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실크 스타킹Silk Stockings, 1957〉이 미국에서 블루레이로 출시된다기에 생각나서.

〈실크 스타킹〉은 에른스트 루비치가 연출하고 그레타 가르보가 출연한 〈니노치카Ninotchka, 1939〉를 50년대 MGM에서 뮤지컬로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물론 루비치 특유의 날카로운 코미디를 기대해서는 안 되며, 무신경하게 성차별적이기까지 하다. 더구나 50년대 MGM 뮤지컬로서도 그리 뛰어난 작품은 아니다. 프레드 아스테어와 시드 채리스라는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우아한 춤꾼들이 출연하여 능숙한 몸놀림을 선보이기는 하지만, 둘의 진면목을 보여준다고 하기는 어렵다.

DVD로 이 영화를 처음 본 이후 꽤 시간이 흐른 지금에 와서 기억에 남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피터 로르. 〈실크 스타킹〉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아직 피터 로르의 팬이 아니었고 그가 누구인지도 몰랐지만, 땅딸막한 러시아인이 의자와 탁자를 붙들고 주저앉다시피 하여 카자크 춤 비슷한 것을 추는 광경에 어찌나 웃었는지 모른다.

다른 하나는 아래 소개할 "입체음향" 장면이다. 1950년대 할리우드는 TV 보급으로 인한 관객 수 감소를 극복하기 위해 영화관에서만 제공할 수 있는 여러 장치를 고안했다. 관객들에게 "어머, 이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만 해!"라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함이었다. 그런 노력의 결과 50년대 할리우드에서는 색채, 와이드스크린, 입체음향을 사용한 영화가 증가하게 되며, 잠시 3D 영화도 유행하게 된다(단, 이 모든 요소는 이 시기보다 훨씬 전에 이미 발명되었다는 점을 짚어 둔다). "입체음향" 장면은 바로 이러한 유행 속에서 탄생했다. 러시아의 유명 작곡가를 꼬드겨 프랑스에서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미국 제작자와 그동안 수중 뮤지컬만 찍다가 이참에 이미지 변신을 꾀하고자 하는 배우가 기자들을 모아놓고는 요즘 관객을 끌어모으는 원동력은 이야기나 배우나 연출이 아니라 색채, 와이드스크린, 입체음향이라며 노래를 부른다. 물론 〈실크 스타킹〉은 실제로 1950년대에 나온 컬러 시네마스코프 입체음향 영화였고, "입체음향" 장면은 재니스 페이지의 의상 색깔, 화면의 가로 폭을 강조하는 안무와 공간 배치, 입체 음향 효과를 보란 듯이 전시하며 가사의 내용을 표현 양식에도 반영한다. 할리우드 특유의 뻔뻔한 자기 풍자 겸 자기 과시다.

한편 〈실크 스타킹〉은 아스테어가 MGM에서 찍은 마지막 뮤지컬이기도 했다. "입체음향" 장면의 가사 중에는 예전에는 파트너와 뺨과 뺨을 맞대고 친밀하고 가벼운 춤을 추었지만 이제는 엉덩이를 뒤로 쭉 빼고 무릎으로 미끄러져야 한다는 대목이 있는데, 여기서 "뺨과 뺨을 맞대고(cheek to cheek)"라는 표현은 물론 아스테어가 30년대에 진저 로저스와 함께 출연한 대표작 〈탑 햇Top Hat, 1935〉에 나오는 "뺨을 맞대고" 장면에 대한 인용이다. 20년이 넘게 할리우드 뮤지컬의 태산북두였던 배우가 할리우드에서 뮤지컬을 가장 잘 만들던 스튜디오에서 출연한 마지막 작품에서 영화 제작자를 연기하며 자기 스타일의 춤은 수명이 다했다는 가사의 노래를 웃으면서 부른 다음 정말로 떠나버렸다니. "입체음향" 장면이 애초에 의도했던 것 이상으로 쓰디쓴 자기반영성이 아닐 수 없다. 할리우드에서 한 시대는 이런 식으로 끝나곤 했다. 쾅 소리가 아닌 웃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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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잭 스나이더는 크리스토퍼 놀란이 가질 수 없는 영혼의 반대편 같은 존재가 아닐까. 둘 다 기본적으로는 꿈 많은 소년 기질에 심취한 창작자들이다. 그중 더 어른스럽거나 어른스러운 척 할 수 있는 건 놀란이다. 놀란은 자신의 공상을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할 줄 알며, 공상을 포장할 만한 야심과 교양(영화적 교양 같은 거 말고 그냥 양식 있는 현대 사회 성인으로서 그래도 이 정도 매무새는 갖춰야 한다는 인식)도 갖추고 있다. 그는 공상을 영화 안팎에서 구조화/언어화하려 정연히 전달함으로써 어른으로 대접받고자 하는 영국 기숙학교 도련님 같다. 반면 스나이더는 "다크"한 거 보면서 큭큭큭 거리는 자신의 기질을 조금도 감추거나 정련하려 들지 않는다. 그는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어린아이처럼 자기 환상을 보란듯이 퍼부으며, 그런 태도에 조금이라도 회의를 품기는커녕 위선 없는 자신의 태도가 마냥 근사하다고 여기는 듯하다. (놀란의 남자 주인공들이 상실한 아내의 망령에 휩싸인 금욕적인 사내들인 데에 반해 스나이더의 남자 주인공들이 종종 황홀한 섹스를 즐기며 무력하게 위기에 처한 어머니/연인을 구해내는 데에 몰두한다는 점 또한 두 감독의 소년성이 지닌 공통점과 차이점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유기적인 영화를 만들어낸다는 측면에서는 스나이더 쪽이 훨씬 더 엉망이며 빈말로라도 좋은 영화라고 말하기 어려운 결과물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Batman v Superman: Dawn of Justice, 2016〉을 보는 동안, 어쩌면 미국산 슈퍼히어로를 다루는 데에는 유치찬란하고 과도하며 편협한 것을 진지하고 멋지다고 여기는 스나이더의 기질이 더 핵심과 맞닿아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강철의 사나이Man of Steel, 2013〉를 만들었던 창작자가 지금까지 나온 실사판 배트맨 중에서도 제일로 꼽을 만한 배트맨 해석을 내놓을 줄이야. '자기가 사는 도시를 더 나은 곳으로 바꿔 놓을 만한 재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어렸을 때 강도에게 총 맞아 죽은 부모에 대한 원한을 몇십 년 넘도록 고스란히 유지한 채 1인 자경 활동에 나서는 중년 범죄자'가 어떤 인간일까 상상해 보노라면, 대놓고 '사실성'을 강조했던 놀란의 배트맨보다 스나이더의 배트맨이 더욱 정곡을 찌르고 있음은 부정하기 어렵다. 《씨네21》의 김혜리 기자는 이 폭력적인 배트맨의 "아전인수 및 인종주의적 발언은 딕 체니나 도널드 트럼프라면 모를까, 우리가 아는 브루스 웨인의 프로필을 벗어난다"고 썼지만, 그리고 확실히 나도 크립토나이트 창은 일단은 가상의 위협에 대한 억지책으로 만들어 놓는 선에서 그치도록 했어야지 바로 '슈퍼맨을 죽이겠어'로 가는 건 곤란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렇더라도 우악스럽고 편협하며 사고가 망가져 있는 지친 우익 폭력배 배트맨의 모습은 수도승에 가까운 크리스천 베일의 배트맨보다 더 자연스럽게 와 닿는다. 이런 배트맨이라면, 허우대 좋으면서도 무기력해 보이는 벤 애플렉의 얼굴을 통해 육화된 넋 나간 편집광 배트맨이라면, 신용할 수 없는 절대적 타자/숙적의 입에서 자신의 (그 오랜 세월 동안 조금도 가벼워지지 않은) 근원적인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핵심 단어가 나오는 순간 칼을 거두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그에게도 그만의 크립토나이트가 있나니.

배트맨이 한 축을 잡아준 덕분에 슈퍼맨에 대한 해석도 명료해졌다. 헨리 카빌이 연기하는 슈퍼맨은 인간관계에서든 사회활동에서든 올바르다고 간주 되는 행동을 하기는 하지만, 진심 어린 박애 정신과 사랑 속에서 그렇게 행동한다기보다는 그것이 인간에게는 올바른 행동이라고 배웠기 때문에 흉내만 낼 뿐인 모범생 소시오패스 같다. 그가 재난 앞에서 인간들을 구조하는 장면의 과도하게 장엄한 구도와 모호한 표정에서는 신적인 존재의 애정과 자비보다는 '이 버러지들은 왜 이러고 있는 걸까' 하는 냉담함이 엿보인다. 심지어 초반부 클라크 켄트로서 로이스 레인을 달래는 대목조차도 '연인이 속상해하며 관계에 회의적일 때는 로맨틱한 몸(개그)로 밀어붙여라' 라는 매뉴얼을 읽고 그대로 실천하는 것만 같을 정도이니 말 다했다. 할리우드가 지성이 있고 영어를 할 줄 아는 '우리 편' 외계인을 이토록 매몰차게 그린 사례가 있었을까. 짐작건대 스나이더는 슈퍼맨을 싫어하거나 적어도 그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듯하다. 하지만 이처럼 몰이해를 동력으로 삼아 그려낸 슈퍼맨의 모습에서 전해지는 외계인다운 비인간미는, 어쨌거나 외계인이면서도 나쁜 외계인들에게 맞서는 착한 외계인으로 거듭나느라 갈팡질팡했던 〈강철의 사나이〉보다 더욱 뚜렷한 일관성을 지니고 있다. 제아무리 박애주의적인 행동을 하더라도 결국은 그 행동 저변에 자리한 인간다움은 재현할 수 없는 타자. 그렇기에 가장 고마운 순간에조차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잠재적 위협. 바로 배트맨의 시선이다. 즉 〈배트맨 대 슈퍼맨〉은 배트맨의 시선을 중심으로 한 배트맨 영화이며, 그 시선 안에서 슈퍼맨에 대한 묘사는 일관적이다. 그러므로 그가 배트맨이 먹인 크립토나이트 때문에 평범한 인간에 가까워져 흠씬 두들겨 맞고 신음하게 된 다음에야 비로소 로이스에게 사랑한다는 고백을 하고 인류 절멸의 위협을 막기 위해 신의 자리에서 내려오게 되는 것도 당연한 전개라면 당연한 전개다.

물론 이와 같은 해석을 정치적으로 비판할 수는 있다. 스나이더가 자신이 그려낸 배트맨과 거리를 두고자 노력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슈퍼맨이 배트맨에게 맞아 넝마가 되는 대목에는 비탄이나 고통의 쇼트보다는 한낱 인간이 신적인 존재를 끌어내려 바닥을 기게 하고 있다는 역전의 쾌락, 폭력의 기쁨이 어려 있다. 또 둠스데이와 슈퍼맨과 원더우먼이 말 그대로 초인적으로 맞붙을 때는 그 광경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무기력한 인간 배트맨의 시점이 삽입된다. 배트맨이 초인/외계인을 인간과 다른 미지의 위협으로 바라보며 두려워하고 분노하는 순간, 슈퍼맨에 관한 저 유명한 슬로건 "Up in the sky, look: It's a bird. It's a plane. It's Superman!"은 빨갱이 공포로 얼룩진 50년대 SF 공포 액션 영화 〈외계에서 온 것The Thing from Another World, 1951〉에 나오는 저 유명한 경고 "Watch the skies. Everywhere. Keep looking. Keep watching the skies."와 겹쳐지는 듯하다. (그리고 이 연상이 우연이 아니라는 듯, 렉스 루터는 "The Red Capes are coming! The Red Capes are coming!"이라고 말한다.) 조금 과도하게 말하자면, 여기서 스나이더는 〈바람과 사자The Wind and the Lion, 1975〉를 만든 극우 마초 감독 존 밀리어스 곁에 서 있다.

그러나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그것이야말로 배트맨이라는 캐릭터의 한 본질이 아닌지. 배트맨을 계속 진지하게 히어로로 떠받드는 한, 이 해석은 언젠가는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걸 실현하는 데에는 외톨이들을 사랑하는 몽상가 팀 버튼이나 배트맨이라는 존재가 빚어내는 사회적/관념적인 대립에 몰두한 건축가 놀란이 아니라 야단법석 사방을 때려 부수며 으하하하 다크하다 다크해 라고 환희하는 스나이더가 필요했던 거고. 물론 오래전 대런 아로노프스키가 계획대로 〈배트맨: 원년〉을 만들었더라면 이보다 훨씬 다층적인 우익 자경단 배트맨의 초상을 그려내었으리라 짐작하는 바이지만, 어쨌거나 그 근사한 계획이 무산된 지도 어언 십여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아쉬우나마 스나이더의 공로를 인정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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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이 슈퍼맨을 흠씬 두들겨 패는 과정의 쾌락에 관해 이야기한 김에 덧붙이자면, 스나이더가 청소년기의 과시적 암흑에 사로잡힌 창작자임은(일라이 로스나 매튜 본처럼?) 특히 가학적인 묘사, 좀 더 정확히는 고귀하고 존중해야 할 존재를 처참하게 '능욕'하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에서 나타난다. 범죄자의 몸에 박쥐 낙인을 찍거나, 슈퍼맨의 어머니를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이나, 처참하게 망가지는 슈퍼맨의 묘사 모두 극의 전개나 관객의 호응을 위해 필요한 수준 이상으로 과도하다. (비슷하게 슈퍼맨이 진창을 뒹구는 묘사가 있었던 〈슈퍼맨 돌아오다Superman Returns, 2006〉와 비교해 보라.) 바로 이 후안무치하면서도 심상한 악취미의 전시야말로 놀란이 제아무리 '사실적'인 배트맨을 그리고자 한들 절대 손대지 않았을 영역이며 식자들의 논란과 비판과 비난을 피해가기 어려울 요소인 동시에 〈배트맨 대 슈퍼맨〉이 독자적인 해석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해준 기반이다. 여기서 "악취미"보다는 "심상함"을 강조하고 싶다. 스나이더 유의 창작자들에게는 영어에서 "tongue-in-cheek"이라고 하는, 관객에게 윙크를 던지며 장난스럽게 '나는 이런 것도 한다'라고 과시하는 동시에 눙치는 거리 두기가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사회적으로 논란이 될 만한 불쾌한 욕망(이런 욕망 자체는 누구에게나 있다고 생각하는데) 앞에 주저하거나 이를 걸러내는 자기 검열 필터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나 또한 불쾌한 욕망을 지닌 감상자로서 그처럼 절제되지 않은 묘사의 쾌락은 이해하고 인정하며, 그것이 "tongue-in-cheek"으로 일관하며 모두가 짜고 치는 안전한 소꿉놀이를 반복하는 것보다는 더 "영화답다"고 여기는 마음도 없지 않지만, 그러한 태도가 저예산 착취 영화가 아니라 모두가 기다리는 초고예산 블록버스터를 잠식하면서 세계적인 흥행으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 앞에서는 역시 꺼림칙함을 완전히 걷어내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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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영화적으로 엉망임을 전제한 뒤 굳이 서사 상의 성취에 관해 언급하는 이런 글을 쓰는 것의 불편함은 말할 것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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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번구紅番區, 1996〉 블루레이에서 캡처. 미국판 블루레이이긴 하지만, 어차피 외국에서 디스크 받아다 표지만 한국어로 바꿔 판매하고 있을 테니 한국판 자막도 똑같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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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의 "2016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류승완 감독이 추천한 〈특급 비밀!Top Secret!, 1984〉을 보고 관객과의 대화도 듣고 왔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는 영화였다. 영화를 보기 전에 '이런 패러디 영화로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했던 것과는 달리 관객과의 대화도 퍽 알찼다. 그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류승완이 선정한 영화 중에서 가장 좋았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가장 뛰어난 영화였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영화 선택의 의외성 + 극장 관람의 의의 + 관객과의 대화에 대한 만족도라는 측면에서.

극장에서 큰 스크린으로 + 많은 관객과 함께 보는 데에 의의가 있는 영화라는 점이 가장 좋았다. 단순히 '이렇게 웃긴 영화는 역시 많은 사람이 모여 낄낄거리면서 봐야 제맛'이라는 차원에서 하는 이야기만은 아니다. 류승완과 김성욱 프로그램 디렉터가 지적했듯, 화면 내 정보량이 많은 영화이기에 큰 스크린이 필요하다는 점, 그리고 그 안에서 웃음의 포인트를 잡아내는 관객들 간의 암묵적인 경쟁과 전염이 뜻깊었다. 많은 패러디 영화가 그렇듯 〈특급 비밀!〉 역시 관객의 선행 학습을 요구하는 영화다. 분명 웃자고 넣은 장면인데도 누구는 곧바로 받아들이는가 하면 누구는 어리둥절해 한다. 그 차이 자체도 재미있고, 처음에는 웃지 못했던 관객들이 먼저 웃은 다른 관객들을 통해 뒤늦게 웃음 포인트를 발견하고 따라 웃는 현상이 발생한다는 사실은 특히 재미있다. 그건 웃음소리를 끌어내는 코미디 영화에서만 가능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심도 깊은 화면을 이용하는 윌리엄 와일러나 오슨 웰스 영화 등에서도 관객에 따라 화면 내 정보를 인지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한 관객이 인지한 정보가 다른 관객에게 전파되는 상황은 상상하기 어렵다. 혹은 옆에서 다른 관객이 훌쩍이는 소리를 듣고 그제야 울음 포인트를 발견하여 따라 울게 되는 영화도 떠올리기 쉽지 않다. (단, 공포 포인트를 뒤늦게 발견하여 따라 비명 지르는 공포 영화는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역시 대담 시간에 나왔듯 웃음과 공포는 맞닿아 있는 것일까.)

따라서 관객 질의 응답 시간에 나온 가장 근사한 질문은 '사실 나는 어떤 장면에서는 왜 웃긴지 몰랐는데 남들 따라서 웃는 척했다. 방금 설명을 듣고서야 그 장면이 왜 웃긴지 이해하게 돼서 기쁘다. 하지만 아직도 이 장면과 저 장면은 왜 웃긴지 모르겠다.' 라는 질문이었다. 이런 질문이 나올 때면 '아, 오늘 관객과의 대화는 이걸로 성공이야!' 하는 생각이 든다.

반대로 마이크를 잡고 반론을 펴며 토론에 나서고 싶은 발언도 있었다. 한 관객은 이런 유형의 코미디가 딱히 영화적이지 않은 듯하고 웹툰이나 만화, 애니메이션에서 더 잘 드러나는 것 같다면서 컷부의 〈소년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와 아즈마 키요히코의 『아즈망가 대왕』 및 그 애니메이션을 추천했다. 류승완은 〈소년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와 『아즈망가 대왕』을 보지 않았기에 그 관객이 말한 바를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는 없었던 듯하며, 다만 "영화적"이라는 표현이 가리키는 바는 더없이 다양하고 영화는 늘 다른 매체들과 상호교통하며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정도로만 답했다. 〈소년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와 『아즈망가 대왕』이 어떤 작품인지 알며 〈특급 비밀!〉의 영화다움을 몹시 즐겼던 나로서는 그 발언에 대해서 좀 더 강경하게, 그런 지적은 틀렸다고 반박하고 싶었다.

그 관객의 의견은 〈특급 비밀!〉이 매순간 예상을 뒤엎고 전개되는 영화라는, 류승완이 대담 시간 맨 처음에 했던 발언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소년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와 『아즈망가 대왕』을 거론한 것을 통해 미루어 짐작하건대 그는 〈특급 비밀!〉이 제공하는 웃음의 성격을 너무 단순하게, 어쩌면 말 그대로 '예상을 뒤엎는다'로만 요약해서 받아들이지 않았나 싶다. 〈특급 비밀!〉의 웃음이 관객의 예상을 뒤엎는 데에서 나온다고 말할 때 중요한 것은 '뒤엎는다'보다는 '예상'이다. 패러디 영화로서 〈특급 비밀!〉은 이미 수많은 영화를 통해 학습된 관습을 제시한다. 관습은 예상을 만들어낸다. 예상과는 다른 결론이 도출되거나 하나의 관습이 다른 관습과 만날 때, 웃음이 발생한다.

내가 특히 좋아했던 두 가지 사례를 예로 들겠다. 첫 번째는 류승완도 좋아한다고 말했던 러브신의 벽난로 장면이다. 류승완은 이것이 러브신이 시작되면 등급이나 검열 등의 문제로 카메라가 방향을 돌려 다른 곳을 바라보는 관습을 반영하는 장면이라는 정도로만 설명했다(류승완 자신도 단편〈다찌마와 Lee2000〉에서 이 장치를 활용한 바 있다). 이 설명을 조금 더 부연하고 싶다. 일단 카메라가 그냥 연인에게서 고개를 돌리는 게 아니라 고개를 돌려 벽난로의 불길을 바라본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러브신을 회피하는 걸로 끝이 아니다. 벽난로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사랑을 은유한다. 카메라 움직임이 만드는 그 노골적인 직유가 웃긴다. 그리고 〈특급 비밀!〉의 벽난로 장면은 여기서 더 나아간다. 입 맞추는 연인을 바라보던 카메라는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벽난로의 불길을 비춘다. 관습대로라면 화면이 암전되어야 할 타이밍이다. 헌데 갑자기 이놈의 연인들이 바닥을 데굴데굴 뒹굴면서 벽난로 앞에 다시 나타난다. 카메라는 마치 "이런 젠장!" 하고 외치듯이 한 번 더 오른쪽으로 고개를 홱 돌린다. 벽난로가 하나 더 나타난다! 이걸 그냥 '예상을 뒤엎는다'로만 말하는 건 지나친 축약이다. 예상을 뒤엎는 데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이 장면에서는 ① 지나치게 노골적인 관습의 활용이 웃기고, ② 관습을 따르려는 카메라를 방해하는 배우들의 동선이 웃기고, ③ 방해하는 동선을 피해 다시 움직임으로써 자신의 주체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카메라의 움직임이 웃기며, ④ 같은 공간 안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더 움직였을 뿐인데 벽난로가 하나 더 있다는 사실이 웃긴다. 단순한 관습 파괴가 아니다. 관습을 적용하고, 예상이 생겨나고, 예상을 배신하는 사고가 발생하고, 다시 관습을 과다 적용한다. 그 과정에서 사각의 화면틀이 빚어내는 경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영화를 찍는 카메라의 존재도 전면에 나선다. 이게 영화적이지 않다면 무엇이 영화적일까?

두 번째 사례. 주인공 닉 리버스가 감방에 갇힌다. 감방 안을 서성이던 리버스는 오른쪽 벽에 있는 커다란 환기구로 탈출을 시도한다. 그런데 그 환기구 바로 밑에 환기구가 하나 더 있다. 탈출하나 싶었던 리버스는 바로 아래에 있는 환기구로 다시 나온다. 웃기기는 해도, 여기까지는 예상할 수 있다. 이건 오히려 관객에게 규칙을 학습시키는 과정에 가깝다. 어떤 규칙? 환기구로 나가봐야 다른 환기구로 도로 들어온다는 규칙. 그렇게 첫 탈출 시도가 무산된 뒤, 카메라가 뒤로 훌쩍 물러나면서 감방 전체를 다 보여준다. 그제야 감방 왼쪽 벽에도 똑같은 환기구가 하나 더 있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온다. 카메라가 더 물러나자 감방 중앙 천장에도 환기구가 보인다. 천장 환기구와 정확히 마주보는 바닥에도 환기구가 있다. 이제 리버스는 왼쪽 벽에 있는 환기구로 들어간다. 과연 어디로 나올까? 나는 당연히 천장에 있는 환기구에서 뚝 떨어져 바닥에 있는 환기구로 도로 들어가는 슬랩스틱 코미디가 펼쳐질 거라고 생각했다. 혹은 그걸 더 밀어붙여서 천장에서 나와 바닥으로 떨어지는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하거나, 아니면 조금 변주해서 바닥에 있는 환기구에서 솟구쳐 나와 천장에 있는 환기구로 들어가거나, 오른쪽 벽 환기구에서 굴러 나와 바닥에 있는 환기구로 들어가거나. 아무튼 이미 규칙을 학습한 뒤다. 더구나 카메라가 굳이 뒤로 물러나면서 이 방에 필요 이상으로 환기구가 많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눈길은 온통 환기구로 쏠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리버스는 화면에 보이기는 하되 신경 쓰지 않고 있었던 완전히 엉뚱한 장소에서 등장한다. 이 장면은 스스로 규칙(관습)을 만든 다음, 그 규칙의 일부를 변형(나가봐야 도로 들어오는 건 마찬가지다. 그런데 환기구로 들어오지는 않는다.)하는 방식으로 웃음을 끌어낸다. 카메라는 규칙을 가르치고 다음 상황에 대한 예상을 조성하는 데에 직접 관여한다.

류승완의 지적처럼, 이것은 관객과 벌이는 게임이다. 게임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규칙이 필요하다. 설령 규칙이 나중에 왜곡되더라도, 그 왜곡의 효과는 규칙이 있었기에 성립한다. 그리고 〈특급 비밀!〉은 많은 장면에서 영화 연출의 관습과 장치 자체를 규칙으로 활용한다.

『아즈망가 대왕』의 여러 유머는 이런 규칙성에 의존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관객은 4컷 만화의 리듬감을 더 강조했던 것으로 보아 다만 마지막 컷이 펀치 라인으로 작용하며 남기는 웃음의 효과만을 말하고자 했던 듯하다. 넓게 보면 같은 맥락에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지나치게 넓게 본 것이다. 한편 〈소년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는 어떤 규칙성에 의존한다기보다는 과격한 비논리에 의존해서 바로 앞의 전개와 아무런 논리적 연결점도 없는 상황을 시치미 뚝 떼고 던지는 개그를 시도하는 만화다. 그런 아스트랄 개그는 〈특급 비밀!〉의 개그와는 무관하다. 또한 『아즈망가 대왕』이나 〈소년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모두 〈특급 비밀!〉처럼 매우 자의식적인 태도로 자신의 장치를 드러내는 유형의 작품은 아니다.

따라서 나는 그 관객의 발언이 오해나 몰이해에서 나온 틀린 주장이라고 말하겠다. 그러나 나는 그런 발언을 해서는 안 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건 응답에 따라 영양가 있는 논의로 발전할 수 있는 발언이다.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나오는 온갖 다듬어지지 않은 질문에 괴로워 하는 다른 관객들의 성토에 관해서는 잘 알고 있지만, 나는 이 정도까지는 '무슨 저런 질문을 하고 그래'라고 면박줄 것이 아니라 거기서 출발하여 이야기를 이어나가고자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정말로 맥빠지는 질문은 역시 류승완에게 이창동 감독의 연기론에 관한 생각을 물은 질문이었다. 이해는 한다. 그 관객은 〈특급 비밀!〉이 어떤 영화인지 전혀 알아보지 않은 채 왔다고 말했다. 그도 그렇거니와 질문 내용을 통해 보건대 그저 류승완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극장을 찾은 관객이었을 것이다. 그런 경험을 통해 서울아트시네마에 새로운 관객을 끌어들이는 것이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지닌 긍정적인 효과 중 하나인 만큼, 그 자체는 반가운 일이다. 다만 수십 분에 걸쳐 한 영화에 관한 대담을 나눈 감독에게 단지 팬이라는 이유로 해당 영화나 대담 내용과는 무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은, 그 자리의 규칙을 완전히 벗어나는, 말하자면 〈소년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에 가까운 일이 아닌지. 나도 한때는 '이번이 아니면 내가 언제 이 사람에 질문을 해보겠어' 하는 마음에 창피를 무릅쓰고 일단 묻고 싶은 것을 물어야 한다는 뒤틀린 결의에 불타오른 적이 있다. 그래서 심정은 이해한다. 비난하고 싶지도 않다. 그래도 아닌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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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만 해놓고 얼마나 보겠나 했는데,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의 "나루세 미키오 특별전" 상영작 스물여섯 편 중 어느덧 열네 편을 보았다. 한 편 한 편 볼 때마다 기쁨이 더욱 커 간다. 더없는 지복이다. 이전에도 몇 편을 띄엄띄엄 보기는 했지만,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여러 편을 함께 놓고 보니 그제야 나루세의 영화 또한 발 루튼이나 버드 뵈티커나 오즈 야스지로나 마스무라 야스조처럼 마구 많이 보아야 함을 알겠다. 한 편 한 편도 소중하지만 여러 번 보았던 배우들이 비슷한 역할, 다른 역할로 나와 비슷한 갈등, 다른 갈등 속에서 비슷한 결론, 다른 결론에 이끌리면서 영화들 사이에서 나루세 미키오라는 하나의 거대한 영화가 팽창하는 광경을 목격하는 경험이란 한없이 풍요롭다.

이런 황홀경 속에 말해 본들 바람둥이의 불성실한 애정 고백으로밖에 들리지 않을 테지만, 어제 〈산의 소리山の音, 1954〉를 보면서 문득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본 영화 감독은 나루세라고 선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은 이건 은근히 고민스러운 문제였다. 내가 일본 영화를 좋아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좋아하는 감독도 많다. 시미즈 히로시, 오즈 야스지로, 미조구치 켄지, 키노시타 케이스케, 쿠로사와 아키라, 코바야시 마사키, 시노다 마사히로, 오카모토 키하치, 신도 카네토, 이마무라 쇼헤이, 스즈키 세이준, 이치카와 콘, 오시마 나기사… 그러나 그중 가장 좋아하는 일본 영화 감독이 누구인가를 생각할 때면 답이 곤궁했다. 이 사람도 저 사람도 좋아서라기보다는, 이 사람도 저 사람도 무언가 한 군데씩은 나와 맞지 않는 면이나 아쉬운 점이 있는 탓이다. 하워드 혹스처럼 찰칵 맞아 떨어지는, 영화가 훌륭할 뿐만 아니라 사상적으로도 나라는 인간에게 딱 맞물려 들어오는 그런 맛이 없달까. 일본 영화에서 바로 그런 자리를 나루세에게 내어주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나루세는 평생 89편의 영화를 만들었고, 나는 그중 일부를 한두 번씩 보았을 뿐이다. 내가 본 모든 나루세 영화를 하나로 묶을 만한─그런 것이 가능하기나 하다면─관점도 없다. 가령 〈떠돌이 배우旅役者, 1940〉는 무척 재미있는 영화였지만, 〈아내妻, 1953〉와 어떤 공통점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딱히 떠오르는 건 없다. 그럼에도 여러 영화 속에서 공통적으로 전해지는 작자의 태도가 있고, 나는 그 태도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느낀다. 혹스의 영화에서 들었던 찰칵하는 소리가 들린다.

내가 경애하는 나루세는 어떤 사람인가? 그는 동아시아 사회 특유의 인간관계가 개인에게 부과하는 일상적인 괴로움을 이해하는 사람이다. 그는 가족이기 때문에, 부부이기 때문에, 연인이기 때문에, 누구누구의 딸, 아내, 엄마이기에 통념상 당연하다는 듯이 부과되는 '도리'의 몰지각한 폭력성을 직시한다. 그 폭력성은 상대의 비난이나 외도, 무관심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관심과 애정을 통해서도 나타난다. 상대의 의도가 선하며 그 의도를 표현하는 방식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때조차, 그 상대가 '나의 누구누구'이고 나와 같은 공간을 차지한 채 혹은 나의 공간을 침범하면서 자리를 차지하기에 느낄 수밖에 없는 한없는 고통이 있다. 그것은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거기에 존재하기에 새삼 지적하고 논의하고 빼내기도 어려운 작은 가시 같은 고통이다. 이 관계 안에 편입된다는 것 자체가, 이 관계가 개인에게 무언가를 부과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

나루세는 그런 고통을 쥐고 앉아 힘들다 되뇌며 억눌리고 소멸하는 개인의 수난사를 전시하는 데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는 이를 끝까지 밀고 나가 관계가 기어이 끊어질 때까지 냉정하게 바라본다. 그는 비판하거나 풍자하거나 조롱하거나 선동하지 않는다. 다만 너무나도 정밀하고 차가운 눈으로 그 관계를 응시하면서 그러한 고리라면 끊어버리는 편이 좋지 않으냐고 말한다.

더욱이 경탄스러운 점은, 그게 상대에 대한 부정이나 비난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거다. 다른 가족 구성원은 다 거지 같으니까 버려버려야 해. 아버지는 죽어야 해. 이런 성난 젊은이의 태도가 아니다. 오히려 나루세는 이 공동체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질척질척한 관계를 끊고 모두가 각자 개인으로서 홀로 존재할 때, 완전히 남남이 될 때, 그제야 비로소 남남이기에 공존할 수 있는 부분이 생긴다고까지 말한다. 이를테면 〈번개稻妻, 1952〉의 결말. 김성욱 프로그래머는 상영 후 영화를 소개하면서 결말에서 딸과 어머니가 화해한다고 말했다. "화해"라는 표현을 쓸 수는 있지만, 내가 보기에 그 화해는 한국 가족 드라마에서 흔히 쓰이는 그런 화해는 아니다. 가족 간에 갈등이 치열하게 전개되다가 이쪽저쪽 다 눈물 한 바가지씩 흘린 다음(여기까지는 나루세도 똑같이 한다) '그래도 어쨌든 우리는 가족이니까'라고 상대를 보듬고 가족 공동체를 긍정하면서 함께 나아가는, 그런 화해는 아니다. 딸과 어머니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치달아 균열을 목도한다. 그 순간 바깥에서 번개가 친다. 아주 이상한, 정체불명의 상쾌함이 몰려오고, 딸은 웃는다. 그것은 어머니와 나는 완전히 다른 인간이구나, 사고의 전제가 다르고 같은 언어로 소통할 수 없는 남남이구나, 하는 자각의 순간이다. 그런 자각 다음에, 즉 '딸이라면 모름지기', '부모라면 모름지기'라는 최소한의 전제조차 사라진 다음에, 비로소 딸은 남을 보듯 어머니를 편히 대할 수 있게 된다. 함께 대화할 수 있고, 걸을 수 있게 된다. 모든 걸 이해하고 함께 짊어져야 할 책무가 없으니까. 우린 각자 다른 개인으로 함께 존재하니까.

가족 공동체를 중심으로 형성된 동아시아 사회에 넌덜머리를 내곤 하는 개인으로서, 나는 나루세 영화를 보며 숨도 못 쉬게 답답한 공기에 헉헉대는 동시에 비할 데 없는 기쁨과 상쾌함을 느낀다. 질식할 듯한 상황을 단순화 하지 않은 채 세밀히 꿰뚫어 살피고 짚어내는 나루세의 시선이 상쾌하고, 그것을 끊어버리는 편이 나을 거라고 말하는 나루세의 단호함이 상쾌하다. 서로 누구의 무엇으로 존재하지 않아도 돼. 우리가 '더없이 가까운 한가족'으로서 보내는 애정과 연민조차 속박이야. 우리는 본질적으로 남남이고, 서로 그것을 인정할 때 오히려 공존할 수 있는 거야. (나루세의 후기작이자 어쩌면 나루세 영화의 총집편이라고도 할 수 있을 대가족 영화 〈딸, 아내, 엄마娘, 妻, 母, 1960〉에서는 이런 태도가 아예 대사로 나온다. 아직 2016년이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봐야 할 나루세 영화가 많으나, 올해의 영화이자 올해의 대사라고 말하고 싶은 유혹을 느꼈다.)

내가 이 나라의 방송을 장악할 수 있다면, 나는 명절 때마다 나루세의 영화를 방영하겠다. 우리의 행복이 거기에 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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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최근 영화계의 '시네 토크' 유행을 생각해 보면, 아마도 많은 관객이 쿠로사와 키요시 감독의 〈거미의 눈동자蜘蛛の瞳, 1998〉 같은 영화야말로 '평론가'의 '해석' 또는 '분석'이 필요한 영화라고 생각하겠거니 싶다. 전개가 생뚱맞아 뭐가 뭔지 알 수 없고 때로는 웃기기도 한데, 그렇다고 마음 놓고 코미디라고만 여길 수는 없는 진지한(≒느린) 분위기가 있고, 일견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대사도 있고, 거기에 감독도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감독이라고 하니까, 그렇다면 여기에는 눈에 보이는 것과는 다른 어떤 '상징'이 있을 것이며, 그 상징의 심오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면 이 영화를 제대로 '독해'할 수 있을 테고, 그것이야말로 평론가의 역할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청부살인 조직의 두목이 화석 애호가라는 설정에는 어떤 의미가 있죠? 조직의 중간 관리자는 왜 니지마를 인터뷰하면서 뜬금없이 실내에서 우산을 쓰나요? 하얀 천으로 감싼 말뚝이 상징하는 바는 뭐죠?

그렇게 하나씩 의미를 부여하여 일관된 서사를 확정하고 머릿속에 욱여넣은 다음 '아, 나는 인제 〈거미의 눈동자〉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깨달았다.' 라고 자족하는 감상법도 있을 테지만, 아니, 그게 아직도 보편적인 영화 감상이 지향하는 바일 테지만, 나로서는 쿠로사와가 일견 서사가 뚜렷한 장르 영화나 의미 체계가 분명한 극영화를 만드는 듯하면서도 쉽사리 그러한 범주에 붙잡히지 않고 영상 자체의 형상이 지닌 즐거움을 바탕으로 거듭 달아나는 모습 속에서 쉽게 닳지 않는 기쁨을 느낀다. 청부살인 팀의 지휘자 이와사키는 왜 자신의 팀원에게 롤러스케이트 타는 연습을 해두라고 했나? 청부살인 조직 안에서 권태를 느끼며 지금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이와사키 내면의 욕망이 롤러스케이트라는 형태로 나타났다고 '해석'해야 할까? 부하들 또한 결국 자신과 같은 기분을 느끼며 비슷한 처지에 처하리라는 예감에 미리 연습해두라고 했다고? 헛소리다. 알게 뭔가. 그렇게 팔짱 끼고 잘난 척하면서 서사 안으로 포섭해서 설명할 일이 아니다. 쿠로사와의 롤러스케이트에는 다만 이름뿐인 텅 빈 사무실을 끊임없이 오가는,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도 담고 있지 않은 운동이 눈과 귀에 전달하는 자극이 빚어내는 그 자체의 유쾌만이 존재한다. 영화 전체가 그런 식이다. 이름뿐인 무역 회사 사무실에서 이 살인자들이 할 일이 있을 리가 없다. 그래도 한 녀석은 롤러스케이트를 타며 방을 드나들고, 니지마는 존재 이유를 알 수 없는 서류에 착실하게 도장을 찍고, 그 옆으로 다시 이와사키와 다른 팀원이 들어와 아무런 인사도 잡담도 설명도 없이 제각각 자리에 앉아 무언가에 열중하는 장면이 전달하는 벙찌는 운동의 노골적으로 무의미한 즐거움을 어떻게 의미화하여 설명할 수 있을까. 그 장면의 길이가 적절함을 이론으로 해명할 수 있을까. 때로는 〈포인트 블랭크Point Blank, 1967〉를, 때로는 〈순응자Il conformista, 1970〉를, 아마도 〈소나티네ソナチネ, 1993〉를, 그리고 자신의 전작 〈뱀의 길蛇の道, 1998〉까지 인용해 가며 복수심이 하얗게 불타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남자가 청부살인자로 전직하여 겪는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척하고 있지만, 이 영화는 장르 기표로 표면을 장식해놓았을 뿐 실제로는 어떤 기의에도 몰두하지 않은 채 다만 영상를 실시간으로 목격하는 순간에만 누릴 수 있는 움직임과 침묵을 음미한다. 공허는 새로운 것의 시작이라고 강조하는 두목의 뜬금없는 일장연설 역시 화석의 상징 의미라든가 복수 이후 허무해진 니지마를 두고 하는 말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불현듯 의미 체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영화 자체를 두고 하는 말은 아닐지. 이건 영화에서 서사가 애당초 무의미하다거나 필요 없다거나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은 아니다. 오히려 더듬어볼 수 있는 서사가 있어야 거기에 복무하기보다는 탈주하고자 하는 영화=움직이는 영상의 역동성을 실감할 수 있는 법. 〈거미의 눈동자〉는 서사가 낡은 관습을 따라 부서져 나가 막을 내릴 때까지 좌충우돌 내달리며 시선을 분산시키고 의미로부터의 탈주 자체를 즐기기 위해 만든 영화 같다.

(그러고 보면 예전부터 쿠로사와가 장-뤽 고다르를 좋아했다는 말을 들으면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즐길 수도 없는 고다르에게서 그는 무엇을 보는 걸까 궁금했는데, 오랜만에 〈거미의 눈동자〉를 다시 보면서 문득 나도 이제는 고다르의 초기작들을 즐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이보다 앞서 만든 〈뱀의 길〉은 한결 서사가 뚜렷하다. 영문 리뷰를 몇 찾아보니─영어권에서도 별반 유명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지만, 2013년에 영국에서 NTSC 방식의 합본 DVD가 출시되면서 타이틀 리뷰가 몇 개 나왔다─〈거미의 눈동자〉에 대해서는 대충 말을 흐리며 얼버무리고, 〈뱀의 길〉에 대해서는 손에 땀을 쥐는 뒤틀린 스릴러라는 식으로 소개하는 경향이 보인다. 여기나 저기나 다들 보는 눈은 비슷하구나 싶다.

확실히 〈뱀의 길〉은 인물과 서사만을 따라가도 재미있다. 범죄 조직에게 딸을 잃은 미야시타는 동료 니지마와 함께 복수의 길에 나선다. 하지만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는 생각만큼 명확하지 않고(이것도 〈포인트 블랭크〉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단숨에 끝날 것만 같았던 일이 점점 커지는 가운데 니지마와 미야시타 각자가 간직한 비밀이 서서히 드러난다. 분위기가 음침한 것치고는 유머도 풍성한데, 그렇다고 〈거미의 눈동자〉처럼 서사 세계(디제시스)를 허물어뜨리는 유머는 아니다. 결말까지 무슨 일이 왜 어떻게 벌어졌는지 설명하기도 어렵지 않다. 또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해도(결국 미야시타의 딸을 죽인 것은 누구인가?) 서사를 흔들리게 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는 해도 〈뱀의 길〉이 훌륭한 범죄 영화라고만 말하는 건 비겁하다. 여기에도 장르 관습이나 서사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니지마는 미야시타를 도와 범죄 조직의 일원을 납치해서 고문하는 와중에도 자신의 일상을 유지한다. 그는 학원 선생이다. 아니, 학원 선생이라는 말도 편의상의 표현에 불과하다. 영화는 그가 정확히 어디서 뭘 하는 사람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니지마는 납치한 자를 가둬놓은 창고에서 나와 자전거를 타고 어디론가 향한다. 그가 도착한 곳은 '학생'들이 기다리는 '교실'이다. 널찍한 방에 책상과 의자와 칠판이 갖춰져 있다. 인사도 없고, 수업 내용에 대한 설명도 없다. 니지마는 다짜고짜 칠판에 어떤 수식을 적은 다음, 학생들에게 수식을 전개해보라고 말한다. 이 수식이 어떤 수식인지는 알 수 없다. 마침 해당 분야에 대한 사전 지식을 갖춘 관객이 있다면 모를까, 적어도 다수 관객이 자연스럽게 눈치 챌 수 있는 수식은 아니다. 어쩌면 존재하지 않는 분야, 존재하지 않는 수식을 멋대로 그럴 듯하게 칠판에 끼적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든다. 니지마의 수업 장면은 여러 차례 등장하지만, 그가 무엇을 가르치는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으며, 범죄와 관련된 중심 플롯과도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해할 수 없는 수식을 제외하면 단서는 하나뿐이다. 니지마는 한 학생의 풀이를 보고 말한다. "오카바야시, 그러면 안 돼! 그렇게 하면 공간이 뒤집어지고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고. 세계가 붕괴하고 말아. 너는 신이 아니잖아. 잘 봐, 이렇게 하는 거야." 니지마는 세계의 운행을 연구하는 자인가?

그런 추론과 의미 부여도 재미는 있지만, 사실 내가 정말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건 이 수업 장면을 어쩌면 지나칠 정도로 진지하게 묘사하는 쿠로사와의 태도다. 수강생 중에는 아마도 영재인 듯한 소녀가 있다. 소녀는 니지마가 내는 문제를 매번 빠르고 완벽하게 풀어낸다. 심지어 니지마가 틀린 부분을 고쳐주기도 한다. 한 장면에서, 소녀와 니지마는 함께 칠판 앞에 서서 주거니 받거니 즉흥 연주를 벌이는 재즈의 대가들마냥 수식을 전개한다. 이때 칠판은 작고, 소녀와 니지마는 자신들의 풀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려 노력하지 않는다. 두 사람의 몸이 수식을 가린다는 얘기다. 더구나 칠판이 높지도 않고 책상이 높이차를 두고 배치된 것도 아니라서, 뒤쪽에 앉은 학생의 시야는 좁을 수밖에 없다. 서서히 뒤쪽에 앉아 있던 학생들이 하나둘 노트를 들고 칠판 앞에 와서 수식을 베껴 적기 시작한다. 모든 배우/캐릭터가 진지하지만, 사실 이건 정말 웃긴 광경이다. 대체 이 장면의 '의미'는 무엇인가? 소녀와 니지마의 학업성취도가 다른 학생들보다 한참 앞서있음은 이미 이전 장면들을 통해 충분히 제시됐다. 〈뱀의 길〉은 천재의 학문적 성장에 관한 할리우드 영화가 아니며, 소녀와 니지마의 학문이 일취월장하여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고 주변 사람들이 그들을 우러러보게 됐다는 식의 전개에도 아무런 관심이 없다. 이미 말했듯 관객은 수식을 읽어낼 수 없으며, 그 수식이 어떤 분야에 해당하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정말이지 '흰색은 글씨요, 녹색은 칠판'일 뿐이다. 그런데도 배우들이 노트를 들고 앞으로 나아와 뭔지 알 수 없는 글씨를 옮겨적는 모습을 진지하게 담아낼 때, 촬영 현장의 모습을 상상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정리해보자. 수식이 이 영화의 서사 안에서 갖는 의미는 없다. 심지어 진짜 수식인지도 알기 어렵다. 그나마 실재하는 학문 분야라면 배우들은 자신이 무얼 하는지 최소한의 인식이라도 있었을 테지만, 만약 그것이 아무렇게나 그어댄 표시에 불과하다면, 결국 현장의 모두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무언가를 하는 시늉을 하고 있을 뿐이다. 여기에서 뚜렷한 것은 오직 교실과 책상과 의자와 시선과 몸이 만들어내는 물리적 제약과, 그 제약을 극복하기 위한 움직임뿐이다. 쿠로사와는 그걸 기록하고 있다. 마치 〈거미의 눈동자〉 속 사무실 장면에서 아무 의미도 없는 행동을 매우 열심히 해내는 네 배우의 운동을 기록하듯이. 의미는 과소하고 존재는 과다하다. 쿠로사와는 그렇게 자꾸만 서사 안의 의미와 게임을 벌이며 관객의 지각을 서사 세계 바깥으로 향하게 한다.

내가 좋아하는 대목 하나 더. 미야시타와 니지마는 납치 목표를 창고로 끌고온다. 끌려온 자는 허세를 부리며 미야시타를 도발한다. 니지마가 다짜고짜 권총을 쏘아 상대를 질리게 한 다음 말한다. "여기는 방음 처리가 돼 있어. 힘껏 소리 질러봐야 아무도 못 들어." 이 대사는 듣는 순간 웃음이 새어나온다. 보통 영화에서는 방음 처리가 된 공간을 묘사할 때 그것을 시각적으로도 강조한다. 공간 자체가 너무 커서도 안 되고, 창문도 없고, 벽도 두껍고, 벽 안쪽에 방음재도 있고, 출입문도 두껍고, 문틀을 비롯해 소리가 새어나갈 수도 있겠다 싶은 부분들은 특히 든든히 틀어막는다. 〈뱀의 길〉은 이중 어떤 것도 하지 않는다. 일단 창고가 너무 커서 소리가 잘 울린다. 불투명창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창고 사방에 커다란 창문도 나 있다. 벽이 특별히 두꺼워 보이지는 않는다. 방음재는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다. 공간 구조를 볼까. 포로를 묶어두는 커다란 창고가 있고, 거기서 바로 문으로 이어지는 관리실 같은 공간이 있고, 다시 관리실에서 밖으로 나가는 출입문이 있다. 창고-관리실을 잇는 문과 관리실-바깥을 잇는 문 모두 평범 그 자체다. 심지어 창고-관리실을 잇는 문은 거의 열어두어 언제든지 포로가 소리치는 것을 들을 수 있게 해두었다. 관리실에서 바깥으로 나갈 때도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창고와 이어지는 문을 닫아두는 꼼꼼함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러므로 "여기는 방음 처리가 돼 있어. 힘껏 소리 질러봐야 아무도 못 들어."라는 대사를 듣는 순간, 적당히 촬영에 쓰기 좋은 창고를 구해다 놓고 굳이 방음 처리를 시각적으로 구현할 생각도 하지 않은 채로 여기는 방음이라고 우기고 있는 쿠로사와의 B무비스러운 뻔뻔함을 의식하게 된다.

그런데 이건 딱 봐도 말이 안 되는 상황을 대사로 대충 우기고 넘어간다는 비웃음은 아니다. 오히려 이곳이 방음 공간이라고 우기더라도 그 주장을 아슬아슬하게 받아들일 만하다는 사실, 연출자의 그 아슬아슬한 대담함이 '그것참 걸작인걸!' 하는 긍정적인 웃음을 끌어낸다. 쿠로사와가 창고를 방음 공간처럼 보이도록 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가 방음 공간일 리 없다는 허점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허허벌판에서 "여기는 방음 처리가 돼 있어." 라고 말하면 그건 바보스럽다고 비웃을 만하다. 하지만 낡아 보일지언정 외부와 직접 연결된 모습은 보이지 않는 창고 안에서 "여기는 방음 처리가 돼 있어."라고 주장한다면 그럴 리가 없다고 반박하기 쉽지 않다.

쿠로사와의 뻔뻔한 방음 처리에 관해 생각하다보면 매우 당연한 사실에 이르게 된다. 영화에서 방음 공간 묘사는 시각적인 것과는 거의 상관없으며, 실은 매우 구현하기 쉽다는 사실이다. 방음 공간은 어떻게 생겨나는가? 시각적으로는 방음 공간에 눈에 띄는 허점만 만들지 않으면 된다. 앞서 거론한 '여기는 방음 처리 됐음'이라는 기표를 일일이 챙기지 않아도 된다. 그런 다음 그 안에서는 무슨 소리를 내더라도 상관없다. 카메라가 바깥으로 나가지 않는 한, 관객은 방음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 또 바깥으로 나가더라도 어려울 것 하나 없다. 방음 공간 안에서 들리던 소리를 들려주지 않으면 그만이다. 섬세하게 연출하려면 바깥의 소리는 남겨둘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그냥 영상 위에 얹은 음향을 빼기만 하면 된다. (자크 타티는 〈플레이타임Playtime, 1968〉에서 이걸 개그로 활용한다.) 즉, 영화에서 방음은 공간을 그럴 듯하게 보여주는 것보다는 서사 세계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음향 조작에 달린 문제다.

생각을 더 연장해 보면, 역설적으로 그러므로 영화에서 '진짜' 방음 공간을 있는 그대로 제시하기란 불가능함을 알 수 있다. 영화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를 일정 시간 동안 카메라 앞의 대상을 촬영하여 필름 위에 남긴 기록이라고 생각할 때, 화면에 보이는 모든 피사체는 한때 진짜 거기에 있었던 대상의 형상임을 확신할 수 있다. 그러나 음향은 언제나 출처가 불분명하며 덧입혀진 것이다. 심지어 현장에서 동시 녹음을 한 음향조차 영상 위에 덧입혀진다. 그것이 동시 녹음이라는 사실은 만든 사람의 주장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을 뿐,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어떤 방법으로도 확인할 수 없다. 따라서 진짜 방음 공간이 있고 그 방음 공간의 안팎을 동시 녹음을 이용해 기록한다고 하더라도, 영화를 보는 관객은 그것이 진짜 방음 공간이라고 말할 수 없다. 영화에서 진짜 방음 공간의 재현은 불가능하다. 방음 공간은 언제나 영상과 음향의 접합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나는 물론 지금 하스미 시게히코의 「허구와 '재현 불가능한 것': 모든 영화는 무성영화의 변주에 불과하다」를 떠올리고 있다.

마침 〈뱀의 길〉에는 방음 공간이 제기하는 영상과 음향의 분리에 관한 문제와, 하스미가 논문에서 제기한 비극의 불완전한 재현이라는 문제를 한데 모아놓은 듯한 설정도 있다. 미야시타는 자신의 딸을 죽인(죽인 것으로 추정되는) 자를 납치해다 묶어놓고 TV를 끌고 와서 딸이 놀이터에서 뛰노는 모습이 담긴 홈비디오를 틀어준다. 이 홈비디오 영상에는 음향이 없다. 그 영상을 틀어놓은 상태로, 미야시타는 딸의 인적사항과 사망 당시 사체의 상태를 기록한 보고서를 읽어준다. 말하자면 미야시타는 서로 의미하는 바가 다른 영상과 음향을 즉석에서 합성하여 몽타주 효과를 노리는 감독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아마도 포로에게 네놈이 죽인 내 딸은 이런 아이였다, 이렇게 (보다시피) 아름답고 천진난만한 아이를 이렇게 (듣다시피) 끔찍하게 살해한 너의 죄를 느껴봐라, 라는 의도일 것이다. 이 의도는 전혀 먹히지 않는다. 나중에 포로는 이 영상과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을 너무 많이 보고 들은 탓에 지겹다는 듯한 표정까지 짓는다.

여기서부터 스포일러. 미야시타의 딸을 죽인(죽였다고 추정되는) 자들은 몸값을 노린 협박범이나 아동성애자 혹은 살인범이 아니라 스너프 필름 전문 제작업자들이었다. 미야시타는 원래 그 스너프 필름을 판매하는 판매사원이었다. 그리고 니지마 또한 같은 업자들에게 딸을 잃었다. 미야시타의 복수라고 생각했던 것은 사실은 니지마의 복수였다. 미야시타를 제외한 모든 제작업자들이 죽자, 니지마는 이번에는 미야시타를 같은 창고에 감금한다. 미야시타는 자신은 비디오를 팔기만 했을뿐, 내용물은 뭔지도 몰랐다고 주장한다. 그러자 니지마는 미야시타가 했던 대로 TV를 끌고 온다. 자기 딸의 생전 모습을 보여주어 죄책감을 유발하게 하려는 걸까? 아니다. 니지마는 그런 게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니지마가 미야시타에게 보여주는 것은 미야시타의 딸이 죽어가는 모습을 담은 스너프 필름이다. 이 스너프 필름에는 음향이 딸려나온다. 살해당한 딸에 관한 서사를 만들어서 들려주던 미야시타는 처음으로, 딸의 살해 광경을 눈과 귀로 직접 마주한다.

어차피 그것도 영화 안의 소리이니 분리된 영상과 음향을 붙여 만든 거짓 세계의 형상 아닌가. 그렇지만 여기서 쿠로사와는 음향을 묘한 방식으로 사용한다. 스너프 필름이 시작된다. 누군가가 들고 있는 카메라가 움직이고, 발소리가 들린다. 그러므로 아마도 이것은 비디오 촬영자가 녹음한 현장의 음향일 것이다. 그런데 이 폐공장의 공간음을 담는 것 같던 이 음향이 점점 공명하고 증폭하면서 서사 세계 바깥으로 번져나온다. 그러면서 영화는 스너프 필름의 내용을 보여주는 대신, 그걸 보는(카메라를 보는) 미야시타의 얼굴을 보여준다. 미야시타의 반응은 매우 신기하다. 그는 딸이 살해당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했다. 그런데 여기서 그는 눈을 부릅뜬 채로 귀만 막고 있다. 소리를 막아야 이 영상이 가짜가 된다는 듯이. 하지만 소리는 이미 서사 세계 바깥의 존재가 되었으므로, 서사 세계 안의 캐릭터인 그는 막을 수 없다. 결국 그는 귀를 막고 있던 양손을 내린다.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들릴 리 없는 소리를 듣는 것처럼. 서사 세계 바깥을 대면하게 된 것처럼.
Posted by 거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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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맨살』 출간을 기념하며, 또 최근 읽은 『다하우에서 온 편지』 덕분에 떠오른 기억을 되새기며, 예전에 번역했던 하스미 시게히코의 「Fiction and the 'Unrepresentable': All Movies are but Variants on the Silent Film」를 다듬어 옮긴다.

흔히 무성영화 이래로 영화는 달라진 게 없다는 표현은 영화에서 음향 사용의 후진성을 질타하거나 무성영화의 우월성을 찬양할 때, 혹은 발성영화에서 지나치게 대사에 의존하는 경향을 경계하며 시각적 연출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쓰이는 수사법이다. 그러나 여기서 하스미는 녹화 기술과 녹음 기술의 발전사를 더듬으며 영화에서 영상과 소리가 본질적으로 분리되어 존재했음을 되새긴다. 그는 나아가 그러한 20세기의 경향이 21세기에 이르러서도 이어지고 있고, 인류사의 비극을 두고 벌어진 '재현 불가능한 것'에 관한 논쟁도 그러한 과거의 재현 양식에 얽매여 있음을 지적한다.

원래 《Theory, Culture and Society》 26권 3호 (2009년 3월)에 실렸던 글이며, 아래 번역은 이후 웹진 《Lola》에 재수록된 영문 원고를 바탕으로 했다. 원문은 《Lola》에서 읽을 수 있다.


허구와 '재현 불가능한 것'
- 모든 영화는 무성영화의 변주에 불과하다 -




50년 넘게 영화 평론가 생활을 해오면서, 영화 매체의 기본 존재론에 관한 가설 하나가 내 마음 속에 서서히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전에도 다른 글에서 이 가설에 관해 어느 정도 암시한 적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 완전한 논의를 펴본 적은 없다. 이제는 해볼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간단히 말해서, 나의 가설이란 영화라는 매체가 아직 소리를 본질적인 구성 요소로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오락을 위해 제작한 영화든, 예술적 목적을 위해 제작한 영화든, 백 년 넘게 이어져 온 이 매체의 역사 안에서 어떤 형식으로 소비되었든 간에 상관없이 모든 영화에 적용된다. 이 가설을 다른 식으로 표현하자면 소위 발성영화라는 것이 사실은 무성영화의 변주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로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의 전이를 기술적 진보라는 관점에서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적어도 20세기가 끝날 때까지는, 카메라를 소리를 녹음하는 장치로 만들고자 하는 시도는 없었다. 카메라는 오로지 움직이는 영상을 재생산하는 장치로만 존재해 왔다. 그러는 동안 별개의 녹음 장치가 소리를 채집했다. 아래에 더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발성영화의 발전은 따로 기록된 소리와 영상을 인위적으로 동기화하는 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런 점에서 영화란 여전히 매우 불안정한 표현 매체로 남아있다.

영화에서 소리와 영상의 동기화가 "인공적"이라고 말하는 데에는 적어도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이 동기화 과정은 카메라 앞에서 딱따기를 친다는 매우 '비현대적인' 장치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으며, 따라서 어떻게 보더라도 '자연스러운' 것으로 간주할 수는 없다. 둘째, 그와 같은 인공적인 동기화 작업이 없더라도, 일련의 무성 영상만으로 설득력 있는 영화를 만드는 것은 완벽하게 가능한 일이다. 감상자들은 사건이 벌어진 후에 소리를 추가한 영화 장면을 범상히 받아들인다. 예를 들어 히치콕 영화의 실내 장면에서 자동차 경적 소리가 들릴 때, 그 소리가 바깥 거리를 지나가는 실제 자동차에서 난 소리라고 진지하게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영화의 소리 세계는 인공적 효과를 강조하면서 디지털 기술의 도래 훨씬 이전에 이미 일종의 '가상현실'을 만들어내었다.

카메라와 녹음기는 영상과 소리의 동기화 방법에 관한 고려 없이 완전히 별개의 기술로 발전했다. 실제로 동기화 기술은 1950년대에 나그라 테이프 레코더의 발전 후에야 비로소 순조롭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폴란드어로 "녹음할 것이다"라는 뜻을 지닌 나그라는 어느 폴란드 이민자가 설립한 스위스 회사에서 제작했다. 그런 기술을 처음 만든 곳이 할리우드가 아니라는 사실은 매우 시사적이다.

영화 제작 과정에서 현장 녹음이 일반화 된 것은 20세기 중반을 한참 지나서였다. 대표적인 예가 장-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À bout de souffle, 1960〉다. 이 영화의 촬영 현장에는 음향 엔지니어가 없었다. 현재 이 영화의 상영에 따라붙는 소리는 스튜디오에서 더빙한 것이다. 고다르는 촬영이 진행 중일 때에도 배우들에게 무성영화 시절과 다를 바 없는 태도로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요시다 기주의 영화 〈쓸모없는 녀석ろくでなし, 1960〉의 사운드트랙도 마찬가지로 스튜디오에서 더빙한 것이며, 요시다는 이 방식을 1970년대까지 고수했다. 다른 놀라운 사례로는 일본 남부의 한 도시에서 벌어진 수은 중독 현상이 인체에 끼친 파괴적인 영향을 다룬 츠치모토 노리아키의 생생한 다큐멘터리 영화 〈미나미타: 환자들과 그들의 세계水俣ー患者さんとその世界, 1971〉가 있다. 이 영화는 16mm 카메라로 촬영했기 때문에 소리를 함께 녹음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치소 공장 인근에 사는 사람들의 육체적 움직임과 얼굴 표정을 통해 수은 중독의 끔찍한 영향을 묘사함으로써 오늘날 악명 높은 산업공해 사례로 남게 된 이 사건에 대중의 관심을 끌어모으는 데에 성공했다. 소리는 촬영이 끝난 다음 스튜디오에서 덧입혀졌지만, 관객은 전혀 부조화를 느끼지 않았다. 1960년대와 70년대에 프랑스와 일본 양쪽에서 촬영 방식을 변화시킨 누벨바그가 사실은 무성영화 시대 이래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 없는 기술을 바탕으로 일어났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몇몇 영화 문화권, 특히 이탈리아에서는, 소리와 영상을 동시에 기록하는 과정이 보편화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런 경우 영화 촬영이란 무엇보다도 시각적 제재를 포착하는 작업이었으며, 소리는 순전히 후반작업의 영역에 속했다. 로베르토 로셀리니를 포함한 거의 모든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걸작들은 사후 동기화 과정을 통해 소리를 덧입혔다. 인도 뮤지컬 영화에서는 반대의 상황을 볼 수 있는데, 배우들은 전문 대리 가수의 노래를 미리 녹음한 사운드트랙에 맞추어 마임을 선보이며, 따라서 배우의 실제 목소리를 녹음할 필요는 없어진다. 구르 두트의 〈갈증Pyaasa, 1957〉 같은 위대한 걸작들도 이런 방식으로 촬영했으며, 실은 거의 모든 할리우드 뮤지컬도 마찬가지다. 이런 사실은 영화가 여전히 무성영화 극초반기의 현현 방식에서 어떠한 결정적인 단절도 이루어내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논의를 더 밀고 나가기 전에, 모든 영화는 무성영화의 변주에 불과하다는 나의 가설이 소리 도래 이전의 목가적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향수 어린 소망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두고 싶다. 하지만 기록을 위해 말해두자면 내가 개인적으로 무성영화를 좋아한다는 점은 인정하겠다. 나는 대다수 작품을 발성영화 도래 이전에 만들었던 데이빗 워크 그리피스, 루이 푀이야드, 에리히 폰 스트하임과 F. W. 무르나우의 영화를 더없이 좋아한다. 또한 나는 얼굴 표정과 신체 움직임의 대가였던 버스터 키튼, 해리 캐리, 자넷 게이너와 같은 배우들이 등장하는 영화를─되도록이면 스크린에 쏘아서, 많은 경우 피아노 반주의 방해도 없이─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럼에도 나의 가설은 이런 개인적 선호와는 무관하며 전적으로 역사적 조건의 분석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 가설은 영화사 속의 사실들뿐만 아니라 19세기 이래 사회에 보편적으로 퍼졌던 지식에도 근거를 두고 있다. 이 가설을 확인하기 위해 영화사를 세부까지 알아야 할 필요는 없지만, 영화가 어떤 조건 하에서 만들어지고 발전했는가를 어느 정도 알 필요는 있다. 그래서 이 점을 간략하게 서술하기로 하겠다.

다들 알다시피 영화는 19세기에 이미 존재했던 다양한 기술의 결합을 통해 1895년에 태어났다. 세부 사항에 관한 견해가 갈리기는 하지만, 이 글의 목적을 위해서는 뤼미에르 형제의 시네마토그래프 발명에서 출발하기로 하겠다. 1895년 파리 그랑 카페에서 처음 상영된 〈리옹에 있는 뤼미에르 공장의 출구La Sortie de l'Usine Lumière à Lyon, 1895〉 외 아홉 편의 영화들을 포함하여 초창기에 만들어진 영화들은 물론 소리가 없었다. 영화는 오랫동안 본질적으로 무성 매체였으며, 뤼미에르 형제 외의 다른 사람들이 발전시키고 상업화했을 때도 그러했다. 영화 촬영의 바탕이 되는 기술은 19세기 중반 이래 발전하여 대중성을 획득한 사진술이었다. 시네마토그래프가 이룬 주요한 혁신은 이전에는 순간적으로만 포착할 수 있었던 제재의 움직임을 기계적으로 재현할 수 있게 되면서 사진술에 시간이라는 차원을 더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로 나온 영화라는 매체는 실제 장면을 자르고 붙이고 재배치하여 허구의 내러티브를 시각적으로 창조할 수단을 제공했다. 고대 그리스 이래 서사시와 희곡을 통해 발전해온 서구 전통의 미학 규범을 참조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 어떤 사람들은 영화를 '재현의 사생아'로 간주했다.

1920년대 중반은 영화의 전성기라고 볼 수 있다. 당대를 주도한 많은 감독들은 세밀한 관찰을 통해 일상생활에 자리한 보이지 않는 긴장을 드러내는 영화를 만들었다.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의 아방가르드 영화뿐만 아니라 아브람 룸과 보리스 바넷을 포함한 스탈린 이전 시대 소비에트 영화의 대표주자들이 만든 영화까지도 포함해서 하는 말이다. 이 시대의 다른 특징으로는 서스펜스에 관한 풍부한 탐구를 들 수 있는데,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대표적인 예로 프리츠 랑의 1928년작 〈스파이Spione〉가 있다(그의 유명한 1927년작 〈메트로폴리스Metropolis〉보다도 더 그러하다). 존 포드의 서부극, 라울 월쉬의 역사 드라마, 에른스트 루비치의 에로틱 코미디, 버스터 키튼의 코미디, 이토 다이스케의 검술 영화, 프랭크 보재기의 멜로드라마 외에도 여기서 다 언급할 수 없는 그에 필적하는 수많은 이들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이 시기에 활동한 영화 창작자들은 자신이 선택한 소재를 다루면서 매우 수준 높은 창조력을 성취했다. 영화가 문학에서는 불가능한 표현 형식을 제공하는 새로운 예술 형식으로 떠오른 것이 바로 이 시기였다.



오늘날 우리는 영화란 당연히 소리를 포함한다고 여기게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모든 영화가 무성영화의 변주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고수한다. 사실 나는 영화에 관한 담론에서 '시청각'이라는 개념을 추방하고 싶다. 영화에 관한 한, '시청각'이라는 개념은 실제에 기초하지 않은 순전한 허구다. 이러한 점에서 영화는 텔레비전과 다르다. 텔레비전은 무성의 시대를 거친 적이 없으며 시청각적 허구에 기원을 두고 있는 것이다. 이런 연유로 매체로서 텔레비전의 상황은 극도로 위태롭다.

이미 거론한 바처럼, 카메라와 음향 녹음기는 각자의 영역에서 신호를 기록하는 장치로서 따로 발전해왔다. 둘은 자연스러운 동기화 상태를 결코 이루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상호 배타적인 관계로 존속해왔다고까지 할 수 있다. 영화의 역사는 이 상호 배타성의 역사다. 영상과 소리의 끝나지 않는 갈등이 기술적인 차원에서 구현된 것이 바로 20세기다. 인류는 아직 이 갈등을 궁극적으로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미지와 소리 간의 이 기술적 갈등은 다양한 층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축음기, 영화, 타자기』에서 프리드리히 키틀러는 에디슨이 최초의 대량 생산 가능한 음향 녹음/재생 장치를 완성한 즉시 사진사를 불러들였던 일화를 들려준다. 이 유명한 일화는 축음기가 발명된 순간이 시각적으로만 기록될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시각적 재생산 기술과 청각적 재생산 기술 사이의 불균형은 20세기 내내 지속되었다.

소리와 영상 사이의 갈등에 관한 더 깊은 통찰을 위해 말라르메의 경우를 살펴보자.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사진사 펠릭스 나다르가 찍은 초상 사진들 덕분에 이 프랑스 시인의 뚜렷한 시각적 형상을 볼 수 있다. 반면 그의 목소리가 어떤 질감을 지녔는지 알려줄 만한 청각적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말라르메의 말년에는 영화와 음향 녹음기가 모두 존재했건만, 그의 목소리를 녹음할 기회를 영영 잃어버린 것이다. 우리는 결코 그가 「주사위 던지기」를 낭송하는 소리를 실제로 들을 수 없으리라.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고는 그의 목소리가 "낮고 단조로워 애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으며 거의 혼잣말을 하는 듯했다"는, 폴 발레리가 남긴 2차 사료뿐이다.

이는 영상 재생산 기술이 음향 녹음 기술에 비해 훨씬 일찍 '민주화'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막심 뒤 캉이나 에밀 졸라 같은 작가들은 사진이 발명된 후 고작 10년만에 사진술을 접할 수 있었다. 이는 활동사진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영화가 발명되고 고작 20년 만에 사샤 기트리처럼 젊고 경험 없는 이도 아나톨 프랑스, 사라 베른하르트, 오귀스트 로댕과 같은 유명 인사들이 출연하는 아마추어 영화(〈우리나라 사람들Ceux de chez nous, 1915〉)를 촬영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 무렵, 할리우드는 당시 미국 영화계의 중심부였던 동부 연안 영화계의 식민지에 불과한 존재였다. 아마추어 영화제작의 긴 역사는 적어도 이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반면 음향 녹음 기술은 훨씬 오랫동안 전문 기술자들 사이에서만 배타적으로 존속했다. 음향 엔지니어들이 아마추어들이 침범할 수 없도록 음향 재현 기술에 관한 독점권을 주의 깊게 지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독점은 1960년대 테이프 레코더의 보급 전까지 무탈하게 지속되었다. 이렇듯 음향 녹음의 민주화가 실현되기까지는 지나치게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이유는 기술적이라기보다는 이념적이었다. 앞서 언급한 말라르메의 사례는 목소리가 재현불가능한 일시성을 유지했음을 보여준다. 목소리를 재현한다는 것은 지극히 예민하고 신중하게 접근하지 않고서는 위반할 수 없는 금기처럼 보였다고 말하더라도 지나치지 않다. 이 '목소리에 대한 금지'는 무성영화 시대의 유산이었다. 19세기 말에서 1920년대 중반에 이르는 30년은 인류 역사에 길이 전해지는 영향을 남겼으며, 이를 그저 이후의 단계로 가는 전환기로 격하해서는 안 된다.

목소리를 재현하는 것에 관한 금기는 바로 인간 지식의 구조에서 여전히 목소리가 지니는 우위를 반영한 것이었다. 그 자체로 이미 재현인 영상과는 달리, 목소리는 육체 자체와 동일시되었다. 따라서 목소리를 재현한다는 것은 육체성을 상실함을 암시했다. 그런 탈육체화의 위험을 선점하기 위해서인 양, 목소리는 무형의 왕국에 계속 숨어있었다. 다른 무엇보다도 이것이야말로 아마추어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음향 재현 기술에 접근할 수 없었던 이유다.

나는 말라르메가 자신의 시를 낭송하는 목소리가 왜 한 번도 녹음되지 못했는가를 확신을 갖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음향 녹음의 민주화를 가로막는 어떤 힘의 존재가 있었다는 점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자크 데리다는 "존재의 형이상학"에 관한 초창기 비평에서 목소리는 "그 자체를 가리키는 존재"로만 존속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음향 녹음의 민주화가 그저 축음기의 대중화를 통해 이루어졌다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 포드식 생산 공정 하에서 일한 공장 노동자들이 가정에서 레코드를 들을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녹음 기술이 배타적인 전문가 집단에게 맡겨진 이후의 일이었다. 값싸게 재생산된 레코드를 통해 음악이 대중화되면서, 아마추어가 음향 녹음 기술에 접근할 기회는 더욱 줄어들었다.

그러므로 "존재의 형이상학" 하에 음성 언어에 부여된 중심성이 초기 녹음 업계와 한통속이 되어 목소리를 엄격하게 금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진이나 영화를 촬영할 기회는 아마추어와 전문가 모두에게 거의 동등했던 반면, 음향 재현의 영역에서는 그런 동등함이 적용되지 않았다. 그렇게 무성영화의 시대가 남긴 흔적은 20세기 내내 지속되었다.



전문 음향 기술자들의 조직화된 음향 재현 관리 체계가 아니었더라면 발성영화는 무성영화를 무색하게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의 세계에서 그런 전문가들이 차지한 지위는 그들이 녹음 업계에서 누리던 지위와는 달랐다. 영화 제작의 과정에서는 카메라맨의 필요성이 음향 엔지니어의 필요성보다 앞섰다. 이는 발성영화가 그저 무성영화 시절에 시작된 목소리의 금지를 지속했을 뿐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음향 녹음 전문가들보다 영상 재현 전문가들이 주도권을 장악했음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드러난다. 먼저 카메라 소음의 문제를 생각해 보자. 초기 영화 음향 엔지니어들은 카메라의 모터가 내는 큰 소음과 끝없이 싸움을 벌여야 했다. 이 문제에 맞서기 위해 카메라에 부착한 음향 가리개는 "블림프"라고 불렸는데, 이는 1930년대에 같은 이름이 붙었던 비행선이 유명해진 후의 일이다. 블림프는 카메라 소음을 제거하기는 했으나 너무 크고 무거워서 카메라의 움직임을 제한했다. 결국 오늘날까지도 영화에서 카메라 소음은 상대적으로 줄일 수는 있을지언정 완전히 제거할 수 없는 존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오즈 야스지로의 초창기 발성영화 촬영 현장을 담은 사진에는 우스꽝스럽게도 두꺼운 면방석에 감싸인 카메라가 보인다. 이 사진은 본질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두 기술을 동시에 이용하는 데에서 생겨난 어려움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다른 한편 말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에 음향 녹음 기술이 끼어드는 경우에도 전자가 우선권을 차지했다. 카메라맨은 항상 가능한 한 가장 좋은 위치에서 촬영할 수 있었던 반면, 음향 엔지니어는 이상적이지 못한 위치에 마이크로폰을 배치해야 하기 일쑤였다. 마이크로폰이 매달린 붐은 영화에서 절대 보여서는 안 되었다. 이것이 음향 엔지니어가 마이크로폰을 놓을 수 있는 위치를 엄격히 제한했으며, 그로 인해 음향의 질도 경감되곤 했다. 음향 엔지니어는 그렇게 카메라맨에 종속된 존재로 다루어졌으며, 엄격히 제한된 환경 하에 작업해야 했다. 또한 마이크로폰의 그림자가 살짝 피사체나 배경에 걸리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으므로, 심지어 조명 담당자도 음향 엔지니어보다 더 우선시 되었다 하겠다. 미조구치 겐지 감독의 음향 엔지니어였던 하시모토 후미오의 회고록(Hashimoto and Ueno, 1996)만 읽어보더라도 영화 음향 녹음의 어려움을 실감할 수 있다.

음향 엔지니어가 감내해야 했던 또 다른 모욕으로는, 그의 작업이 얼마나 훌륭하든 간에 수출 시장을 노리기 위해서는 완전히 무시되어야 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많은 나라에서 외국 영화는 현지 언어로 더빙되었으며, 따라서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은 버려야 했다. 실제로 음향에 관한 이런 제한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카메라는 무성영화 시절 이래 거의 변함없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 이는 대량 생산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 프레드릭 와이즈먼이나 에릭 로메르 같은 감독들의 고품질 소규모 제작 영화에 이르기까지 한결같다. 이러한 현실이 모든 영화는 무성영화의 변주에 불과하다는 나의 가설을 뒷받침해주고 있는 것이다.

영상과 음향 기록을 진정으로 통합하고자 했던 시도가 전혀 없었다고는 주장할 수 없다. 그러나 촬영과 녹음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카메라는 아마추어 시장을 대상으로 제작된 8mm 코닥 카메라가 유일하다. 이 카메라는 1973년, 전통적인 할리우드 영화 제작 체계가 거의 종말에 이르렀을 즈음에야 등장했다. 하필이면 존 포드가 죽은 바로 그 해에 탄생했다는 섬뜩한 우연의 일치 속에서, 이 발명품은 '영화의 죽음'에 관한 논의의 대두를 예고하는 징조와도 같은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외 16mm와 35mm 필름을 포함한 다른 필름 포맷에 쓰이는 광학 사운드트랙은 촬영 후에 입혀야 한다. 촬영과 동시에 녹음한 모든 음향은 모두 나그라 테이프 레코더로 채집했다가 이후의 단계에서 필름으로 옮기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필름이라는 매체 자체가 소리를 억압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이제 모든 영화는 무성영화의 변주에 불과하다는 가설을 진지하게 고려해 볼 때가 되었다. 왜냐하면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영상과 음향 재현의 진정한 통합을 목격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20세기 영화사만 놓고 보자면 내 가설은 꽤 타당해 보인다. 목소리에 대한 금지가 영상과 음향의 동조 재현 기술 발전을 오랫동안 금했다. 디지털 비디오카메라가 발전하고 널리 보급된 21세기의 상황은 이러한 금지를 종식시키는 듯도 하다. 어쩌면 이제야 영화라는 매체가 무성영화라는 패러다임의 기나긴 지배에서 풀려나기 시작하는지도 모른다.

디지털 자기 테이프를 내장한 비디오카메라는 최초로 한 매체 위에 음향과 영상을 동시에 기록할 수 있게 해준다. 디지털 기술이 음향과 영상의 완벽한 합성을 가져다주었다는 생각까지 떠올리지 않더라도, 디지털 비디오카메라가 과거에 감내해야 했던 많은 제한으로부터 영화 음향 녹음 과정을 해방시켜주었다는 점은 인정할 수 있다. 디지털 비디오카메라는 배우의 머리 위에 붐을 뻗어 지향성 마이크로폰을 매달지 않고서도 배우의 실제 목소리를 녹음할 수 있게 해준다. 음향 엔지니어는 카메라맨이나 조명 엔지니어의 요구에 끊임없이 근심걱정하지 않고서도 자기 일을 해낼 수 있다. 이 새로운 환경은 차츰 무성영화 시대에서 이어져 온 영화 만들기 방식과는 사뭇 다른 영화 만들기 방식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21세기의 시작 이래 여러 뛰어난 영화감독들이 자신의 작품을 디지털 비디오로 제작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부터 〈영화의 역사(들)Histoire(s) du cinéma, 1988-1998〉 연작을 아날로그 비디오를 이용해 촬영했던 장-뤽 고다르는 〈사랑의 찬가Éloge de l'amour, 2001〉의 후반부를 디지털 비디오로 촬영했다. 디지털 비디오로 촬영한 다른 주목할 만한 사례로는 페드로 코스타의 〈반다의 방No Quarto da Vanda, 2000〉, 쿠로사와 키요시의 〈밝은 미래アカルイミライ, 2003〉,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102002〉, 빔 벤더스의 〈풍요의 땅Land of Plenty, 2004〉, 알렉산더 소쿠로프의 〈태양Сóлнце, 2005〉, 지아장커의 〈삼협호인三峽好人, 2006〉이 있다. 아오야마 신지의 다큐멘터리 〈AA2005〉 역시 전체를 디지털 비디오로 촬영했다. 이런 사례를 보면 디지털 기술이 동시대 영화의 최전선에 있는 감독들의 상상력을 사로잡고 있음이 분명해진다.

디지털 비디오를 수용하고 있는 많은 동시대 영화감독들이 무성영화 이래의 영화 역사에 발을 담그고 있는 소위 '영화 근본주의자'라는 점은 중요하다. 고다르, 코스타, 쿠로사와, 벤더스, 아오야마가 그렇다. 그들이 나의 가설에 동의하지 않을 수는 있겠지만, 음향과 영상의 동조화된 재현이 우리가 21세기에 들어선 다음에야 비로소 가능해졌다는 역사적 사실을 명확하게 의식하고 있으리라는 점만큼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 감독들의 최근작이 목소리에 대한 금지를 폐기하고 무성영화의 패러다임에서 영화를 해방시키는 데에 성공했는가의 여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다. 우리는 디지털 기술에 관한 낙관주의가 정말 1백년 동안의 영화사와 양립할 수 있는지 자문해야 한다. 21세기의 인류는 20세기 역사로부터 얼마나 거리를 두고 있는가? 우리의 삶 전반은 아직도 20세기의 수많은 사건과 환경에 얽매여 있지 않은가? 과거의 영화들이 무성영화의 변주에 불과했던 것처럼, 21세기는 20세기의 변주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이런 질문은 최근 홀로코스트의 가스실을 영화로 재현해도 되는가를 두고 벌어졌던 장-뤽 고다르와 클로드 란츠만의 격렬한 논쟁과도 어느 정도 상통한다. 이 논쟁에 관해서 좀 상세하게 설명하기로 하겠다. 홀로코스트와 가스실은 20세기의 상징으로 간주할 수 있다. 란츠만은 〈쇼아Shoah, 1985〉의 감독으로 유명한 인물로, 이 영화에는 가스실에 관한 직접적인 시각적 재현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가스실을 스크린에 재현해서는 안 된다는 란츠만의 주장에 대해 고다르는 영화가 역사적 충실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가스실을 재현할 수 있으며 재현해야만 한다는 반대의 주장을 폈다.

당사자들이 이 격한 다툼에서 물러난 후에도 논쟁은 제라르 바이크만(1999)과 조르주 디디-위베르망(2008)에 의해 계속되었다. 이후의 사례를 검토하기에 앞서 우선 처음 논쟁을 촉발시킨 고다르의 주장을 옮겨보자.

증명할 수는 없지만, 나는 훌륭한 탐문 기자의 도움을 받는다면 20여 년 간의 탐문 끝에 가스실의 이미지를 찾아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사람들은 수인들이 가스실에 들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고, 그들이 나왔을 때 어떤 상태였는가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건 란츠만이나 아도르노 식으로 금지를 선언할 자리가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례를 지나치게 과장한다. 무엇이 '영화화 불가능한가'를 논쟁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책을 태워 없앨 수는 없듯이, 사람들이 영화를 찍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비판하는지도 알지 못하게 될 것이다. (Godard, 1998a: 28)


고다르 특유의 도발적인 풍자는 '재현불가능'한 대상에 관해 너무 쉽게 말하는 사람들의 세속적인 독실함을 가리키고 있다. 이것을 진실 없는 형이상학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그는 란츠만이 가스실을 재현하지 않음으로써 홀로코스트 자체를 어떻게 해선가 재현 불가능한 것으로 제시하여 홀로코스트에 관한 논쟁을 간접적으로나마 억압하는 잘못을 저질렀다고 말하고 있다. 란츠만과 더불어 아도르노의 이름을 거론한 것은 홀로코스트 이후에 시는 불가능하다는 아도르노의 유명한 선언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아도르노의 발언은 분명 시를 대표주자 중 하나로 내세우고 있는 서구 예술 전체를 가리키고 있다. 『계몽의 변증법』에서 아도르노와 호크하이머는 '베토벤과 카지노 드 파리의 혼합'이 1940년대 미국의 재현 기술을 통해 벌어진 계몽의 자기 파괴 현장이라며 비난했다. 그처럼 영화를 '재현의 사생아'에 불과한 것으로 깎아내렸던만큼, 아도르노에게는 아우슈비츠를 영화로 재현할 수 있다는 생각은 떠오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고다르는 반대로 오직 영화만이 아우슈비츠를 재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미 아도르노 상 수상 연설을 통해 이를 말한 바 있다(Godard, 1996). 그 자리에서 그는 영화의 역할은 사고를 촉진하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가스실의 재현에 실패함으로써 영화는 그에 적합한 역할을 수행하는 데에 실패한 것이다.

바이크만(1999)은 란츠만을 변호하면서 고다르의 입장은 영상을 숭배하는 자의 향수어린 간증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그는 고다르가 란츠만을 책을 태우는 독재자와 비교한 것에 대해 맹렬히 이의를 제기한다. 다른 한편 디디-위베르망(2004)은 바이크만의 논의 저변에 깔린 '상상 불가능성'이라는 개념을 "이론적 교만"이라고 비판한다. 디디-위베르망은 1944년 집단 수용소 수감자가 몰래 찍은 네 장의 사진을 샅샅이 분석하여 자신의 논거로 삼는다. 그는 우리가 재현 불가능성의 문제를 두고 맴돌기만 한다면 아우슈비츠의 기억이 보존되겠느냐고 심각하게 회의한다.



나는 상상 불가능한 것이나 재현 불가능한 것이라는 생각에 기대는 듯한 발화에 관해서는 늘 자연스레 의심을 품게 된다. 나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 디디-위베르망(2008)의 감정에 동조한다. "'상상 불가능'하다거나 '재현 불가능'하다는 식의 절대적인 개념을 통해 아우슈비츠를 말하는 것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좋은 의도로 꺼낸 말인 경우에도, 그런 겉보기에만 철학적인 어휘는 그저 부주의할 따름이다." 그러나 여기서 나까지 이 논쟁에 끼어 한몫 거들 생각은 없다. 대신 나는 이 논쟁이 부지불식간에 무성영화의 패러다임에 기초한 재현 양식을 영속화하는 방식에 관해 지적하고자 한다.

상상 불가능성이나 재현 불가능성의 문제가 논의될 때, 이 논쟁은 전적으로 시각적 재현의 문제에 집중한다. 어째서인지 청각적 재현은 논의에서 배제된다. 아무도 아우슈비츠의 음향 녹음이 부재한다는 사실에 의문을 던지지 않는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우리는 생존자들의 구술 증언을 들을 수는 있으나 살아남지 못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직접 녹음한 기록은 없다. 희생자들의 시신을 태운 소각로의 끔찍한 울부짖음과 같은 강제 수용소의 소리 역시 들을 수 없다. 논쟁은 모든 소리가 사라진 현장 한가운데에서 침묵 속에 진행된 듯하다. 이것이 무성영화의 세계와 갖는 섬뜩한 일치는 충격적이다.

이 논쟁의 가장 놀라운 요소는, 모든 참여자들이 이 논쟁이 목소리에 대한 금지 위에 입각하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디디-위베르망은 아우슈비츠에 사진 현상소가 있었음을 지적한다. 그러나 그는 음향 녹음 시설이 존재했는지는 거론하지 않는다. UFA라든가 토비스 같은 이름만 떠올려보더라도 독일이 1930년대 유럽에서 발성영화 산업의 최전선에 있었음을 깨달을 수 있지 않은가. 따라서 아우슈비츠에서 통상적인 자료 수집 과정의 일환으로 음향 녹음 기술을 사용하는 것도 전적으로 있었을 법한 일이다. 그럼에도 디디-위베르망은 강제수용소에서 음향 녹음이 이루어졌을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를 떠올리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고다르는 아우슈비츠의 사진이 남아있을 수 있다는 근거로 나치의 "모든 것을 기록하고자 하는 강박관념"을 거론한다. 그럼에도 그는 소각로의 지옥 같은 소음을 녹음한 기록이 있는지에 관해서는 조금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Toutes les histories" (모든 [히]스토리들)라는 제목이 붙은 〈영화의 역사(들)〉 1부 말미의 한 장면에서 고다르는 직접 등장하여 조지 스티븐스의 〈젊은이의 양지A Place in the Sun, 1951〉를 아우슈비츠와 연결하면서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발언을 남긴다.

그리고 만약 조지 스티븐스가
아우슈비츠와
라벤스브뤼크에서
최초의 16mm
컬러 필름을 이용하지 않았다면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틀림없이 결코
자신의 양지를 찾지 못했으리라


이 말은 엘라자베스가 수영복을 입고 일어나 호숫가에서 연인과 함께 뛰노는 장면의 슬로우 모션과 함께 들려온다. 이 말은 지오토의 그림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 앞에 나타나다〉에서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에게 손을 내뻗는 이미지 위에도 깔린다. 이 장면은 고다르가 이미지의 숭배자라는 바이크만의 비판에 어느 정도 신뢰성을 부여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스티븐스가 다른 많은 할리우드 감독들과 마찬가지로 미군과 동행하여 유럽에 가서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군사 침공으로 생겨난 폐허를 촬영했다는 것이다. 이 점을 거론하면서 고다르는 또한 강제수용소를 기록한 필름이 존재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의미심장하게도 그는 그 컬러 필름에 음향이 있었는지는 언급하지 않는다.

바이크만은 아우슈비츠를 담은 사진적 이미지가 존재할 수 있다는 고다르의 주장에 회의를 표명한다. 그는 가스실의 존재에 관한 그의 지식이 그러한 이미지를 통해서가 아니라 "피해자와 가해자 양자의 공적이고 사적인 풍부한 구술 증언"(1999)을 통해 형성되었다는 점을 논거로 삼는다. 그러나 이 비판은 피해자의 목소리가 녹음되었을 가능성에 관해서는 의식하지 않고 있다. 재현 불가능성이라는 의심스러운 개념을 끌어들이는 대신, 그는 고다르가 음향을 통한 재현의 가능성을 인지하지 못했음을 지적했어야 했다. 고다르의 이미지를 향한 숭배가 지닌 진짜 약점은 바로 이것이다. 란츠만을 지지하는 과정에서 바이크만은 고작 아우슈비츠의 시각적 재현 가능성을 부정하기만 한다.

이 논쟁을 통해 드러난 현장이란 바로 무성영화의 장면에 다름 아니다. 마치 목소리에 대한 금지 때문에 아우슈비츠에서 음향 녹음기의 존재가 지워진 것만 같다. 논의 전체가 시각적 재현만이 중요한 것마냥 전개되고 있다. 아우슈비츠를 담은 네 장의 사진에 관한 디디-위베르망의 분석이나 고다르의 영화에서 나타나는 몽타주 기법은 무성영화의 기법이다. 그 기법이야말로 영화적 허구의 기반이다. 고다르와 란츠만, 디디-위베르망과 바이크만의 논쟁은 무성영화에 기반한 산만한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의 거의 모든 기록 영상이 본질적으로 무성이라는 사실을 반영한다.

과연 이는 무성영화가 20세기의 전형적인 재현 양식이었다는 관찰로 이어진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이 논쟁에서 얻어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인지도 모른다. 이하는 "Une seule histoire" (하나의 역사)라는 제목이 붙은 〈영화의 역사(들)〉의 2부에서 인용한 것이다.

역에 도착하는 기차나
〈아기의 식사Repas de bébé, 1895〉에서
〈리오 브라보Rio Bravo, 1959〉에 이르기까지
카메라는 한 번도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았다
팬플렉스 플래티넘은
지드의 조카가
콩고로 향하는
여행길에 가져갔던
데브리 7보다도
덜 발전한 기종이다


여기서 언급된 앞의 두 영화는 뤼미에르 형제가 자신들이 발명한 시네마토그래프를 이용해 촬영한 영화들이다. 〈리오 브라보〉는 하워드 혹스가 감독한 1959년의 유명한 서부극이다. 이 영화는 파나비전 플래티넘 카메라로 촬영됐다. 지드의 조카는 마르크 알레그레로, 그는 1925년에 콩고에 갔다. 그가 가져간 데브리 7은 물론 무성 카메라였다. 따라서 고다르는 영화 제작에 사용되는 카메라가 영화의 첫 1백년 동안 거의 바뀌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고다르에게는 내 가설이 별반 새롭지 않으리라는 점을 암시한다.

끝으로, 나는 디디-위베르망의 『모든 것에도 불구한 이미지: 아우슈비츠에서 찍은 네 장의 사진』을 구성하는 거의 모든 글이 2001년에 쓴 글이라는 사실이 담고 있는 의도치 않은 중요성을 지적하고 싶다. 2001년 9월 11일에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 또한 우리에게 무성영화를 연상시키는 방식으로 제시되었다. 우리 모두가 세계무역센터로 날아드는 두 비행기를 보았지만, 이 영상들은 어떤 음향도 담고 있지 않았다. 텔레비전은 충돌의 끔찍한 소리를 담아낼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후 솟아오르는 버섯구름을 볼 수 있지만 그 폭탄들이 틀림없이 만들어냈을 선명하고 끔찍한 소리는 듣지 못한다. 9월 11일의 영상은 영상을 음향과 동기화할 수 있었을 디지털 비디오카메라로 포착한 것임에도, 이 사건에 관해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은 영상뿐이다. 충돌의 순간, 현장에 마이크로폰이 없었기 때문에 동기화의 가능성도 이제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므로 2001년 9월 11일의 사건은 여전히 무성영화의 시대인 20세기에 속해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요한 순간에, 영상과 음향 재현의 동기화는 없었다.

요시다 기주는 히로시마의 기억에 관한 영화 〈거울의 여자들鏡の女たち, 2002〉에서 핵폭발의 음향이나 영상을 재창조하지 않기로 한다. 대신에 영화는 실제로 촬영된 무성 기록 사진으로 넘어간다. 그럼으로써 상상 불가능한 것이 "이론적 교만"의 흔적과는 거리를 둔 채 영화와 통합된다. 요시다의 입장은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는 20세기의 비극이므로 그 시대의 무성 매체를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다는 신념을 반영한 것이다.

여기까지 살펴보았을 때, 영화에서 '시청각적' 재현이라는 개념은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의심 없이 주장할 수 있겠다. 우리에게 '영화'라고 알려진 매체는 실제로는 무성영화의 연장선에 지나지 않는다.



참고 도서 :
 - Adorno, Theodor W. and Max Horkheimer (1969) Dialectic of Enlightenment. Continuum.
 - Derrida, Jacques (1976) Of Grammatology. Baltimor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 Didi-Huberman, Georges (2008) Images in Spite of All: Four Photographs from Auschwitz. University of Chicago Press.
 - Godard, Jean-Luc (1996) "A propos de cinéma et d’histoire", Trafic 18: 28–32.
 - Godard, Jean-Luc (1998) "La Légende du siècle", Les Inrockuptibles 170.
 - Hashimoto, Fumio and Koshi Ueno (1996) Ee Oto ya nai ka [Isn’t That a Nice Sound]. Tokyo: Ritoru Moa.
 - Kittler, Friedrich (1986) Gramophone, Film, Typewriter. Berlin: Brinkmann & BoseVerlag.
 - Wajcman, Gérard (1999) "'Saint Paul' Godard contre 'Moïse' Lanzmann, le match", L’infini 65: 121–7.
Posted by 거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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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이 몇 달 정도 한국을 떠나 있을 계획이라기에 작은 송별연을 겸하여 함께 영화를 보았다. 어쩐지 내가 영화를 고르는 분위기가 되기에 평소에 소개하고 싶었던 영화 후보 목록을 보여줬더니 하워드 혹스의 〈천사만이 날개가 있다Only Angels Have Wings, 1939〉를 선택했다. 올해 처음 보고 천의무봉의 영화라고 생각했다는 〈리오 브라보Rio Bravo, 1959〉를 필두로 〈레드 리버Red River, 1948〉, 〈엘 도라도El Dorado, 1966〉, 혹은 며칠 전 시네마테크 서울에서 함께 보았던 〈불덩어리Ball of Fire, 1941〉가 남긴 영향이리라.

본 영화가 많아질수록 한 영화를 다시 보는 횟수는 줄어들기 마련이라, 확인해 보니 이 영화도 어느새 거의 5년 만에 다시 보는 영화였다. 5년 사이에 감흥이 줄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실제로 다시 보아도 역시나 혹스 영화 중 최고로 꼽아도 좋을 정도로 훌륭하고 뭉클하여 기뻤다. 이런 감독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가진 것을 다 내어줄 듯 애정을 바쳤으나 차츰 눈에 띄는 결함에 등 돌린 이, 한참 무시했다가 뒤늦게 알아가고 있는 이, 성취한 것보다는 성취할 것을 기대하며 바라보는 이, 한순간 온몸을 불살라 끌어안았고 지금도 존경하지만 한창 마르고 닳도록 언급하던 시절만큼은 아닌 이는 많다. 그러나 영화라는 세계에 갓 입문하던 시절부터 좋아했고, 아직도 그 좋아하는 마음이 10년이 넘도록 조금도 식지 않은 이는 정말 몇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몇 되지 않는 이들 가운데 첫손에 꼽을 이가 바로 하워드 혹스다. 장-피에르 멜빌의 금욕적 전문가주의를 향한 숭배가 사그라진 지금에 와서도 혹스의 개인주의와 소규모 공동체 정신은 내 가치관의 근간을 틀어쥐고 있으며, 인간이 짐승으로 변할 때까지 거꾸러뜨리고 발가벗겨 인세의 율법을 박살 내는 무도덕하고 히스테리컬한 코미디를 보면서도 (내 몇몇 지인들이 그렇듯) 괴로움을 느끼기는커녕 그 파괴적인 세계를 열망하게 된다.

* * *

〈천사만이 날개가 있다〉는 혹스의 모험 영화 중에서 가장 어두운 축에 속하는 영화다. 대놓고 필름 누아르로 분류되는 〈깊은 잠The Big Sleep, 1946〉보다도 어둡고, 폭압적인 가부장과 유사 아들의 대립을 그린 심리 서부극 〈레드 리버〉보다도 어둡다. 정서도 어둡고 화면도 어둡다. 지형이 워낙 험해 수로가 아니면 항공로로만 우편물 운송이 가능한 남미의 어느 항구 도시에서 활동하는 비행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에만큼은 "실존주의적 그림자" 같은 닳고 닳은 표현을 얹더라도 민망하지 않다. 비행에 미쳐 생의 다른 모든 인간관계를 도외시한 채 서로만을 의지하여 살아가는 이곳의 비행사들은 매 순간 목숨을 걸고 자연과 투쟁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연 앞에 패배하는 일은 너무나도 흔하기에, 모든 죽음을 재빨리 덮고 소리 높여 웃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어둠의 심연을 향해 목청껏 소리지르는 이 태도의 중요함에 관해서라면 로빈 우드가 이미 혹스에 관한 비평서 『Howard Hawks』와 『Rio Bravo』를 통해 이야기했으니 구태여 반복할 필요는 없겠지마는, 〈천사만이 날개가 있다〉의 어둠이 소리를 통해 엄습하기에 그토록 위협적이라는 사실은 오늘 다시 보면서야 비로소 인지했다. 거의 모든 영화에 훌륭한 노래 장면을 넣으며 언제나 뛰어난 대사 감각을 발휘하는 혹스가 훌륭한 귀를 지닌 연출자라는 점이야 놀랍지 않다. 그렇더라도 〈천사만이 날개가 있다〉에서처럼 소리가 전편을 감싸 안고 인물들의 숨통을 옥죄는 혹스 영화가 있었던가? 항구에 갓 도착한 아름다운 금발 아가씨 보니 리를 둘러싸고 수작을 벌이는 두 비행사의 코믹한 소동극처럼 시작한 영화는 그들이 자리한 유쾌한 주점 안으로 한 소리가 침입하면서 갑자기 음울해진다. 바로 비행기 엔진 소리다. 주점 주인이자 비행우편사업 경영자인 더치는 손님들과 장단을 맞추며 웃음을 터뜨리다가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말을 씹어 뱉는다. "나는 저 소리가 싫어." 그 말이 예언이라도 되는 듯, 이후 관객은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불안에 떨게 된다. 혹스는 물론 비행 장면을 두려워하는 연출자는 아니다. 모형과 화면 합성과 로케이션 촬영을 뒤섞은 비행 장면은 더없이 빼어나서, 그것이 모형이요, 세트임을 알면서도 비행 장면에서는 어김없이 숨을 죽이게 된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서 비행기는 언제나 눈보다는 귀를 통해 먼저 등장한다. 보이지 않는 저 바깥에서 비행기 엔진 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다른 모든 관심사는 중단되고 인물와 관객은 홀린 듯 초조하게 귀를 쫑긋 세운다.

비행기 소리와 쌍벽을 이루는 무시무시한 소리로 비행 사무소의 무전기에서 흘러나오는 호출 신호도 있다. 무전기는 지상의 사무소와 비행장, 산중의 전망대, 비행 중인 비행기를 연결하고 있지만, 〈천사만이 날개가 있다〉에서 상황을 파악하는 시점은 늘 사무소-술집을 거점으로 한다. 따라서 무전기의 호출 신호는 비행기 소리와 마찬가지로 산 속에서, 하늘에서, '저 바깥'에서 느닷없이 들려와 내부의 모든 활동을 멈추게 하는 소리로 각인된다. 더구나 이 "바랑카 나와라, 바랑카 나와라."라는 호출어는 누가 말하더라도 기계적인 단조로움을 띤다. 분명히 무전기 반대편에 누가 있는지도 알고, 상대에게 악의가 없다는 사실도 확실하건만, 인간미가 억제된 그 호출은 (마찬가지로 가치중립적인) 비행기 소리만큼 불길하다. 불길함은 심지어 메시지의 내용과도 무관하다. 전망대에서 하늘이 맑아 비행하기 좋다고 알리든 하늘이 거칠어 비행하기 어렵다고 알리든, 비행사가 비행의 지속을 알리든 귀환을 알리든, 늘 두려움이 도사린다. 이곳을 벗어나 비행하는 것도, 비행하지 못한 채 이곳에 머물러 있는 것도, 모두 곤경이고 위험이다. '이곳'과는 다른 '저 바깥'의 존재를 알리는 소리는 전부 죽음의 가능성을 지닌다. 화면 안에 정박하지 않은 소리에는 실체가 없고, 설령 그 출처를 짐작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화면 밖의 소리인 그 순간만큼은 화면 밖의 나머지 모든 세상을 대변한다. 그 세상이 죽음으로 가득 차 있다. 혹스의 어떤 모험 영화도 주인공들에게 이 정도의 위협을 부과한 적은 없다.

소리의 출처 자체를 제거할 수 없다면(이 경우에는 비행을 중단하는 방법 뿐인데, 그것은 또 다른 죽음이니까), 소리에 맞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소리다. 보니 리가 바랑카에 들어선 후 처음으로 벌어지는 비행 사고에 관한 장면은 사실상 삶과 죽음을 둘러싼 소리들의 대결로만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저 소리가 싫어."라는 더치의 말이 위기의 시작을 알린다. 혹스는 안개가 짙다는 설정을 통해 아예 시야를 가려버린다. 비행기의 위기는 소리로 전달된다. 모두가 비행장에 나와 귀를 기울인다. 문득 비행사 키드가 술집을 향해 소리친다. "거기 음악 중단하고 조용히 하라고 해!" 무슨 음악? 그러고 보니 긴장이 고조된 후에도 술집에서는 유쾌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음악을 중단하라는 키드의 일갈은 역설적으로 눈앞의 위기 상황과는 대비되는 다른 음악의 존재를 일깨워준다. 그 음악이 사라지고 나자 본격적으로 비행기 소리가 상황을 장악하고, 결국 사고로 이어진다. 사고 수습 후 지휘자인 제프와 키드는 사무실로 돌아와 대화를 나눈다. 대화 도중에 다시 술집에서 음악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앞서 사라진 순간 그 존재를 의식하기 시작했기에, 이제 음악은 더욱 뚜렷하게 들려온다. 잠시 후 제프가 술집으로 이동하고, 비행사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왁자지껄 대화를 나누며 유쾌한 소음을 배가한다. 보니는 이 소란에 항의하다가 술집에서 밀려난다. 그리고는 한결 조용한 가운데 조금 전의 다툼을 반추한다. 마침내 다시 술집으로 들어간 보니는 몸소 악단을 지휘하기 시작한다. 모두가 소리 높여 그 어느 때보다도 크고 활기찬 음악을 들려준다. 우리는 죽음 앞에 힘차게 살아있다고. 땅콩 사려! 땅콩!

이 소리의 편재와 진퇴가, 혹스가 음악을 다루며 빚어낸 숱한 명장면 중에서도 〈천사만이 날개가 있다〉의 "땅콩 장수" 합창 장면을 한층 더 고결한 위치로 끌어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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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 KOFA에서 시작한 "영화와 공간: 우디 앨런의 뉴욕" 상영작 중 〈맨하탄 살인사건Manhattan Murder Mystery, 1993〉과 〈브로드웨이의 대니 로즈Broadway Danny Rose, 1984〉를 보고 왔다. 딱히 우디 앨런을 좋아하지도 않는 데다 요즘은 시네마테크 서울에 가서 간절히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볼 때도 틈만 나면 졸 정도로 몸이 좋지 않아서 망설였지만, 〈맨하탄 살인사건〉은 어쩐지 예전부터 보고 싶었던 영화였음을 떠올리며, 또 집에 있어봐야 내가 하리라 생각했던 일은 안 하고 빈둥거리기나 하지 않겠느냐고 자신을 다그치며, 온 힘을 끌어모아 집을 나섰다. 좋은 결단이었다.

화요일 낮인데도 사람이 많아서 깜짝 놀랐다. 줄을 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금부터는 곧 시작할 〈맨하탄 살인사건〉 표만 발권하겠다는 안내도 나왔다. 시간이 좀 더 지나자 좌석 선택도 못 하게 하고 사람 수에 따라 표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평소 관객이 몰리지 않는 영화를 보거나 미리 표를 사두는 편이라서 지금껏 몰랐는데, 원래 사람이 많이 몰리면 상영 시작 10분 전부터는 이렇게 임의로 좌석을 배정한 표를 주며, 이렇게 받은 표로는 꼭 지정된 좌석에 앉을 필요는 없고 그냥 빈자리를 찾아 앉으면 된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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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맨하탄 살인사건〉을 보고 싶어했을까?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다. 예전에 우연히 본 이 영화 포스터가 마음에 남았다. 그리고 지금보다도 우디 앨런을 몰랐을 뿐만 아니라 미스터리에 관해서도 잘 몰랐던 시절, 코미디만 만드는 줄 알았던 감독이 살인 사건에 관한 영화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번 보고 싶다 생각한 적도 있었다. 돌이켜 보면 무지에서 비롯한 호기심이었고, 이제는 그 사실을 알 정도로 성장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충족되지 않은 호기심은 관성으로 작용했다. 같은 이야기를 거꾸로 하자면, 그사이 나는 우디 앨런의 다른 영화를 몇 편쯤 보고는 이 사람에게는 별로 정이 가지 않는다고 잠정 결론을 내려둔 상황이었고, 남은 건 관성뿐이었다. 그런 연유로 상영관에 들어설 즈음에는 말로만 살인사건을 다룰 뿐, 본령은 뉴욕 남성 중산층 지식인의 신경쇠약과 자조와 오만을 사방으로 휘두르는 〈애니 홀Annie Hall, 1977〉 비슷한 코미디가 펼쳐지겠거니 짐작하고 있었다. 볼 때는 이럭저럭 재미있게 볼 테지만, 영화가 끝난 뒤에는 별다른 호감이나 애정을 느끼지 못한 채 금세 잊어버리겠지.

〈맨하탄 살인사건〉은 그런 마음의 벽을 허물고 들어오는 영화였다. 우선 〈애니 홀〉과 비슷한 세계를 그리리라는 예상은 맞았지만, 우디 앨런이 한 발 뒤로 물러난 가운데 아마추어 탐정 다이앤 키튼이 사건을 주도한다는 점이 즐거웠다. 그제야 과거 〈애니 홀〉이나 〈맨하탄Manhattan, 1979〉를 보면서는 소심하고 결점 많고 나약한 척 굴면서도 여자들에게 떼를 쓰고 윽박지르고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고 그 위에 낭만의 불까지 지피는 이 신경질적인 남자에게 무의식적으로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미스터리 요소가 생각보다 강하다는 점도 반가웠다. 미스터리를 핑계 삼아 장광설을 늘어놓으며 웃음을 유발하여 관객의 환심을 사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영화는 제법 장르 미스터리다운 구석이 있었다. 미심쩍은 조각들을 굳이 살인사건의 증거로 읽어내고자 하는 다이앤 키튼의 강박은 〈이창Rear Windows, 1954〉을 필두로 〈확대Blow-Up, 1966〉나 〈대화The Conversation, 1974〉를 은근슬쩍 떠올리도록 하면서 궁금증을 자아냈다. 미스터리로서 공정하다고 말하기도 어렵고, 사건에 관한 해명이 전부 명료하다고 할 수도 없지만, 적어도 수사 과정에서 새로운 단서가 나옴에 따라 상황을 거듭 다시 추리하도록 유도하며 이후 전개를 갈망하도록 이끄는 힘은 있었다. 다이앤 키튼이 일종의 하드보일드 탐정처럼 발로 수사해놓은 내용을 정리하면 안젤리카 휴스턴이 안락의자 탐정처럼 추리를 늘어놓는 대목은 미스터리 팬을 웃음짓게 했으며, 사건의 진상을 해설하는 대목은 화룡점정이었다. 더구나 우디 앨런은 나름의 방식으로 주류 스릴러의 서스펜스 문법도 반영하고 있다. 아마도 장르에 대한 의식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이는 핸드헬드 촬영과 줌의 적극적인 활용도 효과적이었다. 심지어 한 장면에서는 공포 영화를 방불케 하는 연출까지 확인할 수 있었고 관객들이 짧게 비명을 지르기까지 했다. 통상 '우디 앨런 영화'를 보며 기대할 만한 반응은 아니라서 더욱 즐겼다.

미스터리 요소가 점차 다이앤 키튼-우디 앨런 부부(그러고 보니 이 사람들은 도무지 캐릭터 이름으로 부르고 싶지 않다)의 관계를 뒤흔들고 아슬아슬한 외도의 문을 열어놓으며 로맨스로 이어지는 흐름도 자연스러웠다. 네 중심 인물이 살인사건을 핑계로 개똥철학을 늘어놓으며 삼천포로 빠져 연애에 골몰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살인사건(의 가능성)이 일상에 던지는 흥분이 곧 로맨스의 원동력이다. 다이앤 키튼과 앨런 알다는 성실한 아마추어 탐정이고, 사건을 수사하러 만났을 때는 정말로 수사에 필요한 일을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이 한 자리에서 같은 주제에 관해 토론하고 같은 행동을 하며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사실 자체가 일종의 데이트요, 외도가 된다. 이걸 당사자도 알고, 우디 앨런도 알고, 관객도 안다. 이 의식은 부부/연인 관계에 관한, 심각하지는 않으나 유효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안정적인 관계(그런 것이 있다면)에 이른 커플은 처음의 흥분을 유지할 수 있나? 일상은 범속하고 지루할 수밖에 없나? 흥분은 파트너 자체에서 나오는가, 상대가 누구든 같은 행동을 하며 시간을 공유한다는 데에서 나오는가? 사건의 수사가 질문을 야기한다. 사건의 종결이 질문을 무마한다. 외적 갈등과 내적 갈등의 결합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흔한 구조이기는 하지만, 우디 앨런의 중산층 지식인 사회가 미스터리 장르와 접붙자 만족감이 유달리 컸다. 아마추어 탐정의 미스터리와 로맨스를 결합한다는 점에서는 프랑수아 트뤼포의 유작 〈신나는 일요일!Vivement dimanche!, 1983〉 생각도 잠깐 났다.

더불어 〈맨하탄 살인사건〉은 예상치 못했던 영화광 영화이기도 했다. 〈이창〉과의 관계는 이미 이야기했다. 그밖에 뜬금없는 〈이중 배상Double Indemnity, 1944〉 인용도 반가웠다. 무엇보다도 결말을 장식하는 모 영화를 향한 오마주는 취향을 정통으로 때리는 데가 있었다. 그래, 난 취향이라는 단어를 무척 기피하지만, 이럴 때는 취향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카이로의 보라색 장미The Purple Rose of Cairo, 1985〉처럼 대놓고 스크린 안팎을 오가며 "영화!"를 부르짖는 영화를 보면서도 미적지근한 감상에 젖는 정도였는데 말이지. 오히려 〈맨하탄 살인사건〉의 오마주는 굳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에서 느닷없이 터져 나왔기에 더 깊이 파고들었는지도 모른다. 더구나 영화사에 길이 남는 걸작에 고개를 숙이면서도 열화 복제로 모욕을 안기지는 않는 방식의 오마주였으니. 그나저나 해당 장면에서 새삼 다시 느꼈지만, 우디 앨런은 은근히 특수효과를 잘 쓰는 감독이다. 〈카이로의 보랏빛 장미〉도 그렇고, 이번에 상영하는 뮤지컬 〈모두들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 말하죠Everyone Says I Love You, 1996〉에 나오는 한 장면도 그렇고, 작은 특수효과 아이디어를 예상치 못한 순간에 정확하게 구사하여 마술처럼 보이도록 하는 실력이 있다.

나는 여전히 〈맨하탄〉의 흑백 시네마스코프 화면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벅찬 기분을 느낀다. 〈맨하탄〉은 오프닝만으로도 우디 앨런의 가장 훌륭한 영화로 꼽을 만하다. 그러나 그 영화가 거장─고든 윌리스─의 기예에 대한 존경심을 불러일으킨다면, 〈맨하탄 살인사건〉은 마음속에 친구의 선물처럼 간직하고 싶어진다. 적어도 그 뜻밖의 선물이 우디 앨런을 향한 나의 성급한 거부감을 누그러뜨렸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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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맨하탄 살인사건〉만 보고 귀가하려 했는데, 영화가 워낙 만족스러웠던데다 다음 영화인 〈브로드웨이의 대니 로즈〉의 상영 시간이 90분이 채 되지 않기에 한 편 더 보기로 했다. 브로드웨이의 공연 매니저 대니 로즈가 최근에 다시 뜨기 시작한 담당 가수 루 카노바의 공연을 준비하면서 루의 애인인 티나를 데려오는 길에 벌어지는 이야기. 마틴 스콜세지의 〈일과 후After Hours, 1985〉처럼 일이 엉망진창으로 꼬여가는 와중에 대니 로즈가 가수의 애인과 사랑에 빠지는 뭐 그런 전개 아닐까.

냉정하게 말하자면, 상영관 안이 더운 탓도 있었겠지만, 〈브로드웨이의 대니 로즈〉는 〈맨하탄 살인사건〉만큼 상영 시간 내내 푹 빠져들어 보지는 않았다. 장르를 대하는 온도 차이도 있었을 테고, 〈맨하탄 살인사건〉 쪽이 사건의 흐름을 촘촘히 엮어내며 흐름을 가속하는 솜씨가 더 나았다. 개그도 더 효과적이었고. 아, 뒤에 이야기하겠지만 한국어 자막 품질 차이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겠구나.

그렇지만 정신없는 요절복통 모험담을 자제한 대신 얻어낸 이 영화의 후반부는 지금까지 본 그 어떤 우디 앨런 영화보다도 심금을 울렸다. 여기서도 우디 앨런은 신경쇠약 직전에 놓인 수다스러운 남자를 연기하지만, 대니 로즈는 자신의 고객을 위해 온몸을 바치는 인물이다. 물론 그 자신은 할 일을 할 뿐이라고 생각할 테고, 고객 서비스 중에 겪게 된 얼토당토않은 곤경 앞에는 불만도 터뜨리기는 한다. 그래도 그토록 이타적인 우디 앨런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런 대니 로즈의 맞은편에는 티나가 있다. 티나는 인생은 짧고 뭐든 마음 가는 대로 마음껏 저지르며 살면 된다고 믿는다. 대니 로즈는 티나에게 묻는다. 죄의식은 없느냐고. 자신은 죄의식이 너무 강해서 잘못된 짓을 할 수가 없다고. 티나는 그런 기분은 느껴본 적 없다고 말한다. 뭐든 마음대로 하며 살았지만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는 여자고, 늘 남을 위해 헌신했지만 죄의식에 시달리는 남자다. 이 두 사람은 함께 모험을 겪는 와중에 타인에게 상처를 하나씩 남긴다. 그리고는 자신이 남긴 상처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헤어진다. 영화는 그대로 씁쓸함을 남긴 채 끝날 것만 같다.

그다음 대목이 정말 좋았다. 자세한 상황 설명을 피하고 두루뭉술하게 말하자면 이렇다. 우디 앨런은 처음에는 지나가는 장광설이나 캐릭터 설명처럼만 들렸던 죄의식에 관한 대화를 뒤늦게 끌어들이며 대니 로즈와 티나를 조용히 흔든다. 영화가 묘사하는 사건의 양상은 간단하지만, 두 사람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그 대화를 기억하고 있고(혹은 관객이 그들을 대신해 떠올리고), 그것이 그들의 태도와 행동을 결정하도록 이끈다는 점이 아름답다. 그건 둘 사이에 모종의 유대 관계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사랑이라고 규정하기에는 너무나 섬약하지만, 어쨌거나 분명히 존재하기는 했던 관계. 두 사람은 이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헤어졌다가, 고통받고, 재회한다. 그 단순한 동선과 시간의 흐름, 즉 동행-결별-성찰-재회의 연쇄를 보며 어째서인지 무성영화 시대 슬랩스틱 코미디의 거장들을 떠올렸다(안경을 쓴 우디 앨런의 모습 때문인지 주로 해롤드 로이드를 떠올렸다). 특히 둘의 재회는 분명 발성영화였는데도 기억 속에는 무성영화였던 것처럼 남아있다. 뜻하지 않게 떨어졌던 사람들이 떨어짐을 통해 비로소 상대의 영향력를 인지한 다음 다시 만난다. 그럴 때 대사 이전에 얼굴과 얼굴의 부딪힘에서 흘러나오는 천 마디 말 같은 것이, 〈브로드웨이의 대니 로즈〉의 결말에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맨하탄〉의 대미를 장식하는 질주와 재회에도 그런 것이 있었다. 〈맨하탄〉을 좋아했던 것도 그저 고든 윌리스의 촬영 때문만은 아니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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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영화를 보고 나니 새삼 우디 앨런의 이러저러한 점이 별로 마음에 안 든다는 이야기도 함부로 하면 안 되겠구나 싶어 반성했다. 해당 영역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쉽게 대상의 고유함과 차이를 무시한 채 공통점을 추출하여 일반화/계열화하면서 섣불리 재단하고 벽을 쌓아대는 법이다. 그런 사람들에 늘 넌덜머리를 내면서 나 역시 자꾸 발을 헛디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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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영화와 공간: 우디 앨런의 뉴욕"에서는 우디 앨런에 관한 다큐멘터리 〈우디 앨런: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Woody Allen: A Documentary, 2011〉를 제외한 상영작 열일곱 편을 전부 35mm 필름으로 상영한다. 〈맨하탄 살인사건〉과 〈브로드웨이의 대니 로즈〉는 화면비가 1.85:1이었는데, 자막 영사 공간을 화면 밖에 배치하기 위해서인지 애석하게도 좌우 마스킹은 해주지 않았다(왼쪽 커튼만 닫을 수는 없나?). 필름 질은 시네마테크 기준으로 무척 훌륭했다. 자막은 전부 시네마테크 부산에서 가져온 듯하다. 시네마테크 부산에서는 2009년 "우디 앨런 특별전 - Little Big WOODY"와 2013년 "우디 앨런 근작전"을 통해 우디 앨런의 상당수 작품을 상영한 바 있다.

〈맨하탄 살인사건〉의 자막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다만 〈이중 배상〉을 인용한 부분에서 영화 제목을 "보험 사기극"이라고 옮긴 것은 마음에 걸렸다. 다이앤 키튼이 이웃집에서 벌어진 죽음을 두고 보험금을 노린 살인이 아닐까 의심하자 우디 앨런이 당신 〈이중 배상〉에 너무 빠져서 그렇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이중 배상〉을 모르는 관객들도 직관적으로 웃을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해 선택한 제목이 아닐까 싶은데, 그건 과잉 친절이다. 어차피 관객들은 그 대사에는 별로 웃지도 않았다. 오히려 〈이중 배상〉을 아는 사람들만 웃을 수 있도록 해두는 편이 나았다. 그리고 영화 속에 잠시 〈이중 배상〉의 장면이 직접 인용되는데, 그 영화 속 영화 장면에서 에드워드 G. 로빈슨에게 말하는 프레드 맥머레이의 대사(한 줄 나온다)는 존댓말로 옮기는 편이 더 적절하다. 물론 〈이중 배상〉은 존대법이 없는(혹은 한국어와는 다른) 문화권에서 나온 영화다. 그러나 그 영화에서 프레드 맥머레이의 캐릭터는 에드워드 G. 로빈슨의 캐릭터보다 한참 어린 게 분명한 데다, 에드워드 G. 로빈슨은 회사 상사이고 개인적으로도 아버지 같은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존댓말을 피할 이유가 없다. 물론 번역자가 〈이중 배상〉을 보지 않아서 그랬으리라 짐작한다.

〈브로드웨이의 대니 로즈〉 자막은 〈맨하탄 살인사건〉과 비교하면 꽤 아쉬웠다. 전반적으로 대사 길이에 허덕이면서 어쩔 수 없다는 듯 비문으로 빠져든 대목이 자주 눈에 들어왔다. 우디 앨런 영화니까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할 수도 있겠으나 〈맨하탄 살인사건〉도 결코 대사가 적거나 느린 영화가 아니잖나. 하워드 혹스와 로버트 알트만 영화를 번역해본 경험자로서 말하자면, 현행 큐타이틀 체제가 번역자에게 가혹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비문을 필요악으로 인정해야 할 정도는 아니다. 더불어 〈브로드웨이의 대니 로즈〉에는 명백한 오역도 여럿 있었다. 가령 1달러 50센트어치 식사를 하고 10달러를 내면서 잔돈 "9달러 50센트"를 못 받는다고 투덜거리는 대목처럼 원래 대사를 모르더라도 오역임을 확신할 수 있을 대목도 있었고, 한 브로드웨이 공연자가 영화 〈제7의 베일The Seventh Veil, 1945〉을 보고 난 뒤 본의 아니게 제임스 메이슨 흉내를 내게 되었다고 말하는데 "흉내"라는 뜻으로 쓰인 "impression"을 계속해서 "인상주의"로 옮기는 바람에 무슨 말인지 알 수 없게 된 대목도 있었다(그나저나 그 사람 제임스 메이슨 흉내는 정말 훌륭했다. 나 외엔 아무도 웃지 않아 슬펐지만).

다른 극장에서 가져온 자막이라 수정이 어려운지도 모르겠지만, 그보다는 근본적으로 이런 문제를 극장에서 보고 체크하고 수정할 전문 인력이 없거나 부족하지 않겠나 싶다. 시네마테크 자막을 볼 때마다 절감하는 부분이다. 영화를 보던 관객이 의식하고 기억해뒀다 집에 와서 이렇게 글줄로 푸는 것보다 훨씬 더 제대로 된 체계가 필요하지 않을까? 늘 돈에 쪼들리기 마련인 시네마테크 측에서 보기에 번역 품질 문제는 비교적 작은, 당장 매달려 뜯어고치기 어려운 부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젠가 어딘가에서부터 변화가 있어야 나아질 수 있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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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아마도 스카이 무비스 영화 채널에 나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택시 드라이버Taxi Driver, 1976〉를 소개하면서 들려준 이야기.


〈택시 드라이버〉에 관한 흥미로운 뒷이야기가 있어요. 분명히 언급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봐요. 할리우드의 전설로 남은 이야기인데, 이게 사실인지, 얼마만큼 사실인지, 사실인 부분이 있기나 한 건지는 저도 모릅니다. 그래도 제게 이 이야기는 영화 악동 시대의 가장 흥미로운 전설로 남아있어요.

어떤 얘기냐면, 스콜세지가 〈택시 드라이버〉를 완성했을 땐데요, 여러분도 짐작하시겠지만 〈택시 드라이버〉 같은 영화를 완성하고 나면 얼마나 기쁘겠어요. 그런 영화를 만들면 어떤 기분일지 상상도 안 됩니다. 헌데 당시 제작사가 컬럼비아였는데, MPAA에서 X 등급을 때린 겁니다. 해서 스콜세지는 자기가 만든 완벽한 걸작이라고 생각했던 영화를 잘라내야 하는 처지가 됐어요. 컬럼비아의 누군가들 혹은 누군가는─그게 누구였는지는 알 도리가 없고, 이게 정말 있었던 일인지도 모르겠지만─아무튼 그 사람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나왔고요. 그냥 어떻게 됐든 R 등급을 받아내라는 거였죠. 무조건 R 등급을 받아내. 어떻게 하든 알 바 아니니까 받아만 내.

자, 전설에 따르면, 스콜세지는 밤을 지새우며 술을 마시고 취했어요. 장전한 총을 갖고서요. 아침이 되면 컬럼비아의 중역을 쏴버리겠다는 심산이었죠. 자신의 걸작을 잘라내라고 했으니까요. 그게 철야로 이어진 겁니다. 동료 감독들과 친구들은 장전한 총을 자기 무릎 위에 올려둔 채 앉아 있는 스콜세지를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고 동정을 표하면서 계획을 단념하게끔 설득하려 했어요. 밤새 내내 그게 계속됐어요. 듣기로는 그날 모두가 그 시간을 통해 성장했다고 합니다. 자기 계획을 실천에 옮기겠다는 스콜세지의 마음이 얼마나 진심인지를 실감하면서 말이에요.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됐느냐면, 밤이 끝나갈 무렵, 정말로 정말로 상대를 쏜다는 것에 대해 생각을 거듭한 끝에 자신이 실제로 그 일을 저지를 거라는 것이 너무나 확고부동해진 상황에서, 스콜세지는 자신의 내면으로 돌아가 살인을 저지르는 것 말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하나만 찾아보기로 했대요. 그때 떠오른 생각이 바로 영화 마지막 총격전 장면의 채도를 2도 낮추자는 거였습니다. 캔디 애플처럼 새빨간 피 색깔을 좀 더 부르고뉴 포도주 색깔에 가깝게 만드는 거죠. 스콜세지는 사람을 죽이는 대신 그렇게 했고... R 등급이 나왔어요. 그렇게 오늘날 여러분이 보시는 무삭제판 〈택시 드라이버〉가 탄생했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스콜세지 감독님, 혹시 이게 사실무근이라면 사과드립니다. 저는 그냥 이런 전설이 있다는 이야기를 했을 뿐이에요. 하지만 예술가로서 솔직히 말씀드리는데, 이게 만약 사실이 아니라면, 전 사실이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할 겁니다.

스콜세지가 살인 계획을 세웠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등급 조정을 위해 〈택시 드라이버〉 후반부 총격전 장면의 채도를 낮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지금도 영화를 보면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트래비스가 택시를 몰고 매춘용 호텔 앞에 당도하는 장면부터 화면이 급격히 탁해지고 어두워진다. 나는 스콜세지가 훗날 4K 디지털 복원을 할 때도 이 부분을 '원래 의도대로' 고치지 않았다는 점이 정말 마음에 든다. 그 또한 이 영화가 역사 속에서 짊어지고 가야 할 자신의 운명이라는 얘기지.
Posted by 거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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