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

분류없음 2017.06.04 11:49
좋은 일요일이다. 늦잠을 잘 생각이었는데 햇살 때문에 일찍 깼다. 어제는 공기가 좋지 않아 오후 내내 창문을 닫고 지냈다. 오늘은 쾌청하여 일어나자마자 집안을 환기했다. 한참 남은 마감이 몇 있기는 하지만 며칠 후면 생일이고, 생일까지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쉬기로 했다. 지난 한 주 동안은 이상할 정도로 눈이 피로했다. 오늘 아침에도 눈의 상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의식적으로 휴대폰이나 컴퓨터를 피하고 창밖을 내다보며 눈을 쉬기로 했다. 〈유령과 뮤어 부인The Ghost and Mrs. Muir, 1947〉의 사운드트랙 앨범을 들으며 소파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가만히 앉아 있다가 어제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조금 읽었다. 배가 고프기에 아침을 차릴까 하다가 기왕 쉬기로 했으니 밥 먹는 데에도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지 않기로 하고 찬장에 남아있던 죠리퐁을 우유에 타 먹었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라서 그것도 좋았다. 가벼운 식사 후 소파로 돌아와 CD를 〈폭력의 역사A History of Violence, 2005〉 앨범으로 바꾸었다. 데이빗 크로넨버그와 함께한 하워드 쇼어의 음악은 언제나 훌륭하고, 〈폭력의 역사〉 음악도 참 좋아하기는 하지만, 솔직히 몇몇 곡은 반지의 제왕에서 호빗 마을을 그리는 데에 사용한 선율과 비슷하게 들리며, 비고 모텐슨이 주연이라 더 그렇다는 생각을 몇십 번째인가 다시 하면서 이 생각 저 생각 하다가 잠시 졸기도 했다. 연유를 넣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없어도 괜찮은 커피를 마시면서 졸음이 가시고 눈이 좀 더 편안해지자 또 책을 읽었다. 이번에는 책장에 꽂아만 놓고 오래도록 읽지 않은 책. 상쾌한 기분 덕인지 평소보다 집중력이 좋았고, 책의 내용은 불과 십여 장을 읽었을 뿐인데도 무척 감동적이어서 역시 한국어판도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공연히 1인 출판에 대한 상상도 해보았다. 그렇게 오전을 다 보내고 나니 눈이 한결 나아졌다. 이런 식으로 하루를 보내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다. 그리고 문득, 이제야 비로소, 드디어 마침내, 블로그를 닫아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미 오래전에 용도를 다했지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연명 치료 중이었다. 삶이 바빠져서 그럴 뿐 다시 예전의 리듬을 찾고 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혹은 나의 변화에 따라 블로그도 변화할 수 있지 않으냐고 변명하면서. 하지만 지금 이곳은 나와는 너무 거리가 멀고, 걸음을 맞추려다 내가 붙잡혀 뒤로 끌려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이만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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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힐러리 스왱크만 멀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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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놓을 사안이 아닐까? 뭐 어때.

'팬질'이라는 표현이 오늘날 일반적으로 뜻하는 바를 고려하면 나는 씨스타의 팬이었던 적이 없지만(사실 어떤 가수의 팬이었던 적도 없지만), 그래도 씨스타는 SES 이후 가장 호감이 갔던 걸그룹이었다. 씨스타가 몸의 섹시함을 전면에 내세우는 걸그룹이 아니었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그 몸을 수동적인 대상으로 고정하는 음란한 시선을 회피하거나 받아치는 건강한 활력을 갖추고 있었다는 점 역시 분명하다. "Loving U"로 처음 알게 되었을 때부터 그런 이미지는 선명히 와닿았고, 간간이 접한 다른 활동들에서도 거듭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내가 들어본 씨스타 대표곡 중에서는 "Loving U"가 가장 좋았고, 뮤직비디오도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가 가장 좋았으므로, 끝까지 잡음 없이 건강하게 인생의 한 시기를 마무리한 네 사람에게 박수를 보내면서 이미 숱하게 들었던 그 노래를 다시 한번 듣는다.


영국 배우 로저 무어가 짧은 암 투병 끝에 2017년 5월 23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89세. 그는 숀 코너리와 조지 라젠비를 이어 세 번째로 제임스 본드 역을 맡아 1973년부터 1985년까지 일곱 편의 제임스 본드 영화에 출연했고, 지금까지 본드를 연기한 여섯 배우 중 처음으로 세상을 뜬 사람이 되었다. 현재 중년층 팬들은 로저 무어를 통해 본드 영화를 처음 접한 사람들이 많다던데, 사실 나는 로저 무어의 본드 영화들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 냉정하게 따져보면 피어스 브로스넌 본드보다도 평균 만족도가 낮을지도. 그렇다고 본드 영화가 아닌 다른 작품에서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던 적도 없고. 하지만 제임스 본드에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그 느긋하고 맹한 얼굴이 주는 묘한 정겨움 또한 부정할 수는 없어서, 가령 어떤 영화인지 알려주지 않은 채 피어스 브로스넌 영화를 볼래 로저 무어 영화를 볼래, 하고 묻는다면 나는 무심코 로저 무어 영화를 선택할 것만 같고, 그리하여 〈뉴욕의 셜록 홈스Sherlock Holmes in New York, 1976〉처럼 셜록 홈스의 역사에 누가 될 만한 맹탕도 기꺼이 보고야 말았던 것이다. 더구나 이렇게 혹평을 가하더라도 로저 무어에게는 끝내주는 영화가 최소한 한 편은 있으니, 그가 떠난 오늘 그 〈007 오직 당신 앞에서만For Your Eyes Only, 1981〉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것도 당연한 일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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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파웰과 에머릭 프레스버거의 영화를 보면서 배운 점 중 하나는 전시(戰時)를 다룬 영화, 군인이 나오는 영화, 뚜렷한 이념을 내세우는 영화가 더없이 흥미진진하고 복잡 무쌍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중에는 군인이 나오거나 전쟁을 다룬 영화가 적지 않지만, 구체적인 작품을 들지 않고 그냥 분류상 전쟁 영화를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조금 망설이다가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아마 소재의 성격상 마초적 남성성을 찬양하거나 국가와 민족이라는 이념에 사로잡히기 쉽기 때문이 아닐까. 아직도 좋아하는 감독이 전쟁에 관한 영화를 만든다면 걱정부터 될 정도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경외해 마지않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이오지마 2부작을 만들었을 때나 스티븐 스필버그가 〈군마War Horse, 2011〉를 만들었을 때조차 극장 가는 걸 망설였다.

이런 거리감이 예전에는 지금보다 훨씬 심했는데, 그걸 특히 강하게 흔들어줬던 게 파웰/프레스버거였다. 파웰/프레스버거는 대표작을 언뜻 보면 색감 화려하고 아기자기하고 발랄한 영화 많이 만들었을 것 같은 인상이지만, 사실 이 사람들의 전성기 작품 중 상당수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배경에 군인이 주인공인 영화다. 특히 40년대가 전성기였기 때문에 이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물론, 선전 영화를 만드는 데에도 거부감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들이 만든 영화는 흔히 "전시를 다룬 영화, 군인이 나오는 영화, 뚜렷한 이념을 내세우는 영화"라고 했을 때 떠올림 직한 영화는 아니었다.

내가 처음 본 파웰/프레스버거 영화는 〈블림프 대령의 삶과 죽음The Life and Death of Colonel Blimp, 1943〉이었다. 1943년이라는 연도가 중요하다. 유럽을 집어삼킨 독일이 영국에 폭격을 가한 이후이며,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시점에 만들었다는 얘기다. 영화는 산전수전을 다 겪은 노장이 자신의 파란만장했던 생애를 회상하는 구성을 따르고 있다. 한국에서 만들었더라면 〈국제시장2014〉이나 나오지 않을까?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를 이야기하는 이 영화 역시 언뜻 보기에는 마찬가지 꼴일 듯하다. 그런데 이것은 흔히 나이 든 사람의 꿋꿋함, 자부심, 영예로운 퇴장을 강조하기 위해 인용되는 말이지만, 조금만 비틀어 생각하면 몹시 비참해질 수도 있는 문구다. 죽지 않은 노병은 자신이 사라지는 과정을 지켜보아야 한다. 〈블림프 대령의 삶과 죽음〉은 젊은 장교를 붙들고 "내가 젊었을 때 어땠는 줄 알아!"라고 호통치는 나이 든 주인공의 모습에서 시작하지만, 그의 업적과 국가를 위한 봉사를 예찬하는 것아 아니라 그가 젊은 시절 패기가 있었을지는 모르고, 그때의 가치관에도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었을지는 모르지만(이 영화에서 가장 근사한 순간은 그 무용한 아름다움을 그려내는 대목에서 나온다), 이제 시대는 변했고 그런 가치들은 무용해졌으며,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결론을 향해 나아간다.[각주:1] 평생을 영국군에 몸담아 왔고 제2차 세계대전을 맞이해 본토를 지키는 의용군을 지휘하는 장군이 주인공인데도.[각주:2] 아울러 이 영화에서 주인공의 둘도 없는 친구요, 아마 주인공 이상으로 관객에게 사랑받을 만한 인물은 다름 아닌 독일 군인이다.[각주:3] 당시 영국 수상이었던 윈스턴 처칠은 이 영화에 격분하여 제작을 중단시키려고 했고, 공보처와 육군성이 가편집본을 보고 통과시킨 뒤에도 계속해서 개봉을 저지하려고 했으며, 개봉 뒤에는 독일인을 우호적으로 그렸다는 이유로 혹평받았다.

〈블림프 대령의 삶과 죽음〉


그다음으로 본 영화는 〈삶과 죽음의 문제A Matter of Life and Death, 1946〉였다. 내가 이 영화를 처음 보았던 스펙트럼 디브이디의 DVD 박스 세트와 영국영화원의 소개에 따르면, 이 영화는 아직 2차 세계대전이 끝나지 않았던 시점에서 미국과 영국의 우호를 증진하기 위한 일종의 선전 영화로 기획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내용이 뭘까요? 들어보시라. 독일을 폭격하는 임무를 수행한 뒤 영국으로 돌아오던 영국군 폭격기가 추락한다. 조종사는 승무원들을 모두 탈출시키지만, 자신이 쓸 낙하산은 없다. 그는 추락 직전 미군 통신병과 이야기를 나눈다. 얼마 후, 눈을 뜬 조종사는 자신이 어떻게 해선가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복귀한 뒤에는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던 미군 통신병을 찾아가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그의 앞에 난데없이 프랑스 억양이 강한 사내가 나타난다. 그는 조종사를 천국으로 데려가려고 왔다면서, 원래 조종사는 폭격기 추락 당시 죽음을 맞이해 천국으로 갔어야 했는데 영국의 짙은 안개 때문에 놓쳤던 것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조종사는 나는 그사이에 사랑에 빠졌고 이건 천국 쪽의 행정 과실이라며 항변하고, 결국 이 문제를 두고 천국에서 재판이 열린다. 이걸 보고 넋이 나가는 줄 알았다. 진짜로? 아직 자국을 전화(戰火)로 불태운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동맹국과의 우호 증진을 목표로 영화를 기획하면서 이렇게 테크니컬러로 화려하게 물든 환상-로맨스-법정 영화를 떠올릴 수 있는 창작자가 얼마나 있을까?

〈삶과 죽음의 문제〉


그 뒤 EBS를 통해 만났던 두 편의 영화도 마찬가지. 〈캔터베리 이야기A Canterbury Tale, 1944[각주:4]는 제목 그대로 제프리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를 인용하면서 시작하는데, 배경은 1943년이다. 캔터베리 인근 마을 기차역에서 세 주인공이 내린다. 캔터베리 인근에 주둔한 부대에 재배치 된 영국 군인, 지역 농사를 거들러 온 농업 지원 여성회 회원, 캔터베리에서 내려야 하는데 잘못 내린 미국 군인. 이 지역에서는 최근 여자들의 머리에 풀을 묻히고 도망가는 범행이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는데, 농업 지원 여성회 회원도 범행의 피해자가 되면서 세 사람은 의기투합, 캔터베리로 가는 길에 사건을 수사하기로 한다. 영화는 이 발랄한 소동극을 핑계 삼아 파웰이 태어난 켄트 지방의 전원이 지닌 아름다움을 누리면서 초서의 작품 속 순례자들이 그랬듯 캔터베리 대성당으로 향하는 순례에 나선다. 프레스버거는 훗날 이것을 자신이 참여한 영화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꼽았거니와, 전시에 군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만든 영화라고는 믿을 수 없으리만치 경쾌한 이 영화는 두 사람의 사적인 작품이기도 했다.[각주:5]

〈캔터베리 이야기〉


그리고 정말 얼이 빠지는 영화가 〈북위 49도선49th Parallel, 1941〉.[각주:6] 이 영화는 아예 공보처와 협력하여 만든 진짜배기 선전 영화다. 그런데… 주인공들이 나치야! 후대에 나온 독일군이 주인공인 제2차 세계대전 영화들이 곧잘 그렇듯 '진짜 나쁜 놈들은 골수 나치들이고 우리의 주인공들은 그저 안팎으로 치이고 사는 불쌍하고 명예로운 독일 군인들일 뿐' 같은 태도를 취하지도 않는다. 그냥 나치들이다. 주인공은 대서양의 적국 선박을 침몰시키는 임무를 수행 중이던 U보트 승무원들. 그들이 물자를 조달하기 위해 캐나다 해안에 상륙한 사이, 폭격기가 지나가면서 U보트를 침몰시켜 버린다. 적국 캐나다 영토에 남게 된 이 나치들은 국경을 넘어 당시에는 아직 참전하지 않은 중립국이었던 미국으로 탈출하기로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캐나다 시민들과 조우하면서 한 명씩 무력화된다. 나치들이 나쁘다는 건 뚜렷하고, 그들이 만나는 캐나다 시민들이 선전용 이념을 설파하는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123분에 달하는 영화 내내 어쨌든 서사를 이끄는 시선의 주인공은 나치들이며, 파웰/프레스버거는 애국 시민이기 이전에 훌륭한 이야기꾼들답게 이 나치들에게 개성을 부여한다. 극영화에서 시선의 초점이 얼마나 결정적인지 안다면 파웰/프레스버거가 얼마나 용감무쌍한 짓을 했는지 이해할 것이다. 당연히 이 영화도 나치에게 동정적이라며 비판받았다.

〈북위 49도선〉


〈뒤쪽 작은 방The Small Back Room, 1949[각주:7]은 전쟁이 완전히 끝난 뒤에 만든 작품이지만, 역시나 파웰/프레스버거가 만든 전시를 배경으로 하는 군인 영화는 뭔가 달라도 다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군/민간 합동 연구단체 소속 폭발물 전문가. 그가 독일의 영국 본토 폭격 이후 새로 등장한 지연식 위장 폭탄을 해체하는 것이 중심 사건이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흥미롭지만, 영화는 그뿐만 아니라 (아마도) 전쟁의 상흔을 몸에 지니고 살아가는 피해자의 전쟁 후유증, 알코올 의존증, 조직 내 여성 혐오, 수치를 믿는 과학자가 조직 사회의 정치 안에서 겪는 고통스럽고 우스꽝스러운 난관 등을 두루 건드린다. 거기에 필름 누아르를 방불케 하는─사실 이것도 일종의 필름 누아르 아닌가?─표현주의적 스타일을 내세우는 명장면도 있고,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시청각 정보의 분산을 통해 서스펜스와 뭉클함을 동시에 안기는 빼어난 폭탄 해체 장면 안에 이전까지 쌓아온 모든 감정을 응축시켜 터뜨린다.

〈뒤쪽 작은 방〉


이런 파웰/프레스버거의 영화 덕분에 나는 전시를 배경으로 군인이 주인공인 영화가 전투와 승패, 비참한 죽음과 생존이라는 영광에 관한 영화이리라는 생각이 고정관념이었음을 배웠다. 정말 훌륭한 창작자들은 가장 가혹한 순간, 가장 극단적으로 이념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에서도 놀랍도록 자유롭고 복합적인 작품을 빚어내곤 한다는 것도. 심지어 적극적으로 이념을 설파하려고 작정하고 만든 작품에서조차.

덕분에 전쟁 영화에 대한 거부감이 많이 줄였고, 특히 (전시) 선전 영화에 관해서는 무척 흥미를 갖게 됐다. 이건 고전기 할리우드 영화의 애호가들이 해피 엔딩을 무작정 믿지 않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과도 비슷하다. 고전기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 안에서 해피 엔딩은 이전까지 제기했던 문제들이 어쨌든 봉합됐다고 얼버무려주기를 바라는 산업적 조건/제약인 경우가 많았다. 어떤 이들은 강요된 해피 엔딩을 어떻게든 부드럽게 합리화하여 이음매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갈고 닦았다. 어떤 이들은 해피 엔딩을 받아들이되 윙크를 던지며 다툼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암시했다. 어떤 이들은 절대 가능할 리가 없는 수준의 해피 엔딩을 말 그대로 붙여만 놓아 누구나 그 균열을 알아보고 스스로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게 했다. 물론 끝내 해피 엔딩을 거부한 이들도 있었다.

파웰/프레스버거 이후에 만나게 된 각종 선전 영화의 이념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카사블랑카Casablanca, 1942〉는 이것이 일종의 선전 영화라는 사실을 인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선전성과 서사를 결합했다. 프리츠 랑의 반(反)나치 영화들은 적극적으로 나치에 반대하고 사람들을 찬양하고 독려하고자 하는 의도가 뚜렷하지만, 랑은 그럴 때조차도 제 버릇 못 버리고 이쪽과 저쪽을 모두 하나의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결절처럼 은밀히 배치하여 마치 피아가 동일한 존재인 것처럼 그려냈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구명선Lifeboat, 1944〉 역시 감독 스스로는 적극적으로 나치에 맞서고자 만든 영화라고 주장하는데, 막상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좁은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아군'의 현란한 다툼에 정신이 팔려 이념 문제는 떠올리지도 못한다. 미하일 칼라토초프의 영화들은 소비에트 특유의 선전성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오늘날 사람들이 칼라토초프의 영화에 열광하는 것은 이념 때문이 아니라 오직 소비에트에서만 가능할 것 같은 과격하고 화려한 촬영 덕분일 테다. 심지어 〈나는 쿠바Soy Cuba, 1964〉 같은 영화는 빈곤한 서사가 이루지 못한 선전성을 그 촬영에서 전해지는 노동력이─이것이 인민의 영화다!─대신 채워주고 있다는 생각마저 드니까. 이만희의 '반공 영화' 〈암살자1969〉는 차라리 〈사무라이Le Samouraï, 1967〉, 〈포인트 블랭크Point Blank, 1967〉, 〈살인의 낙인殺しの烙印, 1967〉 옆에 갖다 둬야 할 장르의 유령을 다룬 실존주의 아방가르드 스릴러 같다. 우수반공영화상까지 받은 임권택의 〈짝코1980〉는 남북문제를 다룬 가장 풍요롭고 야심 찬 한국 영화다. 반공 우익 소설가 선우휘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임권택의 〈깃발 없는 기수1979〉와 유현목의 〈불꽃1975〉 역시 도저히 단순한 우익 반공 영화로는 보이지 않으며, 각각 전자는 〈택시 드라이버Taxi Driver, 1974〉, 후자는 〈인간의 조건人間の條件, 1959-1961〉이 떠오르는 영화들이다. 최근의 사례라면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제작한 인권 영화들은 어떨까? 정지우의 〈4등2015〉은 국가 기관에서 제작을 맡은 공익영화라는 정보에서 느껴지는 뻣뻣한 인상을 가볍게 뛰어넘는다. 강이관의 〈범죄소년2012〉 역시 마찬가지인데, DJUNA가 엔터미디어 칼럼에서 이 영화를 이야기하면서 어떤 영화를 비교 사례로 들었게?

생각을 포기하고 파괴와 냉소 혹은 낄낄거림으로 일관하는 영화들, 혹은 하나의 얄팍한 신념에 도취하여 시시한 비유와 상징을 내세우면서 짐짓 속 깊은 정치 영화인 양 젠체하는 영화들을 보고 체했을 때는 이런 속 깊은 '선전 영화'들이 해독제가 된다. 부디 "마이클 파웰 & 에머릭 프레스버거 특별전"을 통해 그 효험을 맛보는 관객이 많기를 바란다. 특히 예전의 나 같은 편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을 극복하고 새로운 즐거움을 찾는 계기로 삼을 수 있으면 좋겠다. 이번에 상영하는 아홉 편 중 두 편은 내가 못 본 영화다. 나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여객선 선장이 밀수를 감시하던 영국 군함의 조사를 받기 위해 영국에 체류하다가 도시가 정전된 와중에 스파이로 의심되는 여자와 만난다는 〈밀수품Contraband, 1940〉과 네덜란드 근처에 불시착한 영국군 폭격기 승무원들이 레지스탕스의 도움을 받아 나치의 감시를 피해 탈출하려 한다는 〈아군 비행기가 실종됐다One of Our Aircraft is Missing, 1942〉가 무지하게 궁금하다.



  1. 그러고 보니 웨스 앤더슨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를 떠올리게 하는 데가 있다. [본문으로]
  2. 혹시 그래도 결국 노인 추억팔이 영화가 아닐까 걱정된다면,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남성 노인들에게 냉정하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울 DJUNA가 별 네 개 만점에 별 넷을 부여했다는 사실을 참고해도 좋겠다. [본문으로]
  3. 이 인물이 전시에 영국에서 거류 적국인(enemy alien)으로 분류되어 냉대 당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에머릭 프레스버거는 헝가리 출신에다 망명 전에는 독일의 우파 스튜디오에서 각본가로 활동했기 때문에 실제로 영국 내 거류 적국인으로 분류됐다. 심지어 아래에 이야기할 〈북위 49도선〉 촬영 당시에는 캐나다에 갔다가 구금되기까지 했다. [본문으로]
  4. 이번 특별전에서는 상영되지 않는다. [본문으로]
  5. 영국의 원초적인 자연 풍경과 문화에 대한 파웰의 애호는 프레스버거와 만나기 전에 만들었던 〈세상의 가장자리〉에서도 잘 나타나고, 이 작품은 다시 〈캔터베리 이야기〉 이후에 만든 〈내 갈 길은 내가 알아요!〉와 연결된다. [본문으로]
  6. 이번 특별전 상영 제목은 "침입자들". 미국 개봉 제목이다. [본문으로]
  7. 이번 특별전 상영 제목은 "좁은 밀실". [본문으로]
Posted by 거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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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5.12 12: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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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어제부터 개관 15주년을 맞이하여 "마이클 파웰 & 에머릭 프레스버거 특별전"을 진행 중이다. 21일까지. 일단 내가 선호하는 제목들이 따로 있으므로 정리.

1940 밀수품 (Contraband; 콘트라밴드)
1941 위도 49도선 (49th Parallel; 침입자들)
1942 아군 비행기가 실종됐다 (One of Our Aircraft is Missing; 비행기가 사라졌다)
1943 블림프 대령의 삶과 죽음 (The Life and Death of Colonel Blimp)
1946 삶과 죽음의 문제 (A Matter of Life and Death)
1947 검은 수선화 (Black Narcissus; 흑수선)
1948 빨간 구두 (The Red Shoes; 분홍신)
1949 뒤쪽 작은 방 (The Small Back Room; 좁은 밀실)
1960 피핑 톰 (Peeping Tom)

나도 두 작품 번역했다. 〈블림프 대령의 삶과 죽음〉, 〈뒤쪽 작은 방〉. 둘 다 좋아하는 작품들이라 기뻤다. 〈뒤쪽 작은 방〉은 나서서 하겠다고 했고. 하지만 관객으로서 극장을 찾을 수는 없을 듯하다. 서러워라. 스펙트럼 디브이디에서 출시한 DVD 박스 세트를 통해 파웰/프레스버거 팬이 된 지 12년째인데, 이 정도 규모의 단독 특별전은 그동안 한 번도 열린 적이 없었던 것으로 안다. 21세기 통틀어 한국의 시네마테크에서 파웰/프레스버거 영화가 상영된 사례는─

- 2003년 8월 시네마테크 부산, 서울아트시네마 "영국영화주간 - 데이비드 린과 마이클 파웰 특별전" :
    〈삶과 죽음의 문제〉, 〈검은 수선화〉, 〈빨간 구두〉
- 2005년 6월 필름포럼 "보는 것의 영광과 퇴폐" : 〈피핑 톰〉
- 2006년 7~8월 시네마테크 부산 "B급 호러 영화 파티" : 〈피핑 톰〉
- 2010년 9월 제4회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 : 〈빨간 구두〉
- 2013년 3~4월 시네마테크 부산 "월드 시네마 X" : 〈블림프 대령의 삶과 죽음〉
- 2014년 11~12월 광주극장 "영국 고전영화 특별전" : 〈세상의 가장자리〉
- 2015년 7~8월 서울아트시네마 "2015 시네바캉스 서울" : 〈내 갈 길은 내가 알아요!〉
- 2015년 9월 영화의 전당 "가을산책 – 유럽 영화의 오솔길" :
    〈바그다드의 도둑〉, 〈내 갈 길은 내가 알아요!〉, 〈삶과 죽음의 문제〉, 〈검은 수선화〉, 〈빨간 구두〉
- 2016년 1~2월 서울아트시네마 "2016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 〈호프만 이야기〉
- 2016년 6월 한국영상자료원 "발굴, 복원 그리고 초기 영화로의 초대" : 〈호프만 이야기〉

─정도가 전부 아니었나. 언뜻 보기엔 자주 상영했던 것 같지만 2003년에 데이빗 린 영화랑 묶었을 때랑 2015년에 다섯 편 상영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한 편씩만 상영했다. 파웰/프레스버거는 시네마테크 관객들이 즐겨 입에 올리는 이름도 아니고 영화사의 정전 속에서 뚜렷한 위치를 점한 이들도 아니므로[각주:1] 이번 특별전 반응이 시원찮으면 아마 앞으로 다른 기회를 만나기도 쉽지는 않겠지.

이번 상영작 아홉 편 중 일곱 편은 전에 보았으며 모두 DVD나 Blu-ray로 가지고 있지만, 극장에서 본 영화는 〈빨간 구두〉와 〈피핑 톰〉뿐이다.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에서 친구들과 더불어 〈빨간 구두〉 복원판을 보았을 때의 감격을 잊지 못하는 나로서는 이 기회를 누리기 어렵다는 사실이 크나큰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더구나 파웰/프레스버거 영화는 테크니컬러의 활용으로도 유명하고, 〈검은 수선화〉나 〈피핑 톰〉의 복원된 색채가 스크린 위에서 얼마나 현란한 빛을 발할지 짐작할 수 있으니만큼 더더욱. 보지 못한 영화는 물론이고 〈빨간 구두〉를 포함해 이미 본 영화, 복원판 Blu-ray 갖고 있는 영화도 극장에서 다시 보고 싶구나.

제발 관객 좀 들면 좋겠는데 아마 어렵겠지… 1960년 이전의 영화들에 대한 보편적인 거리감을 어떻게 줄일 수 있을지 모르겠다.



  1. 예를 들어 분류의 타당성이야 어쨌든 에릭 로메르가 누벨바그 감독으로 분류되고, 존 포드가 고전기 할리우드 감독으로 인식되며, 나루세 미키오를 호명하면 쿠로사와 아키라, 미조구치 켄지, 오즈 야스지로가 함께 딸려나오는 것과 달리, 파웰/프레스버거는 이렇다 할 흐름 안에서 소개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들은 동시대의 영국 영화계에서도 얼마간 아웃사이더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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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청정기 주문했다. 꽤 비싼 거로 골랐는데, 1년에 얼마나 자주 쓸지도 알 수 없는 물건인 것치고는 고민도 별로 안 했다. 며칠 동안 대기질이 최악에서 아주 나쁨 사이를 오가면 대체 환기는 언제 하란 말인가. (그래도 어제 하루종일 갇혀 살았더니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아침에 잠시 하기는 했다. '최악'은 아니었으니까… 나원.) 이번에는 쓸 수 없겠지만, 화요일에 잠시 좋아졌다가 또 다시 나빠진다니 조만간 성능을 확인할 수 있겠지.

미세먼지 상황이 어떻든 프로야구는 계속하고 있다. 당장 경기를 중단하지는 못하더라도 심한 날은 중단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논의는 하고 있는 걸까. 기사를 검색해 보니 매년 봄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기사만 몇 개 나오고 유야무야 넘어간 모양인데. 2017년 KBO 규정집에 따르면

제27조 황사경보 발령 및 강풍, 폭염시 경기취소 여부
 1. 황사특보 발표기준
  - 황사주의보:황사로 인해 1시간 평균 미세먼지 농도 400㎍/㎥ 이상이 2시간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
  - 황사경보:황사로 인해 1시간 평균 미세먼지 농도 800㎍/㎥ 이상이 2시간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
 2. 황사경보시 경기취소 관련
  - 경기개시 전:해당 경기운영위원이 경기개시 3시간 전에 지역 기상청(기상대)으로 확인 후 경기관리인과
   협의하여 구장 상태에 따라 취소 여부를 결정한다.
  - 경기개시 후:해당 경기운영위원이 지역 기상청(기상대)으로 확인 후 심판위원 및 경기관리인과 협의하여
   구장 상태에 따라 취소 여부를 결정한다.

란다. 그럼 황사 경보, 즉 1시간 평균 미세먼지 농도 800㎍/㎥ 이상이 2시간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만 경기 취소를 검토한다는 거야? 대체 이 기준은 어디서 나온 걸까. 무슨 생각인 걸까. 관중은 안 가면 그만이라고 치고, 선수단의 건강은 누가 책임지나. 만약 선수협이 이 문제로 파업하게 된다면 적극 지지하련다.

물론 야구는 한 예에 불과하다. 절대 외출하면 안 되는 수준이라지만 이 나라에 전혀 외출하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은 얼마나 될까. 중국 욕이야 실컷 하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은 근본적인 해결이고, 당장 조금 더 나은 근무 환경이라도 조성하고자 하는 사용자는 얼마나 될까. 가령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라면 이 문제 때문에 촬영을 미룰 수 있을까. 뭐 그런 생각들을 자꾸 하게 된다.
Posted by 거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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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은 프랑스의 영화감독 장-피에르 멜빌이 탄생한지 100주년이 되는 해다. 덕분에 세계 각지에서 멜빌 회고전이 열리고 있거나 앞으로 열릴 계획이라고 들었다. 뉴욕의 대표적인 고전 영화관 필름 포럼에서도 곧─어라, 오늘부터!─멜빌 회고전이 열린다. 이를 맞이하여 잡지 《뉴요커》 소속 영화 평론가인 앤소니 레인이 멜빌 회고전을 소개하는 제법 긴 글을 썼기에 여기에 소개한다. 멜빌의 전기적 사실과 영화 세계를 연관 지어 조망하면서 호객하는 소개글로, 멜빌의 영화를 본 사람과 보지 않은 사람 모두 즐길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희미하게 들리는 소문으로는 올해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서도 다시 한 번 멜빌 회고전을 할 계획이 있다니 몇 달 앞서 미리 분위기를 띄우는 글이라고 생각해도 좋겠다.

(뉴욕의 칼럼니스트들이 지역 극장에서 상연/상영하는 공연/영화를 소개 겸 비평하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신기하고 부럽다. 심지어 알렉산더 맥켄드릭 감독의 악랄한 필름 누아르 〈성공의 달콤한 냄새Sweet Smell of Success, 1957〉에는 그런 역할을 이용해 연예계뿐만 아니라 정계까지 쥐락펴락하는 막강한 권력을 소유한 뉴욕의 칼럼니스트도 등장한다.)


장-피에르 멜빌의 저항의 영화들



조만간 필름 포럼에서 있을 장-피에르 멜빌 회고전에 참석할 때는 다음과 같이 하시라. 아무에게도 당신이 무엇을 할 것인지 말하지 말 것. 사랑하는 사람들조차―특히 사랑하는 사람들이―모르게 할 것. 담배와 대화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담배를 선택할 것. 옷은 잘 차려입되 과시하지는 말 것. 비가 오거나 말거나 레인코트를 입고 단추를 잠그고 웨이스트 벨트를 두를 것. 필요할 때가 아니라면 리볼버는 어떤 종류가 됐든 코트 주머니 안에 넣을 것. 끝으로, 집을 나서기 전에 모자를 쓸 것. 모자가 없으면 나갈 수 없다.

멜빌은 약 1백 년 전인 1917년 10월 20일에 태어났다. 탄생 백 주년을 축하하는 회고전이 4월 28일부터 시작해 5월 11일까지 계속되며, 이후 일주일간 장-폴 벨몽도가 주연을 맡은 〈레옹 모랭 신부Léon Morin, prêtre, 1961〉가 상영된다. (한 해 전에 개봉한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À bout de souffle, 1960〉 덕분에 당시 벨몽도는 현존하는 가장 쿨한 프랑스인이었는데, 그래서 멜빌은 그를 어떻게 했을까? 빳빳한 칼라와 검은 수단을 입혔지.) 뉴욕을 시작으로 여러 도시를 순회할 이번 영화제의 상영작은 장편 열두 편과 단편 한 편. 빠진 작품은 단 하나, 〈페르쇼 가의 장남L'aîné des Ferchaux, 1963〉이라는 희귀작뿐이다.

멜빌은 다작과는 거리가 멀었고, 1973년 심장마비로 찾아온 죽음은 너무 일렀다. 그의 나이 겨우 쉰다섯. 하지만 그는 많지 않은 작품을 만든 대신 그중 상당수를 보석으로 빚어냄으로써 이를 벌충했다. 그 보석들을 한데 엮으면 갖고 싶어 죽을 만한 목걸이가 완성된다. 〈도박꾼 봅Bob le flambeur, 1956〉에서 아내에게 기쁨을 안겨주고 싶어 안달인 장이라는 이름의 딜러(클로드 세르발)가 아내의 베개에 여봐란듯이 놓아두는 목걸이 같은. 그녀는 그걸 보자마자 목걸이를 살 돈이 어디서 났느냐고 묻는다. 이어지는 대화는 볼 수 없지만, 볼 필요도 없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으니까. 멜빌의 세계에 있는 모든 비탈은 미끄럽고, 몇몇은 치명적이기까지 하다.

장이 근무하는 도빌 카지노의 금고에 팔억 프랑이 들어있다는 소문이 돌고, 머지않아 강탈 계획이 시작된다. 그는 내부에서 협력하기로 하고 미리 수고비를 받지만, 이를 자질구레한 장신구를 사는 데에 허비한다. 고전적인 실수다. 작은 행동이고, 대개 의도는 좋지만, 그것이 게임을 망친다. 마찬가지로 전시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고난을 다룬 〈그림자 군단L'armée des ombres, 1969〉의 여자 주인공은 침착하고 유능하며 용감무쌍하고 은밀하지만, 아주 작은 약점이 하나 있다. 그녀는 동료들의 조언을 거스르고 핸드백에 딸의 사진을 넣어 다닌다. 그녀를 체포한 게슈타포는 사진을 발견하고 이를 이용해 어머니 쪽에서 그들의 요구에 응하지 않는다면 딸을 동부전선의 위안부로 보내겠다고 윽박지른다. 사랑의 대가가 그와 같다.

멜빌에 관해 한 가지 알아둬야 할 사실이 있다면 그가 멜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이었다. 위장이 그토록 자연스러운 것도 당연하지. 그는 파리에 살던 알자스 지방 출신의 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고, 본명은 장-피에르 그룸바흐였다. 일찍부터 그는 필명, 혹은 카메라명을 채택했는데, 이는 그의 말에 따르면 "내가 다른 누구보다도 중요했던 한 작가, 예술가에게 나를 동화시키고 싶다는 순수한 존경과 욕망"의 발로였다. 상대는 다름 아닌 『모비 딕』의 작가. 다만 이 프랑스의 동명이인에게서 경탄을 끌어낸 것은 1852년에 출간된 멜빌의 다른 소설 『피에르, 혹은 모호함』이었는데, 그는 이 책을 가리켜 "내게 영원한 흔적을 남긴 책"이라 일컬었다. 둘 중 누가 떠올렸더라도 이상하지 않았을 특이한 제목이다.

멜빌은 여섯 살, 혹은 일곱 살의 나이에 손으로 크랭크를 돌리는 방식의 첫 영화 카메라를 선물 받았지만, 그의 어린 시절을 잠식한 것은 영화 만들기보다는 영화 보기에 대한 집착이었다. 낮만큼이나 밤에도 영화가 가득했다. 그는 아침 아홉 시에 극장에 가서 새벽 세 시에야 나왔던 일을 기억했다. 혹은 기억하기로 했거나.

십 대 시절 그는 거친 무리들과 어울렸고, 그러다 군 복무가 찾아왔다. 그는 1937년 10월 육군에 징집됐고, 전쟁이 시작됐을 때도 군에 있었다. 1940년, 그는 됭케르크에서 영국으로 퇴각했다. 프랑스로 돌아간 그는 남부의 레지스탕스에 합류했다. 세부사항은 불명료하지만, 그가 자유 프랑스군 소속으로 처음에는 북아프리카에서 있었고 이후에는 이탈리아와 프랑스 해방 작전에 참여했음은 확실하다. 멜빌의 인터뷰에서는 이따금 뿌연 안개를 뚫고 선명한 회상이 터져 나온다.

"1944년 3월 11일, 정확히 오전 다섯 시 정각, 나는 카시노 아래에 있는 가릴리아노 강을 건넜습니다. 선봉대에 속해 있었지요. 산 아폴리나레에서 미군 촬영반 소속 카메라맨 하나가 우리를 찍었습니다. 촬영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까불었던 기억도 납니다. 마을 한쪽 끝에는 아직도 독일군이 있었고, 나폴리 라디오 방송에서는 해리 제임스의 '트럼펫 랩소디'가 흘러나왔습니다."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한, 혹은 영화를 만들기로 운명지어졌다고까지 할 만한 사람답다. 이 장면은 진짜 같기도 하고―우리가 그 기록의 정확성을 의심할 이유는 딱히 없다―어쩐지 연출된 것 같기도 하다. 심지어 사운드트랙마저 있지 않은가. 멜빌은 훗날 제2차 세계대전 경험이 끔찍하고 소름 끼치면서도 경이로웠다고 말했고, 흡사 그 경험의 강렬함이 앞으로 두고두고 뽑아먹을 유산이라도 되는 듯, 그 시절에 대해 놀랄 만큼의 향수를 느꼈다. 그는 영화감독은 "항상 열려 있고 항상 트라우마를 겪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으며, 프랑스 점령기의 트라우마에 관한 영화를 세 편 만들었다. 〈바다의 침묵Le Silence de la mer, 1949〉, 〈레옹 모랭 신부〉, 〈그림자 군단〉.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그의 작품 대다수는 사적인 범죄를 다루었고, 국제적 다툼보다는 내분을 다루었으며, 전후의 프랑스를 배경으로 했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무엇에 혹은 누구에게 복종할지 선택해야만 했고 때로는 그 선택을 비밀로 해야 했던 압제 하의 조국에서 직접 보고 들었던 것들로 작품 구석구석을 수놓고 있다. 영화사 속에서 자리를 따지자면, 멜빌은 마땅히 불신의 수호자라 할 것이다.

"내가 왜 고독을 선택했다고 생각합니까? 사람들과의 거래는 위험합니다. 내가 찾은 배신을 피할 유일한 방법은 혼자 사는 것뿐입니다."

그는 1971년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마치 전쟁이 끝난 적 없다는 듯이. 같은 맥락에서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우정이란 무엇일까요? 한밤중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친구여, 총 챙겨서 빨리 이쪽으로 와주게.’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정말 그런가?

멜빌의 독특한 습관은 그의 직업적 경력으로까지 이어졌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 직업이라는 것이 배우와 스태프를 요하며 자금을 마련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 직업이었으니만큼. 1945년 10월 동원 해제된 그는 다음 달에 자신의 제작사를 설립했다. 부분적으로는 공산주의자들의 수가 압도적이었던 기술자 조합이 그를 조합에 가입시켜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바다의 침묵〉은 다음과 같은 장대한 오프닝 로고로 시작한다. "멜빌 프로덕션." 2년 후, 그는 파리의 한 음침한 거리에 자신의 스튜디오를 건설했다. 방음 스테이지 둘, 편집실 둘, 의상실 하나, 영사실 하나. 그는 점점 더, 그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작품 중심적"으로 변했고, 모든 것이 자신의 작품을 중심으로 돌아가야 하며 "일상의 과도한 무질서는 모든 창조력의 가능성을 차단한다"고 믿었다. 그는 스튜디오 위층에서 플로렌스 웰시라는 여자와 함께 살았는데, 그녀는 1952년에 그와 결혼하여 죽을 때까지 함께했다. 아이는 없었고 고양이가 셋 있었다.

〈바다의 침묵〉에서 우리가 처음 보게 되는 것은 햇살 가득한 거리를 걷는 한 남자의 모습이다. 슈트케이스를 든 그는 가방을 다른 남자 곁에 내려놓은 뒤 지나쳐 사라진다. 둘 사이에 말은 오가지 않는다. 밀수업자, 아니면 스파이? 두 번째 남자가 가방을 열고 안에 든 옷을 들춰내자, 가방 바닥에 책 한 권이 있다. 베르코르의 『바다의 침묵』이다. 멜빌은 전시에 사람들이 몰래 돌려 읽었던 이 소설을 영화로 각색했다. 이제 오프닝 크레딧이 뜬다. 얼마나 스타일리시한가? 멜빌이 만든 첫 장편 영화의 시작이 그러했으니, 거기에는 이미 그의 손길이 선명하다.

〈바다의 침묵〉의 거의 모든 장면은 어느 프랑스 시골에 사는 노인과 조카의 집에서 벌어진다. 독일군 장교 하나가 임시로 그들과 함께 기거한다. 장교는 교양 있는 사람이며 열정적인 프랑스 애호가로 밝혀진다. 매일 저녁, 그는 일어나 난롯가에 앉은 두 사람에게 자신의 관심, 과거, 문명을 위한 희망을 이야기한다. 노인은 파이프를 피우고, 젊은 여자는 바느질을 하며,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맨 마지막 순간, 천사상의 클로즈업과 함께, 그녀가 한마디 작별인사를 건넬 때 외에는. 잉마르 베리만도 〈페르소나Persona, 1966〉에서 비슷한 곤경을 구축한다. 거기서는 한 간호사가 침묵을 지키는 환자가 만든 공허를 채우려는 듯 무력하게 수다를 늘어놓는다. 하지만 베리만의 충돌―말의 파도가 바위를 두들기는 듯한―이 심리적인 것이라면, 노인과 조카는, 그들의 조국처럼, 포위돼 있다. 침묵이 그들의 저항이다.

〈레옹 모랭 신부〉는 한결 더 소란스럽고 분주하다. 이 영화는 전시의 한 프랑스 지방 마을을 괴롭히는 크고 작은 불화와 마찰 속에서 경련한다. 한 장면에서, 우아한 여자 주인공 바르니(엠마누엘 리바)가 적에게 협력한다고 알려진 사무실 동료의 뺨을 때린다. 바르니에게는 어린 딸이 있다. 세상을 떠난 애 아버지는 유대인이었고, 그래서 아이를 안전하게 보호하려면 서둘러 세례를 준비해야 한다. 여기서부터 우리는 과부와 호전적인 신부(벨몽도) 사이의 특이하고 영적인 언쟁 속으로 들어서는데, 그 언쟁은 멜빌이 이후에 만든 스릴러에 나오는 여느 총을 든 대치 상황만큼이나 위험으로 가득하다. 혹시 이 유려한 걸작―여성 캐릭터가 중심에 놓인 처음이자 마지막 멜빌 영화―을 이미 알고 아낀다 하더라도 이번 필름 포럼 상영을 다시 찾으시기를. 11분에 달하는 추가 장면이 복원됐고, 그중 대부분은 점령기의 윤리적 고통을 공공연히 다룬다. 바르니는 레지스탕스의 즉결심판 대상이 된 친구를 밀고해야 할까? 자신의 목숨을 걸고 도주 중인 가족을 위해 배급카드를 모아야 할까? "저는 초인종이 울려도 절대 대답하지 않아요. 게슈타포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녀가 모랭에게 말한다.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하지만 당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일 수도 있지요."

그와 같은 환경에서라면 가장 단순한 행동 혹은 비(非)행동에 대한 선호조차 정치적 의도로 충만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침공한 독일군에 맞서 싸우지도 않고 공식적으로 협력하지도 않은 프랑스인들은 관망주의, 즉 두고 보자는 정책을 채택했다고들 일컬어지는데, 비시 정부 초기의 페탱 원수가 그 예다. 그처럼 그저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위기를 초래한다면(역시 점령기 프랑스에서 거주했던 새뮤얼 베케트가 잘 알았던 것처럼), 인내에 담긴 도덕적 가치나 지연(suspense)이 지니는 극적 가치는 어떻게 되는가? 히치콕을 제외하면 멜빌처럼 이러한 근심을 깊이 파고든 감독은 없다. 게다가 히치콕과 달리 멜빌은 그러한 행동들이 심각한 위기의 시대에 자기 주변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직접 목격했으며, 그렇기에 그의 가장 훌륭한 영화들은 고통스러우리만치 정밀하게 시간에 맞춰 흘러간다. 그는 우리와 게임을 벌이지 않는다. 그는 우리를 맷돌에 갈아 넣는다.

심잡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필름 포럼으로 가기 전에 심장 전문의와 상담할 것을 권한다. 멜빌의 영화는 신경을 요하니까. 〈바다의 침묵〉 속 평온한 응접실에서 째깍거리는 괘종시계의 소리는 20년 후 〈그림자 군단〉에서 제르비에―레지스탕스의 그림자를 밝히는 등대 같은 인물로, 비교를 불허하는 배우인 리노 벤투라가 연기한다―가 호화 호텔에 자리 잡은 게슈타포 본부로 끌려갔을 때도 메아리친다. 그와 다른 용의자가 복도 구석의 대기실에 앉고, 곁에는 독일군 보초가 서 있다. 시계 소리가 들린다. 우리는 이것이 제르비에의 마지막 기회임을 안다. 이 기회를 반드시 붙잡아야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 기다리며 두고 볼 것. 시계 소리는 점점 더 커진다. 제르비에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공손하게 담배를 청하고, 보초의 벨트에서 칼을 뽑고, 그의 목을 찌르고, 그를 바닥에 눕히고, 문을 통과해 내달린다. 지금까지 더없이 차분하던 카메라가 속도를 올려 휘날리는 눈 속에 거리를 내달리는 그의 옆을 따라 달린다.

이 영화는 프랑스 일부 지역에서는 인기를 누리지 못했다. 우(右) 편향된 드골주의자의 작품―1960년대 후반에는 영예로운 명성은 아니었다―이라는 공격도 있었다. 분명 영화 중반, 제르비에가 런던을 방문했을 때 나오는 기묘한 막간 장면에서 드골 장군, 혹은 그를 닮은 배우가 짧게 등장하기는 하지만, 당시 드골은 망명 중인 공식 프랑스 정부의 수장이었다. 체류 도중 제르비에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 1939〉를 관람하는데, 멜빌 또한 1943년 퇴각 후 런던에 있을 때 이 영화를 보았다. 사실 그는 한 주 동안 스물일곱 편의 영화를 보았다. 그는 스크린에서 레트와 스칼렛을 바라보고 나서 며칠 후 어느 셔츠 가게에서 클라크 게이블 본인과 조우하는데, "보기도 전에 목소리를 통해 그 사람인 줄 알았고, 그는 내게 이를 번쩍이며 미소를 지어줬습니다." 멜빌은 드골주의자도, 공산주의자도, 하느님을 믿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는 스스로를, 그게 뭔진 몰라도 "무정부주의 봉건주의자"로 규정했다. 하지만 그는 영화인이었다. 신앙은 그걸로 충분했다.

멜빌의 성향을 가늠하는 방법 중 하나로 그의 연기를 관찰하는 방법이 있다. 두툼한 눈 밑에 짙은 다크 서클을 두르고 음산하면서도 느긋하게 연기하는 그는 버스터 키튼의 통통한 자식처럼 보인다. 그는 몇 차례 스크린에 출연했는데, 한 남매의 근친상간에 가까운 관계를 다룬 장 콕토의 뜨거운 원작 소설을 토대로 만든 두 번째 영화 〈무서운 아이들Les Enfants Terribles, 1950〉에 나오는 기차 식당칸에서 그의 모습을 흘끗 확인할 수 있다. 9년 후 멜빌은 〈맨해튼의 두 사람Deux hommes dans Manhattan, 1959〉에서 그보다 훨씬 더 비중있는 저널리스트 역을 맡았다. 이 영화는 그가 뉴욕에 보내는 연애편지이며, 그에 어울리는 지저분한 음악을 곁들이고 있다. 영화는 어린 시절 파리에서 영화를 보러 다니던 이래 멜빌이 미국에 진 빚, 혹은 적어도 그를 사로잡았던 미국이라는 환영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그는 바지선처럼 커다란 미국 자동차를 좋아했고, 카우보이모자를 자주 썼다.

그런 습관을 겉치레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멜빌은 게으른 변덕에는 면역이었다. 그는 자기 자신의 영화를 만들려면 영화와 미친 듯이 사랑에 빠지고 "무거운 영화의 짐"을 기쁘게 짊어져야 한다고 믿었다. 그렇기에 그는 〈밀고자Le Doulos, 1963〉의 긴 심문 장면이 펼쳐지는 경찰 사무실이 "루벤 마물리안이 〈도시의 거리City Streets, 1931〉를 만들 때 뉴욕 경찰 본부를 본따 지었던 사무실을 그대로 본딴 것"이라고 자랑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진짜 방이 1931년에 만든 한 영화 속의 방이 되었고, 그 방이 다시 30년 뒤에 다른 영화에서 똑같은 모습으로 등장했다. 왜 그냥 방을 짓지 않고? 삶을 영화 스크린을 통해 걸러진, 혹은 책장을 통해 압축된 채로 받아들이기를 고집한다면, 정말로 소비하는 삶은 얼마나 될까?

멜빌이 경력 후기에 만든 서로를 빼닮은 경찰과 강도에 관한 세 드라마 〈사무라이Le Samouraï, 1967〉, 〈붉은 원Le Cercle rouge, 1970〉, 〈형사Un Flic, 1972〉에 출연했던, 악마적으로 잘생긴 알랭 들롱의 경우를 보자. 첫 번째 영화에서 그가 연기한 제프 코스텔로는 〈청부살인자This Gun for Hire, 1942〉의 앨런 래드나 〈카사블랑카Casablanca, 1942〉의 험프리 보가트 혹은 〈과거로부터Out of the Past, 1947〉의 로버트 미첨을 빼닮은 복장과 무장을 갖추고 있다. 냉소적인 사람이라면 이 프랑스인은 영어권 선조들의 희미한 복제품에 불과하며, 스틸 몇 장만으로도 증거는 충분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을 쫓는 경찰들을 뒤에 단 채 지하철을 타고 파리를 오가는 제프를 따라가다 보면 이내 그가 자유의 땅과 얼마나 멀리 있는지 깨닫게 된다. 대로에도, 지하철에도, 보가트식 실망에 찬 낭만주의자의 으르렁거림이나 미첨의 재미있어 하는 듯한 나른함은 엿보이지 않는다. 멜빌은 프랑스의 현대사에서 교훈을―존재는 기만적이라는 교훈을―얻었고, 자신의 주인공이 단 한 순간도 그 점을 잊지 않도록 한다.

오프닝 쇼트에서 제프는 비토레 카르파초가 1945년에 발표한 유명한 그림 속에서 꿈을 꾸는 성 우르술라처럼 프레임 한쪽에 있는 침대에 누워 있다. 유일한 차이점이라면 성자는 느긋하게 지탕 담배를 피우고 있지 않다는 점뿐. 마침내, 편안하게 누워있던 제프가 일어나 코트를 걸치고 회색 모자를 쓴 뒤 거울 앞에 서서 손가락으로 모자 앞챙을 훑으며 날카로운 인상을 가다듬는다. 이건 허영이 아니다. 그 날카로움은 칼날과 같고, 이는 그의 존재와 실력이 가장 예리하고 가장 이득이 되는 순간을 포착하여 환경 속을 갈라 들어가리라는 보증이다. 제프는 청부 암살자이며, 오늘 그에게는 처리해야 할 상대가 있다.

살인자들뿐만 아니라 멜빌의 주인공 대다수가 거울 앞에서 공들여 자신의 모습을 확인한다. 〈밀고자〉의 중심에 위치한 폭력배는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거울 앞에서 자신의 상을 마주하고 기울어진 모자를 바로잡는다. 그가 바닥으로 쓰러지자 모자가 미끄러져 굴러간다. 가장 멋진 예로는 〈도박꾼 봅〉에서 활보하는, 더 나이 들었지만 활력 넘치는 신사 봅 몽타뉴(로제 뒤센)가 있다. 그 역시 걸음을 멈추고 체경을 들여다보며 깔끔하게 빗어 올린 은빛 머리카락을 가다듬는다. 그는 서랍을 열더니 가슴주머니에 꽂을 빳빳하게 다린 하얀 손수건과 리볼버―강도질을 할 참이니만큼 가져가면 유용할 도구―중에서 어느 것을 선택할까 망설인다. 그는 손수건을 집는다.

"flambeur"란 도박사를 뜻하며, 봅은 판세를 가늠하거나 게임에 끼지 않고서는 도박판 앞을 지나치지 못한다. 그의 아파트에 있는 벽장 문을 열면 개인용 슬롯머신이 나온다. 드라큘라처럼, 그는 낮에 자고 밤이면 살아나 베팅이라는 피를 갈구한다. 이 영화가 몽마르트와 피가유의 가로등이 꺼져 가는 황홀하고 슬픈 새벽에서 시작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회색빛 어스름을 담아낸 촬영을 맡은 것은 앙리 드카에로, 그는 멜빌의 영화들뿐만 아니라 루이 말의 〈교수대로 가는 엘리베이터Ascenseur pour l'échafaud, 1958〉와 프랑스 누벨바그의 상징인 프랑수아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Les Quatre cents coups, 1959〉도 촬영했다. 멜빌은 때로는 누벨바그의 대부로 칭송받지만, 그는 그러한 명예를 일축했고, 그 이유는 분명하다. 수많은 거울이 등장함에도, 그의 영화는 누벨바그의 자기반영적인 분위기와 번뜩이는 재치를 결여하고 있으며, 애절한 농담을 경계한 채 고전적인 의도를 따라 활동한다. 멜빌은 그 자신의 주인이 되어야만 했다. 그렇더라도 〈네 멋대로 해라〉에서 선글라스를 쓰고 기자들을 만나는 파르불레스코라는 이름의 작가로 등장한 멜빌의 카메오는 소중하다. "당신의 삶에서 가장 큰 야망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은 그는 선글라스를 벗고 이렇게 대답한다. "불멸에 이른 다음, 죽는 것입니다."

현재까지 그 계획은 잘 들어맞고 있다. 멜빌의 금욕적인 영화들은 첫 작품부터 마지막 작품에 이르기까지 다른 누구의 작품과도 유사해 보이지 않는다. 그는, 그 자신의 말을 빌리자면, "자기 팔레트에서 같은 색을 사용하는 같은 사람"으로 남아있다. 그런 맥락에서 그는 누벨바그의 기준으로 작가의 자격을 이루는 한 가지 조건을 충족시킨다. 그의 스타일을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그에게는 열렬한 팬과 모방자 들이 있으며, 이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저수지의 개들Reservoir Dogs, 1992〉이 증명할 수 있다. 하지만 멜빌의 스타일은 그의 실체와 하나였다. 딱딱하고, 차갑고, 환상 없고, 하지만 참으로 위풍당당한 모습을 과시하는 그의 실체는, 예상과는 달리 즐거움을 안겨준다. 회고전이 열리리라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그는 틀림없이 기뻐했으리라. 비록 그 안의 회의주의자는 경악했을지 몰라도.

"50년 뒤에 나의 무엇이 남아있을지 모르겠군요. 모든 영화가 끔찍하게 나이를 먹을 테고 아마 영화가 더는 존재하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내 예상에 따르면 영화는 2020년쯤 최종적인 소멸을 맞이할 것이며, 50년 뒤에는 텔레비전밖에 남지 않을 겁니다."

여러분은 경고를 들었다. 적들이 다가오고 있다. 저항자들이여, 일어나라! 웨스트 휴스턴 스트리트에 있는 필름 포럼으로 가자! 친구여, 총을 챙기고, 가세나.

〈레옹 모랭 신부〉의 새 복원판이라고 해서 깜짝 놀라 찾아보았더니 정말 정말 새 복원판이었다. 그러니까, 2011년에 미국 크라이테리언에서 블루레이를 출시한 이후에 추가로 복원한 판본이었다. 크라이테리언 블루레이의 상영 시간은 117분인 반면 필름 포럼 회고전에서 상영하는 〈레옹 모랭 신부〉는 130분. 이런. 그러고 보면 크라이테리언이 잠시 가지고 있었던 멜빌 영화 판권이 스튜디오 카날로 돌아간 뒤에는 멜빌 영화의 블루레이 출시가 뜸한데, 탄생 백 주년을 맞이해 변화가 생기기를 염원한다.

글 말미에 타란티노의 〈저수지의 개들〉에 미친 멜빌의 영향에 관해 거론했는데, 필름 포럼에서는 〈레옹 모랭 신부〉 상영이 끝난 뒤 5월 19일부터 6월 1일까지 2주 동안 〈저수지의 개들〉도 상영한다. 타란티노에게 멜빌이 영향을 미치기는 했어도 타란티노의 영화 스타일은 멜빌의 영화 스타일과 많이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여하간 언제나처럼 매력적인 프로그래밍이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멜빌 회고전을 한다면 이번에야말로 〈그림자 군단〉 자막 좀 고치자고 탄원해볼까…


Posted by 거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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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앤쵸비피자 2017.04.29 01: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추가복원판〈레옹 모랭 신부〉라니 이렇게 반가울 데가 없네요. 게다가 멜빌의 영화에는 자막도 달려 나올테니 저희 학교에서든 시카고에서든 회고전만 해준다면 달려가고 싶습니다.

    • 거시다 2017.04.29 11: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곳 시네마테크는 주요 복원작은 어지간해서는 놓치지 않던데, 당연히 상영해주겠죠? 필름 포럼 규모까지는 아니더라도 멜빌 회고전을 해줄지도요. 올 상반기 프로그램도 굉장하던데요.

    • 앤쵸비피자 2017.04.30 09: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이번엔 꽤 여러 편 봤는데 만족스러웠습니다. 곧 여름 프로그램 발표라 기대중이에요. 이러다 제가 한국 가는 시기(아직 날짜는 미확정입니다만...)에 멜빌 틀어주면 날벼락인데 말이죠.

최근에 즐겨 듣는 모 영화 팟캐스트의 최신화에서 이 단편 소설을 소개받는 순간, 청취를 멈추고 냉큼 찾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전문을 확인한 뒤에는 영화를 좋아하는 지인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다.

SF/환상 소설가 팀 프랫이 쓴 이 단편은 《아시모프》 2006년 7월호에 게재되었으며, 2007년 휴고 단편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나는 SF 팬이 아니라 영화 애호가의 마음으로 이 작품을 옮겼고, 아마 작가의 마음도 그쪽으로 좀 더 기울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팀 프랫의 작품 중에는 단편 「작은 신들」이 지금은 절판된 장르 문학 잡지 《판타스틱》 2007년 6월호에 번역 소개된 바 있다.


불가능한 꿈



피트가 처음 그 비디오 가게를 발견한 것은 어느 날 저녁 고전 영화관에서 〈소유와 무소유〉를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였다.

피트는 인도에 멈춰 서서 고개를 기울이고 이맛살을 찌푸리며 조야한 기념품점과 빵집 사이에 낀 좁다란 가게를 바라보았다. 출입문으로 다가가 안을 들여다보니 벽을 따라 옛날 영화 포스터와 DVD 및 VHS 테이프 진열장이 있었고, 한쪽 벽에는 대형 TV가 있었다. 출입문에는 "불가능한 꿈 비디오"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는데 유리에 낀 얼룩으로 보아 영업한 지 제법 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럴 리 없었다. 피트는 카운티 내의 비디오 가게라면 대형 체인점에서부터 영화학과 학생들이 일하는 대학 인근의 작은 가게나 간혹 고전 이탈리아 공포 영화나 해적판 아시아 영화를 판매하는 시내의 작은 포르노 가게까지 전부 꿰고 있었다. 일주일에 적어도 두 번은 이 길을 지나다녔지만 이런 가게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었다. 피트는 사람들이 하느님을 믿듯 영화를 믿었기에, 자신이 집에서 겨우 세 블록 떨어진 가게를 못 보고 지나쳤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문을 밀자 종이 울렸다. 작은 가게라 DVD 진열장 세 줄에 벽 하나 가득한 VHS 테이프가 전부였고, 형광등 아래로 케케묵은 파란색 업소용 카페트가 깔려 있었으며, 손님은 없었다. 점원이 "필요한 거 있으심 말씀하세요."라고 하기에 고개를 끄덕이기는 했지만, 상대가 여자이며 서른 조금 안 되어 보이고 짧은 백금색 머리카락이 병아리 솜털처럼 뻗쳐있다는 정도를 제외하면 점원에게는 별반 관심을 두지 않았다.

피트는 고전 코너로 향했다. 영화에 관해서라면 잡식성이었지만, 감옥의 상태를 보면 그 문명을 파악할 수 있듯 고전 코너의 질을 보면 그 비디오 가게를 파악할 수 있는 법이니까. 그는 익숙한 제목들이 늘어선 곁을 따라가다가 "신작" 딱지를 붙인 앞면이 보이도록 진열된 한 DVD 앞에 멈춰섰다.

피트는 떨리는 손으로 DVD를 집었다. 케이스는 자신이 오슨 웰스의 〈위대한 앰버슨가〉 감독판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이거 농담이라고 한 짓이에요?" 그가 케이스를 들고 화를 낼 것처럼 말했다.

"뭐가요?" 점원이 말했다.

피트는 케이스를 휘두르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상대가 눈썹을 치켜세우며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는 걸 보니 그를 진상이라고 여긴 모양이었다. "미안해요. 여기 누락된 부분을 복원한 〈위대한 앰버슨가〉 감독판이라고 적혀 있어서요."

"맞아요." 그녀의 얼굴이 밝아졌다. "지난주에 나왔어요. 모르셨어요? 그 전까지는 스튜디오에서 난도질한 오리지널 극장판밖에 볼 수 없―"

"하지만 누락된 부분은," 그가 말을 가로막았다. "유실되고 폐기돼서 마지막 50분 분량은 제작 당시의 컨티뉴이티 노트로만 남아 있었잖아요."

그녀가 얼굴을 찌푸렸다. "아, 그게요, 촬영분이 사라져서 다들 폐기됐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작년에 어느 창고 구석에서 필름을 발견했대요."

피트가 어쩌다 이 소식을 놓쳤단 말인가? 그가 즐겨 찾는 온라인 포럼이 이 소식으로 야단법석이었을 텐데. 이건 영화광의 몽정 아닌가. "촬영분을 어떻게 찾았대요?"

"그게 정말 재미있어요. 음성해설에서 웰스가 얘기해줘요. 약간 중구난방이기는 하지만, 구십 대인데 뭐 어쩌겠어요? 그 사람―"

"착각한 거겠죠." 피트가 말했다. "웰스가 무덤 속에서 말하는 게 아니라면요. 그 사람 1980년대에 죽었어요."

그녀는 입을 열었다가 닫더니 애써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머릿속으로 고객 서비스의 불문율을 되뇌는 소리가 귓가에 선했다. 고객은 언제나 옳다. 틀릴 때조차. "네, 손님 말씀이 옳아요. 그 DVD 빌려 가실래요?"

"네. 하지만 전 여기 회원이 아니라서요." 그가 말했다.

"이 동네 사세요? 전화번호랑 ID 알려주시고 주소를 증명할 것만 보여주시면 돼요."

"최근에 받은 급여명세서가 있을 것 같네요." 피트가 지갑 속의 종잇조각들을 훑어보며 말했다. 그녀가 양식을 건넸고, 이내 그의 인적사항을 컴퓨터에 입력했다. 그녀가 작업하는 동안 그가 말했다. "저기, 진상처럼 굴려던 건 아니었고요, 그냥 제가 확실히 아는 거라서 그랬어요. 제가 영화라면 꽤 알거든요."

"제 말은 신경 쓰지 마세요." 그녀가 손가락으로 DVD 케이스를 두드리며 말했다. "전부해서 3.18달러입니다."

그가 다시 지갑을 꺼냈지만, 지갑은 정리하지 않은 영수증과 메모를 끼적인 종잇조각으로 불룩했을 뿐, 현금은 없었다. "신용카드도 되나요?"

그녀가 얼굴을 찡그렸다. "신용카드 결제 최저한도는 5달러라서요. 죄송해요, 가게 규칙이라."

"영화 두어 편 더 빌리죠 뭐." 그가 말했다.

그녀가 벽에 걸린 시계를 흘끗 보았다. 거의 10시가 다 돼 갔다.

"닫으실 시간인 거 알아요. 빨리 고를게요." 그가 말했다.

그녀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세요."

그는 SF 코너로 갔다가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 〈나, 로봇〉이 있었는데, 윌 스미스가 나온 시원찮은 액션 영화가 아니라 더 옛날에 나온 영화였고, 크레딧에 "할란 엘리슨 각본"이라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아이작 아시모프의 책을 각색한 할란 엘리슨의 각본은 책으로 출간되기는 했어도 실제로 제작되지는 못했는데. "틀림없이 해적판 학생 영화겠지." 그는 그렇게 중얼거렸고, 제작사가 자신이 알지 못하는 곳임을 확인했다. 하지만 케이스에는 "아카데미 최우수 각색상"이라고 적혀 있었다. 다른 현실에서 온 영화인 척, 진지해서 우스꽝스러운 광고 문구를 넣어보자고 생각한 학생 감독의 작은 장난일 터였다. 물론 그래도 볼 가치는 있겠지. 그렇지만 다시 한번, 이 영화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은 이상했다. 어쩌면 이 지역 누군가가 만든 영화인지도. 그는 케이스를 카운터로 가져가 신용카드를 내밀었다.

그녀가 카드를 의심스러운 듯 바라보았다. "비자요? 죄송한데 저희는 웨버랑 포스터카드만 받아요."

피트는 그녀를 응시하다가 그녀가 도로 내민 카드를 받았다. "이건 대표적인 신용카드잖아요." 그가 아이를 상대하듯 천천히 말했다. "대체 어느 가게가―"

그녀는 어깨를 으쓱이며 이번에는 좀 더 비난하는 듯한 눈길로 다시 한번 시계를 바라보았다. "죄송하지만 제가 규칙을 만드는 건 아니라서요."

그는 이 영화들을 봐야만 했다. 피트는 영화에 관해서라면―새로운 영화! 낯선 영화!―참을성이 부족했다. 삶의 다른 영역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태평했지만, 영화는 중요했다. "부탁인데, 제가 요 바로 근처에 살거든요. 십 분 내로 돈 갖고 올 테니까 기다려주시면 안 될까요?"

그녀의 앙다문 입술이 딱딱한 선을 그렸다. 그는 〈위대한 앰버슨가〉를 향해 손짓했다. "그냥 좀 보고 싶어서 그래요. 봐야만 한다고요. 영화 좋아하시죠? 제 마음 이해하실 거예요."

그녀의 표정이 풀어졌다. "좋아요. 십 분 만이에요. 나도 집에 가고 싶으니까요."

피트는 그녀에게 심심한 감사를 표하고는 냉큼 가게를 뛰쳐나갔다. 밖으로 나간 그는 거의 오르막으로만 이루어진 세 블록을 뛰어가 자신이 사는 치장벽토를 칠한 복층 아파트 건물에 이르렀고, 열쇠를 찾아 더듬으며 욕설을 내뱉다가, 마침내 얄팍하게 말아둔 비상금을 꿍쳐둔 양말 서랍을 열었다. 다시 〈불가능한 꿈〉을 향해 달리는 동안 워낙 거칠게 헐떡인 탓에 숨을 내쉴 때마다 온몸이 타는 듯했고 옆구리가 쿡쿡 쑤셔왔다. 십 년 전 고등학교 체육 시간 이후로는 제대로 달려본 적이 없는 피트였다.

피트가 빵집과 기념품점에 이르렀을 때, 둘 사이에 〈불가능한 꿈〉의 출입문은 없었다. 사실 아예 사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두 가게는 나란히 붙어 있었고, 둘을 나누는 골목길 하나 없었다.

피트는 벽돌벽에 머리를 기댔다. 블록을 잘못 찾았을 거라고, 뛰다 보니 잘못 돌았을 거라고 생각해보려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걸어 집으로 돌아가 바닥부터 천장까지 테이프와 DVD를 담은 금속 선반이 설치된 거실로 들어섰다. 디스크 하나를 꺼내 최신 지역 코드 해제 플레이어에 넣은 다음 리모컨을 들어 커다란 플라스마 평면 TV를 켰다. 서라운드 사운드 스피커가 웅웅거리며 살아났고, 피트는 방 한가운데에 놓인 우아한 곡선의 가죽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피트는 이미 20만 마일을 뛴 문이 넷 달린 녹슨 혼다를 몰았고, 주로 싸구려 마카로니 앤드 치즈로만 연명했으며, 자신이 일하는 대학 입학처의 화장실에서 화장지를 훔쳐다 쓰면서 돈을 절약했다. 그는 거의 모든 면에서 검소하게 살았고, 이는 영화의 세계에서 사치스럽게 살기 위함이었다.

그는 재생 버튼을 눌렀다. 피트는 〈환상특급〉 전 시리즈를 DVD로 소장하고 있었고, 이제 내레이터의 더없이 이성적인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면서 경이로 가득한 먼지투성이 마술 가게를 찾은 한 남자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었다.

드라마를 보던 중, 피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속삭였다. "이거야."

* * *

피트는 아침에도 확인했다. 점심에도 확인했다. 저녁에 입학처 근무를 마치고 나서도 확인했다. 하지만 〈불가능한 꿈〉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작은 샌드위치 가게에서 저녁을 때우고 자기 집 근처 상가 끝에 있는 몇 블록을 오르내렸다. 8시 30분이 되자 그는 가로등에 기대서서 〈불가능한 꿈〉이 있었던 자리를 노려보았다. 그가 도착한 시간이, 어젯밤 9시 45분쯤이었지? 하지만 신비한 비디오 가게의 출현이 시간과 관련이 있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한 번만 나타나고 마는 곳이라면 어쩌지?

8시 45분쯤, 갑자기 문이 그곳에 있었다. 눈을 깜빡였을 뿐인데, 깜빡이는 사이에 무언가가 일어났고 가게가 다시 나타났다.

피트의 몸에 기이한 희열이 차오르며 전율이 일었다. 기적의 치유나 피 흘리는 성상을 목격한 사람들이 바로 이런 기분을 느꼈던 걸까 싶었다. 그는 깊이 숨을 들이쉬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어제와 같은 점원이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어젯밤에 기다렸다고요."

"미안해요." 피트는 그녀를 뚫어지라 바라보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말했다. 그녀는 이곳이 경이로운 가게임을 알까? 행동을 봐서는 그런 것 같지 않았다. 그는 그녀가 기적의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적의 일부이며, 그녀에게는 완전판 무삭제 〈위대한 앰버슨가〉가 있는 세계가 특별하지 않으리라 추측했다. "집에 현금이 없더라고요. 하지만 오늘은 많이 가져왔어요."

"비디오는 제가 챙겨뒀어요." 그녀가 말했다. "웰스 그 작품은 꼭 보셔야 해요. 그 사람의 경력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뀔 거예요."

"정말 고마워요. 좀 더 둘러보면서 몇 편 더 골라볼까 하는데요."

"천천히 고르세요. 오늘 밤은 손님이 영 없네요. 화요일치고도요."

피트는 그녀―마술 가게의 주인 (혹은 적어도 점원)!―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당장 진열장을 샅샅이 뒤지고 싶은 마음을 억눌렀다. "항상 혼자 일하세요?"

"주말만 빼면 대개는요. 원래는 점원이 둘이었는데 사람들이 온라인으로 영화를 다운로드하고 우편으로 DVD를 주문하고 하는 통에 사장님이 돈을 왕창 잃고 있어서요." 그녀가 고개를 내저었다.

피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온라인과 우편 주문으로 영화를 구했지만, 우편물을 기다리거나 다운로드를 통하지 않고 가게에서 무언가를 빌리는 행위에는 즉각적인 희열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었다. "그것참 유감이네요. 정말 멋진 가게 같은데. 매일 밤 근무하세요?"

그녀가 카운터에 기대며 한숨을 쉬었다. "최근에는요. 일할 수 있는 만큼은 하고 있어요. 가끔은 두 탕도 뛰고요. 돈이 필요하거든요. 요새는 점심에 사과 하나, 저녁에 국수 먹는 정도 외에는 식비도 감당이 안 돼서요. 룸메이트가 바람 맞히는 바람에 새 룸메이트를 구할 때까지는 평소 방값의 두 배를 내야 해서 환장할 노릇이에요. 그냥― 아, 죄송해요, 이렇게까지 신세 한탄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아뇨, 괜찮아요." 피트가 말했다. 그녀가 말하는 동안 그는 대놓고 그녀를 쳐다볼 수 있었고, 그녀가 기적의 전달자일 뿐만 아니라 예쁘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약간 닳고 닳은 전직 펑크족 같은 느낌으로 말이다. 그의 타입은 전혀 아니었다. 영화를 사랑하는 게 분명하다는 것만 빼고는.

"그럼 둘러보세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카운터 위에 묵직한 교과서를 펼쳤다.

피트에게 그 이상의 응원은 필요하지 않았다. 지난밤 그는 한 가지 이론을 세웠고, 지금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그 이론을 받쳐주고 있었다. 그는 이 가게가 어떤 평행 우주에 속해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세계와 매우 흡사하지만, 주요 크레딧에 실린 이름이 다르다든가 하는 식으로 미묘한 변화가 있는 세계. 하지만 영화에서는 작은 변화가 거대한 차이로 이어질 수 있었다. 모든 영화에는 수많은 가변요소가 있었다. 감독의 변덕스러운 열정, 스튜디오의 각본에 대한 믿음, 거물 스타의 출연 가능 여부, 제작 당시 제작자가 어느 신인과 잠자리를 함께하고 있었는지 등등. 이중 어느 요소라도 한 영화의 흐름을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바꿔 놓을 수 있었고, 할리우드의 역사에는 거의 만들어질 뻔했던 영화들의 주검이 널려 있었다. 그중 일부는 이 세계에서는 만들어졌을 테고, 이제 피트는 가능한 한 많은 영화를 보기 위해 필요하다면 일주일 동안 잠도 자지 않을 심산이었다.

진열장은 기적의 연속이었다. 여기에는 팀 버튼이 감독하고 니콜라스 케이지가 주연을 맡은 〈슈퍼맨의 죽음〉이 있었다. 피트의 우주에서 버튼과 케이지는 기획 초기 단계에서 빠져나갔다. 여기에도 〈토탈 리콜〉이 있었지만 감독 겸 각본가는 파울 페르후번이 아니라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였다. 여기에도 〈터미네이터〉가 있었지만 주연은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아니라 O. J. 심슨이었다. 슈워제네거도 여전히 출연하기는 했지만, 카일 리스 역이었다. 여기에도 〈잃어버린 성궤의 약탈자들〉은 있었지만 해리슨 포드가 아니라 톰 셀렉이 주연이었다. 게다가 이후에 나온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는 없었는데, 그건 슬픈 일이었다. 피트의 손은 이미 DVD로 가득했고, 그는 진열장에서 더 많은 영화를 꺼내느라 어설픈 곡예를 벌였다. 이곳의 〈카사블랑카〉는 험프리 보가트 대신 조지 래프트가 주연이었고, 어쩌면 다른 결말을 담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가 들어본 적도 없는 존 웨인의 제2차 세계대전 영화가 있었는데, 케이스의 광고 문구에 따르면 일본 본토 침공에 관한 영화이며 "눈을 뗄 수 없는 역사 드라마"라고 했다. 잽싸게 진열장을 훑어보니 스탠리 큐브릭의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보이지 않았고, 이 두 가지 사실을 결합해 보면 이 세계에서는 일본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적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 사실이 시사하는 가능성은 무궁무진할 터였다… 하지만 또 다른 영화가 눈길을 사로잡자, 피트는 커져가는 추측을 마음속에서 몰아냈다. 이 세계에서 큐브릭은 직접 〈A. I.〉를 완성할 수 있을 정도로 오래 살았고, 피트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감상적인 손길이 〈피노키오〉로 바꿔놓지 않은 그 영화를 꼭 보아야만 했다.

"대여 기간은 사흘밖에 안 돼요." 점원이 즐거운 듯한 어조로 말하자, 피트는 꿈속에 있는 기분으로 그녀를 향해 눈을 끔뻑였다. "그거 다 볼 시간은 있어요?"

"작은 영화제를 열려고요." 피트는 그렇게 말했고, 실제로도 그럴 심산이었다. 그는 병가를 낼 계획이었고, 이 영화들을 다 본 다음 복사도 해둘 작정이었다. 그게 가능하다면 말이다. 이 세계에 어떤 괴상한 복제 방지 기술이 있을지 어찌 알겠는가?

"그래도 사장님은 신규 회원에게는 스무 편씩 빌려주지는 않으실 거예요. 제가 사장님한테 들볶이지 않게 너덧 편 정도로 줄여주면 안 될까요? 근처에 산댔죠? 언제든 와서 반납하고 더 빌려 가면 되잖아요."

"그럴게요." 피트가 말했다.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녀를 몰아세웠다가는 딱 잘라 거절당할까 봐 두려웠다. 그는 네 편을 고르고―〈위대한 앰버슨가〉, 〈슈퍼맨의 죽음〉, 〈나, 로봇〉, 〈카사블랑카〉―나머지는 치웠다. 몇 번 빌리고 나면 한꺼번에 열 편이나 스무 편씩 빌려 가게 해줄지도 모른다. 병가를 얼마나 쓸 수 있는지 계산해봐야 할 것이다. 고약한 독감에 걸려 두어 주 정도 근무에서 빠지기 좋은 시점이었다.

점원이 케이스를 스캔하고 키보드를 두드리더니 총액 12.72달러를 불렀다. 그는 5달러 두 장, 1달러 두 장, 쿼터(25센트) 둘, 다임(10센트) 하나, 니켈(5센트) 둘, 그리고 페니(1센트) 둘을 건넸다. 이번에는 현금을 많이 가져왔다.

점원이 카운터에 올라온 돈을 보더니 고개를 들며 즐거움과 경계심이 뒤섞인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지폐를 두드렸다. "위조지폐범이 아닌 건 알겠어요. 그랬으면 적어도 가짜 돈을 진짜처럼 보이게 하려고 노력은 했을 테니까. 이거 게임이에요, 뭐예요? 우리 대통령들이 있는 걸 보니 외국 돈이 아닌 건 알겠는데. 여기 이 사람만 빼고요. 이건 뭐죠? 다임?"

피트는 신음을 억눌렀다. 돈이 다르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는 무장 강도 계획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가만, 가짜 돈 사이에 니켈 두 개가 있네요." 그녀가 니켈 둘을 옆으로 빼며 말했다. "아직도 12.62달러 내야 해요."

"바보짓 했네요." 피트가 말했다. "네, 어제 하던 게임에서 쓰는 돈인데 실수로 잘못 가져왔나 봐요." 그가 지폐와 동전을 쓸어담았다.

"당신 이상한 사람이네요, 피트. 이런 말 한다고 기분 나빠 하진 말고요."

애절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는 주머니에서 잔돈을 한 움큼 꺼냈다. "그런가 봐요." 이 세계에서도 진짜인―혹은 진짜에 가까운―니켈은 많았다. 카운터에 올려놓고 세어보니 3.35달러라 영화 한 편을 빌릴 정도는 됐다. 내일은 은행에 가서 현금을 들 수 있는 만큼 니켈로 바꾸어 매번 5센트짜리로 이 영화들을 전부 빌릴 작정이었다. 물론 지금 네 편을 집어 들고 도망갈 수도 있었지만, 그랬다간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테고, 진열장에는 그가 보고 싶은 영화들이 가득했다. 오늘 밤에는 〈위대한 앰버슨가〉로 만족하기로 했다. "이걸로 주세요." 그가 말하자 그녀가 재미있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니켈을 받았다. 그녀는 반투명 플라스틱 케이스와 함께 잔돈을 페니로 거슬러주었는데, 페니는 이상하게 생긴 작은 팔각형 동전이었다.

"이것들은 제가 치울게요, 니켈 씨." 그녀가 그가 카운터에 가져온 다른 영화들을 가져가며 말했다. "재미있게 보시고 소감도 말씀해주세요."

피트는 인사를 중얼거리며 디스크를 가슴팍에 꼭 껴안은 채 허둥지둥 문으로 향했고, 집까지 걷다가 뛰다가를 반복했다. 집에 들어간 그는 A/V 장비를 켜고 DVD 플레이어의 트레이를 열었다. 플라스틱 케이스를 열어 디스크―제목이 은색으로 적혀 있는 단순한 검은색 디스크―를 꺼내고 트레이에 올렸다. 디스크는 이 세계의 DVD보다 약간 작았지만, 적당히 맞는 듯했다. 디스크가 돌며 웅웅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DVD 플레이어의 표시창이 몇 번 깜빡이다 텅 비었다. 텔레비전 스크린에 글자가 떴다. "디스크가 없습니다." 피트는 욕설을 내뱉고 다시 디스크를 재생하려 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는 가죽 의자에 앉아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다른 세계에서는 돈만 다른 게 아니었다. DVD 암호화 방식도 달랐다. 전 세계의 디스크를 재생할 수 있도록 지역 코드를 해제한 그의 플레이어로도 이 버전의 〈위대한 앰버슨가〉는 재생할 수 없었다. 비디오테이프도 마찬가지로 무용지물일 것이다. 테이프도 이 세계의 것과는 다른, VHS보다는 작고 베타맥스보다는 큰 포맷임을 이미 확인해둔 터였다.

하지만 다 끝난 건 아니었다. 〈위대한 앰버슨가〉를 그냥 보낼 수 없었던 피트는 디스크를 들고 집을 나섰다. 그는 〈불가능한 꿈〉으로 달려 돌아갔다. "DVD 플레이어도 대여해줘요?" 그가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제 건 고장 나서요."

"해줘요, 피트."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보증금이 삼백 달러예요. 그걸 다 니켈로 내려고요?"

"당연히 아니죠." 그가 말했다. "집에서 진짜 돈을 좀 가져왔어요. 플레이어를 볼 수 있을까요?" 이성 따윈 엿이나 먹으라지. 그는 플레이어를 낚아채어 튈 생각이었다. 그녀에게는 그의 주소가 있었지만, 여긴 그녀의 세계가 아니고, 몇 분 후면 가게는 다시 사라질 것이다. 내일 밤에 장난감 총을 가져와서 DVD를 가져갈 수 있는 만큼 훔치면 된다. DVD를 담을 수트케이스도 가져오고―

그녀가 카운터에 DVD 플레이어를 올리고 그 위에 코드를 사려놓았다. 전기 플러그의 기둥 두 개가 이상하게도 서로 수직을 이루고 있었고, 피트는 유럽과 미국만 해도 전기 표준이 다른데 하물며 그의 콘센트가 다른 우주의 장비와 호환되리라는 가정은 말도 안 되는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동네 라디오셱에서 여기에 맞는 어댑터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고, 설령 어찌어찌 설치한다고 해도 집의 전선에 흐르는 전류량이 맞지 않아 유럽식 콘센트에 미국식 컴퓨터를 연결했을 때처럼 DVD 플레이어가 망가질지도 몰랐다.

"됐어요." 그가 패배한 심정으로 말했다. 그는 주머니를 이리저리 두드려보는 척하고는 "지갑을 깜빡했네요."라고 말했다.

"괜찮아요, 피트?" 그녀가 물었다.

"네, 그냥 이 영화를 볼 생각에 정말 신이 나 있었거든요." 그는 평생 친구와 가족들에게서 들어왔던 "그냥 영화일 뿐이잖아." 같은 유의 멸시 어린 대답을 예상했다.

대신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헤이, 나도 이해해요. 걱정 마요. 플레이어 고쳤을 때도 이 영화는 여기 있을 테니까. 오슨 할아버지는 이제 그렇게 잘 나가질 않거든요."

"그렇겠죠." 피트가 말했다. 그는 DVD를 카운터 너머로 밀었다.

"환불해줄까요? 겨우 20분 갖고 있었잖아요."

"넣어둬요." 피트가 말했다. 그는 밖을 어슬렁거리며 길 건너편에서 문을 닫는 점원을 지켜보았다. 10시 10분 무렵 그는 눈을 깜빡였고, 그가 눈을 감은 순간 가게는 사라졌다. 그는 터덜터덜 걸어갔다.

* * *

그날 밤, 집에서 그는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컨티뉴이티가 난도질당한 데다 전시(戰時)의 관객들이 우울해하지 않도록 스튜디오의 지시로 덧붙인 해피 엔딩이 달린 〈위대한 앰버슨가〉 DVD를 보았고, 영화를 다 본 뒤에는 영화의 원래 모습이 어떠했을지 궁금한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 * *


피트는 〈불가능한 꿈〉이 다시는 나타나지 않으려는 걸까 생각했지만, 가게는 9시 조금 전에 다시 나타났다. 창구가 슬슬 닫히고 있는 건 아닌지, 가게가 매일 밤 점점 더 늦게 나타나다가 한 주 혹은 하루 뒤에는 영영 사라져 다시는 나타나지 않는 건 아닐지 궁금했다. 피트는 묵직한 비닐봉지를 들고 문을 열었다. 점원이 작은 봉지에서 레스토랑에서 수프와 함께 나오는 유형의 크래커를 꺼내 먹고 있다가 카운터로 몸을 기댔다. "안녕하세요."

"니켈 씨." 그녀가 말했다. "요새 아홉 시 넘어서 오는 손님은 니켈 씨뿐이에요."

"저기, 전에 요즘은 저녁 먹을 돈이 없다고 했잖아요. 여러모로 폐 끼친 것도 사과하고 싶고… 아무튼 혹시 드실까 싶어서 먹을 걸 좀 가져왔어요." 그는 무엇을 가져올까 종일 고민했다. 패스트푸드는 제외였다. 그녀의 세계에 맥도날드가 없다면 포장지를 보고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그는 다른 것도 고민했다. 그녀의 세계에 광우병이 만연할지도 모르니 소고기는 피해야 할까? 조류독감 때문에 닭이 보기 드문 진미가 돼 있으면 어쩐다? 그녀의 문화권이 완전 채식주의라면? 그는 결국 채식주의자용 에그롤과 쌀국수와 따뜻하고 시큼한 수프로 결정했다. 가게에 홍콩 액션 영화가 있었으니 적어도 그녀의 세계에 중국 문화가 존재하리라는 건 알고 있었고, 분명 음식도 대체로 똑같을 터였다.

"당신은 신이에요, 피트." 그녀가 국수를 담은 종이 그릇을 열고 프로처럼 젓가락을 휘두르며 말했다. "내가 오늘 점심으로 뭐 먹었는지 알아요? 배 하나요. 그것도 이웃집 나무에서 훔쳤다니까요. 식당 카트에서 크래커를 슬쩍했고요. 당신이 내 생명을 구했어요."

"별거 아녜요. 이틀간 귀찮게 해서 정말 미안했는걸요."

그녀는 에그롤을 우물거리며 별말을 다 한다는 듯 손을 내저었고, 그녀를 보면서 피트는 자신이 세운 새 계획이 불가능함을 깨달았다. 그는 그녀의 환심을 사서 가게 문을 닫은 뒤에도 남아있을 수 있게 해달라고 설득해볼 작정이었다. 그래서… 몰래 그녀의 세계로 들어가 모든 영화를 볼 수 있도록, 그리고 어쩌면 점원의 새 룸메이트가 될 수 있도록. 새벽 3시에는 전부 말이 되는 것 같아서 종일 그 생각밖에 하지 않았건만, 계획을 실천에 옮기려고 보니 현실적이라기보다는 영화적인 계획이었구나 싶었다. 영화에서라면 먹혔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여자의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현실에서라면 그녀가 그를 자신의 삶에 받아들일 리 만무하고, 설령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그가 그녀의 세계에서 뭘 하겠는가? 그는 종일 지원 서류를 처리하고, 성적 증명서를 요청하고, 데이터베이스를 조작하고, 이런저런 것들을 문서화했지만, 그녀의 세계에서 뭘 하겠는가? 그곳의 컴퓨터가 완전히 다른 프로그램 언어를 사용한다면? 니켈 자루를 잔뜩 짊어지고 간다고 해도 그게 다 떨어지면 뭘 해서 돈을 번단 말인가?

"미안하게 여태껏 이름도 모르네요." 그가 말했다.

"앨리예요." 그녀가 말했다. "에그롤을 먹고 있자니 돼지가 된 기분이네요."

피트가 마주 웃어주자, 앨리가 카운터를 돌아 나왔다. "보여줄 게 있어요." 그녀가 대형 TV로 가서 전원을 넣었다. "전부를 다 볼 시간은 없겠지만, 가게를 닫기 전에 복원된 마지막 50분을 볼 시간은 충분할 거예요." 그녀가 DVD 플레이어를 켰고, 〈위대한 앰버슨가〉가 시작됐다.

"오, 앨리, 고마워요." 그가 말했다.

"뭘요, DVD 플레이어가 고장 났지만 정말 보고 싶다고 했잖아요."

이후 50분 동안 피트는 영화를 보았다. 그가 다르다는 걸 알아차린 한 배우을 제외하면 출연진은 동일했고, 지금껏 읽은 모든 글로 미루어 보아 이건 그의 세계에서 유실됐다고 들었던 촬영분과 본질적으로 같았다. 웰스의 천재성은 난도질당한 RKO 개봉판에서도 뚜렷했지만, 이 희석되지 않은 판본에 담긴 비전은 압도적으로 선명했고, 거기에는 지극히 비통한 영광과 피할 수 없는 몰락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영화가 끝났을 때, 피트는 육체적으로는 기진맥진했지만 지고의 행복을 누리고 있었다.

"문 닫을 시간이에요, 피트." 앨리가 말했다. "다시 한번 저녁 고마워요. 난 중국 음식이라면 사족을 못 쓰거든요." 그녀가 다정하게 그를 문으로 안내하는 동안 그는 거듭해서 그녀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마음에 들었다니 기쁘네요." 그녀가 말했다. "영화 이야기는 내일 하기로 해요." 그녀가 문을 닫고 잠갔고, 피트는 길 건너편에 있는 어느 건물 문간에서 10시 조금 넘어 가게가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다. 매일 밤 가게가 나타나는 시간이 짧아지는 걸 보니 창구가 닫히고 있었다.

지속되는 동안이나마 즐겨둘 일이었다. 주어진 것 이상의 기적을 바랄 수는 없는 법이니.

* * *

다음날 밤 그는 궁보계정을 가지고 가서 그녀에게 어떤 영화를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그를 점원의 선택 코너로 데려가 자신이 고른 작품들을 보여주었다. "주로 향수 때문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오찬 모임〉을 좋아해요. 왜, 〈조찬 클럽〉 나오고 십 년 후에 만든 속편 있잖아요? 그 영화의 몰리 링월드는 끝내줘요. 그리고 〈제다이의 귀환〉 싫어하는 사람 많은 거 알지만 전 그게 데이비드 린치가 연출한 영화 중에서 최고작에 속한다고 봐요. 〈듄〉은 좀 뒤죽박죽이었지만 그 사람은 스타워즈 우주에는 전력을 쏟아부었고, 〈제국의 역습〉보다 훨씬 더 어두운 작품이니까요. 물론 오슨 웰스의 〈이아손과 아르고 호〉도 좋아하지만 그거야 다들 좋아하는 거고…"

피트는 그녀가 말하는 동안 그녀가 열변을 토해대는 영화 케이스를 바라보는 대신 그녀를 바라보았다. 물론 그도 그 영화들을 전부 다 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고, 생각해 보면 그는 지금 다른 우주에서 온 여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으며 그건 그가 지금껏 스크린에서 보았던 그 어떤 것만큼이나 굉장한 일이었으니까. 그녀는 똑똑했고, 재미있었고, 그만큼이나 영화를 많이 알았다. 그는 연애 경험이 많지 않았다. 여자 맞은편에 앉아 저녁을 먹을 때보다는 어둠 속에 홀로 스크린 앞에 앉아 있을 때가 더 편안했고, 그의 주된 오락거리가 영화라는 사실을 여자 쪽에서 깨닫고 나면 데이트 몇 번에 관계가 끝나기 일쑤였다. 하지만 앨리와는 이야기가 통했다. 그들이 매달리는 대상은 동일하면서도 상보적이었다.

아니면 그냥 그가 이 기적을 일종의 영화적 로맨스로 바꿔놓으려 하고 있을 뿐인지도 모르지만.

"당신은 영화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면 정말 아름다워요." 그가 말했다.

"상냥하네요, 니켈 씨는."

* * *

피트는 이후 사흘 밤 동안 가게를 찾았다. 문이 나타나는 시간이 점점 짧아졌기에 매번 몇 분씩 늦게 들렀다. 앨리는 그에게 영화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의 영화 지식에 괴상한 공백이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어 했다. "세라 핸슨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요? 사상 가장 위대한 감독 중 하나라고요!" (피트는 그녀가 자신의 세계에서 일찍 죽었거나 아예 태어나지 않은 건 아닐까 궁금했다.) 앨리는 못 만든 SF 영화를 좋아했는데, 특히 벨라 루고시가 주연을 맡은 수많은 에드 우드 영화들을 좋아했다. 앨리의 세계에서 벨라 루고시는 〈외계에서 온 9호 계획〉을 촬영하던 도중 죽지 않고 몇 년을 더 살았다. 그녀는 좋은 SF 영화도 좋아했는데, 특히 론 하워드의 〈엔더의 게임〉을 좋아했다. 피트는 그녀가 자신이 말하는 바를 설명하기 위해 잠깐씩 보여주는 장면들 외에는 그 영화들을 전혀 볼 수 없다는 사실이 한스러웠으며, 조만간 가게가 결국 나타나지 않게 되면 영영 앨리를 볼 수 없으리라는 사실은 더욱 한스러웠다. 그녀는 인물의 변화를, 색채의 사용을, 간과되곤 하는 무성영화 배우들의 기교를, 헤이스 코드 이전 시대 영화들의 기괴한 대담함을, 보이스오버의 유해함을, 왜 긴 단일 쇼트로 찍은 장면이 황홀한 것인지를, 왜 레이 해리하우젠의 애니메이션이 어떤 면에서는 가장 유려한 CGI보다 단연코 더 만족스러운지를 이해했다. 그녀는 그와 같은 부류였다.

"당신은 왜 그렇게 영화를 좋아해요?" 셋째 날 밤, 그는 사천새우를 먹으며 물었다. 둘은 각자 카운터의 자기 쪽에 기대고 있었다.

그녀는 음식을 씹으며 생각했다. "어떤 사람들은 훌륭한 소설을 읽는 경험을 생생하고 지속적인 꿈에 사로잡히는 것과 같다고 말하는데, 난 다른 어떤 이야기보다도 영화가 그걸 더 잘해낸다고 생각해요. 어떤 사람들은 가장 훌륭한 영화라고 해도 가장 훌륭한 책만은 못하다고 하는데, 그건 그 사람들이 제대로 된 영화를 보지 않거나 영화를 제대로 보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내 인생은 때로는 엉망진창이에요. 배고프고 외롭고 춥고, 부모들은 지랄 맞고, 다음 학기 학비도 못 내고, 졸업하면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고. 하지만 훌륭한 영화를 볼 때면 삶을 조금 더 이해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고, 그렇게 훌륭하지 않은 영화라고 해도 두 시간 동안 내 인생의 지랄 맞은 구석들을 잊게 해주죠. 영화는 내게 용감해지는 법을, 낭만적으로 사는 법을, 나를 위해 일어서는 법을, 친구들을 아끼는 법을 가르쳐줬어요. 내게는 교회도 없었고 사랑하는 부모도 없었지만, 영화가 있었어요. 학교를 째던 시절엔 싸구려 마티네 상영이 있었고, TV랑 플레이어를 살 돈을 모은 뒤로는 비디오가 있었죠. 내겐 멘토는 없었지만 오비완 케노비와 〈멋진 인생〉의 지미 스튜어트가 있었어요. 알아요, 영화는 삶에서 도피하는 길이 될 수도 있죠. 하지만 젠장, 때로는 삶으로부터 숨어서 스크린 위의 더 나은 삶을 보며 삶이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도 있다는 걸 깨닫거나 더 나쁜 삶을 보면서 지금 내 삶이 얼마나 좋은지를 깨달아야 할 때도 있는 거잖아요. 영화는 내게 더 못한 것에 안주하지 말라고 가르쳐줬어요." 그녀는 병에 담긴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이게 내가 영화를 사랑하는 이유예요."

"와우." 피트가 말했다. "그건… 와우."

"그럼." 그녀가 그를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며 말했다. "당신은 왜 영화를 좋아하는 척해요?"

피트가 얼굴을 찌푸렸다. "뭐요? 척요?"

"이봐요, 괜찮아요. 여기 와서 자기가 엄청난 영화광이라고 했지만 세라 핸슨이 누군지도 모르고, 〈이아손과 아르고 호〉를 본 적도 없고, 영화에 출연하지도 않은 배우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러니까, 당신이 날 좋아하는데 달리 나한테 작업 걸 방법을 몰랐다는 건 알겠어요. 하지만 나도 당신을 좋아하고, 나한테 데이트 신청하고 싶으면 해도 돼요. 깊은 감명을 주려고 영화 잡지식 전문가인 척하지 않아도 된다고요."

"당신을 좋아하는 건 사실이에요." 피트가 말했다. "하지만 난 영화를 사랑해요. 정말이에요."

"피트… 당신은 클라크 게이블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나왔다고 생각했잖아요." 그녀가 어깨를 으쓱했다.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요?"

피트는 시계를 보았다. 15분 남았다. "여기서 기다려요." 그가 말했다. "보여줄 게 있어요."

그는 집으로 달려갔다. 달리는 게 점점 쉬워지고 있었다. 어쩌면 운동이라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지도. 그는 참고서적용 책장에 있는 책들―『SF 영화 백과사전』, 『AFI 편람』, 전년도의 『비디오 DVD 가이드』 등등―을 백팩에 채워넣고 뛰어 돌아갔다. 숨을 헐떡이면서 무거운 가방을 카운터에 올려놓았다. "책." 헉헉. "읽어봐요." 헉헉. "내일." 헉헉. "봐요."

"그래요, 피트." 앨리가 평소에 하듯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그렇게 해요."

피트는 계속 숨을 몰아쉬면서 휘청휘청 가게를 나왔고, 그가 돌아보았을 때 문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아직 10시도 되지 않았는데. 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앨리가 조만간 그의 삶에서 영원히 떠나갈망정 자신을 둘의 공통의 관심사에 무지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두고 싶지는 않았다. 책만으로는 그녀를 설득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내일 그는 그녀에게 다른 것들을 더 보여줄 것이다.

* * *

피트는 9시 30분 무렵 문이 나타나자마자 들어갔다. 앨리는 인사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가 준 『AFI 편람』을 쾅 덮고 말했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죠?"

피트가 어깨에 짊어진 가방을 내려놓고 연 다음 얇은 은색 노트북과 DVD가 가득 담긴 CD 수납 가방을 꺼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예요." 그는 그렇게 말하며 디스크를 노트북에 넣고 DVD 재생 프로그램을 불러 클라크 게이블이 등장하는 첫 장면으로 화면을 빠르게 넘겼다.

앨리는 LCD 스크린을 뚫어져라 보았고, 피트는 그녀의 얼굴에 반사된 색채들이 움직이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작은 스피커를 통해 쇳소리처럼 나오기는 했지만, 게이블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낭랑했다.

피트가 부드럽게 노트북을 닫았다. "난 영화를 알아요." 그가 말했다. "당신이 아는 것과 정확히 똑같은 영화는 아니지만."

"이거랑, 그 책들이랑, 당신… 당신 다른 세계에서 왔군요. 이건 꼭… 꼭…"

"〈환상특급〉에 나오는 것 같죠. 알아요. 하지만 사실은 당신이야말로 다른 세계에서 왔어요. 매일 밤, 한 시간쯤―요즘은 더 줄었지만요―내가 사는 거리에 〈불가능한 꿈〉의 출입문이 나타나요."

"뭐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이리 와요." 그가 그렇게 말하며 손을 뻗었다. 그녀가 손을 잡자 그는 그녀를 문밖으로 이끌었다. "봐요." 그가 옆의 빵집과 반대편의 기념품점, 길 건너의 자전거 수리점을 가리키며 말했다.

앨리가 반쯤 다시 가게로 들어갈 듯 힘없이 문에 등을 기댔다. "이게 아니에요. 여긴 이런 모습이 아니라고요."

"들어가요." 그가 말했다. "가게가 매일 밤 더 늦게 나타나고 더 일찍 사라지고 있어요. 당신이 이쪽에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되는 건 싫어요."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죠?" 앨리가 여전히 그의 손을 잡은 채 말했다.

"나도 몰라요." 피트가 말했다. "어쩌면 이유가 없을지도 모르죠. 영화에서라면 이유가 있을 테지만…"

"어떤 영화들은 우리에게 삶이 이치에 맞는다는 걸 확인시켜주죠." 앨리가 말했다. "또 어떤 영화들은 우리에게 삶이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걸 되새기게 해주고." 그녀가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어떤 것들은 영화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고."

"말을 아껴요." 피트가 말했다. "저기, 노트북은 가져요. 배터리가 두 시간은 갈 거예요. 가방에 완전히 충전해 놓은 여분용 배터리가 하나 더 있으니까 그것도 두 시간쯤 갈 거예요. 안타깝게도 영화를 보면 전력 소모가 심해요. 당신 세계에서 노트북을 충전할 어댑터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표준이 다르거든요. 하지만 적어도 두 편은 볼 수 있어요. 내가 좋아하는 DVD는 다 넣었어요. 미야자키 하야오, 비트 타케시, 웨스 앤더슨, 고전도 몇 편… 마음대로 골라요."

"피트…"

그는 몸을 숙여 그녀의 뺨에 입 맞췄다. "며칠간 밤마다 이야기해서 즐거웠어요." 그는 이것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라면, 자신의 〈카사블랑카〉식 이별 장면이라면 무슨 말을 할지 생각해보았고, 십여 가지의 적절한 인용구가 떠올랐다. 그는 그것들을 전부 떨쳐버렸다. "보고 싶을 거예요, 앨리."

"고마워요, 피트."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마지못해 〈불가능한 꿈〉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유리창 너머에서 그를 바라보았고, 그는 문이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 * *

피트는 다음날 밤에는 돌아가지 않았다. 가게로 들어가고 싶은 유혹이 너무 클 테고, 이번에는 창구가 십 분밖에 열리지 않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는 몇 시간 동안 거실을 서성인 끝에 결국 10시가 넘어서 가게가 있었던 장소를 찾았다. 어쩌면 그녀가 쪽지를 남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종의 결말, 마지막 제스처, 문간에 놓은 한 송이 장미 삼아.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문도, 쪽지도, 장미도. 피트는 인도에 앉아 앨리의 사진을 찍어두었더라면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어떤 영화를 보기로 했을지, 소감은 어땠을지 궁금했다.

"헤이, 니켈 씨."

피트가 고개를 들었다. 앨리가 빨간 코트를 입고 그의 노트북 가방을 어깨에 맨 채 서 있었다. 그녀가 그의 옆에 앉았다. "나타나지 않는 줄 알았어요. 몸을 데울 거라곤 오십 달러어치 니켈뿐인데 밤새 낯선 도시를 떠도는 건 사양이었거든요. 몇몇 거리 이름은 내가 있던 곳이랑 같지만, 당신이 어디 사는지 알아낼 만큼 같은 곳이 많지는 않더라고요."

"앨리! 여기서 뭘 하는 거예요?"

"당신이 이 책들을 줬잖아요." 그녀가 말했다. "거기 보니까 오슨 웰스의 〈시민 케인〉이 영화를 어떻게 바꿔놨는지 적혀 있던데요." 그녀는 그의 어깨를 가볍게 때렸다. "하지만 DVD를 안 주면 어떡해요!"

"하지만… 〈시민 케인〉은 다들 봤잖아요!"

"내가 온 곳에선 아니에요. 프린트가 폐기됐거든요. 허스트는 그 영화가 자기 삶을 바탕으로 했다는 걸 알고 스튜디오와 협상했고, 경비원이 모른 척하는 사이에 누군가가 필름을 폐기했어요. 웰스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다시 시작해야 했고, 대신 〈이아손과 아르고 호〉를 만들었어요. 하지만 당신네엔 〈시민 케인〉이 있다잖아요! 어떻게 안 볼 수가 있겠어요?"

"하지만 앨리… 돌아가지 못할지도 몰라요."

그녀는 웃음을 터뜨리고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돌아갈 생각도 없어요. 거긴 내게 아무것도 없어요."

두려움이 피트의 가슴을 옥죄었다. "이건 영화가 아니에요." 그가 말했다.

"아니죠." 앨리가 말했다. "그보다 나아요. 이건 내 삶이니까."

"글쎄요―"

앨리가 그의 다리를 툭툭 쳤다. "진정해요, 피트. 당신한테 날 받아달라고 하는 거 아니니까. 나는 블랑시 뒤부아―내가 온 곳에서는 비비안 리가 아니라 제시카 탠디가 연기했어요―랑은 달라서 낯선 사람의 친절에 기대지 않아요. 난 열다섯 살 때 집에서 도망쳤고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어요. 예전에도 아무것도 없이, 친구도 없고 재산도 없고 신분증도 없이 시작해봤고, 다시 그럴 수 있어요."

"아무것도 없이 시작하는 건 아니죠." 피트가 그녀에게 팔을 두르며 말했다. "절대 아니에요." 불은 켜지지 않을 테고, 막이 내려오지도 않을 터였다. 이건 영화의 결말이 아니었으니까. 처음으로, 피트는 자신의 삶이 스크린 속의 생생하고 지속적인 꿈보다 마음에 들었다. "가요. 〈시민 케인〉을 보러 가요."

그들은 일어섰고, 함께 걸었다. "그냥 궁금해서 묻는건데요." 그가 말했다. "노트북으로 무슨 영화 봤어요?"

"오, 하나도 안 봤어요. 당신이랑 같이 보면 더 재미있겠다 싶어서."

피트가 웃었다. "앨리, 아름다운 우정이 시작될 것 같군요."

그녀가 고개를 기울이며 눈썹을 치켜세웠다. "뭔가를 인용한 것 같은데." 그녀가 말했다. "뭔지는 모르겠네요."

"볼 영화가 많아요." 그가 말했다.

"뭐든 할 게 많겠죠." 앨리가 대꾸했다.

이 작품에서 서술 및 암시된 영화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 우주에서는) 대부분 사실이다. 팀 버튼은 니콜라스 케이지를 주연으로 〈슈퍼맨의 죽음〉을 만들려고 했다. 할란 엘리슨은 아이작 아시모프의 『나, 로봇』을 각색했지만 제작되지 못한 채 각본만 책으로 출간됐다. 〈토탈 리콜〉은 원래 파울 페르후번이 아니라 데이비드 크로넨버그가 연출할 계획이었다. 〈터미네이터〉 준비 당시 제작사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에게 O. J. 심슨을 주연으로 기용하라고 제안했고, 〈잃어버린 성궤의 약탈자〉 준비 당시 제작자인 조지 루카스는 톰 셀렉을 주연으로 기용하고 싶어 했다. 〈카사블랑카〉의 주연을 험프리 보가트가 아니라 조지 래프트가 맡을 뻔했다는 것은 사실이라기보다는 소문에 가깝고, 촬영 당일까지도 배우들이 결말을 알지 못했다는 것 또한 유명한 소문이다. 〈A. I.〉는 스탠리 큐브릭의 기획이었으나 큐브릭이 세상을 떠난 뒤 스티븐 스필버그가 연출했는데, 〈피노키오〉를 인용한 스필버그식 동화로 만들었다며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조찬 클럽〉의 제목은 각본 단계에서는 〈오찬 모임〉이었다. 조지 루카스는 정말로 데이비드 린치에게 〈제다이의 귀환〉 연출을 제안했으나 린치는 이를 사양한 뒤 〈듄〉을 연출했다. 벨라 루고시는 에드 우드를 만나 〈외계에서 온 9호 계획〉 외 여러 작품을 함께 기획하고 일부 장면은 촬영도 했지만 〈외계에서 온 9호 계획〉의 촬영 도중 사망했다. 제시카 탠디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오리지널 브로드웨이 공연 당시 블랑시 뒤부아 역할을 맡아 토니상을 수상했으나 비비안 리─런던 공연에서 블랑시 뒤부아를 연기한 바 있다─의 스타 파워에 밀려 영화에는 출연하지 못했다. 다만 론 하워드가 〈엔더의 게임〉을 연출하려고 한 적이 있다는 근거는 찾지 못했다. 그리고 물론, 우리 우주의 언론 재벌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는 〈시민 케인〉이 자신을 모델로 한 영화임을 알고 필름을 폐기하려 시도했지만 다행히 실패했으며, 대신 RKO 영화사에서 난도질하고 어울리지 않는 해피 엔딩을 덧붙인 〈위대한 앰버슨가〉의 사라진 촬영분을 발견하는 것은 아직도 영화광들의 몽정으로 남아있다.

피트가 시청한 〈환상특급〉 에피소드는 1985년부터 방영된 〈환상특급〉 시즌 1의 9회차 방영 에피소드 중 "왕의 분실물 가게"가 아닐까 싶은데 직접 본 것은 아니고 줄거리 요약을 통해 추측한 것이라 확실하지는 않다. 이런 소재라면 1959년부터 방영된 시리즈에도 있을 법한데.

"아름다운 우정이 시작될 것 같군요."라는 피트의 대사는 〈카사블랑카〉의 마지막 대사를 인용한 것이다.

작품을 읽는 동안 흔히 볼 수 있는 남성 방구석 폐인 오타쿠의 소망충족형 이야기로 끝나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래도 이 정도면 불편함 없이 균형을 잘 맞추었다고 생각한다. 인생의 거의 모든 부분에 대해 무신경하지만 영화라면 사족을 못 쓰는 피트 같은 사람이라고 해서 (오타쿠를 다룬 만화에 흔히 나오는) 사교성이 현저히 떨어지고 여자라면 이종족 보듯 바라보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며칠간 대화하고 뛰어다닌 것만으로 어쩌면 운동이라는 것도 그리 나쁜 생각은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아 자기 세계에만 갇힌 채 변화를 거부하는 성향이 강한 것 같지도 않고. 앨리는 딱 봐도 피트의 마음에 쏙 드는 미인도 아니고 그 외모로 그의 관심을 사로잡지도 않으며, 자신이 먼저 나서서 피트에게 마냥 살갑게 구는 것도 아니고, 피트에게 의지할 생각으로 다른 세계로 건너가는 것도 아니다. 둘은 무엇보다도 공통의 관심사를 통해 조금씩 가까워지며, 피트가 후반부에 이르러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것도 둘이 같은 관심사를 공유하고 있음을 증명하기 위함이다. 두 사람이 서로를 좋아한다고 할 때는 "like"를 사용하며 "love"는 영화에 대해서만 사용하는 것과 피트가 험프리 보가트가 잉그리드 버그먼이 아니라 클로드 레인스에게 건네는 우정에 관한 대사를 인용하는 데에서도 이 관계를 섣불리 남녀의 사랑으로 규정하지 않으려는 작가의 태도를 확인할 수 있을 테고. 점원이 대여 업무를 처리할 뿐만 아니라 추천작을 선별하고 손님과 적극적으로 교류하는 비디오 가게 문화에 대한 향수가 여전히 강한 미국 영화광의 시선에서라면 둘의 관계가 한결 더 자연스럽게 와닿으리라.

영화 애호가로서 유일하게 아쉬운 점이라면 피트의 취향 정도일까. 〈소유와 무소유〉를 보러 극장을 찾는 관객이라는 사실은 반가웠지만, 스티븐 스필버그의 〈A. I.〉가 감상적인 동화라는 판단은 섣부르고, 곧 헤어질 영화 친구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감독으로 미야자키 하야오와 비트 타케시와 웨스 앤더슨을 꼽는 것도 약간 뜻밖이었다. 게다가 그 와중에 키타노 타케시가 아니라 비트 타케시라고 하다니, 좀 허세 같기도 하다. 하지만 어쨌든 덕분에 '평행 우주의 영화광과 헤어질 때 추천하고 싶은 영화'라는 주제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말했듯 2006년 7월에 게재된 단편인데, 블루레이 플레이어가 처음 공식 출시된 것이 2006년 6월이므로 아직 블루레이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리고 미국에서 〈위대한 앰버슨가〉의 DVD가 처음 정식 출시된 것은 2011년 9월의 일이다. 작품의 시간 배경이 집필 시간과 동일하다는 전제 아래, 피트가 소장하고 있는 〈위대한 앰버슨가〉 DVD는 해적판이거나 2004년 9월 24일에 출시된 프랑스판 혹은 2006년 5월 29일에 출시된 영국판이 아닐까 싶다. 영국판이라면 작품 게재 시점과 지나치게 가깝다는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작가 팀 프랫이 새로 출시된 영국판 DVD를 구매한 뒤 거기서 영감을 얻어 이 작품을 집필했을지도 모른다고 공상해 본다.

이 작품은 시르 코메이(?)라는 감독이 단편 영화로 만들기도 했다. 유튜브에서 영어 자막과 함께 볼 수 있는데, 아쉽지만 굳이 원작과 비교하지 않더라도 여러모로 시원찮다.
Posted by 거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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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4.18 14: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정현 2017.04.19 09: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상에 너무 재밌어요.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스탠리 큐브릭의 <A.I.>가 그렇게 궁금하지 않고 스필버그의 영화와 바꾸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다는 것 정도가 몇 안 되는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 거시다 2017.04.19 12: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즐겁게 읽으셨다니 보람을 느낍니다. 취미로 한 것이라 틈 날 때마다 다시 읽어보면서 조금씩 고치고 있으니 훗날 시간 나시면 다시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사실 저는 스탠리 큐브릭은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큐브릭이 만들 뻔했다는 영화들은 다 보고 싶긴 합니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그것 외에도 좋은 영화 많이 만들었으니까 호기심을 위해 한 편 정도는 양보해줘도…

  3. 후레 2017.06.02 11: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뭔가 민들레소녀의 영화광 버전을 보는듯한 기분이라 새롭네요

독일의 촬영감독 미하엘 발하우스, 혹은 마이클 볼하우스가 2017년 4월 11일 베를린의 자택에서 병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1세.

그는 배우 레나 후터와 오스카 발하우스의 아들로, 어린 시절 부모님의 친구였던 영화감독 막스 오퓔스와 교분이 있었으며 오퓔스의 대작 〈롤라 몽테스Lola Montès, 1955〉의 촬영 현장을 견학하고 엑스트라로 출연하기도 했다. 그는 서른여섯 살에 〈화이티Whity, 1971〉를 촬영하며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와 인연을 맺은 뒤 〈성스러운 창녀를 조심하라Warnung vor einer heiligen Nutte, 1971〉, 〈페트라 폰 칸트의 쓰디쓴 눈물Die bitteren Tränen der Petra von Kant, 1972〉, 〈전선 위의 세계Welt am Draht, 1973〉, 〈자유의 자구권Faustrecht der Freiheit, 1975〉, 〈중국식 룰렛Chinesisches Roulette, 1976〉,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Die Ehe der Maria Braun, 1979〉, 〈릴리 마를렌Lili Marleen, 1981〉 등 열세 편을 함께 작업했다. 그는 이후 미국에서도 존 세일스즈, 폴 뉴먼, 리처드 L. 브룩스, 피터 예이츠, 프랭크 오즈, 마이크 니콜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로버트 레드포드, 배리 레빈슨, 배리 소넨필드 등이 연출한 작품을 촬영했으며, 특히 〈일과 후After Hours, 1985〉에서 마틴 스콜세지와 만난 이후 일곱 편을 함께 작업했다.

물론 나는 그를 〈좋은 친구들Goodfellas, 1990〉을 통해 갓 영화를 보기 시작한 내게 스테디캠 롱테이크 페티시를 심어주어─지금은 사라졌지만─카메라의 움직임에 몰두하게 해주었던 인물로 길이 기억할 것이다.



Posted by 거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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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혹하구나

분류없음 2017.04.07 11:42
심지어 이종범이 은퇴 당했을 때도(!) 아 그렇구나 하고 말았는데, 이대형도 그렇고 김기태 감독 재임 중에 팀 떠나는 선수들은 유독 아프네. 그놈의 "대권 도전" 꼭 해야 하나, 하는 생각마저 드는 걸 보니 역시 나는 프로 스포츠의 열렬한 팬은 될 수 없겠구나 싶고. 뭐, 이건 그냥 팬의 마음이고 선수 본인에게는 더 나은 기회일 테니까, 계속 지금 자세 유지하여 대선수가 되어 주시기를.

Posted by 거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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