 상호 살육의 과거사를 드러내는 이야기입니다. 이스트우드의 두 영화는 2차대전의 최대전투 가운데 하나인 이오지마 전투를 각각 미국인과 일본인의 시각에서 묘사한 영화입니다. 황석영의 소설과 이스트우드의 두 영화가 남다른 것은 두 집단적 주체가 서로를 살육한 하나의 사건을 두 주체의 서사로 서술하는 창작 방식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이 있습니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는 좋은 태도를 뜻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황석영과 이스트우드는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화자가 '나'인 한 '그'는 끝내 온전히 말해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황석영은 전지적 작가 시점과는 다른 다중 일인칭 시점 혹은 교차 시점을 동원하고, 이스트우드는 각각 아군과 적군이 화자가 된 두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두 사람에게 당신은 어느 편인가, 라고 물어서는 안 됩니다. 한국 사회를 고통스럽게 만들어온, 그리고 인혁당 사건 같은 어처구니없는 사건을 배태한, 이 원시적이고 폭력적인 질문은 실은 누구에게도 물어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어딘가에 속해 살아왔고 살아갈 뿐입니다. 내가 소속된 그 집단이, 그것이 무엇이든 나를 대체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오늘이 옛날보다 나아졌다면 그것은 우리가 타자의 서사를 수긍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것은 타자의 처지를 동정하거나 타자의 주장에 동의하는 것보다 훨씬 근본적이고 윤리적인 태도입니다. 좋은 소설과 좋은 영화가 그것을 가능케 합니다. 그리고 좋은 소설과 좋은 영화가 더욱 절실히 필요한 시대입니다.

허문영

이달 시네마테크 부산에서는 6일부터 16일까지 "필름 누아르 걸작선"을 열었다. 20일부터는 "김기영 특별전"을 시작하여 3월까지 이어갔고, 28일 수요시네클럽에서는 김지운 감독의 추천작 〈혐오Repulsion, 1965〉를 상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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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호 (2007년 3월) : 어느 비디오 가게의 폐점

10여 년 동안 애용하던 한 비디오 가게가 최근 문을 닫았습니다. 그 가게는 비디오의 전성기 때 어디에도 없는 희귀 명작 비디오들을 많이 소장하고 있어, 한때 영화감독을 비롯해 많은 영화 전문가들로 붐볐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더 이상 비디오를 말하지 않게 된 어느 순간부터 만화책이 진열장을 점거하기 시작하더니 얼마 되지 않아 진열장의 반 이상을 차지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그곳을 찾는 사람은 점점 더 줄어들었습니다. 가게 주인은 버티기 위해 애를 썼지만 결국 인건비조차 나오지 않는 시점이 되자 폐업을 결정하고 말았습니다.

해외출장 중에 벌어진 일이어서 뒤늦게 알고 그 가게로 달려갔지만 이미 많은 비디오가 처분된 뒤여서, 남은 비디오테이프 몇 장을 사들고 집으로 왔습니다. 그 테이프 중의 하나는 〈고래사냥1984〉입니다. 예술영화도 아니며 명작에도 끼지 않아 그동안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던 이 낡은 테이프를 보는 마음은 얼마간 착잡합니다. 빛바랜 그 테이프의 자켓에는 얼굴에 검정이 묻은 안성기와 이미숙과 김수철이 해맑게 웃고 있습니다. 23년 전 그 영화를 겨울의 재개봉관에서 추위에 떨면서 보던 기억도 새삼스레 떠올랐습니다.

영화 관객으로서의 우리는 너무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단계를 경험해 왔습니다. 한국 관객은 20세기에 20세기 영화를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1980년대 말 민주화와 비디오라는 매체 덕으로 비로소 우리는 영화사와 조우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닳고 닳은 그리고 대부분은 제작사가 멋대로 삭제해 원판과 멀어진 명작 비디오들을 찾기 위해 영화광들이 비디오 가게를 찾아 헤매던 일은 그리 오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다른 나라보다 앞선 인터넷이 모든 매체를 압도하는 시대를 살게 됐고, 이제 불과 10여 년 전의 체험마저 기억의 뒤안으로 물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정도 불가피하고, 또 그만큼 심란한 일입니다.

시네마테크는 느린 곳입니다. 아니 느리다기보다는 우리가 영화를 처음 만났던 그 속도와 호흡으로 영화를 대할 수 있는 곳입니다. 혹은 시대의 속도에 맞춰가려는 강박과 긴장으로부터 자유로운 곳입니다. 우리는 이곳이 앞으로 10년 뒤에도 혹은 50년 뒤에도 장 르느와르와 오슨 웰스와 알프레드 히치콕을 만날 수 있는, 그리고 그때, 10년 혹은 50년 전 그들을 만날 수 있어 행복했던, 작지만 소중한 공간으로 오래오래 남아있기를 소망합니다.

허문영

이달 시네마테크 부산에서는 2월에 시작했던 "김기영 특별전"을 4일까지 이어갔고, 6일부터 20일까지는 "씨네뮤지컬"을 열어써다. 21일 수요시네클럽에서는 문소리 배우의 추천작 〈얼굴들Faces, 1968〉을 상영했다. 22일부터는 "월드시네마 IV"를 시작하여 4월까지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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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호 (2007년 4월) : 이런 영화는 많지 않기를

꽤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할리우드를 장밋빛 아메리칸 드림의 공장이며 문화적 제국주의의 전진기지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이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미국 내에서 할리우드는 차라리 진보적인 편에 가깝고 민주당 지지자가 다수를 차지합니다. 미국 보수세력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인 다니엘 플린은 저서 〈미국의 변명〉에서 이렇게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할리우드 영화는 반공주의자들을 나쁜 편으로, 공산주의자들은 무해한 이상주의자로 그려내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같은 터무니없는 시각을 강화하고 있다. (중략) 반공주의자들을 악한으로 묘사한 영화들이 쏟아진 반면, 공산주의 치하의 생활을 그린 영화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동독과 쿠바, 북한 주민의 목숨을 건 탈출기나 스탈린의 대숙청 생존기 등은 영화의 좋은 소재가 되고도 남는다. 그러나 할리우드는 지금까지 이처럼 생생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 대중에게 소개하는 작업을 방해해왔다."

이런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반길만한 영화가 최근에 개봉됐습니다. 독일에서 엄청난 흥행성적을 올렸고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받아 '독일 영화의 구원자'라고까지 불린 〈타인의 삶Das Leben der Anderen, 2006〉입니다. 이 영화는 1984년 통일 전의 동독을 무대로, 한 비정한 동독 비밀경찰이 한 예술가 커플의 집을 도청하다 여인과 동시에 예술을 사랑하게 되고, 예술가의 반정부 활동까지 숨겨주려다 결국 자신은 초라한 삶을 살게 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도청자가 피도청자의 생활에 개입해 예기치 못한 변화를 초래한다는 설정은 흥미로웠지만, 너무 평면적인 인물 묘사 때문에 저는 이 영화가 재미없었습니다. 개인적인 소감과는 별도로 이 영화가 통일독일의 기성질서에 대한 투철한 신뢰가 담긴 보수적인 영화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이 영화와 직접 비교할 수 있는 영화는 사회주의 시대에의 노스탤지어가 담긴 코미디 〈굿바이 레닌Good Bye, Lenin!, 2003〉이겠지만, 저는 폴커 쇨렌도르프의 〈레전드 오브 리타Die Stille nach dem schuß, 2000〉를 보고 〈타인의 삶〉과 비교해보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레전드 오브 리타〉의 주인공은 서독과 동독에서 모두 외면당해 비참한 최후를 맞는 급진파 테러리스트의 삶을 다루고 있습니다. 스산하고 비극적인 이 영화는 통일독일에 대한 진보적 시각의 한 정점을 보여줍니다.

저는 영화에 담긴 세계관이 영화의 질을 결정한다고 믿지 않습니다만, 영화를 보는 눈에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이념적 성향이 개입하게 됩니다. 두 영화는 이념과 영화에 대한 좋은 토론 거리가 될 것입니다. 다만, 〈3002006〉처럼 노골적인 백인우월주의로 가득 찬 영화가 인기를 끌고 있는 현실을 보고 있으면, 다니엘 플린 같은 사람이 만족하는 영화가 더 많이 나오지는 않기를 간절히 바라게 됩니다.

허문영

이달 시네마테크 부산에서는 3월에 시작했던 "월드시네마 IV"를 15일까지 이어갔고, 이후에는 일반상영을 진행했다. 18일 수요시네클럽에서는 류승완 감독의 추천작 〈포인트 블랭크Point Blank, 1968〉를 상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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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호 (2007년 5월) : 행복한 허구가 사람을 죽인다

한국계 미국 청년의 총기 난사로 33명의 숨졌습니다. 온 세상이 그 사건에 경악하고 있으며, 모든 매체들은 그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해 갖가지 방식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범인이 한국계이기 때문에 한국인이 더 큰 심리적 부담을 느끼고 있긴 하지만 이 사건은 지구촌의 모든 사람들에게 고통스럽습니다. 그 이유는 사망자의 숫자의 크기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공포감을 형성하는 건 결과의 크기보다는 원인의 인지 여부입니다.

이라크 전쟁이 시작된 이래 6만여 명의 이라크인과 3천여 명의 미군이 죽었습니다. 33명보다 엄청나게 많은 그 숫자에 대해 우리가 덜 민감한 이유는, 그것에 전쟁이라는 원인이 있다고 우리가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라크 전쟁의 명분이 '대량살상무기 색출'에 있었고, 대량살상무기는 결국 찾아지지 않았음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과연 그 6만 3천여 명의 죽음의 원인을 알고 있는 걸까요.

새삼스럽게 전쟁 반대를 주장하려는 건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그 원인을 알고 있다고 믿는 것 중의 대부분을 실은 알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상기하려 합니다. 가장 뛰어난 수사관들이 대대적인 수사를 벌여서 엄청난 수사보고서를 제출한다 해도 우리는 그 청년의 범행 동기를 결국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기는 힘듭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우리 시대가 죽음에의 충동에 휩싸여 있다는 사실의 엄연함입니다.

총기 난사 사건 이후에 한국인의 자살률이 OECD 중 최고이고 하루에 30여 명의 자살하며 960여 명이 자살을 기도한다는 뉴스가 보도되었습니다. 신문들은 편리하게도 장기경기 불황 따위의 원인을 주워섬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원인을 들먹인다 해도 20여 년만에 자살률이 4배 가까이 증가한 것을 설명해낼 수 있을까요. 혹시 우리에게 이렇게 물어볼 필요는 없을까요. 내게 총이 주어졌을 때, 그 총을 정당방위 외의 목적에 사용하고 싶은 충동을 평생 갖지 않을 수 있을까.

영화와 관련 없는 사건에 관해 늘어놓은 이유는, 우리가 이런 세상 '안'에서 영화를 보기 때문입니다. 혹은 〈올드보이2003〉가 그 범행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어처구니없는 한 미국 언론의 추측 보도 때문이기도 합니다. 저는 아무리 나쁜 영화도 세상을 악화시킬 수 없고, 아무리 좋은 영화도 세상을 개선시킬 수 없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죽음에의 충동과 은밀하게 공모하는 영화와 그것을 번민하는 영화는 따로 있습니다. 그 구별은 물론 단순하지 않습니다.

일그러진 육체에 대한 생생한 묘사로 악명 높은 데이비드 크로넨버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절망감을 느끼거나 자살하고 싶을 때, 혹은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고 느낄 때, 〈미세스 다웃파이어Mrs. Doubtfire, 1993〉 같은 영화를 보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크래시Crash, 1996〉나 〈데드 링어Dead Ringers, 1988〉 혹은 〈네이키드 런치Naked Lunch, 1991〉 같은 영화들이 위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들이 바로 이런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미세스 다웃파이어〉는 오히려 우리를 죽일 것이다."

모든 것이 다 잘될 것이라고 말하는 행복한 허구가 우리를 더 우울하게 만들고 죽음에의 충동을 더 부추긴다는 이 역설은 의미심장합니다. 5월의 시네마테크에서, 혹은 〈악의 손길Touch of Evil, 1958〉에서 늙고 흉측한 자신의 육체를 그토록 잔인하게 전시하는 위대한 천재 오슨 웰스의 거대한 몸부림을 통해, 그 시급한 역설을 되새겨 보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허문영

이달 시네마테크 부산에서는 3일까지 일반 상영을 진행한 후 4일부터 11일까지는 "호주 영화제"를, 12일부터 17일까지는 "프랑스 영화제"를 열었다. 18일부터 시작한 "오슨 웰스의 재발견"은 6월까지 이어갔다. 23일 "수요시네클럽"에서는 박찬욱 감독의 추천작 〈심판Le Procès, 1962〉을 상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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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호 (2007년 6월) : 언론의 평판과 수상 결과, 알게 뭐냐

한국영화가 경쟁부문에 두 편이 선정돼서 그런지 올해에는 유난히 칸영화제에 대한 기사가 많이 나왔습니다. 두 편 중에서 〈밀양2007〉에 거는 저널리즘의 기대가 유난히 높았고 결국 여우주연상을 받았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그런데 포탈사이트에 뜬 칸영화제 관련 기사를 보면 확대해석이나 사실상 오보가 꽤 자주 눈에 띄었습니다. 그래서 일종의 관전법이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일 자주 눈에 띄는 잘못은 한국 기자들이 〈버라이어티〉, 〈할리우드 리포터〉, 〈스크린 인터내셔널〉 등 영어권 언론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입니다. 이를테면 〈버라이어티〉의 기자 데릭 엘리가 쓴 〈밀양〉 평이 여러 포탈사이트에 실렸습니다. '영화는 좋지 않은데 전도연은 훌륭하다'는 게 요지였습니다. 당연한 사실 한 가지는 이 견해는 한 잡지의 기자, 한 사람의 견해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부산국제영화제에도 매년 오는 이 기자는 취향의 폭이 넓은 편이 아니어서, 예컨대 칸영화제가 사랑하는 타이 감독 아피차퐁 위라세타쿤의 영화를 싫어한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사람입니다.

〈버라이어티〉라는 잡지 자체가 아시아영화와 유럽영화에 대한 안목이 깊은 편이 못됩니다. 그것은 이 잡지가 영화산업 소식을 주로 다루는 업계지라는 사실과 연관이 있습니다. 미학적 기준이 유럽과는 다른 것입니다. 영화수입사들에게 의미 있는 견해가 될지 모르겠지만, 이 잡지의 실린 영화 평은 시네필들에겐 별로 주목받지 못합니다. 〈할리우드 리포터〉라는 잡지도 다르지 않습니다. 이 잡지의 기자 커크 허니컷이 데릭 엘리와는 다르게 〈밀양〉을 극찬했다는 소식도 역시 떴는데, 그는 에드워드 양의 〈하나 그리고 둘一一, 2000〉을 '이야기는 요령부득이며 지루하기 짝이 없는 영화'라고 잔인하게 평한 바 있습니다. 이 사람은 올해 베를린영화제에선 박찬욱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를 인물의 감정을 살리는데 실패한 영화로 혹평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들의 견해도 하나의 견해로 존중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다른 견해에 비해 더 주목받을만한 가치가 있지는 않습니다. 물론 수상 결과와도 무관합니다. 몇 해 전의 칸 영화제에서, 〈버라이어티〉와 〈할리우드 리포터〉는 입을 맞추기라도 한 듯 〈어둠 속의 댄서Dancer in the Dark, 2000〉를 무참하게 비난했는데, 이 영화는 결국 황금종려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역시 혹평 대상의 하나였던 〈하나 그리고 둘〉은 감독상을 받았습니다.

칸영화제는 대체로 영어권 언론의 취향과는 다른 기준으로 작업해왔습니다. 그래서 대체로 칸영화제가 영어권 언론과 긴장 관계에 있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경쟁부문 선정과 수상작 결정이 전혀 별도이며, 수상작 결정이 심사위원들에게 전적으로 달려있다는 사실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그렇다고 프랑스 언론의 평이 수상 결과에 더 가깝다고 보기도 힘듭니다. 〈르 몽드〉는 〈화씨 9.11Fahrenheit 9/11, 2004〉의 황금종려상 수상에 대해 불같이 화를 냈고, 〈카이에 뒤 시네마〉는 작년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The Wind That Shakes the Barley, 2006〉을 켄 로치의 가장 실망스런 영화로 낙인 찍었습니다.

요컨대, 영어권 언론의 평은 미학적으로도 그다지 의미 없을 뿐 아니라, 어떤 매체의 평판도 수상 결과를 점치는 데도 거의 쓸모가 없다는 것입니다. 차라리 올해의 심사위원장이 스티븐 프리어스이므로 그의 취향으로 볼 때, 어떤 영화가 더 주목받을 것 같다고 찬양하는 기사가 나온다면 그건 나름대로 의미 있는 정보겠지요.

하지만, 이런 소란들이 무슨 큰 의미가 있겠습니까. 빌 오거스트의 〈최선의 의도Den goda viljan, 1992〉나 로만 폴란스키의 〈피아니스트The Pianist, 2002〉는 황금종려상을 받았지만 금방 잊혀지고 말았습니다. 제 판단으로 작년 칸영화제의 베스트는 어떤 매체도 언급하지 않은 페드로 코스타의 〈행진하는 젊음Juventude em marcha, 2006〉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올해의 베스트는 수상 결과와는 관계없이 부산국제영화제 혹은 그 밖의 많은 기회를 통해 보실 미지의 작품 속에 있을 것입니다.

허문영

이달 시네마테크 부산에서는 1일부터 6일까지 "가족 애니메이션 특별전"을, 7일부터 19일까지 "한국 영화의 오늘"을 열었으며, 21일부터는 "동시대 유럽영화 거장전"을 시작하여 7월까지 이어갔다. 20일 수요시네클럽에서는 한재림 감독의 추천작 〈성난 황소Raging Bull, 1980〉를 상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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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호 (2007년 7월) : 영화 사랑방

지난 6월 6일 시네마테크에서 '영화 사랑방' 첫 모임을 가졌습니다. 30여 분이 참여하셨고, 박성수 교수님의 사회로 〈밀양2007〉에 관한 난상토론이 2시간가량 이어졌습니다. 지지 쪽이 다수이긴 했지만 뜻밖에 꽤 많은 분이 비판적인 의견을 제출하셨고, 어떤 분들은 격렬한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하셨습니다. 저는 그 자리가 흥미진진했습니다. 많은 분이 귀 기울일만한 얘기를 들려주셨지만 한 분의 견해는 특히 깜짝 놀랄 만큼 흥미로웠습니다. 독실한 신자처럼 보이는 그분의 견해는 이랬습니다.

"〈밀양〉은 기본적으로 〈엑소시스트The Exorcist, 1973〉와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 신애(전도연)는 악령이 들린 인물이다. 그는 끊임없이 거짓말하고 구원의 손길이 왔을 때도 하느님의 손을 잡을 뻔하다가 다시 사탄의 죄악을 저지른다. 그의 곁을 떠나지 않는 종찬(송강호)은 〈엑소시스트〉의 신부, 즉 퇴마사의 역할이다. 그는 사랑으로 신애를 끝내 지킨다. 〈밀양〉은 결국 믿음의 길로 가는 종찬이 신애를 악령으로부터 보호한다는 이야기다."

물론 황당한 견해라고 생각하고 반론하고픈 분도 있으시겠지요(그날, 그 자리에선 너무 이색적인 견해라 그런지 아무도 반론을 제기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독창적인 해석과 견해가 정말 반갑습니다. 대중영화만 보는 사람들은 영화에 대한 해석 자체에 무관심하고, 예술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종종 '권위 있는' 견해에 자신의 감상을 끼워 맞추려 하기 때문입니다. 영화에 대해 자신의 견해와 해석을 가지는 순간부터, 영화를 보는 눈은 비로소 자라기 시작합니다.

영화 사랑방은 누구나 와서 아무런 격식 없이 한 영화에 대한 견해를 서로 나누는 자리입니다. 그날 오신 분들께도 말씀드렸지만, 100명이 오든 3명이 오든 매달 한 번씩 모임을 열 예정입니다. (5명 미만이면 바로 맥주집으로 이동해서 영화 수다를 떨기로 되어 있습니다.) 7월 11일에 열릴 영화 사랑방에선 DVD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Letters from Iwo Jima, 2006〉를 함께 보고 길지 않게 얘기를 나누려 합니다.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는 제게 올해 최고의 영화였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DVD로 직행하고 말았습니다. 많이 오셔서 좋은 견해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허문영

이달 시네마테크 부산에서는 6월에 시작한 "동시대 유럽영화 거장전"을 8일까지 이어갔고, 남은 기간에는 "씨네 리플레이"를 진행했다. 11일 "영화 사랑방"에서는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를 함께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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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호 (2007년 8월) : 산업적 애국주의와 영화의 무기력성

7월 25일에 〈화려한 휴가2007〉가 개봉했고, 8월 1일에는 〈디 워2007〉가 개봉했습니다. 두 영화는 각각 100억, 300억 이상의 제작비가 들어간 대작입니다. 한 영화는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비극적 사건을 다룬 영화이고, 다른 한 영화는 괴수 판타지 영화입니다. 말하자면 전혀 다른 종류의 영화들입니다. 그런데, 두 영화의 대중적 담론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산업적 애국주의라고 부를 만한 것입니다.

〈화려한 휴가〉는 텍스트 안에서 애국주의를 불러들이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태극기 휘날리며2004〉가 그랬듯이 한국 사람이라면 모두 보아야 할 영화라는 명제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디 워〉는 텍스트 밖에서 애국주의를 불러들이고 있습니다. 내용은 애국과 거의 무관하지만, 황우석의 (오인된) 성취가 그랬듯, 그것의 기술적 성취가 한국영화산업의 파워를 입증하는 동시에 거대한 초국적 이윤을 실현케 할 수 있는 상품이므로 국민적으로 지지해야 한다는 명제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두 명제는 그 자체로도 신중한 논의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컨대 27년 전에 일어난 비극적 사건을 오늘 생생한 영상으로 다시 본다는 것이 어떤 시급한 의미가 있는가, 그리고 특수효과만으로 산업적 파워를 지닐 수 있을 것인가, 혹은 그 특수효과는 진정 독창적인 것인가, 같은 질문이 제기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질문이 도대체 영화와 어떤 관련이 있기나 한 걸까요. 물론 그런 질문 자체가 무가치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회적으로는 의미 있는 문제 제기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소란스런 담론 안에서 영화 그 자체는 사라지고 있는 건 아닐까요. 가령 80년 광주에 관한 충격적인 영상기록이 발견되었다면, 그리고 정말 뛰어난 과학자가 부가가치가 막대한 어떤 기술을 개발했다면, 우리는 똑같은 질문을 하게 되지 않을까요. 어떤 영화로 촉발된 질문과 영화 그 자체의 질문은 근본적으로 다를 것입니다.

영화는 현실에 대해 무기력합니다. 예컨대 한국영화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납치된 한국인들에게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습니다. 〈살인의 추억2003〉, 〈그놈 목소리2007〉는 범인을 잡는 데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모방범죄를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그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영화를 진정으로 좋아하는 사람에게, 영화에 대한 윤리적 질문은 단순할 것입니다. 영화가 그 무기력 혹은 잠재적 위험에도 불구하고 끝내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현자나 학자의 몫이 아니라, 관객 각자의 몫일 것입니다. 그 모든 소란에도 불구하고 이 질문을 잊지 않으시길 빕니다. 정말 좋은 영화는 이 질문을 다른 질문으로 바꿔치기하지 않고 그 질문을 오로지 영화의 이름으로 버텨내는 영화일 것입니다.

허문영

이달 시네마테크 부산에서는 1일부터 5일까지 "멕시코 영화제"를 열고 7일부터 26일까지는 "현대 일본 장르영화 걸작선"을 진행한 후 28일부터 "다큐멘터리, 북한"을 시작하여 9월까지 이어갔다. 22일 수요시네클럽에서는 이창동 감독의 추천작 〈움베르토 DUmberto D., 1952〉를 상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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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호 (2007년 9월) : 홍상수와 임권택과 정성일의 힘겨운 여름

여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육체적으로도 힘들었던 이 계절에 개인적으로 몇 가지 우울한 풍경을 목격했습니다. 가깝게 느끼던 사람들에게서 그 풍경들을 보았습니다.

지금 파리에서 8번째 영화를 찍고 있는 홍상수 감독은 7월 중순 들어 혼란스런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8월 8일로 에정된 크랭크인을 3주 앞두고 제작사에서 제작 중단을 통보해왔기 때문입니다. 제작비 확보 실패라는 이유였습니다. 홍상수 감독은 김기덕 감독과 함께 충무로에서 가장 적은 예산으로 영화를 찍는 사람입니다. 물론 그 제작자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고, 홍상수라는 이름을 보고 올해 초에 제작을 결정한 것이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통보를 받은 홍상수 감독의 얼굴은 많이 어두웠고 제작비 40%를 혹독하게 줄이면서 디지털 촬영을 결정했습니다. 제작진과 출연진의 개런티는 예산서에서 거의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다른 제작사와 급히 계약을 맺은 뒤 파리로 떠났습니다.

〈천년학2007〉의 상업적 실패 뒤에 한 문학잡지의 요청으로 8월 중순경 임권택 감독을 인터뷰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그는 "내 영화 인생에서 다음 작품의 내용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작품은 아무래도 소규모 제작진으로 디지털 영화를 찍어야 할 것 같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동서대학교에 그의 이름을 딴 예술영화대학이 만들어지고 그가 석좌교수로 추대되는 좋은 소식이 있었지만, 그날 그의 말에서 어쩐지 쓸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정성일 씨의 여름도 우울했습니다. 당대 최고의 평론가이자 늙지 않는 영화 청년인 그의 영화 만들기의 오랜 꿈이 올해에는 실현되는 듯 보였습니다. 봄에 제작진과 출연진을 꾸렸고 7월 초에 크랭크인해서 8월에 촬영 종료한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결국 여름이 다 가도록 크랭크인의 소식은 들려오고 있지 않습니다. 문제는 역시 제작비입니다. 종종 소식을 주고받았던 그로부터 연락이 오지 않은 것도 두 달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가을에 좋은 소식이 들려올 가능성은 여전히 있지만 그의 여름은 혹독했을 것입니다.

한국영화계에서 이제 이윤의 논리는 절대적이고 유일한 논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또다시 천만 관객 타령이 들려오고 있지만 거기에 어떤 갈채도 보내고 싶지 않게 됩니다. 그렇게 여름이 가고 있습니다. 지금으로선 무력하나마 새로운 계절이 좋은 영화를 고민하고 좋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좋은 계절이 되기를 빌 수밖에 없습니다.

허문영

이달 시네마테크 부산에서는 8월에 시작한 "다큐멘터리, 북한"을 12일까지 이어갔고, 13일부터 23일까지는 "이자벨 위뻬르 특별전"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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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 (2007년 10월) : 영화 대신 소설을 추천하고 싶은 계절

영화를 좋아하는 부산인들에게 10월은 부산국제영화제만으로 배가 부른 계절일 것입니다. 그러니 이번 잡담은 책 한 권을 추천하는 것으로 대신하고 싶습니다. 그 책은 많은 분들이 이미 읽으셨거나 적어도 제목은 알고 계실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백 년 동안의 고독〉입니다. 이 소설은 1960년대에 씌어졌고, 1982년에 노벨문학상까지 받은 너무 잘 알려진 소설입니다. 1980년대 중반에 처음 읽었을 때, 저는 그 이야기의 한없는 풍성함에 넋을 잃었고, 이 작품은 단숨에 내 인생의 소설이 되었습니다. 영화 세상에서 그 정도의 풍성함에 비견할 수 있는 것은 장 르누아르의 작품 목록 정도일 것입니다.

책장 한구석에 먼지가 소복이 쌓은 그 소설책을 우연히 다시 꺼내 들었을 때, 저는 20년 전에 읽은 것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만났습니다. 두 번째 만남에서 진정 매혹적인 것은 이 소설의 섬광 같은 구절들이었습니다. 예컨대 주인공 부엔디아 대령의 절친한 전우인 게리넬도 마르께스에 대한 설명. "…그러나 그는 나약하고 겁이 많고 마음씨가 좋아서 관리일을 맡기보다는 전쟁에 더 적합한 인물이었다…" 혹은 이런 구절. "…그는 전쟁을 끝낸다는 일이 전쟁을 시작하기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혹은 부엔디아 대령의 이런 독설. "자유파와 보수파가 다른 점을 구태여 꼽는다면, 자유파는 다섯 시에 미사를 드리고 보수파는 여덟 시에 미사를 드리러 간다는 것뿐이지."

아무렇지도 않게 써 갈긴 듯 이곳저곳에서 튀어나오는 이런 무심한 말들이 지닌 통렬함과 잔혹한 생의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그것의 깊이를 아마도 20대 중반의 청년이 느끼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것도 이런 대목만큼 숨막히게 아름다울 순 없습니다. "…목수들이 호레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의 관을 만들려고 치수를 재고 있는 동안에 그들은 창밖에 작은 노란 꽃들이 하늘에서 가볍게 빗발처럼 흩날리는 것을 보았다. 꽃비는 소리 없이 밤새도록 내려서 지붕을 덮고, 문을 열 수 없을 만큼 집 앞에 쌓였으며, 바깥에서 잠자던 짐승들은 꽃에 덮여 질식을 했다…" 자신의 소설이 영화화되기를 끝내 거부했던 이 고집불통 작가가 이토록 영화적인 상상력으로 가득 차 있었다는 건 흥미로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영화는 도둑질의 예술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소설은 영화가 가장 훔친 곳간일 겁니다. 점점 커져가지만 점점 빈곤해져 가는 오늘의 영화에 어딘지 모를 허기를 느끼신다면 언젠가 당신을 매혹시켰던 한 편의 소설을 꺼내 들고 조심스럽게 다시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어떤 영화 이론서보다 영화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10월은 그러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입니다.

허문영

이달 시네마테크 부산은 12일까지 부산국제영화제로 인해 휴관했다. 13일부터 17일까지는 "칸 국제광고제 수상작 필름 페스티벌"을 진행했고, 18일부터는 "씨네스페셜 가을초대전"을 시작하여 11월까지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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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호 (2007년 11월) : 〈그림자 군단〉

미국 관객의 취향은 한국 관객보다 더 획일화되어 있어서 세계적으로 높은 평판을 받은 영화들이 미국 내에서 개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허우샤오시엔의 영화가 한 편도 미국에서 개봉되지 못한 사실을 두고 한 미국 평론가는 '일종의 스캔들'이라고 말한 적도 있습니다. 장 피에르 멜빌이 1969년에 만든 〈그림자 군단L'Armée des ombres, 1969〉도 그런 영화 중의 한 편이었습니다. 이 영화가 복원판으로 2006년 4월 미국에서 단관 개봉됐을 때, 미국 평단은 거의 열광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습니다. 1년 동안 장기 상영됐고 거의 모든 미국 영화 관련 매체들은 이 영화를 '2006 베스트'의 목록에 올렸습니다.

〈그림자 군단〉의 이상한 점은 레지스탕스 영화를 갱스터 영화처럼 찍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점이 이 영화를 그토록 감동적인 것으로 만듭니다. 그 스스로 레지스탕스 출신인 장 피에르 멜빌은 나치의 무자비한 점령에 맞선 프랑스 저항군의 결단에 애국적 헌사는 물론이고 휴머니스트적인 면모도 부여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마치, 멜빌의 갱스터들이 그러하듯, 피난처인 런던의 안식을 견디지 못하고 파리를 지배하는 나치즘의 어둠 속을, 운명의 부름을 받든 자처럼 혹은 사이렌의 노래를 들어버린 선원처럼 묵묵히 걸어 들어갑니다.

이 영화를 보면 〈재와 다이아몬드Popiół i diament, 1958〉로 유명한 안제이 바이다의 〈카날Kanał, 1956〉이 떠오르게 됩니다. 역시 2차대전 때 독일군에 맞선 폴란드 비정규군의 최후를 그린 영화입니다. 애국적 정열도 삶에의 희망도 없이 출구가 사라진 하수도에 갇혀 회의와 좌절 아래 미쳐가거나 죽어가는 인물들을 보고 있으면, 존 카펜터의 〈괴물The Thing, 1982〉 혹은 〈에일리언Alien, 1979〉 시리즈를 연상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영락없는 공포영화인 것입니다. 이만희 감독이 알려지지 않은 걸작 〈04:00 19501972〉에서 북한군에 포위된 참호의 남한군 병사들을 그리는 방식도 거의 이와 흡사합니다. 제 추측에 이 감독들은 한 가지를 매우 싫어했습니다. 그것은 군소리입니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한 가지, '할 것인가, 말 것인가'였습니다. 〈암흑가의 세 사람Le Cercle rouge, 1970〉에서 세 늙은 도둑이 은행을 터는 과정을 별다른 음악도 음향효과도 없이 거의 30분 동안 과묵하게 묘사하고 있을 때, 세속에선 하나의 범죄에 불과한 행위가 여기서 거의 숭고함의 경지에 이르는 기적의 순간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 감독의 영화를 사랑하지 않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감독들이 숭배한 감독, 위대한 실존주의자 멜빌과의 조우를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허문영

이달 시네마테크 부산에서는 10월에 시작한 "씨네스페셜 가을초대전"이 4일까지 이어졌다. 6일부터 22일까지는 "장 피에르 멜빌 회고전"을 진행했고, 23일부터 27일까지는 "메이드인부산 독립영화제 2007"을, 28, 29일에는 "전수일 감독 전작 특별 상영회"를 열었으며, 30일부터는 "안소니 만 & 라울 월쉬 특별전"을 시작하여 12월까지 이어나갔다. 21일 "수요시네클럽"에서는 봉준호 감독의 추천작 〈야수는 죽어야 한다Que la bête meure, 1969〉를 상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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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호 (2007년 12월) : 봉준호의 계획, 홍상수의 무계획

수요시네클럽의 11월 게스트로 온 봉준호 감독에게 한 관객이 영화를 만들고 싶고 시나리오를 쓰려 하는데 어떡하면 되느냐고 질문했습니다.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짓던 봉 감독은 입을 열었습니다. "저도 시나리오를 쓸 때마다 눈앞이 깜깜합니다. 어디 좋은 시나리오를 파는 곳이 있으면 바로 뛰어나가서 사오고 싶은 마음입니다." 충무로에서 가장 뛰어난 시나리오를 쓴다는 감독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치고는 뜻밖이었습니다. 그는 "몇 편 찍지 않았지만 영화 찍을 때마다 이 영화가 내 마지막 작품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데, 그건 대부분의 감독이 그럴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나중에 그렇게 비관적으로 말한 이유에 대해 물어보았더니, 그는 "현실이 엄혹하다고 알고 있는 편이 나을 것 같아서"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괴물2006〉은 최고 흥행 기록을 깼고 게다가 작년에 프랑스의 영화 비평지 〈카이에 뒤 시네마〉가 뽑은 2006년 최고의 영화 4위에 올랐습니다. 겉으로 보면 그는 이 세상의 어떤 감독도 부럽지 않은 위치에 이미 올랐습니다. 그런데, 아마 그의 작품으로는 소품에 가까울 차기작 〈엄마〉(가제)에 거의 1년째 매달려 있는데도, 길이 안 보인다고 한숨을 쉬고 있습니다.

엄살일까요? 당분간 그는 제작비 마련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처지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다음에(도) 괜찮은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은 병처럼 점점 커져간다고 합니다. 아마 그가 소심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것 같습니다. 그는 이날 1시간여의 관객과의 대화를 위해 원서 두 권을 포함해 끌로드 샤브롤에 관한 책 3권을 읽고 부산에 내려왔습니다. 디테일의 대가라고 해서 붙여진 봉테일의 영화적 성취는 아마도 그의 소심함, 달리 말하면 극단적인 세심함과 치밀한 준비의 산물입니다.

저는 정반대의 사람도 알고 있는데, 그는 홍상수입니다. 과장되게 말하면 그는 준비나 계획이란 개념이 아예 없는 사람입니다. 대신 그는 현장에서 거의 미치광이 같은 집중력을 발휘합니다. 촬영 대본은 모든 스탭들과 연기자들이 대기한 초긴장 상태에서 촬영 당일 아침에 씌어집니다. 그의 각막은 종종 터지고, 심장에 열이 올라 쩔쩔맵니다. 그 고통을 반복하면서도, 그는 준비나 계획이 아니라 그날 그 시간에 도착한 세계의 생기를 믿고, 자신의 직관을 믿습니다.

어느 쪽이 좋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정상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의 집착의 소유자라는 사실은 확실합니다. 재능의 문제를 제외한다면, 그 집착이 그들의 성취를 낳았을 것입니다. 자신에게 위협적일 수도 있는 그 집착이 말입니다. 구경꾼, 잔소리꾼의 자리는 그래서 늘 안전하며, 대신 어떤 부끄러움을 동반하게 됩니다. 올해의 마지막 달을 맞으면서 떠올린 잡념이었습니다.

허문영

이달 시네마테크 부산에서는 11월에 시작한 "안소니 만 & 라울 월쉬 특별전"이 16일까지 이어졌다. 18일부터 30일까지는 "아듀 2007 마이베스트 무비즈"를 진행했다. 5일 "영화 사랑방"에서는 〈사무라이Le samouraï , 1967〉를 함께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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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호 (2008년 1월) : 바쟁으로 돌아가자, 고전으로 돌아가자

음악인들이 그들의 영감이 고갈될 때마다 '바하로 돌아가기'를 반복하듯이, 영화비평가들은 끊임없이 '바쟁으로 돌아가기'를 되풀이합니다. 앙드레 바쟁은 50년 전인 1958년, 마흔 살의 나이에 백혈병으로 죽은 영화사상 가장 위대한 비평가입니다. 오늘의 비평가들에게도 바쟁이 그토록 많은 영감을 주고 있는 것은 실은 놀라운 일인데, 바쟁은 정신분석학과 기호학에 바탕한 현대영화이론이 등장하기 전에 생을 마감한 인물이며, 그 스스로도 생전에 자신의 비평을 아우르는 체계를 세운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바쟁의 위대성을 입증하는 세속적 증거들은 많습니다. 그는 비평이 예술가들을 고무시켜 위대한 창작의 길로 이끌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프랑수아 트뤼포는 그의 데뷔작 〈400번의 구타Les Quatre cents coups, 1959〉를 자신의 정신적 아버지로 부른 이 병약한 비평가에 헌정했습니다. 영화사의 거장 반열에 오른 프랑스 누벨바그의 감독들은 물론이고 대서양 너머에 있던 마틴 스콜세지도 그를 영화적 스승이라고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장 르누아르는 놀랍게도 "그의 글들을 숙독한 뒤, 나는 내가 갖고 있던 영화계획을 바꿨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를 여전히 경탄하게 하고 침묵하게 하는 것은 그의 전설적 영화 사랑입니다. 죽기 전날 그는 침대에 누워 텔레비전으로 영화를 본 뒤 〈랑주 씨의 범죄Le Crime de Monsieur Lange, 1936〉에 대한 분석의 글을 썼고, 이 글은 그의 가장 뛰어난 글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에게 영화 애호는 곧 영화에 대한 글쓰기와 동의어였고, 그는 이 명제에 전 존재를 걸었습니다.

그의 비평에 담긴 부드러움과 단호함, 그리고 심원한 통찰은 이런 끝없는 영화사랑과 분리되진 않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서른살 무렵, 로베르토 로셀리니에 대한 바쟁의 글을 읽고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는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흔히 알려진 것처럼 리얼리즘의 신봉자가 아니라, 영화의 육체, 그 피의 온기와 심장박동을 가장 깊이 느낄 수 있었던 진정한 심미안의 소유자였습니다.

그의 50주기가 되는 올해, 우리는 '고전으로 돌아가자'라는 기치를 내걸었습니다. 이 구호는 개인적으로 '바쟁으로 돌아가자'와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불멸의 영화사랑을 기억하며, 바쟁이 가장 사랑한, 죽기 전날까지도 곁에 머물고 싶어했던 장 르누아르 회고전을 1월 말에 엽니다. 실은 르누아르 회고전을 매년 열고 싶은 충동을 늘 느낍니다. 그의 끝없이 풍성하고 역동적인 영화들보다 영화에 대한 애정, 인간에 대한 예의를 더 많이 담고 있기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 온기와 애정이 여러분에게도 전달되기를 기원합니다.

허문영

이달 시네마테크 부산에서는 8일부터 24일까지 "반도의 꿈: 한국영화사의 걸작순례"를 진행했다. 25일부터는 "장 르누아르 회고전"을 시작하여 2월까지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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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호 (2008년 2월) : 로빈 우드의 보수성

최근에 인상 깊게 읽었던 로빈 우드의 글 한 토막을 소개할까 합니다. 10여 년 전 번역 출간된 〈베트남에서 레이건까지〉로 한국에도 널리 알려져 있으며 현존하는 가장 뛰어난 영화평론가 중의 한 사람인 로빈 우드는 1976년에 초판이 나온 〈Personal Views〉의 2006년판 서문에서 평론가로서의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있습니다.

잘 알려져 있듯이 로빈 우드는 동성애자입니다. 1931년생인 우드는 아내와 세 아이를 둔 가장이었으나 1970년대 초에 커밍아웃했습니다. 부서진 가정보다 그를 더 힘들게 한 건 완전히 달라진 비평게의 풍토였습니다. 1975년 캐나다 퀸즈 대학에서 3년간의 교환교수를 마치고 홀몸으로 런던으로 돌아온 그를 맞은 건 기호학의 열풍이었습니다. 메츠, 바르트, 알튀세, 라캉의 이름이 주문처럼 반복되고 기호학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이 신앙처럼 유포되었습니다. 학계에서 그의 비평은 낡은 것으로 치부되었지만 우드는 비평을 지배하는 이론의 권력과 정면으로 충돌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기호학 시대의 스승들이 어느 틈에 데리다로 대체되었고, 오늘날에는 그를 인용하지 않으면 논문이 완성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들뢰즈로 다시 바뀌었지만, 그는 '비평은 논쟁과 교육의 최상의 영역이며, 이론가는 몸을 낮춰 비평에 복무해야 한다'는 자신의 신념을 지켰고 오늘날 그의 평론들은 20세기 후반의 가장 중요한 비평적 성과로 남았습니다. 이론 혐오주의자는 아니지마(그는 바르트의 애독자입니다) 우드는 정치적 이상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진보적 비평가의 자리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사소한 것에 매몰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정치적이 되는 것이다"라고 당당히 말합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그의 미학적 보수성입니다. 그는 심지어 자신을 보수주의자로 부르는 것에 동의합니다. "이 강좌를 들으려면 흑백영화를 많이 봐야 하나요? 난 보지 않는데요."라고 말하는 학생들 앞에서 그는 낙담하며 이렇게 생각합니다. '모짜르트의 음악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이해하는 사람이(그것을 상류층의 장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괴물이 되어버린 주식회사 자본주의를 지지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절친한 친구의 말을 빌어 선언합니다. "우리가 과거를 잃는다면 미래도 잃을 것이다."

이 선언이 곧바로 시네마테크의 선언이 되어도 좋을 것입니다. 예컨대 장 르누아르의 작품목록을 관류하고 있는 저 빛나는 관대함과 풍요로움은 최상의 미학적 성취이면서 동시에 가장 절박한 정치적 전언이기도 할 것입니다. 올해 시네마테크 부산을 채울 20세기 거장들의 작품들을 통해 미래를 밝힐 정신을 찾으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허문영

이달 시네마테크 부산에서는 1월에 시작한 "장 르누아르 회고전"이 21일까지 이어졌다. 22일부터는 "이즈츠 카즈유키 감독 스페셜"을 시작하여 3월까지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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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 (2008년 3월) : 〈밤과 낮〉

매우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을 양해해주시길 바랍니다. 2월 초에 부산국제영화제 멤버가 아니라 홍상수 감독의 〈밤과 낮2008〉 스탭 자격으로 베를린영화제에 갔습니다. 다른 스탭 2명과 함께 미리 예약해둔 아파트에 밤늦게 도착해 여장을 풀었습니다. 뒤척이는 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 창문을 열어보니 공터 건너편 건물에 눈에 띄는 간판이 걸려있었습니다. 그 간판에는 낯익은 붉은 글씨가 큼지막하게 씌어져 있었습니다. '우리는 김일성 수령동지와 영원히 함께 갈 것이다'.

아주 짧은 순간 제 마음을 스쳐 간 당혹스러움을 짐작하실 것입니다. '내가 도착한 곳은 어디인가'. 그곳은 베를린이며 북한 대사관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 간판은 북한 대사관에 충분히 걸려있을 법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머리로 백번 이해한다 해도, 그 간판을 겨울 아침의 맑은 햇살 아래 처음 만났을 때 그것이 제 마음 속에 순간적으로 불러일으키는 모종의 불안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 불안은 개인의 정치적 견해나 지식과는 거의 무관한 것입니다. (저는 3년 전 10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준비하면서 이만희의 〈만추〉 프린트 행방을 찾아 북한을 방문한 경험도 있습니다.)

〈밤과 낮〉에는 흥미로운 장면이 있습니다. 별것 아닌 일로 파리로 도망친 40대 화가 성남이 한 한국인 유학생 집의 파티에 갔다가 그 자리에 북한 유학생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는 갑자기 불안해하며 그에게 "김일성을 어떻게 생각해요"라고 느닷없는 질문을 한 뒤,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고는 그 자리를 떠나버립니다. 집으로 가는 길에 그는 자신이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며칠 뒤에 길에서 그 북한 유학생을 만나 그는 사과를 한 뒤, 함께 카페에 갑니다. 거기서 그는 팔씨름을 해서 이기고는 좋아서 어쩔 줄 모릅니다. 웃음을 참을 수 없는 이 장면이 저는 더할 수 없이 좋습니다.

성남은 정치적 무뇌아에 가까운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 인물을 통해서 어떤 믿음직한 견해나 세련된 지성도 가릴 수 없는 우리 마음속 깊은 곳의 동요와 불안을 만나고, 그리고 그것과 화해하려는 매우 유치하며 애틋할 만큼 가련한 안간힘을 만납니다. 뛰어난 학식과 훌륭한 견해를 가진 사람을 존중하지만, 제가 친구로 삼고 싶은 것은 그보다 성남 같은 사람입니다. 그를 통해 세상을 더 잘 알 수는 없어도 나 자신을 더 잘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가 홍상수의 영화를 마음속 깊이 좋아하는 이유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힘들게 만들어진 〈밤과 낮〉이 개봉했습니다. 그리고 극히 소수의 극장에서만 상영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 꼭 극장에 가서 〈밤과 낮〉을 보시기를 권합니다. 이것은 변명할 수 없는 극히 개인적인 소망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시장에서 더욱 멀어져가는 그의 영화를 응원하는 일이 천만 관객 영화가 나오는 것에 비교할 수 없이 절실하고 중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응원이 시네마테크를 지키는 마음과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허문영

이달 시네마테크 부산에서는 2월에 시작한 "이즈츠 카즈유키 감독 스페셜"이 2일까지 이어졌다. 4일부터 13일까지는 "아시아영화펀드 쇼케이스"를 진행했고, 14일부터는 "월드시네마 V"를 시작하여 4월까지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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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호 (2008년 4월) : 20세기 영화 문화의 끝

올해의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은 이례적으로 어둡고 비관적인 영화들에 주요 부문의 상을 몰아주어 신선한 충격을 안겼습니다. 하지만 국내 극장에서의 상황은 달랐습니다. 아카데미 남우주연상(다니엘 데이 루이스)을 받은 〈데어 윌 비 블러드There Will Be Blood, 2007〉은 극장에서 1만2천 명 정도의 관객만이 보았을 뿐입니다. 개봉관도 너무 적어 부산에선 이 영화를 뒤늦게야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작품상과 감독상 등 주요 4개 부문을 휩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en, 2007〉도 6만여 관객에 그쳤습니다. 주요 부문 오스카상을 받으면 재개봉해 다시 관객을 모을 수 있었던 몇 년 전 상황과는 판이하게 달라졌습니다.

유럽의 주요 영화제들의 경우 이런 경향이 굳어진 지 오래입니다. 2005년 베니스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브로크백 마운틴Brokeback Mountain, 2005〉을 개봉할 때 홍보사에서 수상 사실을 광고 문구에 표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1993년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공동 수상했던 〈피아노The Piano, 1993〉와 〈패왕별희霸王別姬, 1993〉가 전국에서 100만 명을 모았던 시대도 있었습니다만, 작년 황금종려상을 받았던 〈4개월 3주... 그리고 2일4 luni, 3 săptămâni și 2 zile, 2007〉의 관객은 6천여 명 정도입니다. 영화제가 예술로서의 영화를 응원하고 격려해도 극장이라는 시장은 점점 냉정해져 온 게 사실이지만, 올해는 그 경향이 상대적으로 대중적 서사를 선호하던 오스카에까지 확대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정전과 고전의 무력화는 영화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오래전부터 진행되어왔습니다. 오늘의 젊은 세대들이 고전이라는 이유만으로 두꺼운 〈죄와 벌〉이나 〈적과 흑〉을 완독하기를 기대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결코 되돌릴 수 없을 이런 추세가 오직 개탄의 대상이라고만은 볼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 추세는 관객이 이제 어떤 권위에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취향만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추세의 최종적 결과는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 될 것 같습니다. 문화에서도 시장의 전일적 지배력이 확립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취향과 광고 혹은 스펙터클한 이벤트의 효과를 분별하는 일도 점점 힘들어지겠지요.

영화에선 확실히 사적 표현과 공적 오락의 영역이 완전히 분리된 것 같습니다. 전자는 물론 게토화될 것입니다. 거의 모든 영화가 공적 담론의 영역 아래 놓임으로써 오락과 예술, 위안과 각성, 감각과 사유가 서로 어우러진 잔치판이자 토론장이었던 20세기 영화는 이제 확실히 추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올해의 오스카와 그 이후를 보면서 새삼 21세기 영화의 새로운 양상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문화 안에서 영화의 달라진 자리, 사적 표현으로서의 영화가 살아남는 방식, 여전히 공적 담론으로서의 영화를 믿는 영화예술가들의 생존 여부에 대해 시네마테크의 친구들과 함께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허문영

이달 시네마테크 부산에서는 3월에 시작한 "월드시네마 V"가 13일까지 이어졌다. 15일부터는 "4월의 영화이야기"를 시작하여 5월까지 이어나갔다. 23일 수요시네클럽에서는 홍상수 감독과 함께 〈밤과 낮2008〉을 보는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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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호 (2008년 5월) : 베스트 목록, 영화에 대한 고민의 고백

〈씨네21〉 13주년 기념호에는 100여 명의 국내외 평론가와 한국 감독들이 뽑은 1995년 이후의 세계 영화 10 베스트 목록이 실려 있습니다. 집계된 10 베스트 목록은 물론이고 개개인의 목록도 흥미로웠습니다. 그 목록이 바로 오늘의 영화에 대한 그들의 고민의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장 뤽 고다르의 〈영화사Histoire(s) du cinéma, 1988-1998〉를 1위로 뽑은 사람과 〈타이타닉Titanic, 1997〉을 1위로 뽑은 사람의 고민은 전혀 다를 것입니다.

개인의 고민들은 천차만별임에도 불구하고 전체 집계에서 지아장커의 〈스틸 라이프三峡好人, 2006〉가 1위로 꼽힌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이 영화가 근심의 영화, 공동체의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유럽영화계는 1970년대 이후로 공동체를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내면주의(앵티미즘)라고 불릴만한 경향으로 침잠했습니다. 물론 켄 로치, 다르덴 형제, 마이클 윈터보텀의 영화들은 그 경향에 종종 저항했지만, 대세를 되돌리진 못했습니다. 허우샤오시엔과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를 필두로 한 아시아 감독들의 영화에 세계영화계가 충격을 받고 그들에 경배를 바쳐온 이유는 그들이 감행한 영화언어의 혁신이 동시에 공동체 안에서 영화가 존재하는 방식의 재정립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형식에 대한 고민과 공동체에 대한 근심은 늘 함께 가진 않습니다. 허우샤오시엔과 키아로스타미가 형식에 대한 고민을 심화시켜가면서 그들의 초기영화가 지녔던 공동체에의 근심으로부터 조금씩 멀어져 온 것은 사실입니다. 지아장커가 특별히 존중되는 것은 아마도 그의 아시아 선배들이 지녔던 동시대적 연대의식을 끊임없이 새로운 형식에 담아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도 목록 작성에 참여했습니다. 빈 문서를 앞에 두고 고민하던 저를 이끈 것은 단순한 완성도 혹은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영화사적 가치가 아니었습니다. 모든 허위의 언어를 뚫고 우리가 대화를 다시 시작하는 데 영화가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 그리고 상품화된 살육의 이미지들과 영화가 어떻게 싸울 것인가였습니다. 이것은 너무 근엄하고 윤리적인 질문이어서 의식적으로 피해온 것이었지만, 더 감추거나 미룰 수 없을 만큼 절실해졌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목록 작성은 밖으로 말해지는 판정이 아니라 결국 제게 돌아오는 질문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목록은 무엇인가요. 5월의 어느 날, 몇 시간쯤을 그 질문에 바친다 해도 헛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족: 어떤 이는 그것을 질문으로 삼지 않고 판정관의 권력으로 받아들입니다. 〈버라이어티〉 기자 데릭 엘리는 〈살인의 추억2003〉을 포함시키면서 "한국영화는 이보다 더 훌륭한 영화를 낳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썼습니다. 그는 어쩌면 이토록 오만하고 무례할 수 있을까요. 저는 〈살인의 추억〉이 충분히 훌륭한 영화라고 생각하며 그 영화를 동시대의 베스트가 아니라 영화사 100년의 베스트로 뽑았어도, 그 선자와 즐겁게 논쟁할지언정 그를 비하하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오만방자한 언어는 참기 힘듭니다. 그런 정도의 정신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시아 영화와 한국 영화에 대해 발언하고, 그 발언이 유의미한 것으로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은 불쾌하기 짝이 없습니다.

허문영

이달 시네마테크 부산에서는 4월에 시작한 "4월의 영화이야기"가 8일까지 이어졌다. 9일부터 25일까지는 "프리츠 랑 회고전"을 진행했고, 27일부터 6월 1일까지는 "프랑스 영화축제"를 열었다. 이달부터 시네마테크 부산은 "영화 사랑방" 기획을 한국영상자료원 부산분원으로서 진행하는 "한국고전영화 정기 상영회"과 하나로 합친 듯하다. 7일 "영화 사랑방"에서는 〈바보들의 행진1975〉을 함께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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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호 (2008년 6월) : 프리츠 랑을 다시 보다

지난 5월 10, 11일 시네마테크 부산에선 프리츠 랑의 영화 세계에 관한 정성일 씨의 연속 특강이 있었습니다. 70여 명의 관객이 이틀 연속 그의 강연을 들었습니다. 1시간으로 예정된 강연은 이틀 모두 3시간을 넘겨 밤 12시가 되어서야 끝났습니다. 짐작건대 그 강연을 들을 수 있었던 사람들은 모두 귀한 선물을 받았습니다. 강연은 독일 무성영화 시대에서 출발해 할리우드의 미학적 전성기의 마지막 단계에 걸쳐진 랑의 미학적 순례를 개괄하며, 프리츠 랑 개인의 영화가 아니라 영화 그 자체의 내면에 조금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이끌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 강연을 듣지 않았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예컨대 프리츠 랑의 할리우드 영화가 독일 시대와는 달리 인물을 단순화하면서 사건을 복잡하게 만들었을 때, 그것은 이야기가 복잡해진 게 아니라 이야기의 표정이 복잡해진 것이며, 그 복잡한 표정의 주름과 골에서 비로소 랑의 시네마틱한 순간이 등장한다고 그가 지적했을 때 저는 소름이 돋았습니다. 랑의 영화는 확실히 우리에게 영화를 보는 다른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위대한 예술가만이 독법과 시선을 요청하고 그 안에서 자신을 완성합니다.

개인적으로 〈진홍의 거리Scarlet Street, 1945〉를 다시 보면서 저는 약간의 전율을 느꼈습니다. 이 영화는 지난 2월의 장 르누아르 회고전에서 상영된 〈암캐La Chienne, 1931〉와 같은 원작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저는 늘 르누아르의 무한 찬미자였지만 이 영화를 다시 보면, 랑을 똑같이 그만큼 찬미하고 싶게 됩니다. 같은 이야기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약간 달라진 설정 정도만으로 두 영화의 차이를 말한다는 건 큰 의미가 없습니다. 강연에서의 표현을 빌리면, 정말 다른 건 두 영화의 이야기의 표정입니다.

예컨대 이런 장면. 주인공 크리스(에드워드 로빈슨)가 행주치마를 입고 칼로 채소를 다듬다가 아내의 여전한 모욕적 언사를 듣고 잠깐 그 말을 되새기면서 칼을 든 채 어두운 얼굴로 아니 약간 찡그린듯한 미소를 지으며 서 있고 카메라는 그를 묵묵히 응시합니다. 이 영화는 온통 오인의 영화입니다. 크리스는 아내를 오인해 그녀와 결혼했고, 키티를 오인해 그녀에게 빠져듭니다. 그리고 이 순간 자신에 대한 자신의 오인을 징후적으로 드러냅니다. 그토록 성실하고 착한 회계원 크리스는 동시에 아내를 살해하는 악마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 장면은 복선이 아니라(결국 크리스는 아내가 아니라 정부 키티를 살해합니다), 오인의 반복입니다. 그 반복을 출현시키고 구조화하는 건 바로 운명입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빠져나갈 수 없는 운명의 구조를 반복하는 개인의 어두운 자리를, 그러니까 운명의 사악한 표정을 그의 이상한 미소만큼 더 소름 끼치게 보여줄 수 있을까요.

위대한 영화는 다시 볼 때마다 우리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비록 정성일 씨의 강연과 랑의 영화들을 놓치셨다 하더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위대한 영화와의 조우 혹은 재회의 기회를 가능한 한 자주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허문영

이달 시네마테크 부산에서는 2일부터 24일까지 "씨네비지트-이른 여름의 영화이야기"를 열었고, 26일부터는 "대만 뉴웨이브 특별전"을 시작하여 7월까지 이어나갔다. 25일 "수요시네클럽"에서는 민규동 감독의 추천작 〈까마귀 키우기Cría Cuervos, 1976〉를 상영했다. 11일 "영화 사랑방"에서는 〈안개<1967〉를 함께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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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호 (2008년 7월) : 파이를 키운다고 배분이 될까

〈강철중2008〉이 개봉됐을 때, 이 영화가 잘 돼야 위기의 한국영화가 숨통이 트인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제 7월 17일에 개봉하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이 잘 돼야 한다고 다들 이야기합니다. 꼭 이 영화들과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영화인들 일반 그리고 독립영화를 하는 사람들조차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틀린 말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상업적으로 성공하는 영화들이 지속적으로 나와야 충무로에 돈이 흘러들어오고, 그래야 제작 투자자들이 작은 영화들, 예술적 가치가 있는 영화들, 혹은 도전적인 영화들에도 관심을 기울일 여유가 생긴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판단에는 생각해보아야 할 점이 있습니다. 먼저 영화에 투자할 돈이 상대적으로 풍족해졌다 해도 그 투자의 결정은 수익성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는 기업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까지 지속된 한국영화의 활력은 충무로 토착제작자들이 종종 단기적 수익성 대신 문화적 책임감 혹은 좋은 의미의 명예욕이라고 부를 만한 동기에 이끌리면서 이루어졌습니다. 씨네마서비스가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2000〉과 〈취화선2002〉에 투자한 것은 이윤 동기 때문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싸이더스(혹은 전신인 우노필름)는 좋은 감독을 길러내기 위해 손실을 감수하고 봉준호, 장준환의 데뷔작을 제작했습니다.

그런 일이 이제 일어나기 힘든 것은 단순히 한국영화의 수익성이 최근 몇 년 간 급격히 떨어졌기 때문만이 아니라 많은 충무로 토착 제작자들이 2000년대 들어 대기업 혹은 금융자본과 몸을 합치면서 의사 결정구조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파이가 커지면 더 많이 배분될 것이라는 다분히 개발론적 발상은 달콤한 환상이 될 가능성이 훨씬 커진 것입니다. 게다가 대작 한편이 전 스크린의 30% 안팎을 차지하는 배급의 편향성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습니다. 날이 갈수록 승자 독식 구조는 더 강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국영화의 산업적 불황이 예술영화 독립영화에 꼭 좋지 않은 영향만을 미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제작 편수의 감소는, 뜻 있는 배우와 유능한 스탭들이 의미 있는 영화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넓히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1급 스타들이 개런티에 상관 않고 좋은 영화에 참여하는 일은 이전에도 종종 있어왔지만, 요즘은 더욱 활발해지고 있는 느낌입니다. 소속 매니지먼트 회사의 의사를 무시할 수 없는 배우의 입장에서, 산업적 불황이 오히려 활동 영역을 확대하는 기회도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는 다 양면이 있으며, 위기의 출구가 꼭 산업적 성장만은 아닐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한국경제 전체나 영화산업이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GNP의 수치가 삶의 질을 담보해줄 수 없듯이, 한국영화의 위기의 외형적 극복이 영화의 질을 높일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 질은 제도나 정책의 변화에 관계없이 어떤 조건 아래서도 한결같이 영화 그 자체에 몰두해 온 사람들에게 달려 있을 것입니다.

허문영

이달 시네마테크 부산에서는 6월에 시작한 "대만 뉴웨이브 특별전"이 13일까지 이어졌다. 15일부터는 "씨네 리플레이 2008 시즌 I"을 시작하여 8월까지 이어나갔다. 21일부터 26일까지는 "디지털 영사기술 워크샵"이 있었다. 30일 "수요시네클럽"에서는 이재용 감독의 추천작 〈시골에서의 일요일Un Dimanche à la campagne, 1985〉을 상영했다. 9일에는 "영화 사랑방"에서는 〈장군의 수염1968〉을 함께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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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호 (2008년 8월) : 류승완 감독의 질문

지난 7월 2일 문화방송 '무릎팍 도사'의 손님은 류승완 감독이었습니다. (그는 8월의 마지막 수요일에 시네마테크 부산을 다시 찾습니다.) 산악인이나 소설가도 나오는 프로그램이니 영화감독이 출연했다고 해서 특별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이미 3년 전에 '야심만만'에도 출연한 적이 있습니다. 둘 다 인기 연예 프로여서 이 정도만으로도 영화감독으로선 TV 출연이 잦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그는 그 장소에 꽤 어울립니다. 아니, 어울려 보이도록 많이 노력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가 출연한 이유를 잘 알고 있습니다. 자신의 신작(〈다찌마와 리2008〉)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감독이 연예프로에 나가서까지 홍보에 열을 올려야 되는가, 라고 스스로 생각하면 하기 힘든 일입니다. 그는 그런 시선에 개의치 않는 것 같습니다. 제가 아는 한 류승완 감독은 매표에 도움이 된다면 시장에 나가서 '샌드위치맨'이라도 할 사람입니다. 전형적인 상업영화를 만든 적이 없는 그의 목적은 늘 돈 자체가 아니라, 다음 영화를 만들 수 있는가에 있습니다. 만들고 싶은 영화를 계속 만들 수 있기만 하다면 뭘 못하랴, 하고 그는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의 그런 태도(방법이 아니라)를 마음 속 깊이 존중합니다.

'무릎팍 도사'가 영화감독을 지망하는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청하자 류승완 감독은 이렇게 말합니다."요즘 젊은 친구들은 영화감독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말 만들고 싶은가, 그리고 무엇을 만들고 싶은가, 라고 (자신에게) 먼저 질문해야 합니다." 잊기 힘든 말입니다. 일본의 저명한 학자이자 탁월한 영화평론가인 하스미 시게히코는 베르나르 앙리 레비나 앙드레 글뤽스만 같은 일부 68세대 출신 학자들이 "쓰는 것에 대한 광포한 욕망의 발로 이전에 이미 쓰는 장소의 확보라는 안전책에 집착한 입신출세주의"(〈현대일본의 비평〉)에 빠져들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일종의 낭만주의적 창작관에 기울어 있다고 말하기는 쉽습니다. 하지만 존경스러웠던 뛰어난 논객들이 대학에 자리를 잡은 이후로 쓰기를 거의 멈추는 모습을 종종 볼 때마다, '안전한 장소'가 '광포한 욕망'의 거처가 되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을 지우기 힘듭니다. 일탈마저 제도화하는 오늘의 자본주의의 압도적 능력을 떠올려보면 더욱 그러합니다. 류승완 감독의 질문을 다시 상기하게 되는 이유입니다.

허문영

이달 시네마테크 부산에서는 7월에 시작한 "씨네 리플레이 2008 시즌 I"이 7일까지 이어졌다. 8일부터 31일까지는 "에른스트 루비치 & 더글라스 서크 회고전"을 진행했다. 27일 "수요시네클럽"에서는 류승완 감독의 추천작 〈스팀보트 빌 주니어Steamboat Bill Jr., 1928〉을 상영했다. 13일 "영화 사랑방"에서는 〈단발머리1967〉를 함께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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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호 (2008년 9월) : 지아장커와 허우샤오시엔의 무협

지난 8월 21일, 시네마디지털서울 영화제에서 만난 이치야마 쇼조 씨로부터 들은 소식 한 가지를 전해드리려 합니다. 이치야마 씨는 도쿄 필름엑스 수석프로그래머이며, 지아장커의 〈24시티二十四城記, 2008〉의 프로듀서이기도 합니다. (개막작으로 상영된 〈24시티〉는 픽션과 다큐멘터리의 장벽을 전혀 새로운 차원에서 해소한 놀라운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이미 국내에 수입되었으므로 머지않아 개봉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치야마 씨가 지아장커와 다시 손잡을 다음 프로젝트는 무협 영화라고 합니다. 무대는 청나라 때이며, 원작 소설의 판권을 사들인 조니 토(두비공)가 지아장커에게 감독직을 제안했고 지아장커가 이를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조니 토가 프로듀서이고 지아장커가 감독인 무협 영화라니, 정말 믿기 힘든 그러나 그 결과가 너무나 궁금한 조합 아닙니까?

이치야마 씨가 전한 또 다른 소식은 공교롭게도 허우샤오시엔의 다음 프로젝트 역시 무협영화라는 것입니다. 당나라 때가 배경이고 여성 자객이 주인공인 영화이며 서기와 장첸이 주연으로 유력하다고 합니다. 또한 대만 정부가 제작비 300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확정한 상태에서(이런 규모의 지원은 대만영화계에선 처음이라고 합니다) 허우샤오시엔은 지금 시나리오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고 합니다.

무협과 가장 먼 거리에 있을 것 같은, 오늘의 영화 세상에서 가장 존경받는 두 중화권 감독이 도대체 어떤 무협 영화를 만들어 낼까요? 상상만으로도 정말 아찔합니다. 두 사람 모두 다음 해에 만들 계획이니 예정대로라면(그렇게 되기를 정말 바랍니다) 아마도 다다음해에는 다시 보기 힘든 엄청난 대결을 만날 수 있을 겁니다. 동석했던 정성일 씨(시네마디지털서울 집행위원장)가 이 소식에 흥분을 참지 못하고 내기를 제안했습니다. '누구의 영화가 더 나아갈 것이며 우리를 더 흥분시킬 것인가.'

한참 고민하다(어찌 고민되지 않겠습니까) 세 사람 모두 지아장커의 손을 드는 바람에 내기는 무산됐지만, 우리의 설렘은 진정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기다림보다 더 설레는 일은 영화 세상에서 10년에 한 번도 있기 힘들 것입니다. 여러분은 누구의 손을 들고 싶으십니까?

허문영

이달 시네마테크 부산에서는 2일부터 21일까지 "오즈 야스지로 회고전"을 진행했다. 10일 "영화 사랑방"에서는 〈내시1968〉를 함께 보았다. 23일부터 10월 1일까지는 부산국제영화제 업무협조 관련으로 상영이 없었고, 10월 2일부터 10일까지는 부산국제영화제 개최로 인해 휴관했다. 《시네마테크 부산》도 10월 호는 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언급된 영화 중 두기봉이 제작하고 지아장커가 연출하는 무협 영화는 2015년까지는 나오지 않았다. 허우샤오시엔이 연출하고 서기와 장첸이 출연하는 무협 영화는 〈자객 섭은낭刺客聶隱娘, 2015〉으로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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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호 (2008년 11월) : 서극의 경쾌함

13회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에 서극 감독을 비교적 여유 있게 인터뷰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의 남 못지 않은 팬이어서(〈제일유형위험第一類型危險, 1980〉, 〈칼刀, 1995〉, 〈순류역류順流逆流, 2000〉, 〈촉산전蜀山傳, 2001〉을 특히 좋아합니다) 그런 기회는 그저 고마울 도리 밖에 없습니다.

서극은 공인된 예술가는 아닙니다. 필모그래피는 40편에 이르지만 이른바 유럽 3대 프리미어 영화제에 초청된 영화는 〈순류역류〉(베니스, 2000년) 밖에 없습니다. 두기봉이 프랑스에서 홍콩의 새로운 시네아스트로 발견되는 동안에도 〈순류역류〉 정도만 조명되었을 뿐, 예술가로서 서극을 재평가하는 움직임은 아직 본격화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는 여전히 유능한 상업영화 감독이거나 소수 마니아들의 우상입니다.

사견으로는 서극이 아직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칼〉과 〈순류역류〉도 훌륭하지만 저는 〈촉산전〉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 황당무계한 판타지 무협 영화에서, 서극은 인간의 비상하는 몸의 움직임을 거의 추상화의 경지에까지 몰고 갑니다. 어느 순간부터 이야기도 잊고 캐릭터도 망각한 채 명상과도 같은 그 과격하고도 무구한 움직임에 넋을 잃게 됩니다. 서사는 거의 그 움직임을 위한 핑계처럼 보일 지경입니다.

물론 서극의 영화에서 이야기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지옥무문地獄無門 , 1980〉이나 〈제일유형위험〉, 〈도마단刀馬旦, 1986〉 같은 초기 영화들, 그리고 무엇보다 〈영웅본색 3英雄本色 III - 夕陽之歌, 1989〉은 탁월한 드라마의 힘이 뒷받침 된 걸작 장르 영화들입니다. 다만 그는 인간의 몸의 움직임이 빚어내는 역동성과 아름다움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준비해 간 질문의 20%도 채 못 물어보았지만, 그의 어떤 답변은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그는 베트남에서 태어나 13세에 홍콩으로 이주한 뒤, 18세에 미국으로 유학을 갔고, 10년 뒤에 다시 홍콩으로 돌아옵니다. 그는 이 유목민적 소년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겐 집에 중요했습니다. 20여명이나 되는 대가족이 한데 모여 왁자지껄하게 밥을 먹는 집. 그러나 언젠가부터 그곳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여러 곳을 오래 떠돌았지만 세상을 더 알게 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떠도는 동안 나를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나 자신을 여행한 것과 비슷한 것이었습니다."

이 말은 그의 영화 세계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그는 몸과 몸이 부딪히는 무협 영화의 대가이며 종종 잔혹하고 원시적 폭력을 연출하지만 한 번도 서사를 증오에 의존한 적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또한 한 번도 힘 그 자체에 도취된 적도 없습니다. 그의 영화들은 언제나 쾌활함을 잃지 않았고, 그의 주인공들은 자신이 단독자라는 사실을 수긍합니다. 장이모의 무협 영화들이 보여주는 힘에 대한 파시스트적인 찬미, 혹은 어떤 오우삼 영화들이 보여주는 장식으로서의 비장미가 시효를 다한 후에도 서극의 저 경쾌한 무협이 오래 살아남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한국의 대중 영화는 서극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허문영

이달 시네마테크 부산에서는 10월 31일에 시작한 "고다르 영화전"이 6일까지 이어졌다. 7일부터 27일까지는 "오래된 극장"을 진행했다. 28일부터는 "2008 메이드인 부산독립영화제"를 시작하여 12월까지 이어나갔다. 19일 "수요시네클럽"에서는 이윤기 감독의 추천작 〈우연한 방문객The Accidental Tourist, 1988〉을 상영했다. 12일 "영화 사랑방"에서는 〈겨울여자1977〉를 함께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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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호 (2008년 12월) : 작은 사람들

소란스러웠던 이 해의 마지막 날들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세상은 예상했던 것보다 빨리 추워지고 우울해지고 있습니다. 주로 영화와 관계된 일을 하는 제 주변 사람들도 웃음보다 한숨의 시간이 더 길어졌습니다. 누구 못지않게 뛰어난 학식의 교양인이었던 친구 하나는 너무 힘들어 최근에 점을 보러 갔다고 고백했습니다. 허술하고 미덥지 않더라도 어떤 위안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11월 19일에 시네마테크 부산을 방문한 이윤기 감독은 관객과 함께 볼 영화로 〈우연한 방문객The Accidental Tourist, 1988〉을 선택했습니다. 이 영화의 원제는 '우연한 여행자'(Accidental Tourist)입니다. 세상에는 모험가 기질과 개척자 정신으로 무장된 큰 사람도 있지만, 낯선 곳을 싫어하고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을 두려워하는 작은 사람도 있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후자입니다. 아이를 잃고 힘겨운 시간을 보내던 그는 결국 우아하고 이성적인 아내가 아닌 수다스럽고 촌티 나는 여인을 택합니다. 아마 그에게도 위안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삶을 춤고 낯선 곳으로의 우연한 여행으로 느낀다면, 그래서 피로와 우울이 깃든 이 남자를 보고 어쩔 수 없는 연민이 솟는다면, 그 역시 작은 사람일 것입니다. 실은 우리 모두 그러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걸작이 아니라도 오랜 친구의 포옹처럼 따뜻한 위안의 영화를 거부할 도리가 없습니다. 물론 〈신기전2008〉처럼 힘의 무한추구를 찬미하는 선동과 우리의 위안은 구분되어야 할 것입니다만.

시네마테크 부산이 내년에 10주년을 맞습니다. 화려해지고 커지진 않을지라도, 이 소박하고 귀한 공간이 작은 사람들의 쉼터가 되도록 더 애쓰겠습니다.

(작은 소식 한 가지만 덧붙이겠습니다. 시네마테크 부산을 몇 차례 방문할 때마다 잊을 수 없는 강연으로 청자들을 흥분시켰던 정성일 씨가 드디어 12월 7일 자신의 첫 연출작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가제)을 찍기 시작합니다. 물론 최소한의 예산으로 찍는 가난한 영화입니다. 신하균, 정유미, 김혜나가 그의 카메라 앞에 선다고 합니다. 이 영원한 영화 청년은 오랫동안 영화 만들기의 꿈을 꾸었고, 그의 나이 50에 마침내 카메라를 들었습니다. 진정으로 축하 받을 자격이 있는 드문 일입니다.)

허문영

이달 시네마테크 부산에서는 11월에 시작한 "2008 메이드인 부산독립영화제"가 2일까지 이어졌다. 3일부터 12일까지는 "앙코르 오래된 극장"을 진행했고, 13일부터는 "아듀 2008 사랑 혹은 상실의 기억들"을 시작하여 2009년 1월까지 이어나갔다. 10일 "영화 사랑방"에서는 〈우묵배미의 사랑1990〉을 함께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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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호 (2009년 1월) : 좋은 건 언제나 좋다

미술 관련 서적을 읽다 흥미로운 구절이 눈에 띄었습니다. 시대가 바뀌어 화려한 화풍의 새로운 그림들이 대세를 이루자 어느 철학자가 한 말입니다. "새로운 그림들은 색채의 아름다움과 다양함으로, 맨 처음에는 우리에게 얼마나 강력하게 호소하는가. 그러나 우리들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사로잡는 것은 거칠게 그린 옛 그림일 것이다."

우리는 다른 대상을 향한 같은 취지의 말을 어릴 때 많이 들었거나 혹은 지금 우리 스스로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취향을 일반화한 표현이 '오래된 게 좋아(Oldies But Goodies)'이겠지요. 그런데 위의 말을 한 사람은 로마 시대의 철학자 키케로입니다. 즉 이 말은 2000여 년 전에 나온 말입니다. 우리가, 예컨대, '요즘 대중음악은 현란한 연주와 빠른 비트로 사람들 혼을 빼놓지만 정말 좋은 건 옛날에 나온 단순하지만 깊이가 있는 옛 음악이야.' 라고 말할 때 기껏 수십 년 전이 향수의 대상이지만, 놀랍게도 기원전에도 사람들이 여전히 '옛것'을 그리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수천 년 동안 옛것이 좋았다고 말해져 왔다면 실은 '좋은 옛것'이란 허구라고 말해야 옳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좋은 옛것'을 동시대적인 것으로 만났던 당대의 사람들은 자신의 동시대적인 것보다 더 옛것을 그리워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묘한 사실은 옛것에 대한 향수와 새로운 것에 대한 집착은 공존한다는 것입니다. "이건 정말 새로워"라고 찬탄할 때,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새로움에 대한 강박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기술이 아니라 예술에 관한 한 옛것 혹은 새로운 것이라는 명명은 무의미하거나 종종 오도의 결과를 빚습니다. 너무 단순해 보이는 표현일지 모르지만, '좋은 건 언제나 좋다'라는 명제가 훨씬 진실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우리가 지난 8월에 류승완 감독과 함께 본 버스터 키튼의 〈스팀보트 빌 주니어Steamboat Bill Jr., 1928〉에 매혹된 이유는 그것이 오래된 영화라는 사실과 전혀 무관합니다.

시네마테크 부산은 2008년에 '리턴 투 클래식'이라는 기치로 고전 중의 고전으로 평가 받는 작품들을 소개하는 데 중점을 두어왔습니다. 이것은 회고 취향의 발로가 아닙니다. 고전은 옛것에 속해 있는 게 아니라 언제나 동시대적인 것입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동시대적인 울림이 없다면 더 이상 고전이 되지 못하겠지요. 2009년에도 공인된 고전을 소개하는 작업은 계속될 것입니다. 동시에 고전적 가치를 지닌 동시대의 영화들을 탐색하는 데에도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시네마테크의 주제는 좋은 옛 영화가 아니라 '언제나 좋은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허문영

이달 시네마테크 부산에서는 2008년 12월에 시작한 "아듀 2008 사랑 혹은 상실의 기억들"이 8일까지 이어졌다. 9일부터 29일까지는 "장철과 홍콩남아들"을 진행했고, 30일부터는 "프렌치 무드"를 시작하여 2월까지 이어나갔다. 14일 "영화 사랑방"에서는 〈공처가 삼대1967〉을 함께 보았고, 21일 "수요시네클럽"에서는 배우 이나영의 추천작 〈사랑의 추억Sous le sable, 2000〉을 상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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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호 (2009년 2월) : 〈네 멋대로 해라〉

올해는 장 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À bout de souffle, 1960〉가 만들어진 지 정확히 50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 20세기 최고의 문제적 데뷔작에는 너무도 많은 찬사와 비평과 연구가 뒤따라서 이제 무언가 덧붙이는 것조차 부질없는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럼에도 굳이 이 영화를 거론한 것은 좀 쑥스럽지만 2002년의 TV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를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잠을 이루지 못해 혹은 일찍 깨어 새벽을 맞으신 분이라면 한 케이블 채널에서 이 드라마가 지금 다시 방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같은 제목을 지닌 이 영화와 드라마의 공통점은 청춘남녀의 로맨스를 소재로 삼았으며 남자 주인공이 범죄자(출신)라는 사실 말고는 거의 없습니다. 사실을 말하면 처음 이 드라마의 제목을 보았을 때, 〈게임의 법칙1994〉이나 〈무방비도시2007〉처럼 제목만 복제한 다른 작품이 그랬듯이, 개인적으로는 마뜩잖았습니다. 그 최초의 제목을 지닌 영화들에 대해 무한한 경외심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연히 한 회를 본 뒤로 저는 이 드라마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그 인물들에 사로잡혔습니다. 다른 운명을 타고나 다른 삶을 살았으나, 끝내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킨 사람들. 어떤 상투구도 과장도 없이 그 인물들의 체온이 고스란히 전해져, 이 드라마를 본 뒤로는 한동안 길을 걷다가도 그들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착각에 종종 빠졌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들이 보고 싶었습니다. 누구보다 복수(양동근)와 경(이나영)이라는 사람을. 적지 않은 한국인이 비슷한 감흥에 젖었던 것 같습니다.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는 그해 최고의 화제작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 드라마의 역사에 길이 남는 명작이 되었습니다.

저는 한국의 주류영화가 〈네 멋대로 해라〉에서 여전히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드라마는 감각적 자극이나 감정적 과장이 아니라 오늘의 삶과 인간에 대한 정직하고 따뜻한 관찰로부터 뜨겁고 심원한 공감의 순간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다소 과장된 대비라고 해도 이렇게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가 모든 주류적 관습을 성찰하고 교란함으로써 영화사를 빛낸 미학적 성취를 이루었다면,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는 그 관습 안에서 보는 이에게 진심의 손을 내미는 주류적 서사의 한 정점에 이르렀습니다. 두 〈네 멋대로 해라〉는 여전히 생각할 거리를 던져줍니다.

(이 소식지가 배포될 시점은 〈네 멋대로 해라〉에 나와 잊을 수 없는 사람이 된 이나영 씨가 시네마테크 부산을 다녀간 이후일 것입니다. 그만한 위치에 있는 스타가 이렇게 어떤 대가도 없이 움직인다는 게 본인의 의지가 있다 해도 매우 어렵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그의 방문은, 〈비몽2008〉에의 출연 결정과 마찬가지로, 영화의 더욱 고립되고 주변화되어가는 예술적 가치를 옹호하는 시네마테크 활동의 대의를 응원하기 위해서입니다. 그의 방문이 지닌 뜻을 상기하면서, 깊은 감사의 뜻을 작은 지면에서나마 다시 전하고 싶습니다.

허문영

이달 시네마테크 부산에서는 1월에 시작한 "프렌츠 무드"가 내내 이어져 3월 1일까지 계속됐다. 26일부터 3월 1일까지는 "세르지오 레오네 컬렉션"도 병행했다. "영화 사랑방"에서는 〈그들도 우리처럼1990〉을 함께 보았다. 본문에서 "〈게임의 법칙〉"은 원래 "〈게임의 규칙〉"이었지만, 장 르누아르 감독의 영화 〈게임의 규칙La Règle du jeu, 1939〉과 제목이 비슷한 장현수 감독의 영화 〈게임의 법칙〉을 말하는 것으로 보여 수정했음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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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호 (2009년 3월) : 영화는 진화했는가?

한 회의에 참석하느라 영화진흥위원회 사무실에 갔다가 복도에 걸려 있는 액자를 보았습니다. 그 액자에는 큰 붓글씨로 이렇게 씌어져 있었습니다. '한국 영화여, 진화하라'. 이 액자가 언제부터 걸려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진화'라는 단어가 자꾸 머리를 맴돕니다. 물론 이 문구를 만든 사람의 소박하고 진지한 뜻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꼭 진화해야 하는가'라는 순진한 반문을 해볼 필요는 있는 것 같습니다.

3월 20일부터 시네마테크 부산에서 열리는 '월드시네마 6' 상영작 중의 한 편은 위대한 광대 버스터 키튼의 〈셜록 주니어Sherlock Jr., 1924〉입니다. 처음 관람하는 분이라면(3년 전 시네마테크 부산에서 키튼의 회고전이 열린 적이 있습니다) 1924년에 만들어진 무성영화이며 당시엔 매우 상업적인 코미디였던 이 작품이 마법과도 같은 생동감과 역동성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에 놀라면서도, 동시에 영화의 환영적 본질을 걸출한 상상력으로 묘파하고 있다는 사실, 즉 그 영화의 지성에 경탄을 금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주 간단한 질문 한 가지를 떠올리게 됩니다. 오늘의 영화는 〈셜록 주니어〉로부터 얼마나 진화했을까요. 예컨대, 최근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더 클래스Entre les murs, 2008〉 혹은 〈4개월, 3주… 그리고 2일4 luni, 3 săptămâni și 2 zile, 2007〉은 이 영화로부터 얼마나 나아간 것일까요? 이 작품들의 선택이 못마땅하다면 〈카이에 뒤 시네마〉가 2008년 최고의 영화로 뽑은 브라이언 드 팔머의 〈리댁티드Redacted, 2007〉는 혹은 〈씨네21〉이 2008년의 베스트로 꼽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en, 2007〉는 〈셜록 주니어〉로부터 얼마나 많은 단계의 진화 과정을 거친 것일까요?

서둘러 제 생각을 말씀드리면 '진화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생물학적인 진화의 개념으로 보면 최근 작품들이 훨씬 구조가 복잡해졌고 규모도 커졌으므로 진화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미학적 위계에서의 상승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심지어 보는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영화가 주는 쾌감에서의 상승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것을 애석해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다만 그렇게 많은 변모와 아찔한 탈바꿈이 있었지만, 영화에서의 진화는 그 뉘앙스가 지닌 발전이나 개선이 아니라 그저 변화일 뿐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려 합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지독히 전통적인 영화가 종종 심금을 울리는 것은 변화 혹은 진화에 대한 어떤 강박의 흔적도 없는 그 한없는 무심함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영화 뿐만 아니라 미술과 음악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명한 미술사가 곰브리치는, 진화 예찬자에게는 억지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어린 아이의 모든 그림은 걸작이라고 단언합니다.)

영화의 신들 사이에는 어떤 위계도 없습니다. 그들이 빚어낸 한결같이 위대한 유산을 봄날의 시네마테크에서 맘껏 즐기시기를 기원합니다.

허문영

이달 시네마테크 부산에서는 3일부터 19일까지 "봄날의 뮤직 카페"를 진행했으며, 20일부터 "월드시네마 6"을 시작하여 4월까지 이어나갔다. 11일 "영화 사랑방"에서는 〈삼포 가는 길1975〉을 함께 보았다.

허문영이 여기에서 쓴 "진화"라는 표현에 관하여 : 허문영은 "진화"를 정도나 수준이 나아지거나높아진다는 의미의 "진보"와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듯하다. 이것은 그가 특히 토머스 샤츠의 『할리우드 장르의 구조』(허문영과 한창호가 함께 옮겼다)에서 샤츠가 말한 장르 진화론에 반론을 펴는 과정에서 자주 거론하게 된 개념이다. 그러나 생물학적 의미에서 "진화"는 우열의 가치 판단을 포함하는 개념이 아니며, 더 진화한 것이라고 해서 덜 진화한 것보다 더 우수하다는 의미는 없다. 물론 허문영의 맥락은 분명하지만, "진화"라는 표현 자체는 수정할 필요가 있다. 이로부터 5년 후인 2014년 4월 10일 허문영은 KMDb에 연재하는 "존 포드 이야기"에서 〈역마차Stagecoach, 1939〉에 관해 논하며 다시 한 번 "진화"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가 위와 같은 개념의 오용에 반대한 DJUNA와 짧은 토론을 벌였다. 관련 내용은 KMDb의 해당 글에 댓글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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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호 (2009년 4월) : 재미있는 영화를 많이 보십시오

늦었지만 봄의 캠퍼스에 첫발을 디딘 부산의 대학 신입생들에게, 특히 영상 관련학과 신입생들에게 축하 인사와 함께 한 말씀 전하려 합니다. 3월 말의 어느 날, 시네마테크 부산에서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여행자Professione: reporter, 1975〉를 보고 나온 모 대학 영상 관련학과 신입생들의 다소 난감해하는 표정들, 이 영화와 비교해보면 재미있을 것이라고 제가 생각했던 '본 시리즈' 즉 〈본 아이덴티티The Bourne Identity, 2002〉, 〈본 슈프리머시The Bourne Supremacy, 2004〉, 〈본 얼티메이텀The Bourne Ultimatum, 2007〉을 본 사람들이 그들 중의 4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한동안 머리에서 맴돌았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인 심정을 말하자면 저는 여러분이 부러워 죽을 지경입니다. 스무 살의 제가 타임머신을 타고 오늘에 도착한다면, 여러분은 가히 영화 천국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일 것입니다. 온갖 영화제와 DVD와 VOD와 케이블 채널, 무엇보다 시네마테크까지. '월드시네마 6'에 해설을 하러 온 동료 평론가 김영진(명지대 교수)에게 시네마테크 부산에 오면 한국 고전영화 1200여 편과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을 언제든 볼 수 있다고 말해주자, 놀라면서 자기 같으면 매일 여기 와서 살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도 저와 같은 세대입니다. 영화에 너무도 목이 말랐지만 볼 수 없었던 세대, 금지와 위반의 팻말을 넘어야 비로소 영화에 탐닉할 수 있었던 세대.

이런 구세대들은 여러분이 영화를 대하는 느낌을 잘 알지 못합니다. 아직도 제게 영화는 어딘지 금단의 열매와 같은 느낌으로 종종 다가오지만(예컨대 〈공룡 100만 년One Million Years B.C., 1966〉의 라켈 웰치의 그 아찔한 허벅지와 같은), 여러분에게 영화는 공식적인 제도 혹은 기성의 질서와 비슷한 보다 딱딱한 종류의 존재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좋은 환경인데 왜 영화를 보지 않는가, 라고 말하는 건 자기 어린 시절의 가난을 무기로 내세우는 전형적인 꼰대의 잔소리가 될 것입니다.

결국 비슷한 꼰대의 소리처럼 들리더라도 한 가지를 권유하고 싶습니다. 도쿄대 총장을 역임한 일본의 저명한 영화평론가 하스미 시게히코가 한 강연에서 "영화에 대한 안목을 쌓으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가?"라는 젊은 관객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가리지 말고 영화를 봐라. 나쁜 영화도 함께 보지 않으면 좋은 영화를 보는 안목이 생기지 않는다." 저는 그 말을 모방해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재미있는 영화를 보시기 바랍니다. 대신 많이 보시기 바랍니다.

영화는 속된 예술입니다. 천하고 외설적이고 잡스런 예술입니다. 위대한 영화는 그 태생적 비천함의 밖이 아니라 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제가 가장 존경하는 감독 가운데 하나인 존 포드는 감독에게 가장 중요한 건 예술적 성공이 아니라 상업적 성공이라고 평생 믿었던 사람입니다. 소위 예술영화만 보는 사람이 그 예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누군가 '본 시리즈'처럼 아찔하게 재미있는 할리우드 영화를 신물 나게 보았다면, 안토니오니의 〈여행자〉가 왜 그토록 심금을 울리는지를, 머리로 이해하기 전에 몸이 느끼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어떤 경로로든 오늘 구미가 당기는 영화를 바로 보고 즐기는 것. 그것보다 영화에 더 가까워지는 길은 없습니다.

허문영

이달 시네마테크 부산에서는 3월에 시작한 "월드시네마 6"이 19일까지 이어졌다. 21일부터 26일까지는 "아시아 독립영화의 오늘"을 진행했으며, 28일부터는 "장률 & 지아장커 특별전"을 열어 5월까지 이어갔다. 22일 "수요시네믈럽"에서는 〈똥파리2008〉를 상영했다. GV라는 표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양익준 감독은 참석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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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호 (2009년 5월) : 장동휘

장동휘는 1920년에 태어나 2006년 4월 2일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올드팬들은 누구나 아시겠지만 한국 영화의 아름다운 시절이었던 1960년대에 박노식, 허장강과 함께 은막의 뒷골목을 배회하는 어둠의 사내, 마초의 아이콘이었습니다. 박노식과 허장강이 주로 다변에다 가벼운 악역을 많이 맡았지만, 장동휘가 등장할 때 대개 스크린에는 밤이 깊었고 그는 말수가 극히 적었습니다.

그의 눈은 당대의 어떤 남자 배우보다 깊고 신비했으며, 그가 우리에게 뒷모습을 보이며 조용히 걸어갈 때, 건장한 어깨에도 불구하고 그 우아한 걸음걸이(그렇게 우아하게 걷는 다른 남자 배우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에는 어딘지 오랜 친구의 작별 인사와도 같은 처연함이 배어 있었습니다. 모든 책임을 홀로 떠맡은 자의 침묵, 이제 떠나면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은 예감으로 그는 우리를 사로잡았습니다. 그가 출연한 500여 편의 영화 가운데 일부밖에 보지 못했지만, 한국 영화사에서 최고의 배우를 꼽는 설문이 있다면 저는 망설이지 않고 여전히 가장 앞자리에 그를 적고 싶습니다.

새삼스레 그의 이름을 꺼낸 이유는 5월 15일부터 열리는 시네마테크 부산의 기획전 '미지의 임권택: 초기 장르 영화들의 재발견'에서 그를 다시 만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기획전의 주제는 '젊은 임권택'이고 거의 공장생산 라인과도 같은 제작환경에서 이뤄낸 그의 걸출한 성취를 여기서 재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며 이 소식지의 다른 지면에서 보다 자세히 언급될 것입니다. 다만 상영작들을 먼저 훑어본 저로서는 장동휘를 찬미하고픈 마음을 누르기 힘듭니다.

10편의 상영작 가운데 그가 출연한 작품은 〈황야의 독수리1969〉와 〈원한의 거리에 눈이 내린다1971〉 두 편뿐이지만 그의 존재감은 다른 배우들을 잠시 잊게 만들 정도로 막대합니다. 특히 그가 조연으로 출연한 〈원한의 거리에 눈이 내린다〉를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조직의 보스인 그는 자기 딸이 그토록 사랑하는 의붓아들 강민(박노식)이 다른 여자 소연(문희)과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적의 구역에서 부모 상견례를 하는 자리에 기꺼이 나갑니다. 상대 조직원들이 그에게 다가오자 그는 "잠시 실례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일어나 건물 뒤편에서 그들의 칼을 받은 뒤 흐르는 피를 감추고 다시 상견례 자리에 조용히 앉습니다. 이 과묵하고 우아하고 비장한 장면은 정말 심금을 울린다고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그가 4년 전 세상을 떠났을 때, 한국의 언론은 그를 추모하는 데 극히 인색했으며 명색이 영화평론가인 저도 그를 정당하게 기리는 데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했습니다. 늦었지만 이렇게라도 그의 이름을 되새기고 싶습니다.

허문영

이달 시네마테크 부산에서는 4월에 시작한 "장률 & 지아장커 특별전"이 14일까지 이어졌다. 15일부터 26일까지는 "미지의 임권택"을 진행했으며, 27일부터 31일까지는 "줄리엣 비노쉬 특별전"을 열였다. 13일 "영화 사랑방"에서는 〈장마1979〉를 상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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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호 (2009년 6월) : 영화 보기와 시체 보기

박찬욱 감독의 〈박쥐2009〉에 영감을 제공했다는 소설 〈테레즈 라캥〉은 1867년 에밀 졸라가 불과 27세의 나이에 발표한 걸작입니다. 통속 멜로와 가공할 심리 분석과 괴기가 뒤섞인 이 굉장한 소설은 흥미로운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지만, 다시 읽어보니 특별히 눈에 띄는 대목이 있습니다. 바로 19세기 파리의 시체공시장을 묘사한 장면입니다.

당시의 시체공시장은 사망자의 시신을 일반 시민에게 공개하는 장소였습니다. 여주인공 테레즈의 남편을 살해한 테레즈의 정부 로랑이, 시체가 발견되었는지 알기 위해 매일 들립니다. 일터에 가는 길에 빵과 연장을 들고 구경 온 노동자, 여위고 기름기 없는 노인들, 젊은 여직공, 시골 부인, 간혹 고급 드레스를 입은 부인들로 이곳은 늘 북적거립니다.

놀라운 것은 이곳이 오늘의 영화관과 흡사하게 보인다는 점입니다. 졸라의 묘사는 이렇습니다. "인간의 살덩이가 제대로 진열되어 있으면 구경꾼들은 급히 달려와 값싼 감동을 느꼈다. 마치 극장에서 하듯이 농담하고 갈채를 보내고 휘파람을 불고는 오늘 시체공시장은 괜찮았다고 말하면서 만족하며 물러갔다."

이 시대의 파리 사람들이 특별히 잔인하거나 도착적이라고 믿을 근거는 없습니다. 우리는 영화 보기와 시체 보기에 은밀한 유사성이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것은 불가피하게 도착적 욕망의 발현입니다. 물론 "시체는 끝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과거의 축적"이라는 들뢰즈의 말을 빌어, 하나의 시체가 하나의 이야기라고 약간 고상하게 시체 보기의 쾌감을 변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관객마다 그 대상을 통해 보고 싶어 하는 것이 전부 같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타자의 육체라는 대상을 나의 시선이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는 어떤 고양감과 흥분이 두 행위에 공통적으로 포함되어 있을 것입니다. 아름다운 시신에 대한 성적 흥분, 혹은 파열된 육체에 대한 가학적 쾌감도 그 고양감 안에 담긴 도착적 욕망에 포함될 것이고, 이 역시 영화 보기에도 적용됩니다. 저는 도착적 욕망이 악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인간에게 불가피합니다.

다만 이렇게는 말할 수 있습니다. 도착적 욕망을 전용하며 은폐하는 영화는 사악한 영화이고, 그것을 곧이곧대로 노출하는 영화는 솔직한 영화이며, 그것을 드러내며 숙고하는 진중한 영화이고, 그것과 완전히 떨어진 곳에서 영화적 순간을 빚어내는 영화는 좋은 영화라는 것입니다.

6월 셋째 주에 다시 찾아오는 자크 타티의 위대한 코미디들은 누구라도 그 마지막 범주에 포함시키지 않을 수 없는 영화입니다. 지난 2006년 국내에선 처음으로 시네마테크 부산에서 그의 회고전이 열렸을 때, 많은 분들이 그를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별다른 이야기도 없는, 그저 작은 소동극의 부산한 움직임만으로 도달한 저 숭고한 수줍음의 세계를 이번에는 놓치지 마시기 빕니다.

허문영

이달 시네마테크 부산에서는 2일부터 14일까지 "마스무라 야스조 회고전"을 진행했으며, 16일부터21일까지는 "자크 타티 회고전"을 열었고 24일부터는 "장철과 홍콩남아들 II"를 시작하여 7월까지 이어나갔다. 10일 "영화 사랑방"에서는 〈천년호1969〉를 함께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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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호 (2009년 7월) : 현장의 기운이 스며든 영화

발터 벤야민의 에세이 〈산딸기 오믈렛〉에는 온갖 전쟁을 겪고 최고 권력자가 된 후 우울증에 빠진 늙은 왕이 등장합니다. 그는 궁정 요리사를 불러 젊은 시절 쫓기다 산골 노파에게 얻어먹은 산딸기 오믈렛의 오묘한 맛을 되살려보라고 명합니다. 그 맛을 되살린다면 요리사에게 후계자의 자리를 주고, 그러지 못할 경우 교수형에 처하겠다는 말을 덧붙입니다.

왕의 말을 들은 궁정요리사는 망설임 없이 교수형을 자처합니다. 그리고 덧붙입니다. "폐하께서 그 당시 드셨던 모든 양료를 제가 어떻게 마련하겠습니까. 전쟁의 위험, 쫓기는 자의 주의력, 부엌의 따뜻한 온기, 뛰어나면서도 반겨두는 온정, 어찌 될지도 모르는 현재의 시간과 어두운 미래… 이 모든 분위기는 제가 도저히 마련하지 못하겠사옵니다."

이 이야기는 벤야민 예술이론의 중심 개념인 '아우라'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에피소드로 흔히 인용되지만, 그 외에도 이런저런 생각의 소재를 줍니다. 작품의 수용은 작품에 내재한 속성뿐만 아니라, 수용(자)의 상황에 달려 있다는 상식적 사실을 먼저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장이 반찬'이라는 우리 속담도 비슷한 사실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 옛날 오믈렛 '안'에 '부엌의 온기', '노파의 온정'이 새겨져 있었다고 가정해 보면 어떨까요?(우리 음식 문화에도 이와 연관된 '엄마 손'의 신화가 있습니다.) 여기에 그때 그 숲의 바람과 공기 속에서 자란 어떤 식물로 만든 향료까지 더해졌다고 가정하면 어떨까요? 그 오믈렛은, 복제할 수 있으나 '아우라'가 사라지는 것(이것이 궁정요리사가 두려워한 것이지만)이 아니라, 복제 자체가 불가능해집니다.

음식에 비유할 때, 칭송 받는 영화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최상의 많은 재료들을 꼼꼼하게 준비하고 정교하게 배합한 영화와, 범상하고 적은 재료를 쓰지만 그때 그곳의 풍성한 기운이 스며든 영화. 전자가 치밀하게 계획하고 구축한다면, 후자는 계획을 최소화하고 현장성, 즉흥성, 우연성에 몸을 엽니다. 전자가 고전기 할리우드 혹은 히치콕의 방식이라면 후자는 네오리얼리즘 혹은 그 이후의 어떤 작가적 방식입니다. 오늘의 한국에서라면, 전자가 박찬욱, 봉준호의 방식이며 후자가 홍상수의 방식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영화를 좋아하십니까. 사적 판단을 뒤로 하고, 영화평을 쓰는 처지에서 말하면 후자에 대해 쓰기가 훨씬 어렵습니다. 전자의 경우에는 그 계획을 추정하고 그 추정된 계획에 따라 쓰면 되지만(물론 평자의 능력 부족으로 추정이 빗나가거나 부실한 경우는 종종 있지만), 후자의 경우엔 계획이 아니라 거기에 스며든 기운 혹은 어떤 공기 혹은 어떤 반짝임을 써야 하는데 그것들이 전(前)언어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후자의 말해질 수 없는 그 풍성함에 종종 매료됩니다.

근면한 노동자처럼 매년 영화를 만드는 홍상수가 올해도 어김 없이 새 영화를 7월 2일부터 통영에서 찍습니다. 예산은 역시 1억이며 김상경, 문소리, 유준상, 김강우, 김민선 등이 무료 출연합니다. 그의 영화는 박찬욱과 봉준호의 영화보다 훨씬 적게 관람되고 상대적으로 적게 말해지지만 그것은 그의 영화가 지닌 숙명일 것입니다. 그렇다 해도 그 말해질 수 없는 풍요로움, 그 시네마틱한 희열에는 어떤 훼손도 없습니다. 그 오묘한 맛을 기다리는 설렘을 나누고 싶은 마음에서 썼습니다.

허문영

이달 시네마테크 부산에서는 6월에 시작한 "장철과 홍콩남아들 II"가 2일까지 이어졌다. 3일부터 19일까지는 "씨네리플레이 2009"를 진행했으며, 20일부터 25일까지는 "디지털 영사기술 교육" 관계로 상영이 없었다. 26일부터는 "우디 앨런 특별전"을 시작하여 8월까지 이어나갔다. 8일 "영화 사랑방"에서는 〈최후의 증인1980〉을 함께 보았다. 김 씨 성을 지닌 사람 외 초대 손님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김영진 평론가이거나 원작자인 김성종 소설가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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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호 (2009년 8월) : 시네마테크 부산이라는 공간의 기억

얼마 전 사석에서 동서대 손현석 교수는 수영만 요트경기장이 재개발되면 시네마테크 부산이 이전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안타까워했습니다. 시네마테크의 열혈 관객이며 종종 아들과 함께 시네마테크 부산을 방문하는 그는 이 구조물에 대해서도 애착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사적인 기억이 담긴 공간과 구조물이 주변에서 너무 빨리 사라져버린다. 시네마테크 부산은 나와 내 아들의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담긴 곳이다. 먼 훗날 내가 백발이 되고 내 아들이 중년이 되었을 때, 아들과 함께 이곳에 다시 와서 '여기가 30년 전에 우리가 장 르누아르의 〈게임의 규칙La Règle du jeu, 1939〉을 함께 보았던 곳이지'라고 회상하며 이미 낡아있을 이 건물의 벽을 쓰다듬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그때 다시 이곳에서 〈게임의 규칙〉을 볼 수만 있다면…"

그의 말을 듣고 저도 가슴이 약간 먹먹해졌습니다. 아시다시피 지금의 시네마테크 부산은 지하철역에서 좀 멀고 인근 상가가 적어서 보다 많은 관객들이 찾는데 다소 어려움이 있습니다. 적절한 곳으로 이전한다면 그런 어려움이 부분적으로는 해소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그렇게 생각할 때 저는 공간의 기능적인 면만 고려한 것이었습니다. 손 교수는 기억의 내용이 아니라 기억의 장소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아무리 되살려도 끝내 되살아오지 않는, 복제될 수 없고 분석될 수 없는 그 기억의 거처 말입니다.

실은 우리가 존중하는 영화가 그와 같은 것입니다. 허우샤오시엔이 다음과 같이 말할 때 그는 바로 기억의 장소로서의 영화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조각난 기억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이름 붙일 수도 없고 분류할 수도 없습니다. 그것들이 위대한 중요성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여하간 우리 마음속에 흔들리지 않고 지어져 있는 움막입니다. … '최고'라는 것은 우리가 그 조각난 기억들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지금 그것들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최고일 수 있는 이유는 그것들이 오로지 내 기억 속에만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손 교수의 안타까움에도 불구하고 시네마테크 부산이라는 장소는 변형과 이동이 불가피할 것입니다. 효용성이라는 대세를 완전히 거스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네마테크 부산이라는 공간은 오래도록 변치 않을 것입니다. 그러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소비되고 곧 망각되는 영화들이 아닌, '최고로서의 기억'을 보존하는 영화들을 사랑하는 분들이 있는 한 말입니다. 지난 4월 〈박쥐〉 특별시사회에 10분간의 무대 인사를 위해 방문한 박찬욱 감독이 "시네마테크 부산은 내게 집과 같은 곳"이라고 말했을 때, 그도 같은 소망을 갖고 있었을 것입니다.

시네마테크 부산이 8월로 만 10살이 되었습니다. 아직 어리지만, 이 특별한 공간이 내 곁에서 함께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을 운영자가 아니라 한 사람의 관객으로서 더없이 행복한 일로 느낍니다. 시네마테크 부산의 창립과 운영에 힘을 아끼지 않아 오신 모든 분들, 이곳을 아끼고 격려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깊은 존경과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습니다.

허문영

이달 시네마테크 부산에서는 7월에 시작한 "우디 앨런 특별전"이 23일까지 이어졌다. 동시에 5일부터 9일까지, 19일부터 23일까지는 "일본 장르영화의 밤"이 1부와 2부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24일이 개관기념일이었고, 25일부터는 "2008 PIFF 뉴커런츠 다시보기"가 열려 9월 1일까지 이어나갔다. 또한 26일부터 29일까지는 매일 저녁 7시에 "10주년 기념 마스터 클래스"가 열려 류승완, 최민식, 한재덕, 봉준호, 홍경표, 홍상수, 김상경, 김지운, 신하균이 극장을 찾았다. 12일 "영화 사랑방"에서는 〈깃발없는 기수1979〉를 함께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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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호 (2009년 9월) : 에릭 로메르와 함께하는 가을

〈나뭇잎 사이로〉라는 조동진의 잊기 힘든 옛 노래가 있습니다. 지금도 가을이 되면 라디오에서 가끔 흘러나옵니다. 고등학교 때 이 노래를 듣고 넋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가사 한 대목만은 이상하게 어색했습니다. 2절 후반부에 나오는 "우린 또 얼마나 어렵게 사랑해야 하는지"라는 대목입니다. 왜 이 아름다운 노래에 '어렵게'라는 딱딱하고 직설적인 단어를 썼을까?

그 단어를 고스란히 받아들인 건 15년쯤의 세월이 지난 뒤였습니다. 이유를 설명하긴 힘듭니다. 더글러스 서크의 〈슬픔은 그대 가슴에Imitation of Life, 1959〉의 마지막 장면에서 병든 흑인 엄마는 오랫동안 엄마가 흑인임을 부인하며 떠돌던 철없는 딸이 돌아와 병상 곁에 섰을 때, 단 한마디를 남기고 숨을 거둡니다. "피곤하구나…" 어떤 다른 표현이 대신할 수 없는, 그것만으로 더없이 충분한 그리고 단순한 표현이 있습니다. 다만 그것이 단순하지만 그렇게 큰 말이라는 것을 아는 데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에릭 로메르 회고전이 9월에 열립니다. 널리 알려져 있듯 로메르 영화는 재미있습니다. 시네마테크 레퍼토리 중에서 로메르 영화만큼 널리 사랑 받는 작품들도 드뭅니다. 아기자기하고 유머러스한데 소위 예술 영화에서 예상되는 복잡성과 근엄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로메르의 정말 훌륭한 점은 그의 영화가 단순하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동세대의 시네아스트들이 영화로 치열하게 세상과 싸울 때에도, 로메르의 유한계층 남자들은 아름다운 여인을 앞에 두고 '할까, 말까' 망설이는 데 두 시간을 다 보냅니다. 이 단순한 서사 안에 소우주가 담겨 있다는 것을 느끼는 데는 세월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로메르는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과 장소와 공기에 촉감을 불어넣습니다. 우리는 흔히 영상미가 뛰어난 영화를 두고 아름다운 영화라고 말하지만 로메르의 영화는 손에 만져질 듯한 우아하고도 발랄한 생기가 넘쳐 흐르기에 아름답습니다. 짐작되듯, 후자가 훨씬 도달하기 어려운 경지입니다.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Ma nuit chez Maud, 1969〉의 이야기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시작됩니다. 촬영 일정도 이브에 맞춰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연 배우가 스케줄을 맞추지 못할 사정이 생기자 로메르는 촬영 일정을 정확히 1년 뒤 성탄절 이브로 미뤘습니다. 핍진성에 대한 거의 미치광이와도 같은 이 집착의 명시적 효과를 우리는 전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에겐 배우의 작은 몸짓 하나, 스쳐 지나가는 눈빛 하나에도 은밀히 담겨 있을 크리스마스 이브라는 공기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로메르의 디테일이 탁월하지만 그 디테일은 면밀한 계획이 아니라 이렇듯 현장성 혹은 즉흥성에 대한 무한한 존중에서 비롯됩니다. 진정한 재능은 측정될 수 없고 계획될 수 없는 세계와 인간의 무질서한 구체성을 최소의 표현 단위로 단숨에 드러내는 능력, 즉 단순화의 재능인 것 같습니다. 가을에 로메르를 다시 보신다면 그런 재능의 위대함을 실감하실 것으로 믿습니다.

허문영

이달 시네마테크 부산에서는 8월에 시작한 "2008 PIFF 뉴커런츠 다시보기"가 1일까지 이어졌다. 2일부터 6일까지는 "스페인 영화제"를 진행했고, 8일부터 27일까지는 "로메르와의 가을"이 열렸다. 28일은 정기휴관일이었고 29일부터 10월 16일까지는 부산국제영화제 개최 지원 관계로 상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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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호 (2009년 10월) : 나도 당신의 영화가 보고 싶다

비로소 자신의 첫 영화와 함께 부산을 찾는 정성일 선배가 며칠 전 이메일을 보내왔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이 메일 주소를 알았는지, 부산에서 당신의 영화를 보게 되어서 참 기쁩니다, 라는 말과 짧은 인사와 함께 사진을 첨부해왔습니다. 이 사진이 너무나 고맙고 신비로워서, 그저 혼자 보고 있기에는 감흥이 너무 커서… 마음이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보내드립니다."

첫 발신자가 의도한 건 아니지만 그 사진은 제게(아마도 몇몇 지인들에게도) 전해졌고, 두 번째 발신자가 의도한 건 아니지만 저도 그 사진을 여러분에게 전하고자 합니다. 사진 오른쪽 밑에는 "나도 당신의 영화가 보고 싶다 ― 오즈"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이 문장에서 '당신'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알 수 없는 당신과 나 사이에서 아직 보여지지 않은 혹은 완성되지 않은 어떤 영화가, 소망의 상태로 혹은 영원한 가능성으로, 부드럽지만 완강하게 그 양자를 품고 있습니다.

간결하지만 큰 이 문장이 지워졌다 해도, 그냥 말 없이 이 사진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어느 적막한 오후, 햇볕 맑은 한 순간이 생 전체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가을 보내시길 빕니다.

허문영


이달 시네마테크 부산은 16일까지 부산국제영화제 개최 지원 관계로 상영이 없었다. 17일부터는 "영화로 떠나는 가을 여행"이 열려 11월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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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호 (2009년 11월) : 삶이 마음에 스며드는 영화

영화제가 막바지이던 10월 14일 밤, 관객과의 대화 진행을 맡은 마지막 영화 〈안녕, 나의 할아버지我們天上見, 2009〉를 보았습니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중국 여배우 지앙웬리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담은 그의 감독 데뷔작입니다. 문화혁명 시절 부모가 정치적 이유로 수년간 멀리 떠나있었고 소녀는 할아버지와 살아갑니다. 얼마간의 세월이 지난 뒤 홀로 남을 손녀를 근심하며 할아버지는 세상을 떠납니다. 이것이 영화의 전부입니다.

막이 내리고 불이 켜진 뒤 감독과 배우를 모시고 관객과의 대화 진행을 시작했지만 진행이 쉽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관객이 흐느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기자는 질문을 하려다 오열하는 바람에 10분간 진정시켜야 했습니다. 이 영화는 장엄한 비극도 대하드라마도 아니지만 제철의 봄기운처럼 스며들어 마음을 깊이 적시는 영화입니다. 그 호소력을 미학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과장 없이 솔직하며 간결한 표현 방식에, 생체험의 신비라고 할 만한 부드럽지만 강렬한 정서적 힘으로 우리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8월의 마지막 날들의 하나도 불현듯 떠오릅니다. 10주년 마스터클래스 첫 영화인 〈주먹이 운다2005〉가 끝나고 한 관객이 물었습니다. "최민식과 임원희의 관계가 잘 이해되지 않아요. 어떻게 그렇게 나쁜 친구를 최민식은 왜 계속 곁에 두고, 또 그런 사람이 왜 계속 돌아오는지 모르겠어요." 류승완 감독이 그 여성 관객에게 조심스럽게 되물었습니다. "실례지만 몇 살이에요…?" "20살인데요…" 류승완 감독은 웃으며 이렇게 답했습니다. "몇 년 안에 그런 사람 만나게 될 거예요." 객석은 웃음바다가 됐지만, 저는 이 대답이 참 좋습니다. 류승완 감독은 무엇보다 자신의 삶을 영화의 가장 중요한 질료로 쓰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주먹이 운다〉가 몇 년이 지난 뒤에 다시 보아도 심금을 울린다면 그것에는 윤색되거나 과장되지 않은 삶의 경험이 생물처럼 꿈틀거리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영화들이 있습니다. 영화사에 길이 남은 위대한 예술은 아니어도 동시대인의 마음에 깊이 스며들어 기억의 한 귀퉁이에 어떤 향기, 어떤 멜로디처럼 남은 사랑스런 영화들. 11월에 다시 찾아올 '오래된 극장 2'는 아마도 그런 영화들의 작은 잔치가 될 것입니다. 그 영화들로 여러분의 늦가을이 조금 따뜻해지기를 기원합니다.

허문영

이달 시네마테크 부산에서는 10월에 시작된 "영화로 떠나는 가을 여행"이 8일까지 계속되었다. 10일부터 15일까지는 "신디 잼 하베스트"가 열렸고, 17일부터는 "오래된 극장 2"가 시작되어 12월까지 이어졌다. 26일부터 29일에는 "오래된 극장 2"를 잠시 중단하고 "메이드인부산 독립영화제 2009"를 진행했다. 11일에 열린 "영화 사랑방"에서는 〈칠수와 만수1988〉를 함께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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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호 (2010년 1월) : 유모/보모 같은 영화

문학평론가 김윤식이 오래 전에 쓴 글 '운명과 형식'에는 중국의 시인 애청의 '대언하―나의 유모'라는 시가 인용됩니다. 그 시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대언하는, 나의 유모입니다. / 고향 마을 이름이 제 이름이었던 / 민며느리였던 그녀, / 대언하는, 나의 유모입니다."

김윤식은 한 개인의 감상적 추억이 "민중적 사랑에로 승화"한 데서 이 시의 위대성을 찾았습니다만, 제게는 다른 점에서 인상적입니다. 이 시는 제게 다른 글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것은 영화감독 장 르누아르의 자서전 마지막 구절입니다. "내 어린 시절 세계에 대한 작별인사는 간단하다. '기다려주오, 가브리엘이여.'" 가브리엘은 르누아르를 아기 때부터 돌본 보모였으며, 그에게 첫 영화 체험을 선사한 사람입니다. 생이 벼랑에 섰을 때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유모/보모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상한 일이지만 유모/보모를 겪어보지 못한 제게도 그 간절한 호명이 뭉클한 감정을 남깁니다.

유모/보모는 가족이 아니지만 가장 친밀한, 그것도 어린 시절에 가장 친밀한 타인입니다. 오히려 가족은 일종의 규범적 관계 안의 타인이지만, 유모/보모는 규범과 무관한, 그의 권리를 결코 주장하지 않으며 그가 있어 내가 행복한 존재입니다. 저는 유모/보모의 자리에 영화를 겹쳐 놓고 싶은 생각이 종종 듭니다. 아이였던 내가 아니라, 결국 영원한 아이인 나를 어떤 규범적 강요 없이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존재의 이름. 내가 그를 부를 때, 실은 그가 나를 불러주기를 간청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그런 이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아마도 나쁜 영화는 가면과 화장으로 자신이 그런 존재임을 주장할 것입니다. 좋은 영화는 그런 이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끝내 그 이름을 포기할 수 없는 우리의 불가능한 소망을 이해하는 영화입니다.

새해입니다. 친밀한 타인을 찾아 나선 외로운 여정에서 좋은 영화를 만나는 행운을 많이 누리시기를 빌 뿐입니다.

허문영

이달 시네마테크 부산에서는 12월에 시작된 "아듀 2009!"가 14일까지 계속되었다. 15일부터 31일까지는 "데이비드 린 특별전"이 열렸다. 13일 "영화 사랑방"에서는 〈별들의 고향1974〉을 함께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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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호 (2010년 2월) : 영화의 미래는 신경 끄세요

〈아바타Avatar, 2009〉의 테크놀로지에 대한 논의가 계속 분분합니다. 그 강력한 실감이 어디까지 갈 것인가가 궁금한 건 사실입니다. 지금의 3D 영화는 시각적 입체감만 선사하지만, 여기에서 의자를 들썩이고 바람을 불게 하며 물을 튀기고 냄새를 피우는 일은 그렇게 멀리 있지 않을 것입니다. 테마파크의 체험과 이야기의 결합으로서의 영화. 관객과 영화의 거리를 완전히 삭제하고 감각적 질주의 쾌락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영화. 이런 영화가 주류에서 만들어진다고 해서 분개할 일은 아닐 것입니다. 영화는 경이로운 전사(轉寫)의 예술이면서, 태생부터 보통 사람들 주로 하층민의 오락 혹은 신기한 구경거리라는 또 다른 얼굴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 오락의 진화를 비평의 언어로 옹호하는 일을 있을 수 없는 일이라 해도, 그 진화는 불가피할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실은 디지털 액터입니다. 3D보다 훨씬 덜 말해지지만 이 영화의 디지털 액터 테크놀로지는 놀랍습니다. 〈아바타〉 이전에 디지털 액터를 가장 능숙하게 사용한 사례는 로버트 저메키스의 〈베오울프Beowulf, 2007〉와 〈크리스마스 캐롤A Christmas Carol, 2009〉입니다. 그런데 저메키스의 경우엔 유명한 실존 배우의 형상을 그대로 옮기면서, 오히려 아직은 어색할 수밖에 없는 디지털 액터의 표정과 동작의 미묘한 부자연스러움을, 그러니까 실재와 디지털적 재현과의 거리를, 일종의 유희적 요소로 드러냅니다. 저메키스의 영화들에서는 디지털 액터들이 '우리는 진짜 배우들의 아바타입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바타〉에서 나비족은 그 자체로 거의 완전한 생명체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들이 동시대의 인간이었다면 어색했을지도 모를 단조로운 표정과 주술적 몸짓은 인디언을 닮은 외계의 생태주의적 생명체에는 더없이 어울립니다. 심지어 인간보다 더 아름다워 보입니다. 이야기는 인간의 탐욕과 파괴욕을 비판하고 있지만, 이 영화는 그런 점에서 테크놀로지에 대한 무한한 찬미입니다. 그 이야기를 위해 이 테크놀로지가 선택된 것이 아니라, 디지털 액터의 테크놀로지를 구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야기와 캐릭터가 선택된 것 같습니다.

〈아바타〉에 관한 말들의 다수는 그 테크놀로지에 관한 말들입니다. 새로운 현상은 아닙니다. 영화를 말하려면 테크놀로지에 관해 알아야 하고 말해야 하는 시대가 지난 세기말부터 오늘에까지 20여 년 동안 지속되고 있습니다. 저는 테크놀로지 담론이 영화의 담론을 뒤덮는 시대가 빨리 끝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질주는 그것에 대한 대중적 찬탄을 멈추게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답답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이것이 영화의 미래인가요?'

그 질문을 만나면 실은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미래는 신경 끄시기 바랍니다. 우리 시대의 위대한 영화들의 목록들도 우리는 아직 다 확인하지 못하고 있으며, 과거는 더욱 그러합니다. 직업 때문에 혹은 생계를 위해 그것에 대비해야 할 사람이 아니라면 미래의 영화를 궁금해 할 필요가 있을까요. 오늘의 영화는 물론 과거의 영화조차 우리가 알아가야 할 미지의 세계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지금 우리 곁에 있는 한 편의 위대한 영화를 제대로 알아가는 것. 그것이 〈아바타〉가 미래의 영화인지 아닌지를 말하는 식견을 얻는 것보다 영화에 훨씬 더 가까워지는 길일 것입니다.

허문영

이달 시네마테크 부산에서는 2일부터 4일까지 "우리 시대의 프랑스 영화"가 열렸고, 5일부터 28일까지는 "빌리 와일더 특별전"을 진행했다. 10일 "영화 사랑방"에서는 〈갯마을1965〉을 함께 보았으며, 17일 오랜만에 다시 열린 "수요시네클럽"에서는 최동훈 감독이 〈선셋 대로Sunset Blvd., 1950〉를 추천했다.

약간의 사담. 나는 바로 이때 시네마테크 부산에 처음 가보았다. "빌리 와일더 특별전"을, 정확히는 거기서 "정부"라는 몹쓸 제목으로 상영한 〈검찰 측 증인Witness for the Prosecution, 1957〉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2월 27, 28일에 갔던 것 같다. 그러나 전날 밤을 새고 새벽 기차로 부산을 찾은 나는 첫 영화 〈키스해줘, 바보Kiss Me, Stupid, 1964〉는 재미있게 봐놓고는 정작 저녁에 있었던 〈검찰 측 증인〉 상영에서는 곯아떨어져버렸다. 다음 날에도 두 편을 더 보았는데, 결국 그때 본 작품들 중 지금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빌리 와일더가 스승 에른스트 루비치에게 오마주를 바친 〈하오의 연정Love in the Afternoon, 1957〉이다. 〈검찰 측 증인〉은 아직도 보지 못하고 있다. 미국에서 Blu-ray가 나오기는 했는데 애거서 크리스티 원작 + 빌리 와일더 각색 + 법정 영화를 영어 자막 없이 볼 자신은 없어서. 어쨌든 생각보다는 실속이 덜한 부산행이었지만, 그래도 시네마테크 부산에 대한 인상은 무척 좋았다. 이 칼럼의 존재도 그때 처음 알았고, 과거 프로그램을 다룬 책자들도 여럿 사서 지금도 가지고 있다. 극장이 바다와 맞닿아 있어 쉬는 시간에 바다를 볼 수 있다는 점은 수영만 시절을 기억하는 모두가 그리워하는 점일 테고, 매점에서 컵라면을 판다는 것도 놀라웠다. 방문 경험이라고는 고작 그것뿐이었는데, 소격동 시절의 서울아트시네마 분위기가 그리운 것 이상으로 수영만 시절의 시네마테크 부산이 그립다. 내가 누렸던 서울의 영화 감상 환경에 불평할 생각은 없지만, 부산에서 영화를 보며 자랐더라면 어땠을까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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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호 (2010년 3월) : 박스오피스에서 벗어나자

미국의 저명한 영화평론가 조너선 로젠봄이 2000년에 출간한 책 〈Movie Wars〉를 읽다가 흥미로운 대목이 눈에 띄었습니다. 개봉 영화들의 주간 흥행성적을 나타내는 이른바 박스오피스 기사가 영화사 초기부터 1970년대까지는 미국의 저널에 거의 실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통계 자료의 부족과 같은 물리적 이유 때문이 아니라 독자들이 그것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로젠봄은 "당시 독자들은 그런 기사가 실렸다면, 한 영화가 얼마나 돈을 벌었는지를 궁금해 하다니 이 저널은 좀 멍청하군, 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로젠봄은, 도대체 1980년대 이후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라는 질문을 던지고 숙고합니다. 그 질문은 바로 우리의 질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는 개봉 영화들의 흥행성적을 왜 그렇게 궁금해 할까요. 물론 저도 그 질문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1998년부터 5년여를 영화 주간지에서 일하는 동안 그 저널이 매주 박스오피스 기사를 싣는 것에 대해 한 번도 의문을 갖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요즘에도 몇몇 온라인 사이트에서 예매 순위와 흥행 순위를 확인하는 일을 버릇처럼 반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에서의 박스오피스 순위와 비슷한 것은 책에서의 베스트셀러 순위, 혹은 대중음악에서의 각종 차트일 것입니다. 왜 오늘의 우리에겐 문화적 저작물의 시장에서의 성패가 의미 있는 뉴스가 된 것일까요. 따져보면 두 가지 동기에서 비롯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는 보다 많은 타인이 구매하는 상품을 자신의 구매 우선순위에 놓으려는 대중사회의 소비심리입니다. 다른 하나는 상업적 성공담 그 자체에 대한 호기심입니다. 이를테면 다큐멘터리 〈워낭소리2008〉가 2백만 관객을 넘었을 때, 그것의 성공 드라마를 작품만큼, 아니 작품보다 더 많이 즐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세탁기나 TV가 아니라 영화에 관해서라면 전자 즉 군중적 소비심리의 반문화성은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우리가 문화적 저작물의 성취를 상업적 성공 신화, 달리 말해 벤처캐피탈의 성공 신화의 범주로 보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로젠봄이 지적한 대로 멍청한 호기심입니다. 나와 아무 관련 없는 그들이 떼돈을 번 사실이, 그런 사례를 더 많이 알수록 우리의 박탈감은 더욱 커지는데도, 왜 우리의 중대한 관심사가 되어야 하는 걸까요.

로젠봄의 결론은 이것이 관객의 우매함 때문이 아니라, 1980년대 이후의 할리우드 메이저가 추진하고 매스컴이 공모한 프로모션의 효과라는 것입니다. 영화 산업이 추앙하는 '관객의 기호'는 관객의 자발적 선택이라기보다 관객의 시야를 한정 짓는 특정한 정보만을 제공받은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는 할리우드 메이저와 주류 저널을 맹공하기 위해 썼지만, 우리 각자는 한 사람의 관객으로서 멍청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소멸의 위기에 처한 우리의 개인적 취향과 지향을 발견하는 길을 애써 찾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박스오피스, 베스트셀러의 정보와 절연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연히 보게 된 영화, 혹은 어쩌다 집어들게 된 책에서 평생을 간직할 어떤 감흥과 기억, 심지어 인생을 바꿀 만한 충격과 대면하는 기회를 우리 자신에게 되돌려주어야 합니다.

허문영

이달 시네마테크 부산에서는 2일부터 18일까지 "3월 예술영화 특별전"을 진행했고, 19일부터는 "월드시네마 VII"이 열려 4월까지 이어졌다. 17일 "영화 사랑방"에서는 〈야행1977을 함께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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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호 (2010년 4월) : 구봉서와 배삼룡

부산의 영주동에 살고 있던 초등학교 2, 3학년 때로 기억합니다. 아는 동네 형을 따라 지금은 사라진 초량의 천보극장이라는 곳에 처음 갔습니다. 천보극장은 당시 대부분의 극장이 그렇듯 무대가 있는 공연 겸용 영화관이었고 좌석은 7, 8백석 정도로 꽤 넓은 극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시멘트 바닥에다 겨울에도 객석 뒤편에 연탄난로 두 개만 달랑 있는 곳이어서 겨울이면 바닥의 냉기가 올라와 발가락은 물론 코끝까지 시린 곳이었습니다.

그때 동네 형의 덕으로 생애 처음으로 본 영화가 〈남자 식모〉였습니다. 물론 영화의 세부적인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어떤 대목은 아직 뇌리에 남아있습니다. 구봉서가 무슨무슨 사정으로 부잣집 식모로 들어갔고 도금봉이 그 집 마나님이었습니다. 집안일을 전혀 해본 적이 없는 구봉서가 벌이는 실수투성이 식모 생활이 그 영화의 소재였습니다. 구봉서가 찌개에 정종을 넣으면 맛이 좋다는 얘기를 듣고 정종 한 병을 다 들이부었다가, 도금봉이 그 찌개를 먹고는 만취해서 주정을 부리는 장면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한 달 전에 본 영화도 간혹 잊어버리는 제가 거의 40년 전에 본 그 영화를 지금도 기억하는 이유는 그 영화가 특별히 훌륭하거나 유난히 재미있었기 때문은 아닐 겁니다. 그것이 제 생애 첫 영화였고, 그 시대의 기억을 그 영화가 보존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1960년대 한국영화가 소중한 이유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걸작이 많기 때문이라기보다 한국영화야말로 당대의 둘도 없는 시대적 기억의 아카이브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1970년대 초반부터 광범하게 보급되기 시작한 TV가 그 지위를 분점하면서 한국영화가 침체기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한국영화사에 관한 저술에서 구봉서 배삼룡이라는 인물이 거론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그들의 후반 경력이 주로 TV 코미디언 활동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두 사람, 특히 구봉서가 수백 편의 한국영화에 출연하면서 한국영화사의 일부, 시대적 기억의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이 되었다는 사실을 잊을 수 없습니다. 김희갑, 서영춘, 퉁퉁이와 홀쭉이에서 시작된 전후 한국 희극인의 역사는 구봉서, 배삼룡에 이르러 한 정점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낮추고 자신을 조롱하면서 개발의 멀미에 비틀거리는 당대 한국인들의 마음을 어루만졌습니다. 이만희 감독의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에서 6.25 참전 사병 구봉서는 숨을 거두며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죽으면 이제 너희들을 누가 웃겨주지?" 배삼룡 선생이 지난 2월 23일에 눈을 감았을 때, 그의 영정 앞에서 슬퍼하던 구봉서 선생의 흐느낌을 보고 이 장면을 떠올리지 않을 도리가 없었습니다.

시네마테크 부산은 4월 27일부터 '구봉서 · 배삼룡의 시대'라는 특별한 기획전을 엽니다. 그것이 없었다면 당대 한국인의 삶은 더없이 스산했을, 그리하여 우리를 기어코 웃게 만든 그들의 비천하고도 숭고한 몸짓이 그 영화들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을 것입니다. 이 작은 행사를 통해서라도, 동시대를 울고 웃으며 함께 살았던 두 분께 깊은 감사와 존경을 전하려 합니다.

허문영

이달 시네마테크 부산에서는 3월에 시작한 "월드시네마 VII"가 25일까지 이어졌다. 27일부터는 "구봉서 ․ 배삼룡의 시대"를 시작하여 5월까지 이어나갔다. 21일 "영화 사랑방"에서는 〈마의 계단1964〉을 함께 보았다. 배삼룡은 2010년 2월 23일에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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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호 (2010년 5월) : 있는 그대로 보려 한다는 것

영화와 무관한 책 하나를 소개하려 합니다. 콘라트 로렌츠의 〈솔로몬의 반지〉는 저명한 동물학자인 저자가 갖가지 동물들과 살면서 겪고 느낀 일을 적은 책입니다. 한 사람이 자신의 삶 전체를 걸고 하나의 일에 묵묵히 몰두할 때 우리는 감동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 체험이 어떤 과장 없이 겸허하고 성실하게 술화된 책을 '인생의 책'이라고 부르며 존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솔로몬의 반지〉는 그런 책입니다. 모든 장들이 빼놓지 않고 깊은 감동을 전해주지만, 저로서는 '윤리와 무기'라는 장에 나오는 에피소드들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두 늑대가 서로 으르릉대며 대결하고 있습니다. 직접적 공격은 거의 없는 긴 긴장 끝에 결국 패배를 인정한 늑대는 자신의 목을 공손하게 상대 늑대의 입에 내밉니다. 이것으로 싸움은 끝이 납니다. 로렌츠의 관찰에 따르면, 극소수의 동물을 제외하면 모든 동물들은 싸움의 규칙과 의식이 있습니다. 그것은 약자의 공손한 태도가 유지되는 동안은 강자는 공격을 자제한다는 것입니다. 로렌츠는 그것을 '사회적 자제력'이라고 부릅니다. 인간의 경우 "항복한 자를 보호한다는 것이 결투의 윤리가 된 것은 음유시인 시대의 기사도에 이르러 비로소 확립이 되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면 늑대의 사회적 자제력은 실로 놀라운 것입니다.

우리는 '동물적'이라는 단어를 부정적인 뜻으로, '인간적'이라는 단어를 긍정적인 뜻으로 사용합니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난 프리모 레비도 〈이것이 인간인가〉에서 "증오는 동물적이고 거친 감정"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반지〉를 읽고 나면 우리는 이 두 단어를 바꿔 쓰는 것이 옳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동물은 진화 과정에서 치명적인 육체적 무기를 지니게 되면 동족에게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 자제력을 발달시킵니다. 반면 인간은 '육체에 붙어 있는 무기가 아니라 육체와 동떨어진 무기를 발달시켜온 유일한 존재', '그 무기 사용에 관해 적절한 자제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새삼스레 자연 예찬론이나 반전론을 말하려는 건 아닙니다. 로렌츠의 책이 감동적인 것은 그가 동물의 행위를 '인간적'으로 해석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보려는, 거의 자기 학대에 가까운 집요한 노력에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얼핏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고도의 긴장과 인내가 필요한 일입니다. '있는 그대로'는 항상 우리의 사유를 넘어서기 때문입니다.

이상하게 느끼실지 모르지만 저는 이 태도야말로 영화의 윤리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가장 실재에 가깝게 다가갔지만 동시에 가장 고도의 속임수인 영화라는 매체로 삶과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려는 것은 성공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시도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불가능성을 향한 끝없는 진격, 그것의 불가피성이야말로 모든 '인간적' 계몽이 실패한 지금 우리가 좋은 영화를 찾아 헤매는 이유일 것입니다.

허문영

이달 시네마테크 부산에서는 4월에 시작한 "구봉서 ․ 배삼룡의 시대"가 6일까지 이어졌다. 7일부터 23일까지는 "동시대 유럽 거장전 2"를 진행했고, 25일부터 30일까지는 "프랑스 영화축제"가 열렸다. 5일에는 "어린이날 특별상영"이, 12일에는 "인디스데이: 철서구"가 열렸고, 19일 "영화 사랑방"에서는 〈삼공일 삼공이1995〉를 함께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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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호 (2010년 6월) : 모름으로써 체험할 수 있는 홍상수 영화

온라인 영화사이트 맥스무비에 실린 카툰에서 '난누군가'라는 필명의 작가는 홍상수의 〈하하하2010〉를 말하면서 이렇게 씁니다. "유명 영화주간지(〈씨네21〉을 말함―인용자)는 원래 분량만한 홍상수 감독을 위한 특별판을 내기도 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관련기사를 읽으면 보통 이해에 도움이 되는데,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관한 평은 쓰는 사람마다 관점이 다양해서 오히려 헷갈리는 느낌이랄까…"

당연한 일입니다. 홍상수의 영화는 모든 심판관의 언어를 버리고 그 안으로 몸을 내맡기는 사람에게만 체험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결코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만, 무언가 명료한 해답을 원하는 우리는 습관적으로 그 영화 밖에서 서성이며 단정의 언어를 찾으려 하기 때문에 종종 그 안으로의 진입에 실패합니다. 우리는 이미 언어가 세계를 해명할 수 없고 이상이 나를 구원할 수 없는 세상에 내던져져 있습니다. 문제는 오직 한가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독자로서의 내가 어떻게 버틸 것인가, 혹은 행복할 수 있을까. 제가 아는 한 홍상수는 이 문제에 대해 가장 치열하고 성실하게 질문해온 사람입니다.

그는 답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영화라는 매체가 가진, 아니 영화라는 매체만이 가진 활력으로 우리의 굳어버린 감각을 재활성화시킵니다. 재활성화라는 단어는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의 영화를 보고 갖게 되는 기쁨과 감동을 다르게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우리는 모르기 때문에 불행한 게 아니라, 불필요한 지식으로 우리 자신을 억압하기 때문에 불행합니다. 홍상수의 영화는 그 멍청한 악순환을 멈추고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맨얼굴로 대면하도록 우리의 감각기관과 신경조직을 흔들고 굳은 뇌에 신선한 공기를 불어넣습니다. 그렇습니다. 그의 영화는 온통 육체적 영화입니다. 그리고 행복의 윤리학입니다.

그러므로 그 카툰 작가의 말은 무척이나 유쾌하게 들립니다. 그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모르면, 가서 보는 거다, 하하하" 저는 이 말을 이렇게 고쳐 쓰고 싶습니다. "몰라야, 가서 체험할 수 있는 거다, 하하하"

홍상수의 10번째 영화 〈하하하〉를 만나게 된 올해, 시네마테크 부산은 6월초 홍상수 전작전과 홍상수 영화에서의 배우와 연기를 주제로 한 두 번째 수영포럼을 엽니다. 이것은 홍상수 영화의 세계를 해명하기 위한 행사가 아닙니다. 해명은 불가능하며 불필요하기까지 합니다. 다만 홍상수 영화라는 우리 시대의 가장 아름답고 귀중한 하나의 세계를 감각하고 누리는 체험이 일부입니다. 홍상수 감독은 동시대인으로부터 '위대한 예술가'라는 말보다 '고맙다, 치구야'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할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그의 영화를 체험할 때마다 저는 그 말을 반복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고마운 친구를 홍상수의 영화에서 만나시길 소망합니다.

허문영

이달 시네마테크 부산에서는 1일부터 6일까지 "홍상수 전작전"을 진행했고, 8일부터 22일까지는 "빈센트 미넬리의 로맨틱 월드"를, "23일부터 25일까지는 "임권택, 이만희의 전쟁의 기억"을 열었다. 26일부터는 "필름아카이브 특별전"을 시작해 7월까지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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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호 (2010년 7월) : 영화의 정수, 빛과 바람

지난 6월 13일, 〈씨네21〉에서 새로 시작한 '씨네산책'이라는 기획 때문에 정성일 선배, 박찬욱 감독과 함께 영화에 관한 잡담을 나누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잡담은 산만하게 그러나 즐겁게 7시간 동안 이어졌습니다. 잡담의 주제는 '영화를 사랑하는 것'이어서, 당신에게 참으로 영화적인 것, 혹은 시네마틱한 것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 질문을 던졌을 때 두 사람의 대답은 달랐습니다. 박찬욱 감독은 "빛과 편집"이라고 말했습니다. 영화에서 편집이 발휘하는 마술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며, 편집을 영화적 체험의 중추에 놓는 것은 얼마간 교과서적일 것입니다. 각별하게 들렸던 것은 빛에 대한 그의 견해입니다. 박찬욱 감독은 빛이 감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동시에 그의 주요 작품들에서 조명을 맡은 박현원 기사를 망설임없이 천재라고 부르는 사람입니다. 〈복수는 나의 것2002〉부터 두드러지게 된 그의 영화에서 빛과 색채의 화려하고 격렬한 교향악을 떠올려보면 그의 빛에 대한 깊은 몰두를 실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에게 영화는 새로운 빛의 창조입니다.

정성일 선배는 "바람"이라고 얘기했습니다. 이 대답은 이상하게 들리지만, 그의 뜻은 이러합니다. 바람은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습니다. 어떤 예술에서도 사건으로서의 바람은 표현할 수 있지만, 현재의 시간과 물질적 운동의 감각적 흐름으로 드러내는 예술은 영화가 유일하다는 것입니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가와세 나오미, 홍상수의 영화에서 그는 바람을 감각합니다. 다시 오지 않을 그 순간에 영화가 중요한 무언가를 찍었다면 그것은 계획에 따라 소집된 요소들이 아닙니다. 문득 그곳에 불어와 영화의 사건을 멈춰 세우고 시간을 우주적 지평으로 개방하는 바람. 그 지평을 향해 흔들리는 나뭇잎들, 바스락거리는 옷깃, 흩날리는 먼지들의 아득한 충만함. 그런 것이 시네마틱한 체험의 본질이며 영화의 푼크툼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지금 한 사람은 창조의 미학을, 다른 한 사람은 형성의 미학을 말하고 있습니다. 혹은 한 사람은 계획에 다른 한 사람은 즉흥성에 이끌리고 있습니다. 또 이렇게도 말할 수 있습니다. 전자는 영화라는 속임수를 과잉의 극단으로 밀어붙이는 것에서, 후자는 그 속임수가 도저히 작용할 수 없는 존재의 절대적 순간을 발견하는 것에서 시네마틱한 것을 발견하려는 것입니다. 정리된 내용에서 그 차이가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저는 두 사람의 견해를 중요한 질문으로 남겨두고 싶습니다. 양자가 공존할 수 있을지, 아니면 결국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할지도 역시 두고두고 생각해볼 질문으로 남겨두고 싶습니다.

허문영

이달 시네마테크 부산에서는 6월에 시작된 "필름아카이브 특별전"이 7일까지 계속됐다. 8일부터는 "씨네리플레이 2010"을 시작해 8월까지 이어나갔다. 21일 "영화 사랑방"에서는 〈살인마1965〉를 함께 보았으며, 27일부터 29일까지는 "디지털 영사기술교육" 관계로 상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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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호 (2010년 8월) : 구로사와 아키라와의 재회

최근, 영화 이론을 전공하는 4학년 학생과 대화를 나누다가 놀라운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놀라웠던 이유는, 적어도 1990년대까지 영화 애호가들에게 구로사와 아키라는 이를테면 입문 과정에 해당되는 감독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자칭 영화광들 사이에서 은밀하게 통용되던 고수 판별법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그것은 대개 이러합니다.

일본 감독 중에서 누구를 제일 좋아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누군가 '구로사와 아키라'라고 대답하면 그는 초심자로 간주됩니다. 만일 오즈 야스지로나 미조구치 겐지를 말한다면 그는 유단자로 인정받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나루세 미키오라고 대답하면 그는 이 세계의 진정한 고수로 존중됩니다. 물론 이건 매우 유치한 놀이입니다. 이 판정은 이 감독들의 미학적 위게와는 무관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놀이의 실체는, 누가 가장 구해 보기 어려운 영화를 먼저 봤는가, 라는 일종의 자기 과시에 있습니다.

이 판별법에서 구로사와 아키라가 가장 하위에 있는 이유는 명백합니다. 이 역설의 경위는 이러합니다. 1990년대까지, 정확하게 말하면 기타노 다케시의 〈하나비はなび, 1997〉와 구로사와 아키라의 〈란乱, 1985〉이 개봉된 1998년 말까지, 한국에서 일본 영화를 '합법적으로' 보는 일은 불가능했습니다. 1996년부터 시작된 부산국제영화제로 다소 숨통이 트이기는 했지만, 20세기가 다 가도록 한국의 영화광들이 일본 영화를 보는 경로는 소위 불법 복제 테이프 외엔 없었습니다. 반복되는 복제로 화질과 사운드는 거의 누더기가 되고 칼라 영화가 흑백으로 변신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만, 구로사와 아키라 영화를 그런 방식으로나마 상대적으로 가장 쉽게 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았고 그래서 가장 많은 복제 테이프가 돌아다녔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가장 사랑받던 거장이 최근에 영화학도들에게도 전혀 보여지고 있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전국의 많은 시네마테크 프로그램과 대학 영화과의 관심이 모던 시네마에 경도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짐작합니다. 저 역시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최근에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를 다시 보고, 절친했던 옛 벗을 다시 만난 듯한 기쁨에 사로잡혔습니다. 구로사와의 위대성 가운데 하나는, 모던 시네마가 자의식적으로 배제한, 완벽에 가까운 내러티브 경제에 있습니다. 예컨대 〈요짐보〉에서 미후네 도시로가 적대하는 두 집단이 바라보는 거리를 움찔거리며 걸어가는 장면의 그 움직임, 앵글, 사운드, 편집의 조화로움은 거의 넋을 잃을 지경입니다. 영화 밖의 어떤 것의 도움 없이 자기완결적인 완벽한 소우주. 그것이 고전기 영화의 힘이며, 구로사와 아키라는 고전기 서사 영화의 가장 완전한 실현자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그것의 아름다움은 오직 스크린에서만 확인할 수 있습니다.

8월 10일부터 시네마테크 부산에서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회고전이 열립니다. 우리로 하여금 최초로 영화에 눈 멀게 한, 고전기 거장의 위대한 장인정신을 재회하는 기쁨을 누리시기 빕니다.

허문영

이달 시네마테크 부산에서는 7월에 시작된 "씨네리플레이 2010"이 8일까지 이어졌다. 10일부터 29일까지는 "구로사와 아키라 탄생 100주년 특별전"이 열렸고, 31일부터는 "필름아카이브 특별전 II"를 시작해 9월까지 이어나갔다. 25일 "영화 사랑방"에서는 〈겨울 나그네1986〉를 함께 보았다. 본문에서 〈란〉을 언급한 것은 오류로, 일본문화 개방 초기에 〈하나비〉와 함께 소개된 쿠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는 〈카게무샤影武者, 1980〉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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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호 (2010년 9월) : 앙드레 바쟁을 다시 읽다

앙드레 바쟁(1918-1958)이 20대 후반에 쓴 '사진적 영상의 존재론'(〈영화란 무엇인가〉, 시각과 언어)에는 "사진은 그 창조적 능력에 있어 예술을 능가할 수 있기까지 한다"는 문장이 나옵니다. 이 문장을 오랜만에 다시 읽고 멍해졌습니다. 이 문장은 리얼리즘의 신봉자였던 바쟁이 실재의 절대적 우위성을 논하는 구절로 단순화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구조주의와 기호학의 시대에 그가 일종의 신비주의자로 매도된 것도 이런 이유였을 것입니다. 그 맥락에서만 보아도 이 문장의 함의는 너무나 풍부해 롤랑 바르트의 〈카메라 루시다〉조차 마치 이 문장의 긴 주석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그런데 새삼스레 이 문장에 눈이 머문 것은 '예술을 능가할 수 있다'는 표현 때문입니다. 예술을 다루는 비평가가 그렇게 쓸 때, 그 표현은 중대한 결단과도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영화를 옹호하기 위해 예술이라는 기호를 흔히 사용합니다. 진정한 예술에는 심오함, 아름다움, 통찰과 사랑이 담겨 있다고 믿습니다. 그렇게 말할 때 우리는 예술이라는 메타언어를 지지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그 언어에 갇혀 있게 됩니다. 그러나 무언가 예술을 능가한다면? 예컨대 사진이 그러하다면, 혹은 '사진의 객관성을 시간 속에서 완성시킨' 영화가 그러하다면? 그때 영화는 더 이상 예술이라는 통념에 가둬둘 수 없습니다. 이 국면에서 다시 영화는 '실재의 사막'을 담는 유일한 예술이라고 고쳐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표현은 '실재'라는 대상을 어떤 방식으로든 관념적으로 선취한 다음에 가능한 진술이며, 이제 예술은 무제한의 관념적 포식자가 됩니다. 짐작할 수 있듯이 어떤 관념이 모든 하위 개념을 먹어치우고 나면 그것은 결국 모든 것이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됩니다.

바쟁에게서 다시 배우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상식적인 언어의 위대성입니다. 그는 사진과 영화와 예술을 특별한 방식으로 규정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절충적이라는 비판을 듣는 한이 있더라도 그 개념을 상식적인 방식으로 사용하면서 동시에 열어두었습니다. 이것은 축적된 관념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더해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내는 철학자의 방식과 정반대의 방식입니다. 철학의 용어를 쓰면서 비평이 감금되어 부패해가고 있을 때 바쟁의 상식적 언어가 환기창으로 끊임없이 되돌아오는 것은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두 번째는 '실재'를 주어는 물론이고 술어로도 등장시키지 않으면서 영원한 지평으로 남겨두었다는 사실입니다. 가장 근원적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실은 끝내 말해지지 않은 것입니다. 바쟁의 기억할 만한 또 다른 문장은 "영화는 아직 발명되지 않았다"('완전영화의 신화', 같은 책)는 것입니다. 온전히 발명되지도 않은 미숙한 무언가가 예술을 능가할 수 있다는 건 일견 성립할 수 없는 말인 것 같습니다. 이 역설과 모순을 견디게 하는 것은 끝내 말해질 수 없는 실재와 아직 발명되지 않은 영화에 대한 사랑일 것이며, 사랑이라는 말조차 규범적이라면, 양자에 대한 멈출 수 없는 호기심일 것입니다. 바쟁에게서 그 당연한 사실을 다시 배우게 됩니다. 이 가을에 영화가 다시 궁금해진 분들에게 바쟁을 일독하시기를, 혹은 재독하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허문영

이달 시네마테크 부산에서는 8월에 시작된 "필름아카이브 특별전 II"이 9일까지 이어졌다. 10일부터 26일까지는 "알랭 들롱 & 이브 몽땅 특별전"이 열렸다. 21일부터 23일까지는 추석 연휴 휴관, 28일부터 10월 15일까지는 부산국제영화제 개최 관계로 휴관이었다. 앙드레 바쟁의 『영화란 무엇인가』는 현재 유통 중인 한국어 번역본에 매우 문제가 많은 책으로, 관련 사항은 이 글을 참조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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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호 (2010년 10월) : 실패한 인터뷰와 실패한 영화들

"…그러니까 내가 죄인인 거요…"

임권택 감독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을 태세였습니다. 남아있는 모든 작품 70편이 상영되는 임권택 전작전(한국영상자료원, 8월 12일~10월 3일)을 계기로 그를 인터뷰하고 있던 정성일 씨와 저는 당황했습니다. '이 자리가 무사히 끝날 수 있을까?' 우리는 이 인터뷰가 임권택 감독 스스로 떠올리는 것조차 싫어하던 초기작 중의 한 편, 그러나 시네필들 사이에서는 추앙되던 〈원한의 거리에 눈이 나린다1971〉를 함께 보고 비로소 자신의 초기작들과 화해하는 자리가 되기를 기대했었습니다. 그러나 임권택 감독 자신은 그 영화를 거의 40년 만에 다시 본 뒤, "이 따위 영화를 왜 좋다고 그러는 거요?"라고 화난 듯이 되물었고, 우리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화장실 간다는 핑계로 정성일 씨와 함께 잠시 나가서 급하게 다시 '작전'을 짰습니다. 말이 작전이지, '감독님 본인이 저토록 싫어하시니, 우리끼리 이 영화에 대해 토론하면서 간간이 감독님에게 의견을 여쭤보자'는 미봉책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인터뷰는 재개되었고, 우왕좌왕하다 마무리되었습니다만, 솔직히 내내 난감하기 이를 데 없던 그 인터뷰가 어떻게 끝날 수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정성일 씨와 짧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망한 거 같지요?" "…네."

이상한 일은 그 인터뷰가 〈씨네21〉에 실린 뒤에 일어났습니다. 모든 독자는 아니겠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 '실패한' 인터뷰를 흥미롭게 읽었으며 '성공한' 인터뷰보다 더 의미심장하다고 느꼈다는 것입니다. 사적인 전언들과 몇몇 블로그들을 통해 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아직도 어리둥절합니다. 우리는 망했다고 생각하고 그저 빨리 넘어가기를 바랐는데… 이 처지는 자신이 실패작이라고 생각하는 작품이 상찬 받을 때의 임권택 감독의 상황과 외형상(오직 외형상으로만) 유사하다는 점에서 아이러니의 중첩일 수 있고 그것이 재미있을 수는 있을 것입니다.

영화와 연관시켜 제가 더 생각해보게 되는 것은, 왜 어떤 실패는 성공보다 더 의미있게 느껴지는가, 라는 문제입니다. 의도된 실패는 그럴 수 없을 것입니다. 예컨대 아방가르드 영화는 실패를 계획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시네마틱한 순간에 이르지 못합니다. 성공을 야유하기 위해 의도된 실패 혹은 미완으로 치장되는 실패, 성심을 다했으나 오해의 심연을 끝내 건너지 못한 이해, 완성을 꿈꿨으나 지금으로선 어쩔 수 없는 벽 때문에 피하지 못한 좌절, 결국 온전히 실패라고 자인할 수밖에 없는 실패… 그런 실패들이 의미 있는 걸까요? 성급한 일반화는 피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다만 그 질문은 앞으로 영화를 보고 말할 때, 게속 맴돌 것 같습니다.

한 편의 영화 앞에서, 무엇을 성취했는가에 가려진, 어떻게 실패했는가라는 질문을, 영화의 만찬이 펼쳐지는 계절에 한 번쯤 떠올려보시기를.

허문영

이달 시네마테크 부산에서는 부산국제영화제 지원 관계 휴관 후 16일부터 "4색 빛깔: 울림의 영화"를 시작해 11월까지 이어나갔다. 본문에 언급된 임권택 감독 인터뷰는 《씨네21》 768호에 실렸으며, 《씨네21》 공식 웹사이트에서는 지원하지 않으나 정성일 아카이브에서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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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호 (2010년 11월) : 차이밍량의 영화 윤리학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아시아영화인상을 받은 차이밍량 감독을 영화제 끝무렵인 10월 13일에 정성일 선배와 함께 인터뷰했습니다. 그 인터뷰를 꼭 하고 싶었던 것은 굳이 상(PIFF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어느 땐가부터 우리가 그를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불현듯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흔들리는 구름天邊一朵雲, 2005〉을 제외하면 〈거기 지금 몇 시니你那邊幾點, 2001〉부터는 그의 영화가 한국에 개봉조차 되지 않았던 탓도 있겠지만, 그는 그렇게 잊혀져도 좋은 감독이 물론 아닙니다. 일반 극장에서 볼 수 없었던 〈거기 지금 몇 시니〉에서부터 오히려 그의 작품은 더 깊고 풍부해졌으며, 기존에 차이밍량을 이해하던 방식(이를테면 아시아 모더니즘, 혹은 동양의 안토니오니)으로는 더 이상 포착할 수 없는 경지로 이행해왔다는 사실을, 이번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의 작품 세계 전반을 다룰 지면은 아닙니다만, 다만 그의 말 한마디를 다시 상기하고 싶습니다. 정성일 선배의 책(〈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에도 등장하는 그 말은 "예술영화와 상업영화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라는 다소 거친 질문에 대한 차이밍량의 대답입니다. "인류의 내일을 걱정하면 상업영화이고, 나의 내일을 걱정하면 예술영화입니다."

이 말은 예리하다기보다는 뼈저립니다. 그는 지금 '인류의 내일을 걱정하는' 것을 폄하하고 있다기보다, 자신이 영화로 할 수 있는 일이 오로지 자신의 문제를 다루는 것 외에 없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보편의 포기가 아니라, 보편을 영원한 괄호 안에 집어넣은 다음, 단독성과 구체성으로부터 끝없이 재출발하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달리 말하면 모든 메타언어를 뒤로 하고, 사물과 감각으로 끝없이 되돌아가 항상 거기서부터 새로 시작하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동시대의 진정한 시네아스트들이 공유하고 있는 우리 시대 영화의 윤리학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사건과 진술이 아니라, 사물과 감각을 단독성과 구체성으로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영화의 고유한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차이밍량의 영화들은 영화의 이런 능력에 대한 집요한 탐구일 것입니다. 〈사물의 편견〉이라는 산문시집을 낸 프랑스 시인 프란시스 퐁쥐는 인상적인 말을 했습니다. "내가 책상을 사랑하는 이유는, 책상에는 스스로를 피아노로 여기게끔 하는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라오." 그는 아마도 차이밍량의 영화를, 혹은 그의 영화 윤리학을 지지할 것이 틀림없다고 짐작합니다.

허문영

이달 시네마테크 부산에서는 10월에 시작한 "4색 빛깔: 울림의 영화"가 4일까지 이어졌다. 5일부터는 "오래된 극장 III"을 시작해 12월까지 이어나갔다. 25일부터 28일까지는 "메이드인부산독립영화제 2010"이 열렸다. 17일 "영화 사랑방" 〈고래사냥1984〉을 함께 보았다. 본문에 언급된 차이밍량 감독 인터뷰는 《씨네21》 778호에 실렸으며, 《씨네21》 공식 웹사이트에서는 지원하지 않으나 정성일 아카이브에서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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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호 (2010년 12월) : 왜 폭력에 이끌리는 걸까

최근에 재미있게 읽은 〈무서운 그림〉(나카노 교코, 세미콜론)이라는 책의 2권 첫 장에는 렘브란트의 〈툴프 박사의 해부학 실습〉이 소개됩니다. 이 그림에는 7명의 외과의사 수강생들이 유명한 의사였던 툴프 박사의 시체 해부 강의를 듣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흥미로운 건 이 그림 자체라기보다 이 그림이 그려진 17세기의 유럽에서 시체 해부의 사회적 기능입니다. 단적으로 말해 당시의 시체 해부는 의학자들의 관심사에 머물지 않는 대중적 관심사였고, 점차 일종의 공연이자 입장료까지 받는 쇼로 변해갔습니다. 이 쇼가 흥행이 되고 법적으로 허용된 사형수의 시신만으로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자, 시체 도굴꾼이 횡행했고, 해부용 시체를 마들기 위한 연쇄 살인범까지 등장했습니다. 19세기 초에 스코틀랜드에서 버크와 헤어라는 2인조 연쇄살인범은 15명을 죽여 13구의 시신을 해부용 교재로 팔았다고 합니다. 19세기 중반 미국에서 버냄이라는 흥행사는 한 흑인 노파를 조지 워싱턴의 유모라고 선전해 구경거리로 만든 뒤, 그녀가 죽자 공개 해부 쇼를 벌였고 여기에 1500명이나 되는 관객이 입장료를 내고 몰려들었습니다. 이 역사적 사실들은 에밀 졸라의 〈테레즈 라캥〉에 등장하는 '구경꾼들로 붐비는 시체공시장' 묘사가 전혀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그 시대의 사람들이 우리 시대의 사람들보다 더 잔혹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 시대의 영화관은 어쩌면 그 시대의 시체공시장과 시체해부 쇼의 기능을 부분적으로라도 대체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우리 시대의 어떤 다른 예술분야도 영화만큼 폭력을 빈번히 묘사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영화에서 묘사되는 솟구치는 피, 손상되는 육체, 사지 절단과 시신에 여전히 매혹됩니다. 그 사례를 드는 것은 불필요할 것입니다.

다만, 영화의 폭력성이 국가를 초월한 이슈이긴 하지만, 우리를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듯 한국영화가 특별히 폭력적이라는 점입니다. 올해 최고의 흥행작이라는 〈아저씨2010〉 혹은 2년 전의 흥행작 〈추격자2008〉가 우리를 진정으로 매혹시킨 것이 절실한 부성애는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그 영화들의 과잉 폭력에 대한 우리의 매혹, 그 쾌락과 불안과 자책을 부성애가 달래주고 있다고 보는 편이 맞는 것 같습니다.

왜 우리는 폭력적인 영화에 그토록 매혹되는 것일까요. 물론 이 질문이 청소년 교육 차원에서 제기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 질문은, 영화가 결국 세상이고 삶이라면 폭력적인 영화들과 동거하는 우리의 세상과 삶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여름에 부산을 방문한 오승욱 감독은 "또래 감독들끼리 모여서 왜 영화를 만드는 우리도 폭력에 이끌리는지 이야기해본 적이 있는데 답을 찾지는 못했다"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저도 답을 알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유례없는 포성과 전쟁 선동의 목소리들을 들으며, 여러분과 이 질문을 나누고 싶습니다.

허문영

이달 시네마테크 부산에서는 11월에 시작한 "오래된 극장 III"이 16일까지 이어졌다. 17일부터는 "아듀 2010"을 시작하여 2011년 1월까지 이어나갔다. 8일 "영화 사랑방"에서는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1992〉를 함께 보았다. 영화 속의 폭력에 대한 허문영의 관심은 훗날 평론집 『보이지 않는 영화』로 이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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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호 (2011년 2월) : 무성영화를 권유함

하고 있는 일 때문에 종종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이 영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최근에 이런 질문의 대상이 된 영화는 작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엉클 분미ลุงบุญมีระลึกชาติ, 2010〉입니다. 대답은 늘 어렵습니다. 그런 영화에 대한 논리적 설명 혹은 요약 가능한 줄거리는 늘 찾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상대방이 만족하는 대답을 주는 대신 뜬금없지만 무성영화를 보기를 권유합니다.

어떤 영화가 정말 훌륭하다면 그것에는 대개 무성영화의 아름다움이 있다고 믿습니다. 아피찻퐁은 물론이고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가와세 나오미, 홍상수, 클린트 이스트우드 등의 영화에서도 저는 그런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차이밍량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대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해도, 그 영화가 좋은 영화라면 자신에게 무언가를 전해준다고 합니다. 그 무언가를 설명할 수는 없다 해도 말입니다.

이 세상에 영화가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을 흥분시킨 건 그것의 움직임의 마술이었고, 편집이라는 또 다른 테크닉이 만들어낸 시간과 공간의 마술적 결합이었습니다. 뤼미에르 형제의 그 사실적 영상들조차 당대의 사람들에게는 마술이었습니다. 그 움직임이 현실 속의 움직임과 동일해야 하고, 편집이 서사의 전개에 봉사해야 하는 규칙을 만들어낸 건 할리우드 고전기의 스튜디오들이었고, 토키 영화의 출현은 그 규칙을 율법화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영화를 수용하는 방식은 그 율법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이 과정은 영화에 결정적 무기가 더해지는 순간으로 보였지만 실은 영화에서 중대한 무언가가 삭제되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토키 영화가 등장했을 때, 찰리 채플린이 그토록 가혹한 비난을 퍼부었던 건, 토키라는 결정적인 사실주의적 요소가 영화의 마술적 차원을 폐기하고 느꼈기 때문일 것입니다. 토키가 발견한 것은 영화의 침묵이라는 말은 무성영화의 풍성함을 증언하는 탁월한 역설일 것입니다.

오늘의 위대한 감독들이 고요, 섬광, 흔들림, 돌연한 스침과 같은 비서사적 잉여들 다시 말해 무성영화 시대의 유산에 몰두하는 것은, 그것이야말로 문학이 아닌 영화가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상식적인 의미의 마술과는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영화는 상상력의 산물이 아니라, 결국 세상의 일부를 담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엉클 분미〉 역시 단독자가 세상을 체험하는 방식, 혹은 그 양자의 물질적 관계의 또 다른 표현일 것입니다.

오는 3월에 열릴 여덟 번째 '월드 시네마'에선 빅터 쇠스트롬의 〈바람The Wind, 1928〉이 상영됩니다. 무성영화의 마지막 시기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흔한 표현을 쓰자면, 영화의 존재를 정당화하는 무섭고 아름다우며 가슴 저미는 영화입니다. 지난해 이 영화를 뒤늦게 보고, 저는 저의 10베스트 목록을 바로 수정해야 했습니다. 어쩌면 영화사는 이미 무성영화의 시대에 더 오를 수 없는 미학적 정점을 경과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무성영화들을 함께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허문영

이 글은 영화의 전당 자료실에서 복사한 시네마테크 부산 소식지 묶음에는 없었으며, demannu 님께서 방명록을 통해 공유해주신 글을 올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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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호 (2011년 7월) : 영화와 무관한 소란스러움

지난 5월 12일부터 22일까지 열렸던 칸 영화제에 비평가주간 단편 심사위원으로 다녀왔습니다. 칸은 여전히 번잡하고 화려했으며 크고 작은 사고와 갖가지 화제들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한 가지 새삼스럽게 재확인하게 된 건 칸의 라인업은 생각만큼 그렇게 믿을만하지 않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최고의 데뷔작에 주어지는 황금카메라상 심사위원장을 맡은 봉준호 감독에 따르면, 유력한 후보들은 모두 비평가주간에 상영된 데뷔작들에 집중되었다고 합니다. (황금카메라상은 공식 · 비공식에 관계없이 모든 섹션에 출품된 데뷔작들이 후보가 됩니다.) 수상작인 〈라스 아카시아스Las acacias, 2011〉, 그리고 〈스노우타운Snowtown, 2011〉, 〈테이크 쉘터Take Shelter, 2011〉가 그들입니다. 제가 보기에도 이 세 편 중 어느 것이 경쟁부문에 선정되었다 해도 크게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장점들이 있습니다.

흥미로운 건 세상의 거의 모든 감독이 가고 싶어하는 경쟁부문에도 데뷔작이 3편이나 포함되어 있었지만, 그 세 편은 수상하기는커녕 황금카메라상의 유력한 후보로도 거론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경쟁부문 영화를 많이 보지 못한 저로서는 확신하긴 힘듭니다만, 그 중의 한 편인 오스트리아 영화 〈미셸Michael, 2011〉은 명백히 미카엘 하네케의 아류작으로 매우 실망스러웠던 게 사실입니다. 물론 보는 이에 따라 평가는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다만,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칸의 선정위원회도 그저 많은 시선 중의 하나의 시선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수상 결과는 더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최근 20, 30년 동안 황금카메라상을 받고 화려하게 등장한 신예 감독 중에서 후에 거장으로 성장한 사람은 짐 자무시(〈천국보다 낯선Stranger Than Paradise, 2011〉) 외에는 거의 없습니다.

모든 소란과 화제와 무관하게 기억에 남은 건 아주 단순한 일이었습니다. 주목할 만한 시선에 출품된 홍상수 감독의 〈북촌방향2011〉이 상영되던 5월 19일 밤, 클레어 드니 감독이 영화를 보러 왔습니다. 그가 만든 영화로서나 한 개인으로서나 깊이 존경 받는 이 프랑스 감독은 오직 〈북촌방향〉을 보기 위해 5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왔고, 다음 날 새벽 다시 파리로 돌아갔습니다. 두 사람이 친구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그 많은 화려한 영화들이 상영되는 칸 영화제에 자신이 진정으로 보고 싶었던 단 한 편의 영화를 보기 위해 먼 여정에 나선 그의 선택에 저는 깊이 감동받았습니다. 이 사람은 홍상수의 〈생활의 발견2002〉과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2004〉가 프랑스에서 DVD로 출시되었을 때, 놀라운 통찰을 담은 소개말을 전함으로써 명색이 평론가인 저를 부끄럽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영화를 둘러싼 소란이 더 커질수록 영화 그 자체는 점점 작아집니다. 클레어 드니의 선택은 그 소란 속에서 길을 잃지 않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

허문영

이달 시네마테크 부산에서는 6월에 시작한 "씨네 리플레이 2011"이 24일까지 이어졌다. 26일부터 29일까지는 "디지털 영사 기술 교육" 관계로 상영이 없었고, 그 이후에는 무엇을 상영했는지 알 수 없다. 20일 "新 영화 사랑방" 상영작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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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호 (2011년 6월) : 시스템이 강요한 취향의 경계를 부수자

요즘 연일 화제인 '나는 가수다' 열풍을 보면서 노래가 아니라 영화라면 어땠을까, 라는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의 옛 영화, 혹은 고전기 걸작이, '나가수'의 노래들이 음원 차트를 석권하는 것처럼 주간 흥행 성적 상위권에 오르는 일 같은 것 말입니다. 노래와 영화는 매체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물론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누구나 이런 경험은 있을 것입니다. 극장에서 볼 영화가 정말 없어서 고민하다가 겨우 한 편 골랐는데 시간 버리고 돈 버렸다고 후회한 다음, 우연히 옛날 영화 DVD로 한 편 보고 나서 '요즘은 왜 저렇게 못 만들지'라고 중얼거려본 일 말입니다.

최근에 저는 안소니 만의 〈가슴에 빛나는 별The Tin Star, 1957〉을 오랜만에 DVD로 다시 본 다음 그랬습니다. 시네마테크부산에서도 3년 전에 회고전이 열렸던 안소니 만은 물론 존 포드의 진정한 후계자 자리에 오를만한 위대한 감독입니다만 〈가슴에 빛나는 별〉은 그 미학적 가치를 따지기 전에 그저 너무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비밀을 감춘 현상금 사냥꾼 헨리 폰다의 우아하고도 노회한 면모로 우리를 매혹시키고, 몇 년 뒤 알프레드 히치콕의 〈사이코Psycho, 1960〉의 살인마를 연기하며 영화사에 길이 남는 캐릭터를 선사한 안소니 퍼킨스가 꽃미남 보안관으로 나와 서투르기 짝이 없지만 불굴의 강직함으로 우리를 감동시킵니다. 더구나 안소니 만 특유의 정적의 씬과 돌발적 액션의 절묘한 호흡, 시대의 집단적 광기를 은유하는 노련한 화술까지. 올해 본 모든 영화중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영화였습니다.

그러니, 새삼스럽게 그리고 아주 단순하게 물어보게 됩니다. 왜 이렇게 재미있는데다 훌륭하기까지 한 옛 영화가 무궁무진한데도 왜 우리는 늘 부실한 최신 개봉작을 보면서, 만족하기보다 더 자주 실망하는 일을 되풀이하는 걸까. 물론 우리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건 노래건 영화건 최신의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거대한 산업시스템, 그것이 운용하는 마케팅의 힘에서 비롯됩니다. '나는 가수다'가 음악판을 휩쓸자, 대중음악 종사자들은 걱정이 많다고 합니다. 이런 환경에선 신곡을 발표해도 전혀 빛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영화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비슷한 우려가 나올 것입니다.

이런 우려까지 지금 우리가 짊어질 필요가 없겠지요. 다만 우리가 어떤 영화를 보기로 택할 때, 혹은 어떤 음악을 듣기로 택할 때, 마케팅에 장악 당하지 않는 우리의 취향을 보존하는 것, 혹은 재발견하는 것은 어느 경우에나 중요할 것입니다. 시스템이 강요한 취향의 경계를 부수는 것. 그것은 특별한 대의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즐거움을 위해서 시급한 일입니다.

허문영

이 글은 영화의 전당 자료실에서 복사한 시네마테크 부산 소식지 묶음에는 없었으며, 아직 이 칼럼을 부산국제영화제 홈페이지를 통해 온라인에서도 볼 수 있었던 시절 인상 깊게 읽고 옮겨 두었던 것이다. 따라서 시네마테크 부산에서 이 달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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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거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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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시네바캉스 서울"이 다 끝났으니 조금 더 자세하게 이야기해도 좋겠네요. 저는 존 카펜터 감독의 〈안개The Fog, 1980〉에서 에이드리언 바보가 연기한 스티비 웨인을 참 좋아합니다.

메마르고 단단한 외모에 스티비 웨인이라는 이름을 지닌 그녀는 캘리포니아의 한적한 바닷가 마을 안토니오 베이에서 자기 방송국을 운영하는 지역 라디오 DJ입니다. 방송국 본부가 외딴 등대에 있어서, 웨인은 등대 꼭대기에서 창문 가득 넘실거리는 바다를 바라보며 마을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들려주지요. 가끔은 "여기엔 물밖에 없"다며 외로움도 타지만, "그래도 시카고보단 낫지."라며 마음을 다잡습니다. 스티비에게는 아들 앤디가 있고, 앤디의 아버지에 관한 언급은 전혀 없습니다. 스티비가 방송국에 가 있는 동안은 코브리츠 부인이라는 나이 지긋한 베이비시터가 앤디를 돌봐줍니다. 스티비와 앤디, 코브리츠 부인의 관계는 분란 없이 화목합니다.

스티비의 방송은 그리 대단한 방송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적어도 영화에 묘사되는 것만 보면 그녀의 방송에는 게스트도 없고, 특별 코너도 없습니다. 길고 따사로운 멘트를 들려주는 것도 아닙니다. 음악 사이에 "여러분 듣고 있나요? 달리 할 일이 없으면 저와 함께하시죠." 수준의 멘트를 넣는 정도입니다. 허투루 운영한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방송 로고를 여럿 녹음해 고르는 모습을 볼 수 있기는 하지만, 특별히 우수한 방송을 위해 열을 올리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스티비는 방송의 내용보다도 자신이 홀로 자신의 방송국을 꾸려나가며 자립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좀 더 의의를 두고 있을 듯합니다.

아, 스티비가 방송에 관해 자부심을 느낄 만한 요소가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바로 그녀의 목소리입니다. 방송 중에 스티비는 나지막하고 섹시한 목소리를 사용합니다. 평소 말투와 방송할 때 말투를 비교해보면 스티비가 이 목소리의 효과를 알고 있으며 이를 방송용으로 활용한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방송 도중 기상관측소 직원과 안개에 관해 심각한 대화를 나누다가도 "잠깐만, 방송 좀 하고."라며 다시 마이크를 잡고 섹시한 목소리를 들려줄 정도입니다. 그는 자신의 매력을 이해하고 있고, 이를 주체적으로 활용합니다.

그런 스티비가 안토니오 베이를 덮친 죽음의 안개에 대해 깨닫게 됩니다. 안갯속에 무언가가 있고, 그것이 사람들을 죽입니다. 스티비는 즉시 마을 보안관에게 연락을 취한 뒤 라디오 방송을 통해 자신의 집 주소를 알리고 듣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앤디를 구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이후 제가 가장 좋아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스티비는 방송을 통해 앤디에게 말합니다. "앤디, 내 말 들리는지 모르겠구나. 가지 못해서 미안하다. 함께 있어 주지 못해서 미안해. 앤디, 이해해주렴. 난 여기 있어야 해." 그러고는 스티비는 방송을 통해 안개의 확산 경로를 알립니다. 어느 길은 이미 안개로 막혔다, 어느 길은 괜찮다, 살아남았다면 어느 곳으로 가라. 최후의 순간 외에는 직접 물리적 액션에 나서지는 않지만, 스티비는 모든 주요 인물을 교회로 모아 클라이맥스에 이르도록 하는 일등공신입니다.

함께 이 영화의 각본을 쓰고 각각 제작과 연출을 담당한 데브라 힐과 존 카펜터의 시선은 존경스럽습니다. 스티비는 혼자서 자신과 아들의 생활을 꾸려나가는 독립 여성입니다. 일에 지나치게 몰두해서, 혹은 남편이 없으므로 어머니로서 부족하며, 따라서 아들과의 사이가 틀어졌다는 묘사는 전혀 없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직접 집으로 가서 앤디를 구하려고 해봐야 소용이 없으며 등대에 남아 방송을 하는 것이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길이라는 사실을 냉철하게 판단한 후, 자신이 경영하는 방송국과 자신의 목소리를 이용해 마을 사람들을 위기에서 구해냅니다. 이때 데브라 힐과 존 카펜터는 앤디를 죽여 '모성애가 부족한 어머니'인 스티비에게 징벌을 가하지도 않습니다. 물론 모자의 관계는 처음부터 돈독했으므로, 스티비와 앤디가 다시 만나 새삼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는 일도 없습니다. 스티비는 처음부터 끝까지 스티비답고, 그것이 모두를 살립니다. 지금도 적지 않은 영화들이 비슷한 상황에 부닥친 여성 인물을 자식 목숨 걱정하느라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변한 민폐쟁이 아줌마로 그리곤 한다는 점을 떠올리면, 〈안개〉의 담백함은 한층 근사하게 느껴집니다.

모든 위험이 사라진 후, 방송을 통해 안개를 주의하라고 말하는 스티비의 대사는 존 카펜터가 좋아하는 하워드 혹스 감독(의 영향 아래에서 연출을 맡은 크리스천 니비 감독)의 영화 〈외계에서 온 것The Thing from Another World, 1951〉에 바치는 오마주입니다. 하지만 〈외계에서 온 것〉의 남자 기자는 군인과 과학자들의 다툼에서 밀려난 채 구경만 하다가 사건이 모두 해결된 후에야 비로소 냉전 공포를 상기시키는 대사를 읊조릴 따름입니다. 〈안개〉에서 스티비의 목소리는 공포에 대해 경고함과 동시에 사람들이 그 공포와 맞설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합니다. 그리고 이때 안개는 안토니오 베이 사람들이 과거에 집단적으로 저지른 죄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하늘을 조심하라던 〈외계에서 온 것〉의 경고가 미지의 타자에 대한 호전적인 대응을 권장한다면, 안개를 조심하라는 〈안개〉의 경고는 내부의 자성을 요구합니다. 조금 극적으로 말하자면, 스티비는 공동체 내부에서 빛을 밝히는 양심의 수호자인 셈입니다. 저는 하워드 혹스의 열렬한 팬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이 점에 관해서만큼은 존 카펜터가 오마주 이상의 성취를 거두었음을 인정해야겠습니다.

Posted by 거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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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간으로 오늘이 로버트 드니로의 일흔세 번째 생일이군요. 그리고 올해는 〈택시 드라이버Taxi Driver, 1976〉 개봉 40주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재미삼아 폴 슈레이더가 쓴 〈택시 드라이버〉 각본 도입부를 번역해보았습니다. 각본을 이렇게도 쓴다는 예로 전부터 소개하고 싶었어요. 저는 세상에서 제일 지겨운 일 중 하나가 영화 각본 읽는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각본이라면 좀 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흔히 영화 각본은 그 자체로는 완성된 작품이 아니고 앞으로 만들 영화의 설계도 노릇을 한다고들 합니다만, 폴 슈레이더는 각본 자체를 특정한 규격과 목적에 좌우되지 않는 완결된 창작물로 대했던 모양입니다. 그러고 보니 (별로 관계는 없지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 세 편에 〈택시 드라이버〉를 넣곤 하는) 쿠엔틴 타란티노도 자기 각본을 독립된 작품으로 여긴다고 들었습니다. 감독으로서 자신이 하는 일은 각본가로서의 자신이 쓴 '원작'을 '각색'하는 거라고 말이지요. 그래서 그는 영화를 발표할 때마다 각본 출간에도 열을 올리고, 은퇴한 뒤에도 소설이나 희곡을 쓸 거라고 했죠.

옮기고 보니 재미있어서 취미 삼아 한두 장씩 번역해서 전체를 다 번역해도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생각으로 끝나겠지만요.

참, 〈택시 드라이버〉는 얼마 후인 8월 23일부터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 KOFA에서 열리는 "영화와 공간: 마틴 스콜세지 인 뉴욕" 프로그램을 통해 4K 디지털 복원판(4K 디지털 영사)으로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이미 Blu-ray를 통해 소개됐습니다만, 복원 결과가 무척 좋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보면 더욱 파괴력을 발휘할 만한 영화이기도 하고요. 저는 특히 아래 각본에서 트래비스가 스물여섯 살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산전수전 다 겪고 삶에 지친 중년이 아니라 군대 제대하고 무기력함과 불면증에 시달리며 방향 없는("무엇을 향해 나아가는지는 알 수 없다.") 폭력을 향해 나아가는 이십대 중반 남자라는 얘깁니다. 참으로 친근하지요?

트래비스 비클, 나이 스물여섯, 호리호리하고, 단단하고, 완전한 고독자. 겉보기에 외모는 괜찮다. 잘생겼다고까지 할 수 있을 정도. 조용하고 흔들림 없는 시선에, 상대방을 무장해제하는 미소가 불현듯 번뜩이며 얼굴을 환히 밝힌다. 하지만 그 미소 뒤에서, 어두운 눈 주변에서, 여윈 뺨에서, 평생에 걸친 자신만의 공포, 공허, 고독으로 인해 피어난 불길한 긴장이 느껴진다. 사시사철 차가운 땅을, 거주민들이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 나라를 떠돌며 살아왔던 것만 같은 모습이다. 머리가 움직이고, 표정은 변해도, 눈은 늘 미동도 깜빡임도 없이 텅 빈 공간을 꿰뚫어 본다.
지금 트래비스는 뉴욕시의 밤을 더 어두운 그림자 속에 묻힌 그림자처럼 드나들며 떠돌고 있다. 눈에 띄지도 않고, 눈에 띌 이유도 없다. 트래비스는 환경에 녹아든다. 그는 라이더 청바지, 카우보이 부츠, 격자무늬 웨스턴 셔츠와 "킹콩 중대, 1968-70"이라는 패치가 박힌 낡은 베이지색 군용 재킷을 입는다.
그에게서는 섹스의 냄새가 난다. 메스꺼운 섹스, 억압된 섹스, 고독한 섹스지만, 그래도 섹스는 섹스다. 그는 원초적인 수컷의 힘 자체이며,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간다. 무엇을 향해 나아가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더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그 불가피한 성질을 깨닫게 된다. 클록 스프링을 끝없이 조여 댈 수만은 없는 법. 지구가 태양을 향해 나아가듯, 트래비스 비클은 폭력을 향해 나아간다.


트레비스가 일자리를 얻다

영화는 맨해튼 택시 차고의 외관에서 시작된다. 진입로 위에 걸린 비바람에 낡은 간판에는 "택시는 이쪽"이라고 적혀 있다. 노란 택시들이 바삐 드나든다. 때는 겨울, 도로 경계석에 눈이 쌓여 있고 바람이 울부짖는다.
차고 안에는 다양한 색깔의 택시들이 줄줄이 주차되어 있다.
택시들이 공회전하는 소리와 기사들의 말소리가 메아리친다. 허연 숨과 배기가스가 허공을 가득 채운다.
택시 회사 사무실 복도. 빼꼼 열린 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 인사과 -
메이비스 택시 회사
블루 앤 화이트 캡 회사
애크미 택시
믿음직한 택시 서비스
JRB 캡 컴퍼니
스피도 택시 서비스

바쁘게 업무 중인 사무실 소리: 발걸음 소리, 타이핑 소리, 다투는 소리.
인사과 사무실은 뒤죽박죽 난장판이다. "메이비스, B&W, 애크미"라는 머리글자가 적힌 종잇장 등속이 부스러져 가는 석고벽에 기댄 채 쌓여 있다. 때는 3월. 책상은 양식, 보고서, 낡은 업라이트 로열 타자기로 어수선하다.
머리가 헝클어진 중년의 뉴요커가 책상에서 고개를 든다. 그 중년 인사과 직원과 책상 앞에 선 젊은이가 대화하는 모습으로 컷.
이 젊은이가 트래비스 비클이다. 그는 청바지, 부츠, 군용 재킷을 입고 있다. 그가 필터 없는 담배를 한 모금 빤다.
인사과 직원은 진이 빠져 있다. 출근할 때부터 진이 빠져 있다. 트래비스는 그와는 완전히 딴판이다. 그의 강철처럼 강렬한 시선은 인사과 직원조차 뒤흔들어 근무시간의 권태에서 빠져나오게 할 정도다.

인사과 직원: (외화면) 택시국하고는 문제없고?
트래비스: (외화면) 없어요.
인사과 직원: (외화면) 면허증은 있고?
트래비스: (외화면) 네.
인사과 직원: 왜 택시기사가 되고 싶은 거지?
트래비스: 밤에 잠을 못 자서요.
인사과 직원: 그거라면 포르노 극장이 있잖나.
트래비스: 압니다. 해봤죠.
(인사과 직원은 거들먹거리고는 있지만 살짝 호기심을 느끼며 상대를 훑어본다. 트래비스는 차갑고 거리감 느껴지는 암호다. 그는 자기 입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것처럼 말한다.)
인사과 직원: 그래서 요샌 뭐 하는데?
트래비스: 밤에는 주로 이것저것 타고 돌아다닙니다. 지하철, 버스. 구경하는 거죠. 그럴 바엔 돈도 벌자 싶어서요.
인사과 직원: 우린 부적응자는 필요 없는데.
(트래비스가 입술 사이로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엷은 미소를 띄운다.)
트래비스: 농담이죠? 밤에 사우스 브롱스나 할렘에서 택시 몰 사람이 또 있다고요?
인사과 직원: 그럼 자넨 밤에 시 외곽에서 일하고 싶단 말이야?
트래비스: 어디서든 언제든 괜찮아요. 고를 형편 아니라는 거 압니다.
인사과 직원: (잠시 생각하다가) 운전 기록은 어떤데?
트래비스: 깨끗해요. 완전 깨끗하죠. (말을 멈추고 엷은 미소) 제 양심처럼 깨끗해요.
인사과 직원: 이봐, 똑똑한 척 하려면 당장 나가.
트래비스: (사과하는 어조로) 죄송합니다. 그럴 생각은 없었습니다.
인사과 직원: 건강은? 전과는?
트래비스: 역시 깨끗합니다.
인사과 직원; 나이는?
트래비스: 스물여섯요.
인사과 직원: 학력은?
트래비스: 조금요. 여기저기.
인사과 직원: 병무기록은?
트래비스: 1971년 5월 명예제대 했습니다.
인사과 직원: 밤에 부업으로 뛰려고?
트래비스: 아뇨, 긴 근무가 좋습니다.
인사과 직원: (심드렁하게, 거의 혼잣말처럼) 밤에 부업하는 사람들은 여기 많아.
트래비스: 그렇다더군요.
인사과 직원: (트래비스를 올려다보며) 뭐, 우리가 그렇게 깐깐하게 굴진 않아. 항상 들어오고 나가고 하는 거지. (서랍을 뒤져 분홍색, 노란색, 하얀색 양식을 모은다.) 이 양식 작성해서 저기 책상에 앉은 아가씨에게 주고 전화 번호 남기게. 전화 있나?
트래비스: 아뇨.
인사과 직원: 그럼 내일 다시 와.
트래비스: 알겠습니다.

(맨해튼의 밤 풍경 위로 크레딧이 올라간다. 눈은 녹았다. 이제 봄이다.
비가 내려 번들거리고 축축하고 우울한 맨해튼 극장가의 밤. 사방에 택시와 우산이 뒤엉켜 있다. 잘 차려 입은 행인들이 택시를 향해 밀고 달리고 손을 흔든다. 미드타운 쇼를 보고 나온 고급 극장의 고객님들께서는 가난하고 평범한 이들에게 떨어지는 비가 자신들에게도 떨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고 충격을 받는다.
둔탁하게 후드득후드득 떨어지는 빗소리를 배경으로 경적과 고함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노란색, 빨간색, 초록색 신호가 인도와 자동차에 반사돼 눈부시게 빛난다.
"비 오는 도시에서는 택시기사가 왕." 이러한 택시기사들의 격언은 오늘밤의 활동을 통해 사실로 밝혀진다. 이 난장판 속에 택시들만이 기세등등하다. 그들은 어려움 없이 비와 차량 사이를 뚫고 미끄러지며 자신들이 고른 상대를 태우고, 자신들이 고른 상태를 퇴짜 놓고, 자신들이 원하는 곳으로 간다.
시 외곽으로 더 나가면 군중들은 그렇게 정신 없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비는 거리의 부랑자와 늙은 빈자에게도 떨어진다. 마약중독자들은 비 내리는 길모퉁이에 여전히 서 있고, 창녀들은 비 내리는 인도를 여전히 어슬렁거린다. 그리고 택시들은 그들에게도 서비스를 제공한다. 크레딧이 지나가는 내내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멀리 떨어진 방이나 모퉁이를 돌아가면 나오는 가게에서 들려오는 소리처럼 둔중하게 들린다. 그 소리를 듣는 이들은 안전하고도 특권적인 거리를 확보하고 있다.
맨해튼 밤 생활의 다양한 지층을 살핀 후, 카메라는 그중 한 택시로 다가서기 시작한다. 아마도 트래비스 비클이 운전하고 있을 택시를 향해서. 크레딧이 끝난다.)

왼쪽부터 폴 슈레이더, 마틴 스콜세지, 로버트 드 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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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쓰 홍당무2008〉를 좋아한다.
- 나카시마 테츠야의 연출작에 찬성한다.
- 나카시마 테츠야의 연출작에 반대한다.
- 한국 영화계의 손예진 낭비를 눈 뜨고 볼 수 없다.
- 한국 영화계의 김주혁 낭비를 눈 뜨고 볼 수 없다.
- 한국 영화계의 배우 낭비를 눈 뜨고 볼 수 없다.
- 한국 영화계의 벽지 낭비를 눈 뜨고 볼 수 없다.
- 한국 영화계의 쇼트 낭비를 눈 뜨고 볼 수 없진 않더라도 한숨 정도는 자주 쉰다.
- 영화라는 누더기를 깁는 방식에서 즐거움을 느낀다.
-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1999〉를 좋아한다.
- 박찬욱 감독은 〈올드보이2003〉 혹은 〈친절한 금자씨2005〉가 최고였다.
- 신체 훼손 직접 묘사나 충격 효과로 관객이 고통을 체감하도록 하는 수법은 게으르다.
-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갈 수 없어 애석하다.
- '한국 + 장르 영화'로서의 〈검은 사제들2015〉과 〈탐정 홍길동2016〉에 찬성한다.
- 〈카운트다운2011〉 이후 트렌치코트 입은 여성 주연의 한국 미스터리 영화를 기다렸다.
- 현대 필름 누아르를 좋아한다.
- 잠시 한국판 〈나쁜 놈일수록 잘 잔다悪い奴ほどよく眠る, 1960〉에 대한 꿈이나마 꿔보고 싶다.
- 여성 캐릭터 중심이라더니 꼴랑 주인공 혼자 여성인 영화들에 배신감을 느껴왔다.
- 이젠 한국 대기업 로고 박힌 영화는 포기할까 생각하던 차였다.
- 〈비밀은 없다〉라는 끔찍한 제목 정도는 잠시 참을 수 있다.
- 영어 제목은 "The Truth Beneath"라는데 그것도 간신히 참을 수 있다.
Posted by 거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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